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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시열
나는 고개를 숙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걸림돌은 내가 아닌 양채민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구재인과 양채민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결혼을 약속했다.

내가 16살 되던 해, 나야말로 자연그룹의 친딸이라는 게 밝혀졌다. 양채민은 도우미의 자식인데 악의적으로 나와 뒤바뀌어졌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마음 약한 부모님은 양채민을 돌려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큰딸, 양채민은 둘째 딸이 되었다.

집에서 보내는 첫 번째 생일에 부모님은 구재인과 그의 부모님을 초대했다. 구재인의 어머니는 나한테 예쁘다고 칭찬하며 손을 잡고 대화를 해줬다. 이걸로 양채민은 질투심을 품기 시작했다.

양채민은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서 뜨거운 물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넌 나한테 뜨거운 물을 부을 거야. 그런 애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말을 마친 그녀는 자신의 손에 물을 부으려고 했다.

나는 머릿속이 창백해졌다. 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그녀를 말렸다.

뜨거운 물은 내 팔뚝에 떨어졌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에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덴 부위는 빨갛게 번지며 붓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상처였다.

가장 먼저 나의 비명을 들은 사람은 구재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안고 주방으로 가서 찬물에 팔뚝을 헹궈줬다.

뒤늦게 온 부모님은 후다닥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양채민은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을 쏟아냈다.

“저는 그냥 물을 따르려고 했는데, 언니가 갑자기...”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부모님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봤다.

양채민은 줄곧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모함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언제나 그녀의 편이었다.

오늘은 내가 집에서 첫 번째 생일을 보내는 날이다. 일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절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구재인의 어머니는 줄곧 나만 바라봐 줬다.

“우리 채연이는 벌써 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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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긴 왜야. 당연히 복수하려고 그랬지. 당신들한테.”연채민은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결혼한 사람, 해외에 있는 내내 폭력을 휘둘렀어요. 날 사람 취급도 안 하더라고요. 자기 고객한테 날 그냥 내던져 버려서, 나 이제 임신도 못해요. 내 인생이 이 꼴 난 건 다 두 사람 때문이에요. 그러니 친딸을 죽여버리는 건 당연한 거죠. 걔가 잘 사는 꼴은 절대 못 봐요.”그녀는 단단히 미친 모습이었다.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죽었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이 아니다. 그들 마음속의 진정한 친딸은 양채민이기 때문이다.양채훈은 주먹을 꽉 쥐며 양채민을 향해 외쳤다.“친자식도 아닌 널 키워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 결혼 네가 원해서 한 거야. 우리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했었어.”이 세상에서 나를 걱정해줄 사람은 양채훈 밖에 없다. 내가 죽은 다음 속상해 하는 것도 양채훈뿐이다.양채민은 끝까지 자기 생각이 맞다고 우겼다. 경찰은 긴급 체포해서 그녀를 데려갔다.나의 시신은 화장 되었다. 양채민은 20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공인이 되어서 납치를 사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형에 처하라는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영혼은 계속 구천을 떠돌았다. 그것도 구재인의 곁에 붙어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위는 그의 모습을 억지로 봐야 했다.구재인은 망가진 팔찌를 고치려고 엄청 노력했다. 하지만 팔찌는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그는 팔찌를 꽉 붙잡은 채 눈물을 흘렸다.“채연아, 제발 날 용서해줘. 난 진심으로 널 사랑해.”그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여전히 변함 없었다. 그가 어떻게 되든 나는 상관 없었다. 그저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구재인의 정신상태는 점점 위태로워졌다. 그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고 도우미를 부르지도 않았다.그는 공기에 대고 말을 해댔다. 그리고 베개를 안고 아이 대하듯이 했다. 어떨 때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4화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왜 갑자기 왔는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양채민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누가 양채민 씨죠?”경찰이 진지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신가요?”경찰이 대뜸 양채민을 찾는 것을 보고 내 어머니가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양채민은 어머니가 갓난 아기 시절부터 키웠다. 그래서 나보다도 양채민을 더 사랑했다.“조사 결과 양채민 씨가 납치의 주범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같이 서에 가주셔야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구재인은 넋이 나간 얼굴로 경찰을 바라보다가 뒷걸음질 쳤다.“그, 그럴리가요. 채민이는 제가 직접 돈을 내고 구해낸...”그는 말을 마저 하지도 못했다. 후회에 잠긴 것도 잠시 무언가 추측 가는 바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양채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살벌했다.경찰이 양채민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일어서서 말렸다. 그러자 경찰은 단도직입적으로 영상을 틀어줬다. 내가 납치된 이후 일어난 일이었다.쓰러진 채 차에 올랐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낡은 창고에 있었다.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했지만, 가면을 쓴 다섯 명의 남자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그렇게 얼마나 시달렸을까, 나는 온몸이 부스러질 것 같았다. 아랫배는 찢어진 것처럼 아팠고 피가 흘러나오는 것도 생생하게 느껴졌다.태아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에 휩싸였다. 납치범을 붙잡고 아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내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또다시 일어났을 때는 양채민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나도 납치됐어. 재인 오빠랑 같이 있다가 네가 불러내서.”나는 겁에 질려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적 없었다.양채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오빠는 너 때문에 내가 납치 됐다고 생각할 거야. 날 그렇게 사랑하는 오빠니까 널 얼마나 증오할까?”양채민의 말이 맞았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3화

    나의 시신은 해부되었다. 경찰은 적극적으로 내 죽음의 진실을 조사했다.납치는 양채민이 꾸민 짓이다. 그래서 구재인에게 구해질 때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구재인은 진짜 신고하지 않았다. 그저 돈만 들고 그녀를 구하러 왔다. 동시에 납치범에게 도망갈 시간도 줬다.대부분 증거가 양채민에 의해 악의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진상 조사는 훨씬 어려워졌다. 구재인의 선택이 나를 더 큰 고통으로 밀어넣은 것이다.검사 결과가 나오고 나의 시신은 남겨둘 필요가 없어졌다. 부모님과 양채훈은 화장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구재인에게 알리지도 않았다.어떻게 장례식 소식을 알게 된 구재인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수염까지 깎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내 영정사진을 바라봤다.“채연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 뿐이야. 난 내가 양채민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잃고 나니 알겠어. 난 너를 사랑했어.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너야.”나는 구재인의 곁에 서서 그의 고백을 들어줬다. 조금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뒤늦은 고백 따위, 나는 필요 없었다.“내가 자기 마음도 모르고 멍청한 짓을 했어. 난 너한테 마음이 흔들렸어. 근데 그게 양채민한테 못된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널 일부러 더 무시했던 거야. 난 양채민에 대한 집념을 사랑으로 착각했어. 그래서 너한테 상처주는 짓을 했어. 만약 한 번만 더 기회가 온다면 오직 너한테만 집중할게.”죽어도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게 참 한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다음 생이 있다면 그냥 썩 꺼져버려. 채연이 눈 더럽히지 말고.”양채훈은 내 마음의 대변인이었다.“채연이 이번 생은 사람 잘못 믿어서 망쳤어. 다음 생에는 꼭 사람 가릴 줄 알아야지.”구재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눈도 빨갛게 충혈되었다. 그렇다고 한들 딱히 할 말은 없었다.오늘은 장례식 마지막 날이다. 나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부모님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찾아온 사람이라고는 시부모님과 양채민만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2화

    구재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양채민은 바로 찾아왔다. 문이 열린 순간 그녀는 구재인의 품에 안겼다.“오빠, 요즘 연락이 안 돼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구재인은 그녀를 딱히 밀어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도록 내버려뒀다.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친 양채민은 빨개진 눈시울로 말했다.“오빠 지금 언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근데 이미 일어난 일에 과하게 신경 쓰지 마. 오빠 원래도 언니랑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 앞으로는 내가 오빠를 챙겨줄게.”이렇게 말하며 양채민은 구재인의 옷 단추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그녀의 손을 꽉 틀어잡았다.양채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구재인을 바라봤다. 정말 순수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구재인은 냉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채연이는 한 번도 너한테 나쁜 마음을 품은 적 없어. 근데 넌 채연이를 모함하려고 계단에서 혼자 굴러떨어지기까지 했더라?”양채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오빠는 날 알잖아. 내가 왜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하겠어? 그리고 이번에도 언니가 날 불러냈기 때문에...”“잠깐, 너 나 안 좋아하지? 좋아하는 척한 건 그냥 사랑받는 기분을 즐겨서지? 맞지?”양채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재인이 끼어들었다. 시선에는 증오로 가득했다.양채민은 몸을 굳히더니 안색이 빠르게 변했다. 입술은 파르르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눈물은 안타까울 정도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구재인은 면역이라도 된 것처럼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집 밖으로 내쳤다. 밖에서 아무리 울음소리가 들려와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나는 감동하지 않았다. 그가 양채민을 밀어내는 이유도 전부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양채민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또 받아줄 게 분명했다. 그는 양채민에게 원칙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1화

    구재인은 이틀 연속 외출하지 않았다. 전화가 오는 것도 받지 않았다. 그는 침실에 틀어박혀서 문을 잠갔다. 청소하려는 도우미조차 들이지 않았다.그는 서랍에서 나의 일기장을 찾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장에는 구재인을 향한 마음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나는 그 어리석은 과거를 구재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기를 써서 막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내가 구재인을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잘생기고 공부를 잘해서 좋았다. 모두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좋아해 본 기억이 있지 않는가? 나도 마찬가지다.어두운 조명 아래, 10대의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나는 구재인이 좋다. 재인이는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착하기까지 한 것 같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기부하는 모습이 참 멋지다.][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재인이는 재벌가 아들이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다.]후에 친부모를 찾은 다음에는 이렇게 적었다.[채민이 대신 결혼하게 된 게 참 불편하다. 구재인은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결혼 안 하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렸다. 너무 아팠다.][채민이가 양아치 같은 애한테 고백하는 걸 봤다. 채민이는 재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인이가 참 불쌍하다. 차라리 내가 결혼을 해야겠다.][양채민 혼자 계단에서 떨어졌다. 근데 재인이는 내가 밀었다고 한다. 나를 더 미워하게 된 것 같다.][재인이 다리를 다쳤다. 내가 잘 챙겨줘야 한다. 입맛이 까다로우니 학원에 다녀야겠다. 무조건 재인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말겠다.][양채민이 귀국했다. 조용히 나를 불러내서는 재인이한테서 멀어지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양채민은 분명히 재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양채민이 전화를 해서 울었다. 전화 한 통으로 재인이를 불러냈다. 내가 진짜 빠져줘야 하는 건 아닐까? 세 사람의 연애는 감당 못 하겠다.]일기장의 마지막 기록은 이랬다.[드디어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10화

    쪽지 내용을 확인하고 난 구재인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는 부르르 떨렸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그가 본 것은 산부인과의 검사 보고서였다.나와 구재인 사이에는 별로 달콤한 기류가 오간 적 없다.얼마 전 그는 지진 현장에 봉사하러 갔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친 적이 있었다. 허벅지가 골절된 그는 침대에 3개월이나 누워 있어야 했다.나는 물론 그의 곁에 꼭 붙어서 간병인 노릇을 자초했다. 구재인은 편식이 심한 타입이었다. 나는 그것까지 고려해서 영양가 높은 음식을 해주며 그의 입맛을 맞췄다.작년 나의 생일날, 구재인은 불꽃놀이를 준비해 줬다. 하늘을 밝히는 불꽃은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다.나는 조각 같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용기 내서 입술을 맞췄다. 나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고 오히려 허리를 감싸며 더 깊이 키스했다.그다음 그는 이렇게 물었다.“생일 소원이 뭐야?”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나 아이 갖고 싶어. 그래야 가정을 꾸린 느낌이 들 것 같아.”그는 나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그게 무슨 소원이야. 애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잖아.”그러나 남들에게 쉬운 일이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임신을 준비한 것만 1년이다. 나는 맛없는 한약도 질리도록 먹었다. 그 끝에 임신한 나는 하루빨리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내가 납치당한 날은 우리의 결혼 2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날 구재인은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들고 외출했다.나는 나가려는 구재인을 붙잡고 저녁에 2주년을 축하하자고 했다. 구재인은 누군가와 문자 하면서 머리만 끄덕였다.아무튼 나는 아주 기뻤다. 오후에 그가 사줬던 치마를 차려입고는 일찍 호텔에 갔다. 오늘 아이의 존재를 알릴 생각으로 말이다.호텔에서 나는 전화를 아주 많이 걸었다. 하지만 구재인은 전부 끊어버렸다. 마지막 전화는 양채민이 받았다.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있었음을 눈치챘다.그날 밤, 나는 혼자 밤길을 걷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9화

    “오빠, 다 나 때문이야. 나 대신 언니를 구급차에 태웠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내가 죄인이야. 차라리 죽은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구재인은 서서히 손을 내려놓았다. 눈빛은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나가 있어. 나 혼자 채연이랑 있고 싶어.”‘채연...? 언제는 양채연, 이름 석 자 다 부르더니.’구재인을 이곳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양채민은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아파!”하지만 구재인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양채민은 불만스러운 듯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떠나기 직전 그녀는 나의 시신을 바라보며 세상 환한 미소를 지었다. 괴이하고도 악독했다.안에서 구재인은 용기 내서 나의 손을 잡았다. 표정은 아주 슬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반응이 나는 구역질 나기만 했다.“더러운 손으로 날 건드리지 마!”아쉽게도 그는 들리지 않았다.나의 손목에 걸려 있던 팔찌는 그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끊어져서 툭 떨어졌다.그는 잠시 멈칫했다.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라는 걸 떠올린 듯했다. 그를 위해 청력을 잃은 후의 첫 번째 생일 선물 말이다.나는 팔찌를 받았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씻을 때도 빼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양채훈은 돈도 안 되는 팔찌를 보석 취급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놀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실제로 비싼 팔찌들을 두고 이거 하나만 했었다.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구재인이 준 선물이라는 이유로 애지중지했던 세월이 8년이라는 말이다. 그런 팔찌마저 나의 운명에 한탄하는 듯 끊어지고 말았다.구재인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주웠다. 더 이상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그는 나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뒤늦은 후회보다 지독한 것도 없었다.구재인이 집에 돌아갔을 때는 아주 늦은 때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아주 어두웠다.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 고구마 소설의 엔딩은 죽음뿐   제8화

    따라왔다가 이 말을 들은 양채민은 몸을 떨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당황함을 감췄다. 참 이상했다. 양채훈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그녀를 싫어했으니 말이다.나의 양부모는 자연그룹의 기사와 도우미였다. 내가 친동생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양채훈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랐다.“그래서 채연이 널 볼 때마다 익숙한 느낌이 들었구나. 네가 내 친동생이었어. 앞으로 오빠가 지켜줄게.”내가 집에 돌아온 첫날, 양채훈은 나를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그는 모든 명절과 기념일에 나의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부모님도 안 주는 용돈을 꼬박꼬박 챙겨줬다. 내가 돈 모자랄 일 없도록 말이다.내가 죽은 다음 속상해 해주는 사람도 양채훈 밖에 없을 것이다. 그라면 범인을 찾을 때까지 노력해 줄 것 같았다.양채훈은 문을 열고 사정없이 구재인을 밀었다. 나의 시신을 직면한 구재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 기대가 되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릴까? 아니면 조금이라고 속상해할까?당장이라도 화내려고 했던 구재인의 표정은 내 옆모습을 본 순간 굳어버렸다. 그는 멍하니 영안실에 꼼짝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양채훈은 그를 억지로 끌고 가서 내 시신 앞에 무릎 꿇렸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말도 안 돼. 내가 떠날 때만 해도 멀쩡했어. 말까지 했다고! 죽었을 리가 없어...”‘난 죽기 적전 도움을 청했던 거야. 그러게 도와주지 않고 뭐했어?’구재인은 양채민의 찰과상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구급차에 그녀만 태웠다. 나는 바닷속에서 죽어가는 몸뚱이를 마냥 느낄 수밖에 없었다.“10분만 일찍 왔어도 살 수 있었대. 채연이는 살 수 있었어. 근데 현장에 도착한 구급차에 양채민만 태웠다더라. 채연이를 죽이는데 너도 한몫했어. 아주 대단해.”너무나도 잔인한 말이었다.말을 마친 양채훈은 구재인의 기분을 신경 쓰지도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구재인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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