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대표님, 안으로 들어가세요.”정신을 차린 박정연은 급히 강현석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회의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도예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강 대표님, 앉으세요.”강현석이 의자를 빼고 앉자, 박정연은 급히 나가서 커피를 준비했다.“왜 대표님 혼자 오셨어요?”그를 본 도예나가 놀라며 말했다. 손 매니저나 손동원, 이민성 등과 함께 올 줄 알았는데, 그가 혼자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 물음에 강현석이 담담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손동원 씨를 보고 싶습니까?”“…….”이 남자는 왜 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의자에 앉은 그녀가 손에 든 서류를 밀었다.“이건 지난번에 손 매니저와 의논한 후 다시 수정한 겁니다.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하지만 강현석은 서류를 펼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오늘 온 건 일 얘기 때문이 아닙니다.”“그럼 무슨 얘기를 하러 오셨죠?”턱을 괸 도예나가 계속 입을 열었다.“세윤이 일인가요?”그러나 강현석은 고개를 저었다.“어제 밤 11시, 도예나 씨 회사 사이트가 해킹을 당했죠?”눈을 가늘게 뜬 도예나가 정색하며 말했다.“누가 그랬는지 아세요?”강현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이 일은 확실히 강세훈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로서 아들의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그가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 아들이 도예나 씨 회사 사이트를 공격해서 끼친 손실은 제가 전액 배상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도예나의 예쁜 눈꼬리에 의심이 떠올랐다.“세윤이가 해커라고요?”“세윤이 말고, 제 큰아들이요, 강세훈.”강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도예나는 강세훈이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강현석의 큰아들, 천재 아이는 지금 이미 강씨 그룹의 후계자이다.그날 강현석이 강세훈을 언급했을 때, 그 말 속에서 이미 강세훈의 지능이 도제훈만큼이나 월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어쩐지 어제 회사 사이트의 백그
그녀가 의자에 기대어 기다리는 동안, 강현석은 눈썹을 비꼬며 불쾌하게 전화를 끊었다.그 모습을 본 도예나가 실소를 터뜨렸다.“아드님이 사과하기 싫어하는 거 맞죠?”강현석의 얼굴에 안개가 한 겹 덮여 있는 걸 보고, 도예나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천재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세계가 있어요. 그 아이들은 이 현실 세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누구에게도 쉽게 굴복하지 않죠. 누구나 제 아들 제훈이처럼 영리하면서 철이 들기는 쉽지 않아요. 강 대표님, 앞으로 아이 교육에 더 신경 쓰셔야겠어요.”“…….”영리하다고? 철이 들었다고?이 여자가 확실히 도제훈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제가 아들에게 꼭 사과하도록 말해놓을게요.”이 말을 던진 강현석이 책상 위의 서류를 들고 떠나자, 도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아이들이 실수하는 건 정상이기에, 이 정도는 포용해 줄 수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다.퇴근 후, 도예나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 호텔로 향했다.지난번에 알버트 씨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강세윤의 교통사고로 인해 오늘로 연기된 것이다. 알버트는 오늘 밤 9시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꼭 만나야 한다.세 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문을 연 도예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도예나 씨, 오랜만이예요.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요.”칠십이 넘은 알버트의 머리는 온통 은발이지만 정정한 모습이라 칠십이 된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만연에 웃음을 띠고 다가와 도예나에게 포옹을 하려는 순간, 작은 키의 아이가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자신을 가로막은 도제훈을 몇 초 동안 쳐다보면 알버트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설마 이 아이가 전에 말했던 제훈이예요? 그 때는 나를 속이는 줄 알았는데, 정말 아이가 생겼군요. 얘가 제훈이고, 그럼 얘가 수아겠네요?”도예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두 아이 때문이 아니라면,
“알버트 씨, 제자를 받고 싶으시죠? 제 딸 수아를 추천해요.”도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알버트는 깜짝 놀랐다.“아니, 제가 제자로 받고 싶은 건 당신이예요. 다른 사람들은 안 됩니다. 당신 딸이라도 예외는 아니예요.”“왜 시도도 안 해보세요? 성남시를 떠나기 전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았는데, 피아노 연주를 듣기에 충분한 시간 아닌가요?”알버트는 진지하게 도예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를 알게 된 지 이미 3~4년이 흘렀기에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알랑거리거나 비위를 맞추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제자가 되는 것도 거절했다.전 세계에서 이런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알버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소녀를 바라보았다.“그럼 마음대로 한 곡 쳐봐, 긴장하지 말고.”호텔의 스위트룸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알버트는 서른 살 때부터 매년 전 세계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고, 전 세계 각 지역에서는 그를 위한 피아노를 준비했다.그는 수아의 손을 잡고 거실로 가서 피아노 앞에 앉혔다.매우 큰 피아노는 건반에 연결된 줄이 매우 길었고 나무무늬의 연륜도 뚜렷하게 보였다. 그 틈새는 가늘고 곧아서, 도예나는 아직 이 피아노의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지만 최고의 피아노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생각해보면, 알버트의 호텔 스위트룸에 놓일 수 있는 피아노가 보통 물건일 리 없다.수아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 번 눌러 보았고, 고음 부분의 피아노 줄이 맑고 밝은 투명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수아의 눈이 밝아지며 두 손을 들어 눈을 감고 가볍게 ‘작은 별’을 연주했다.국내외 어린이 모두의 귀에 익은 이 곡은 간단하고 경쾌하며 피아노를 접한 지 며칠밖에 안 된 아이들도 기본적으로 다 칠 수 있는 곡이다.큰 기대가 없던 알버트는 곡이 끝날 무렵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소녀의 곁에 다가가 서투른 한국말로 말했다.“마지막 부분 다시 한 번 쳐 볼까?”‘작은 별’은 원래
수아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맺는 의식으로 알버트 씨에게 차 한 잔을 건넸고, 지금부터 알버트 씨의 두 번째 제자가 되었다.“저는 이제 다른 나라에 연주회를 하러 가는데, 이 연주회가 끝나면 수아를 데리고 다른 제자를 만나러 갈게요. 그 사람도 정말 우수한 피아니스트예요.”알버트 씨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이 피아노는 수아에게 줄게요. 직접 만나서 가르칠 수가 없으니, 이 피아노로 많이 연습하게 하세요.”도예나는 깜짝 놀랐다.“안 돼요, 이렇게 좋은 피아노를…….”“이게 좋은가요?”알버트 씨의 눈밑에 순간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이 피아노 줄은 기계로 만든 거예요, 그래서 줄 소리에 잡음이 있죠. 수아 말고 다른 제자가 쓰고 있는 건 제가 직접 만든 피아노 줄이예요. 소리가 더 투명하죠… 제가 나중에 수아에게 직접 피아노를 만들어 줄 테니, 일단 아쉬운 대로 이걸 쓰게 해요.”“…….”그녀의 눈에는 최고의 피아노인데, 알버트 씨의 눈에는 그저 아쉬운 대로 쓰는 피아노라니. 그래, 그럼 일단 아쉬운 대로 하자.그녀가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빨리 스승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그러자 수아가 앞으로 다가와 알버트의 손을 흔들었다.도예나는 또 한번 놀랐다.처음 만났는데도 수아가 알버트에게 큰 친근감을 보이고 있다. 이건 수아가 피아노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증거이다. 그녀는 자신이 정확한 결정을 한 것을 더없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도예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직접 알버트 씨를 공항으로 데려다 준 뒤 사람을 불러 피아노를 저택으로 보냈다.피아노는 1층 거실 베란다 입구에 놓여 햇빛을 마주하고 있다. 수아는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내려오려 하지 않고 새로 배운 두 곡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도예나는 피아노곡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렸다.그때, 도제훈은 노트북을 안고 베란다 밖에 앉아 두 눈으로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마침내 사이트 주소
국과 네 가지 반찬이 아주 빨리 완성되었고, 도예나는 두 아이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엄마, 내일 토요일인데 우리 세윤이를 보러 병원에 가는 건 어때요?”도제훈이 영리하게 제안하자, 젓가락을 멈춘 수아의 눈동자에 기대가 가득했다. 그 제안에 도예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제훈아, 너 세윤이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그 물음에 도제훈은 입술을 삐죽거렸다.“걔가 동생한테 잘 해 주니까, 억지로 받아들이는 거죠.”대답을 들은 도예나는 기쁘게 웃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확실히 천진난만하고 순진하다. 이렇게 작은 일로 한 사람을 변하게 하다니. 그녀는 제훈이가 영원히 이 순수함을 유지하기를 바랐다.그러나 도제훈의 처진 눈꺼풀에는 차가운 기운이 떠올랐다.방금 K가 보낸 그 도메인 이름은 강씨 그룹이었다. 그날 밤 엄마의 회사 사이트를 공격한 해커가 강씨 집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그가 강세윤의 병문안을 가자고 한 것도 단지 강현석 그 남자의 본심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토요일, 햇빛이 맑고 날씨가 아주 좋은 날. 병상에 누운 강세윤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놀러 가고 싶어요. 나가고 싶어요! 양집사님, 저를 내보내 주세요.”양집사는 그보다 더 수심에 찬 얼굴이었다.“도련님, 아직 몸이 낫지 않아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요. 의사가 특별히 당부했듯이, 며칠동안 누워서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고, 다 나으면 마음대로 놀러 다니세요…….”“흥! 또 나를 속이는 거죠!”강세윤이 불쾌하게 소리쳤다.“제가 퇴원하면 아빠는 또 저를 감금할 거예요. 그럼 차라리 매일 입원하는 게 낫겠네요!”말을 마친 그가 갑자기 이불을 젖히고 병상에서 뛰어내렸고, 양집사는 놀라서 얼른 그를 막았다.“도련님, 소란 피우지 마세요!”강세윤은 양집사의 수염을 덥석 잡고 화가 나서 말했다.“저를 막지 마세요! 손을 놔요! 나가서 놀 거예요!”그 교통사고를 겪은 후, 양집사는 이전처럼 그렇게 쉽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강세윤을 힘껏 껴안은 그가 의미심장하
그녀는 어제 강세훈에게 강세윤이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았고, 트랜스포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주말 아침부터 마트에 가서 가장 호화로운 트랜스포머를 골라 강세윤에게 선물했는데, 이 잡종이 자신이 정성껏 고른 장난감을 던지다니…….뭘 하든 강세윤에게 자신이 어머니라는 걸 인정하게 할 방법은 없는 걸까?“도설혜 씨, 도련님은 몸이 허약하셔서 요양 중이십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안 되니 일단 나가시죠.”양집사가 다가와 공손하면서도 강하게 말했지만, 도설혜는 입술을 깨물고 나가려 하지 않았다. 모자 간의 감정을 회복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엄마, 일단 밖으로 나가 있다가 세윤이 기분이 가라앉은 후에 들어오세요.”하지만 강세훈이 담담하게 말하자, 도설혜는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병실을 나왔다. 병실 입구를 나서는 그녀의 얼굴은 비뚤고 험상궂었다.한숨을 쉰 양집사도 몸을 돌려 병실을 나왔고, 가볍게 잠긴 병실 안에는 형제 두 사람만 남았다.“형, 나 말리지 마! 나는 나를 잡종이라고 부르는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강세윤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병상 옆에 앉아있던 강세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너… 기억나?”“왜 기억이 안 나?”강세윤의 입가에 비꼬는 웃음이 가득했다.“그 여자는 한 살 난 아이가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를 너무 얕본 거야.”그들의 첫 돌잔치 때, 강씨 집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그때 도설혜가 형제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강세윤은 그날 너무 긴장해서 실수로 바지에 오줌을 쌌다. 그를 데리고 휴게실에 가서 바지를 갈아 입히던 도설혜는 욕을 했다. 그는 도설혜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욕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저 잡종이라고 말했던 것과 그 혐오스러운 눈빛만 기억하고 있었다.나중에 말을 할 줄 알게 됐을 때 그는 이 일을 형에게 알렸지만, 형은 침묵했다.그제서야 그는 도설혜가 자신뿐만 아니라 형도 욕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형은
강세훈은 바닥에 떨어진 트랜스포머를 주워 침대 머리맡에 잘 모아두고 평온하게 말했다.“어쨌든 우리 엄마니까, 사랑하지 않아도 존중해 드려야 해.”붉은 눈동자를 비비던 강세윤은 대답하지 않았고, 강세훈도 더 이상 이 화제를 언급하기 싫어 말을 돌렸다.“그저께 저녁에 너를 보러 온 그 두 아이는 유치원 친구야?”흐렸던 강세윤의 마음이 순식간에 맑아지며, 입꼬리를 올리고 눈에 웃음을 ㄸ었다.“도제훈이랑 수아야. 예나 아줌마랑 같이 나를 보러 온 거야.”“수아? 그 여자애 이름이 수아야?”“맞아, 수아라고 불러. 얼마나 귀여운지!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눈을 보면 마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큰 눈이 검은 포도처럼 깊어. 수아가 나를 볼 때마다 마치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아…….”설명하는 강세윤의 눈이 마치 은하수가 반짝이는 것처럼 초롱초롱했고, 강세훈도 그 마음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음에 수아를 우리 집에 초대해서 같이 밥 먹어도 돼.”“좋아! 하지만 내 장난감은 모두 자동차랑 비행기야. 수아가 좋아하지 않을 텐데… 형, 이따가 마트에 가서 여자 애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좀 사서 가. 내가 퇴원하면 수아한테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할게!”이따가 매우 중요한 회의가 있었지만, 강세훈은 그냥 대답했다.“좋아.”그리고 30분 동안 이야기를 한 후에야 비로소 병실을 떠났다.도설혜는 복도 끝의 의자에 앉아 짜증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가, 강세훈을 보자마자 짜증이 억울함으로 변했다.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온 그녀가 물었다.“세훈아, 세윤이 기분이 좀 좋아졌니? 내가 들어가서 만나도 될까?”“내일 다시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잠들었어요.”강세훈의 대답에 도설혜는 실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그래, 내일 다시 올게.”그리고는 강세훈의 손을 잡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강세훈은 온 몸이 불편했지만 억지로 손을 놓지 않았다.두 사람이 병원 입구로 나올 때, 정면에서 세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예나가 왼손에는 도제훈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 여자아이는 도예나랑 무슨 관계죠?”방금 병실에서, 강세윤은 수아가 도예나를 따라 병문안을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또 도예나와 함께 나타났다. 게다가 도예나는 또 다른 남자아이까지 끌고 왔다.그의 마음속에 뭔가 의심이 피어오르는 걸 느낀 도설혜는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거의 보이지 않던 강세훈이, 오늘 그 여자아이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그 여자아이는 도예나의 딸, 즉 강세훈의 친여동생이다.친남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혈연적인 유대관계가 있는걸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높은 지능을 가진 강세훈은 곧 도예나가 자신과 강세윤의 친어머니라는 걸 곧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그 순간, 도설혜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나도 그 여자아이와 도예나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도예나가 4년 전 실종된 후 바로 임신했다고 해도 이렇게 큰 딸이 있을 수 없는데…….”그 말은, 여자아이가 도예나의 딸일 리가 없다는 뜻이다.강세훈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었다. 수아와 도예나의 관계는 이후에 강세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엄마, 가시죠.”그의 평온한 모습은 오히려 도설혜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고, 그녀가 쫓아가서 걸으면서 말했다.“세훈아, 교통사고 조사는 어떻게 돼 가? 도예나와 관련된 증거가 나왔어?”하지만 강세훈은 고개를 저었다.“이 일은 도예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아버지가 이미 홍씨 가문과 관련되었다는 걸 알아냈으니, 별 다른 증거가 없는 이상 이 일은 홍씨 가문과 연관된 것이다. 도예나가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서울에 있는 홍씨 가문과 결탁했을 리도 없다.“어떻게 관계가 없니? 그 여자 말고 또 누가 세윤이에게 손을 대겠어? 세훈아, 너도 그 여자한테 현혹된 건 아니지?”도설혜가 목소리를 높이자 강세훈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니, 지금 도예나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요.”“그 여자가 똑똑해서 모든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