병실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고, 은색 가면을 쓴 남자가 의자를 꺼내 앉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왜, 내가 성남시에 돌아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3일 안에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강현석이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아직 어머니도 못 뵈었는데 어떻게 빨리 갈 수 있겠어? 현석아, 내가 네 쌍둥이 친형인데, 어떻게 매번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니? 정말 슬프다.”하지만 강현석은 이를 깨물며 말했다.“너는 내 형이 될 자격이 없어.”손가락을 비비던 은색 가면의 남자의 눈빛이 한 층 차가워졌다.“현석아, 내가 너한테 빛을 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지 마! 만약 꼭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면, 너희들이 틀린 거야.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지금처럼 사람도 귀신도 아닌 모습으로 변했겠어? 너희들이 나한테 빚진 거야!”남자가 거칠게 말하자, 강현석이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다 자업자득이야.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 걸 다른 사람 탓하지 마.”“그래, 자업자득이야! 내가 자업자득이야! 하하하!”은색 가면의 남자가 통제력을 잃고 손 옆에 있는 물컵을 뒤집어 엎자 유리 조각이 바닥에 튀었다. 그는 강현석을 매섭게 한 번 보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병상에 누운 강현석의 눈 밑 깊은 곳에서 폭풍이 용솟음치고 있었다.그도 열다섯 살이 된 후에야 자신에게 쌍둥이 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도예나는 아이들을 데려다 준 후에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요즘 예성과학기술회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지난번 발표회 이후 칩이 다 매진되고 있었다. 회사는 두세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모두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도예나가 신경을 많이 쓸 필요는 없었다.“대표님, 여기 옐리토스 그룹의 투자 유치 프로젝트 계획서입니다.”박정연이 자료 한 묶음을 가져오며 계속 말했다.“이 회사는 유럽 쪽 다국적 기업으로, 몇 달 전부터 성남시에서 함께 할 업체를 구하고 있었어요. 전에는 회사가 바빠서 저도 말씀
오후 2시 반, 박정연이 와서 문을 두드렸고 두 사람은 자료를 가지고 옐리토스 그룹의 성남시 사무실로 가려고 했다.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옆 회사의 곽 대표와 그의 비서를 만났고, 도예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곽 대표님 어디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곽 대표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비서가 기침을 하며 가로막았다.“고객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그들도 이번에 옐리토스 그룹에 가서 입찰을 하려고 했고,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았기에 미리 대대적으로 알리는 것보다 낙찰된 후에 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도예나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마침 일이 있어서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두 무리의 사람들이 사무실 건물 앞에서 각자 두 대의 차를 탔고, 두 차는 동시에 한 목적지를 향했다.30분 후 차가 멈추고 박정연이 차문을 열고 내려왔을 때, 마침 곽 대표와 그의 비서도 차에서 내렸다. 박정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곽 대표님의 비서님 정말 재밌네요. 분명히 입찰하러 왔는데 굳이 고객을 만나러 간다고 하다니. 왜, 우리랑 경쟁할까 봐 두려워요?”두 회사의 분야가 서로 달랐기에, 그녀는 왜 옆 회사가 항상 자신들을 경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곽 대표가 난처한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비서를 호되게 노려보더니 다가와 허허 웃으며 말했다.“도 대표님, 정말 우연이네요. 갑시다, 같이 들어가시지요.”도예나는 이런 데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회사는 자신만의 기밀을 가지고 있고, 곽 대표가 자신에게 목적지를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도 대표님은 이번에 칩 영역에 경쟁입찰하려고 하세요? 옐리토스 그룹이 성남시에서 30여개 칩 업체를 모집한다고 하니 성공률이 높겠네요.”곽 대표의 비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은 도예나가 낙찰된다면 애초에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예나도 이 뜻을 알아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곽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회의장에 들어섰다.
이제 막 성남시에 사무실을 임대해 들어온 옐리토스 그룹은,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팀도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대형 입찰회 현장에는 수석 프로그래밍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관리, 제품 운영, 프로세스 기획팀, 기술 컨설턴트 등등의 직위를 모두 모집하고 있었다.수백 제곱미터나 되는 1번 입찰장이 입찰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여기 와서 입찰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 업종의 최고 수준이었고, 다들 자신만만해 보였다.마지막 줄에 앉은 도예나의 눈빛은 담백하고 차분했고, 박정연은 약간 두근거렸지만 도예나의 침착한 얼굴을 보고 점차 냉정함을 찾았다.“안녕하세요, 저는 필리회사 대표입니다. 프로젝트 관리 쪽에 경쟁입찰하러 왔어요. 그쪽은요?”옆에 앉은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하고 먼저 명함 한 장을 건네자, 도예나도 웃으며 말했다.“저는 칩 개발 수석 디자이너에 입찰하러 왔어요. 잘 부탁드려요.”그러자 남자가 멍하게 말했다.“당신이 장 여사예요?”도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말씀하세요?”남자가 안경을 밀며 답했다.“칩 개발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이미 반년 전에 정해졌다고 들었어요. 그 디자이너의 성이 장씨라고…….”“이미 다 정해졌다면, 왜 다시 모집한다고 공지한 거죠?”“그건 모르겠지만…….”남자가 뒤통수를 만지며 도예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하지만 장 여사의 칩 설계 능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지도교수를 한 경험도 있다던데요? 이것도 옐리토스 그룹이 장 여사를 선택한 이유라고 하더군요.”도예나는 머릿속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씨 지도교수가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하버드에서 공부했지만 케임브리지와 자주 협력을 했는데, 확실히 그런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남자는 그녀가 어려움을 깨닫고 포기한 줄 알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수석 디자이너의 조수 자리에 입찰해볼 수도 있잖아요, 한번 해 봐요.”“고마워요,
“기술팀 지원 요청!”“…….”사무실 안은 난장판이었다.“이 아가씨는 누구야? 누가 들어오라고 허락했어?”방금 사회자로 나섰던 직원이 복도에 서 있는 도예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채 다가와 몰아세웠다. 그러나 도예나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는 얼굴의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조금 너그럽게 대하는 편이다. 특히 예쁘게 생긴 여자에게는 더.“여기는 옐리토스 그룹 내부입니다.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으니 나가세요.”그러자 도예나가 눈을 돌리며 말했다.“회사 책임자는 어디에 있죠?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직원은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바쁠 때 대표님은 아무도 안 만나실 겁니다. 당신이 누구든, 대표님한테 무슨 일이 있든, 내일 다시 오세요.”“지금 해킹을 당했는데 제때 막지 않으면 회사 계좌의 모든 자금을 뺏기고 말 거예요. 제가 해결할 수 있으니 빨리 대표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당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요?”직원들이 충격을 받았다. 여자가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 직원도 당연히 그랬다. 그는 눈앞의 이 미녀가 이 일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더 늦으면 저도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도예나의 표정은 계속 담담했다. 바로 이 담담한 표정이 직원을 믿게 만들었다.“좋아요, 그럼 따라와요.”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엘리베이터 입구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멈춰섰다.“방 대표님은 성격이 별로 안 좋으신데, 이렇게 큰 일이 생겼으니 더 거칠게 대하실 수 있어요. 좀 있다 들어가면 말 조심하세요…… 상황이 안좋아지면 어서 나와야 해요.”도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해킹 기술은 제훈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업계 내에서도 상위 5%에 속한다. 방금 그 기술자들의 스크린을 한 번 훑어보니 이건 매우 간단한 트로이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세가 등등하게 갑자기 엄습했기 때문에 기술자들이 혼란스러움에 빠진 것이다.트로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건 어렵지 않다. 중요한
도예나는 옐리토스 그룹의 팜플렛 인물 소개란을 떠올렸다. 위에는 이름이 하나밖에 없었다.방찬.지난번에 이 남자는 예성과학기술회사에 와서 자신의 성을 방씨라고 했는데, 그가 바로 옐리토스 그룹의 성남시 책임자였던 것이다.하지만 옐리토스 그룹은 인터넷과 스마트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데, 그때 방씨가 말했던 인체 생물 실험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실제로는 1초도 지나지 않았다.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도예나를 보더니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름이 아니라, 방 대표는 여자가 다가오는 걸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왔지만, 방 대표의 분노가 조금은 분산될 수 있을 것이다.“도예나 씨?”방찬이 냉기와 분노를 띤 눈빛으로 입가에 사악한 웃음을 짓더니 의자를 돌려 차갑게 도예나를 바라보았다.“전에 말한 건 잘 생각해 보셨는지?”도예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늘 입찰하러 왔는데, 회사 사이트가 해킹당했다는 말을 듣고 뵈러 왔어요.”방찬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더 깊어졌다.“도예나 씨가 저를 도와주러 왔다고요?”도예나는 그의 웃음에 온몸의 털이 서는 것처럼 오싹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냉담한 웃음을 띠었다.“보아하니 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네요.”말을 마친 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멈춰요.”그때, 방찬이 갑자기 일어서서 자신의 앞에 있는 컴퓨터 화면을 뒤집어 밀었다.“이게 회사의 호스트 계정이에요. 모든 데이터 메모리가 이 컴퓨터 안에 있어요. 이리 오시죠.”도예나가 몸을 돌려 컴퓨터 앞으로 걸어갔고, 의자에 앉아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손가락은 키보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이런 트로이 바이러스는 전에도 본 적이 있었고, 한 번은 제훈이가 궁금해해서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 해준 적도 있었다. 그때 제훈이가 이런 트로이 바이러스는 해외의 어떤 해커 조직이 직원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가져온 신형 바이러스라고 말한 게 기억났다.“이건 U-TF 신형 트로
방찬이 검지를 흔들었다.“대충 다 결정된 거죠.”그의 대답에 도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하더니 가방에 있던 서류 한 권을 꺼내 말했다.“대충 다 결정되었다는 건, 저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거죠. 이건 내가 만든 칩 설계도예요. 참고하세요.”그녀는 서류를 회의 탁자 위에 놓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방찬은 그녀가 복도로 사라지자 책상 위의 서류를 들어올렸다. 그의 피부는 누런 색이었고, 손가락 끝이 어두웠다.그가 서류를 펼치자 안에는 모두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했다. 그는 비록 전문적인 기술자는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를 맡으며 전문 용어를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설계서는 대략적으로 적힌 거라 내용도 적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그가 여태껏 생각해 본 적 없는 참신함을 가지고 있었다.그가 담담하게 손가락을 두드리며 말했다.“장 여사의 칩 설계서를 가져와요.”변두리에 서 있던 보좌관이 즉시 답했다.“네,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장 대표님, 옐리토스 그룹의 방 대표님이 칩 설계도를 보여달라고 하십니다.”비서가 들어와서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말했다.대표실에는 약 40대의 중년 여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갈색 웨이브가 있는 머리카락이 우아한 귀부인의 기질을 드러내고 있었다.그녀는 달력을 한 번 보고 오늘이 옐리토스 그룹의 입찰일이라는 걸 떠올렸다. 컴퓨터를 켠 그녀가 갑자기 손을 급하게 움직였다.“누가 내 컴퓨터를 건드린 적 있어요?”그 말을 들은 비서가 놀라서 멍해졌다.“대표님 분부 없이 어떻게 컴퓨터를 건드리겠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내 설계서가 없어졌어요. 어제 저녁에 마지막으로 수정하고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는데…….”장 여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비서가 얼른 다가가 찾아보았지만 역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장 여사를 한 번 본 비서가 공손하게 말했다.“장 대표님, 어젯밤 수정하신 후에 제가 사진을 찍어 놓았어요. 일단 사진이라도 먼저 보낼까요?”장
도예나는 그를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귓가에는 오늘 아침 그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난 당신과 양육권 다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네 아이는 당신이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인데 그런 아이들을 빼앗는 건 그쪽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다른 점이 뭐가 있겠어요. 저는 그런 비열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네 아이가 강씨 가문에 남고, 또 당신도 네 아이 옆에 있으려면 우리가 함께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아빠도 생기고 엄마도 생길 텐데요.”“도예나씨,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도예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하루 만에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강현석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요, 천천히 고민해봐요.”그리고 그는 뒷좌석 문을 열고 수아를 품에 안았다.“아빠 보고 싶었어?”아이는 부끄러운 듯 목을 파고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보고 싶었어요.”“수아야, 내려와.”도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아빠의 오른손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어. 상처가 덧나지 않게 내려와.”그리고 도예나가 아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강현석은 이런 그녀를 보며 가슴속이 따듯해지는 걸 느꼈다.네 사람이 천천히 입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강세윤이 별장안에서 토끼처럼 폴짝 뛰어나왔다.요즘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강세훈도 그의 뒤에서 걸어나왔다. 강세훈은 도예나 앞에 서서 잠시 고민하다가 수줍게 엄마라고 그녀를 불렀다.양 집사는 입구에서 이 광경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지금껏 아이들을 지켜봐 왔던 양 집사는 큰 도련님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루빨리 도예나씨와 사장님이 날을 잡아야 할 텐데…….”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가 매트에 모여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도예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둘렀다.그녀의 요리 솜씨는 예전부터 좋은 편이었으나 강세훈과 강세윤에게 못 해준 사랑을 갚기 위해 그녀
“……”‘동생도 뺏겨버렸어. 이 세상엔 나 혼자뿐이야…….'여섯 식구가 화기애애하게 식사하고 있는데 별장 입구에서 갑자기 메이드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안녕하세요!”강 부인이 돌아온 것이었다.며칠 전 강 부인은 생일 연회를 마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친구들과의 약속에 집을 자주 비웠었다.오늘 이 시간에 돌아온 건 그나마 이른 편이었다.도예나가 고개를 돌리자 드레스 차림의 강 부인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그녀는 온몸이 뻣뻣해졌고 어떤 표정으로 강 부인을 만나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할머니, 돌아왔어요?”강세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강 부인이 있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가 강 부인의 손을 잡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할머니, 저 엄마랑 여동생이 생겼어요. 아, 남동생도요.”“……”‘나는 그렇게 반갑지 않은가 보지?'도제훈은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해졌다.“할머니 빨리 와봐요. 제 여동생 정말 귀엽죠?”강세윤이 수아를 가리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제 여동생 목소리도 엄청 예뻐요. 말랑말랑 솜사탕 같아요…….”강세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강 부인의 시선이 점차 도예나와 아이들에게로 향했다.강 부인은 제 가문에 핏줄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시켜 조사를 했었다.그해 도예나는 네 쌍둥이를 낳았고 그중 두 아이는 도설혜, 이 악독한 여자의 신분 상승 용도로 쓰였었다.남은 두 아이는 도예나와 함께 해외로 가서 살았고 한 달 전에 성남시로 돌아왔다…….도제훈 이 아이는 총명하고 다부져 보였고, 도수아는 예쁘장하고 얌전해 보였다. 이 두 아이는 척 보아도 강씨 가문의 핏줄이 틀림없었다…….“사모님, 안녕하세요.”도예나는 강 부인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도제훈은 말없이 일어서서 수아를 몸으로 가렸다. 강 부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에서 지켜주기 위해서였다.“이 아이들이 바로 제훈이와 수아인거지?”강 부인의 목소리가 온화했고 눈빛도 부드러웠다.“너희 둘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