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석은 가만히 도예나의 옆모습을 지켜보았다.그는 사람의 행동으로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눈앞의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는 주머니에서 티켓 여러 장으로 꺼냈다."수아를 데리고 피아노 연주회에 가고 싶어요. 토요일 오후 연주회인데 시간 내줄 수 있나요?"도예나가 시선을 돌려왔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피아니스트가 모두 참석하는 연주회라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네댓장의 표가 있었다.......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수아가 좋다면 저도 좋아요."강현석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왜 갑자기 이렇게 다정한 거지?며칠 전 날을 세우던 그녀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웅웅--탁자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도예나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효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손의 물기를 닦고 전화를 받았다."여 변호사님.""도예나 씨, 방금 진씨 가문의 변호사 연락을 받았어요."여효의 목소리가 어두웠다."전에는 진톈건씨 혼자 하는 소송이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씨 가문이 모든 힘을 동원해서 소송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진씨 어르신이 거금을 들여 해외 변호사도 섭외하고 그 수가 족히 15명은 넘어요......."도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여 변호사님."진씨 가문이 아무리 많은 변호사를 섭외한다고 해도 그녀의 양육권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진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으니.전화를 끊고 도예나는 여효에게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강현석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방금 핸드폰 너머로 모두 들은 모양이었다.아무리 실력이 있는 여효라고 해도 변호사 열몇명을 상대로는 무리일 것이다.도예나가 시선을 내리깔고 감자를 채를 썰며 말했다."강현석 씨, 물어볼 게 있어요. 만약 도설혜
세훈이와 세윤에게 4년 동안 빚을 졌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또 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두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강현석과의 소송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왜요? 무슨 생각 해요?"강현석이 고개를 숙이고 볼이 빨개진 그녀를 살폈다.도에나가 식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결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강현석 씨, 제 남자친구 하실래요?""네?!"강현석은 깜짝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귀가 잘못되어 헛것을 들었다고 의심한 그는 숨을 들이쉬고 재차 물었다."도예나 씨, 다시 말해봐요, 뭐라고요?"도예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강현석 씨, 아까 들었다시피 진씨 가문이 본격적으로 소송을 걸어온다고 하네요. 저는 아이들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어요. 여효 변호사님께서 장기간의 안정적인 연애 사이가 소송에 이로울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강현석 씨 제 가짜 남자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그녀는 강현석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주먹 쥐고 말했다.강현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하죠?"도예나가 입을 열었다."강현석 씨가 도와준다면 저도 아무 부탁이나 들어줄게요.""단지 소송 때문인가요?"강현석이 그녀를 몰아붙였다.도예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네, 소송에서 이기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예요.""조금 고민해볼게요."강현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지금까지 저한테는 그 어떤 여자도 없었어요. 만약 제 여자친구가 된다면 여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일 거고 이는 강씨 가문에 좋은 점이 없을 거예요......."도예나가 입술을 매만졌다."강현석 씨,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남자친구가 되어달라는 건 단지 소송에서 증명을 해달라는 것이지 관계를 공개하자는 게 아니에요...... 걱정마세요. 제 남자친구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예요
"예나 이모, 요리 솜씨가 점점 더 좋아졌어요! 너무 맛있어서 접시까지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강세윤은 고개를 그릇에 파묻고 입 옆에 밥알을 붙인 채로 말했다.강세훈도 제육 하나를 집어 자신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제육의 빛깔과 향은 전에 먹어봤던 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입에 넣고 보니 편식이 심하던 강세윤이 왜 그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진짜 너무 맛있었다.재료 본연의 맛을 제외하고 친근한 향이 풍겨왔다.......그는 모든 반찬을 한 번씩 맛보고 방금 느꼈던 친근함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바로 요리하는 사람의 사랑과 정성이 아닐까?강세훈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한술 크게 입에 넣었다.......평소에는 한 그릇이면 충분했지만 오늘 그는 두 그릇이나 비워냈다.......그러나 강세윤과 수아의 식사량에 비하면 강세훈이 비운 그릇은 눈에 띄지 않았다.식사를 마치고 강현석이 주머니에서 피아노 티켓을 꺼내서 오른쪽 편에 앉은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뭐해? 삼촌이랑 피아노 연주회 보러 갈래?"아이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이는 빠르게 티켓을 전부 손에 쥐고 한장 한장 세였다.옆에 앉은 강세윤도 합세를 했다."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 여섯 장! 마침 여섯장이네요! 우리 여섯명 모두 피아노 연주회에 가면 되겠어요! 너무 기대돼요!"도예나가 조용히 물었다."제훈아, 너도 가고 싶어?"도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과 강현석이 단둘이 연주회를 가는 건 안심이 되지 않았다."형! 형도 같이 가자!"강세윤이 재촉했다."피아노 연주회가 얼마나 재밌는데. 일은 잠시 미루고 같이 가자, 응?""......"전에 강세훈은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했었다.도설혜가 연주하는 피아노는 소음에 가까웠지만 수아가 연주하는 건 아름다운 선율이었다......강세훈이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토요일 오후 마침 시간이 돼요, 같이 가요 우리."강현석이 그를 살폈
식사를 마치자 벌써 저녁 8시가 되었고 도예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강현석이 따라나서며 말했다."내가 바래다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도예나가 그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강현석 씨, 제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아이와 함께 차에 올랐다.강현석은 별장 입구에 서서 차가 큰길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보았고 작은 점이 되어서야 시선을 거두었다.그녀의 남자친구라......정확히 말한다면 가짜 남자친구였다.......만약 가짜라고 선을 긋지 않았다면 바로 대답했을 수도 있었다."아빠!"강세윤이 그의 정장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아빠도 예나 이모가 가는 게 아쉽죠?"강현석이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드라마에서 그러잖아요. 떠나는 게 아쉬워서 멀리서 지켜보고."강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너무 아쉬워 마세요, 아빠. 예나 이모는 내일 또 올 거예요. 매일 저녁 세윤이를 보러 온다고 약속했어요, 헤헤."녀석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얼굴을 굳힌 강세윤이 말했다."아빠, 두날 뒤 할머니 생신에 그 여자를 못 오게 하면 안 돼요?"강현석은 여전히 도예나에게로 신경이 쏠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어느 사람?""그 나쁜 마녀, 도설혜!"강세윤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예나 이모는 그 나쁜 마녀를 싫어해요. 마녀가 오면 예나 이모가 오지 않을 거예요!"강세훈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그러자 강세윤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형, 형이 무슨 말 할지 알아. 도설혜가 내 엄마라고 해도 나는 도설혜가 싫어!"강세훈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아버지, 저도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오면 예나 이모와 불필요한 다툼이 일어날 수 있어요. 어머니한테 초대장을 보내지 마세요.""나도 그럴 생각이었다."강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도설혜의 말이 나오자 그는 손동원에게
띵동-강현석의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이메일이었다.그는 바로 컴퓨터를 열고 이메일의 동영상을 다운로드했다.5년 전 로얄 호텔 18층 복도에 설치된 CCTV 동영상은 많이 압축되어 겨우 십여분밖에 하지 않았다.복도의 불빛은 어두웠고 직원들이 자주 오고 갔다. 그러던 새벽 1시쯤, 두 여자의 모습이 동영상에 담겼다.흐릿한 화면이었지만 강현석은 그 두 사람이 바로 도예나와 도설혜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도예나는 술에 많이 취한 듯 보였고 도설혜의 부축받아 어느 방의 입구로 걸어갔다.이어 방문이 열리고 도설혜와 도예나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동영상은 바로 여기에서 끝나버렸다. 강현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전화를 들었다.손동원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또 왜 그래?”“동영상이 새벽 2시에서 끝났어. 이후의 동영상은?”“아, 직원이 하드 용량 문제로 매일 영상은 새벽까지만 저장되고 그 시간 이후로는 포맷이 되었다고 하더라고.”강현석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다시 찾을 수 없는 거야?”“새롭게 녹화된 동영상이 저장되고 예전의 동영상은 자동 삭제가 되었을걸. 아무리 대단한 해커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어려울 거야.”손동원이 하품했다.“현석아, 5년 전 동영상으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네가 누구와 뭘 했는지 기억을 못 하겠다면 다시 한번 해봐, 그러면 바로 생각이 날걸…….”강현석이 전화를 뚝 끊었다.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멈춘 화면을 골똘히 바라보았다.정지된 화면에서 도예나와 도설혜는 어느 방의 입구에 같이 서 있었다. 흐릿한 화면 탓에 방 번호도 알 수가 없었다.그는 5년 전 그날 밤이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의 직감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었다…….‘그날 밤 정말 도설혜였을까?’도설혜와 아이들의 친자 확인을 해본 적이 있었다. 결과는 확실히 아이 친모라고 나왔다.하늘에 맹세코 술에 취해 여자와 밤을 보낸 건 그날뿐이었다. 도설혜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그러니 이상한 상
“엉엉! 정말 그렇게 못생겼어?”강세윤은 인형을 잡고 요리조리 살폈다. 밤을 새워 10시간 넘게 만든 목각 인형이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왜 다들 싫어하는 거지?그때 통통한 손이 다시 다가와 인형을 가져갔다.수아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인형을 자기 가방에 넣었다.그 모습에 강세윤의 얼굴에도 드디어 미소가 걸렸다.“봐봐! 수아는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든대!”도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네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화목한 모습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네 아이가 웃는 걸 보기만 해도 그녀는 행복했다.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도예나를 향하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강현석의 차가운 눈꼬리에서 이렇게 따뜻한 눈빛이 나올 수 있었다는걸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시간이 지금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뜨거운 시선이 느껴지자 도예나는 고개를 들었고 강현석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까만 눈동자는 마치 블랙홀같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심연 어딘가로 빠져들어 갈 것 같았다…….그녀는 이런 눈빛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졌다…….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 한 채로 말없이 한동안 서 있었다.“쉿!”강세윤이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수아와 자기 형을 뒤로 끌었다.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바로 책에서 말하는 '한눈에 반했다'는 거 아니야? 우리 아빠랑 예나 이모가 사랑하는데 방해하면 안돼…….”“……”강세윤은 말없이 한걸음 물러섰다.‘아빠와 예나 이모가 주고받는 시선은 연인의 눈빛 같지 않은걸……'도제훈은 도예나의 옆에 서서 입술을 모으고 고민에 빠졌다…….‘엄마는 현석 삼촌이 우리 친부인 걸 알고 다른 관계로 발전하려는 건가?'‘정말 그렇다면 차라리 엄마한테 말하지 말걸…….'도제훈은 인상을 쓰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수아야, 네 엄마와 우리 아빠가 결혼했으면 좋겠어?”강세윤이 수아에게 귓속말했다.“만약, 네 엄마와 우리 아빠가 결혼하면 너는 우리 아빠를 진짜
도예나가 고개를 휙 돌려왔다.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수아를 바라보았다.“수아야, 방금 뭐라고 한 거야?”그녀는 수아가 강현석에게 아빠라고 두 번 불렀던 걸 제외하고 수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심리 상담도 받아봤었는데 의사는 그녀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었다…….그래서 늘 대수롭지 않은 척 했었지만 사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수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그런데 방금, 아빠라는 말 외에 드디어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도예나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천천히 물었다.“방금 뭐라고 한 거야? 다시 한번만 말해줘.”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큰 눈을 깜빡일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예나 이모, 수아가 방금 아빠랑 뽀뽀하라고 한 거에요!”강세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수아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는데 빨리 우리 아빠랑 뽀뽀해요! 빨리!”“강세윤!”도제훈이 인상을 쓴 채로 걸어와 강세윤을 확 낚아챘다.강세윤은 도제훈의 차가운 눈빛에 깜짝 놀라 강세훈의 뒤로 몸을 숨겼다.도예나는 강세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모든 신경을 수아에게 쏟고 있었기에.수아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앵두 입술을 다시 열고 짧은 한마디를 했다.“엄마…….”선명한 두 글자가 들려오자 도예나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4년 만이야. 4년 동안 매일매일 기도해 드디어 오늘 엄마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심리 상담 의사는 수아가 성인이 되어서야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10년 넘게 앞당겨졌으니 그녀는 너무 기뻤다…….“수아야, 정말 고마워…….”도예나는 작은 딸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엄마…….”아이가 또 입을 열었다. 수아는 손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엄마는 왜 아빠랑 뽀뽀 안 해?”“……”임신기간을 포함해 낳아 기른 세월이 5년이 되어가는 딸아이가 처음 입을 연 이유가 엄마가 다른 남자와 뽀뽀하라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도예나에게도 들려왔지만 그녀는 개의치않고 묵묵히 안으로 걸어갔다.그러나 강현석은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그들의 좌석은 VIP석으로 가장 앞줄에 있었고 여섯 식구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강세윤은 강현석의 경고를 벌써 잊어버렸는지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수아야, 우리 여기 같이 앉을래?”그러자 수아는 도예나의 품에서 내려와 강세윤의 옆자리인 끝자리에 앉았다.“형, 형이 내 왼쪽에 앉아. 도제훈, 너는 수아의 오른쪽에 앉아.”강세윤은 순식간에 자리를 다시 배정하여 끝의 두 자리를 도예나와 강현석을 위해 남겨놓았다.도예나는 강현성을 따라 옆에 앉으며 강세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들었다.“수아야, 연주 금방 시작할 텐데, 신나?”“수아야, 나는 오늘 처음 연주회 보러 왔어.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비웃으면 안 돼!”“수아야, 손 좀 잡으면 안 될까? 네 손이 너무 말랑말랑해…….”“강세윤, 좀 조용히 할래?”강세훈이 짜증을 담아 말했다.그러나 강세윤은 말썽꾸러기 표정을 지었다.“수아는 내가 말하는 게 좋대! 형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지, 수아야?”“응!”수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짧은 음절을 내뱉었다.그러자 강세윤은 더 득의양양해졌다.“들었지 형? 수아가 내가 말해도 된다고 했어!”아이들의 모습에 도예나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친오빠가 옆에 있으니 수아도 천천히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겠지.활발하고 구김살이 없는 강세윤은 수아의 침묵과 정반대되는 아이였다. 수아가 이런 강세윤과 나란히 앉으려는 건…… 그들 몸에 같은 피가 흐른다는 증거였다. 그들의 혈연은 말없이 강했다…….연주회가 시작되고 불빛이 어두워지자 강세윤도 입을 다물었다.첫 번째 곡은 기세가 웅장한 찬가였다. 두 명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합작하여 연주하는 이 곡은 매 음표마다 세상에 대한 열정과 찬송이 느껴졌다. 듣고 있자니 몸에 힘이 불끈 솟아나고 열정이 샘솟았다…….도예나는 연주회에 가는 걸 좋아했지만 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