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만난 잔상 속의 그 남자: Chapter 31 - Chapter 40

50 Chapters

제31화

그래, 이건 분명히 꿈이었다.정원준한테 들은 말에 의하면 여승재는 민예원을 위해 제 목숨도 바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 같았는데 그런 그가 자신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준다는 사실을 원서윤은 믿을 수가 없었다.“좀 괜찮아졌어?”꿈이라서 그런가 여승재의 말투는 전처럼 날이 서 있지 않았다.아예 자신을 안아 침대에 눕히는 그의 행동에 원서윤은 어차피 꿈인 김에 한 번쯤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고 싶었다.그래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인 원서윤은 여전히 잘생긴 여승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오빠, 가까이 좀 와봐.”“왜.”여승재가 가까이 다가오자 원서윤은 빠르게 그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그러고는 미친 여우처럼 웃어대며 말했다.“여승재, 내 지난 5년이 어땠는지 네가 알기나 해? 돌아오자마자 우리 아빠가 준 별장으로 네 와이프랑 같이 나 괴롭혔잖아.”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원서윤은 두 손으로 여승재의 볼을 잡고 늘리며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냈다.“여승재, 이거 하나는 똑똑히 알아둬, 5년 전의 나한테 여승재는 엄청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말을 하던 원서윤은 갑자기 여승재의 얼굴에 가슴이 닿아버릴 정도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지금 넌 나한테 상종할 가치도 없는 놈이야!”여승재가 민예원을 사랑하든 말든 원서윤은 더 이상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그에게서 아빠의 별장을 되돌려받아서 동생을 데려오는 것 그뿐이었고 여승재의 가치고 그게 전부였다.“여승재, 나한테 넌 아무것도 아니야.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라고...”흐르던 눈물도 말라붙어버렸고 목도 다 쉬어버렸다.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분풀이를 하고 나니 원서윤은 기진맥진해서 침대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원서윤이 마지막으로 들은 건 조롱 섞인 여승재의 말이었다.“원서윤, 네가 했던 말 잊었어? 증오도 미련이 남아서 존재하는 거랬잖아. 넌 날 증오하는 만큼 사랑하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았어?”그날 밤 원서윤은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꿈속에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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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그에 체념한 듯 헛웃음을 흘린 원서윤은 운동이라도 해서 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려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런데 문을 나서기도 전에 민예원이 보낸 인사 이동결과에 프로젝트 단톡방에 문자가 수도 없이 쌓이고 있었다.원서윤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을 프로젝트팀에서 퇴출시키고 본사로 보낸다는 결과는 그들을 해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일 하면서 프로젝트를 원만히 마쳤다는 건 그들의 능력과 충성심 모두 입증되었다는 건데 그런 사람들을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본사로 보낸다는 건 그들은 애사심이 부족해서 이 일에는 적합한 인재가 아니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이었다.하지만 민예원은 그냥 어제 일에 대한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문자를 보냈다.[미안해요, 제가 선생님한테 여러분들이랑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여기까지 한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원 비서님도 계속 연락이 안 돼서 어쩔 수 없게 됐네요.]민예원은 또 따로 원서윤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언니, 어젠 제가 너무 흥분해서 말실수를 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용서해주실 거죠?][그리고 저도 제가 많이 부족한 거 알아요. 직원분들이 해주신 조언 잘 듣고 앞으로 많이 배울게요.]제 할 말을 다 한 민예원은 원서윤이 답장을 하기도 전에 그 채팅 기록을 캡처해서 단톡방에 보내버렸다.그럼으로써 여승재가 인사이동을 결정한 건 자신의 화를 풀어주기 위한 사적인 결정이 아니고 원서윤은 이런 결정을 다 알면서도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자신을 따르는 팀원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오전 9시, 원서윤은 직접 팀원들을 배웅했다.당연히 민예원이 의도한 상황대로 흘러가진 않았고 팀원들은 오히려 원서윤과 포옹을 하며 그녀를 위로했다.“원 비서님, 괜찮아요. 저희는 성원 그룹에서 나간다 해도 다른 협상회사 들어가면 되니까 어떻게든지 다 살 수 있을 거예요.”그중에서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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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진심인지 오해인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승재에 원서윤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여승재는 이 세상 모든 나쁜 말은 다 저를 형용하는데 쓸 것 같은 사람이었다.그러면서도 민예원만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싸고도는 게 바로 여승재였다.그렇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정원준이 입을 열었다.“승재야, 이번엔 너랑 예원 씨가 오해한 거야, 서윤 씨는...”“대표님, 한번은 지각하고 한번은 상대편 속임수에 걸려들어서 다 제가 수습하게 만들고 저번 인터뷰 때는 없는 말 지어내면서 다른 사람 공로 채가려고 한 건 진심인가요 아니면 오해인가요?”어떤 순간에도 민예원만 감싸고 도는 여승재가 꼴 보기 싫었던 원서윤이 그동안 참았던 말들을 뱉어냈다.애초에 뭐 그리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예원이 남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여승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정원준은 자꾸 여승재를 긁어대는 원서윤에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원서윤 씨, 진짜 어쩌자고 이래요!” 여승재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민예원을 감싸 안은 채 원서윤을 바라보았다.원서윤은 크고 따뜻한 손으로 민예원의 등을 쓸어주는 여승재를 보면서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 답을 듣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예원이었어.”“선생님!”그 말에 감격한 민예원은 우는 것도 멈추고 여승재를 바라보았다.원서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흐드러지게 핀 독말풀마냥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그럼 몇 년 간 제대로 소원성취하셨네요.”“원서윤 씨!”정원준은 그만하라는 듯 그녀를 잡아당겼지만 원서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승재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니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볼이 눈에 띄었다.누구한테 맞은 것 같은 볼에 원서윤은 불현듯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거의 반쯤 눈을 감고 있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여승재의 뺨을 연속 때린 것만은 생생하게 기억났다.“원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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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여승재의 검은 눈동자는 그게 무엇이라도 얼려버릴 정도로 차가웠다.그런 눈으로 원서윤을 응시하던 여승재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후회할 짓 하지 마, 네가 감당할 수도 없는 결과면 어쩌려고 그래.”말을 마친 여승재는 민예원이 사라진 쪽으로 빠르게 따라갔다.그들이 떠나자 정원준이 원서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서윤 씨는 가만 보면 정말 겁이 없는 것 같아요. 왜 자꾸 여승재를 건드려요?”하지만 원서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그게 뭐 어때서요? 제가 고분고분 가만히 있는다 해도 여승재는 어차피 절 가만두지 않을 거에요.”“대표님은 우리 집안일에서 손 떼실 거에요?”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묻는 원서윤에 한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정원준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진짜 악연이네요, 정말 원서윤 씨가 본 게 전부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럼 서윤 씨도 승재도 이렇게 서로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3일 뒤, 원서윤은 여승재가 말했던 감당 못 할 결과가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 저주인 것 같았다.전에 민예원 때문에 본사로 돌아갔던 직원들은 하나같이 해고되었고 이 업계에는 발도 못 붙일 정도로 소문이 안 좋아져서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어봐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그리고 석사, 박사 학위를 따려는 사람들도 학원 하나 신청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들의 사정을 전해 들은 원서윤은 일부러 연차를 쓰고 직원들과 같이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3일 동안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던 직원들도 원서윤을 보자마자 안 좋았던 기억들은 다 떨쳐버리고 다 같이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마주했다.한우영은 여전히 긍정적인 척 말했다.“걱정 마세요 비서님, 공무원 못 해도 엄마 아빠 슈퍼 일 물려받아서 하면 되니까 굶어 죽지는 않는다니까요.”“맞아요, 우리 집도 차 수리하는 쪽에서 일한 지 오래돼서 일 년에 1억 정도는 벌어요!”그들의 말에 다른 직원들도 잇따라 가업을 물려받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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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뒤따라 오던 수행비서는 걸으면서도 민예원에게 아부를 하고 있었다.“사모님, 대표님이 정말 사모님을 아끼시나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임산부도 쓸 수 있는 매니큐어도 만들어주시죠. 정말 부러워요.”“뭐가 부러워요, 선생님이 그냥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뿐이죠.”수행비서의 아첨이 맘에 들었는지 민예원이 득의양양해서 고개를 쳐들고 있을 때 원서윤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사모님, 지금 시간 되시면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어머, 언니! 갑자기 나오면 어떡해요? 나랑 우리 아기 놀래키는 거에요 지금?”일부러 억지를 부리는 민예원에도 오늘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기에 원서윤은 이를 악물며 참았다.“죄송해요, 제가 조심했어야 하는데.”세 시간 넘게 서 있느라 발은 점점 아파오고 다리 전체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원서윤은 그래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사모님, 인사 이동된 팀원들...”“아... 언니, 지금 제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얘기를 못 할 것 같은데 어떡하죠?”이마를 짚으며 휘정대는 민예원의 연기는 눈 뜨고 봐주지 못할 정도였지만 원서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제가 안마라도 해드릴까요?”“그럼 언니 힘들지 않겠어요? 우리 프로젝트팀의 핵심 멤버인데.”민예원이 미안하다는 듯 말했지만 원서윤은 그 말에 숨은 뜻을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사모님이 협상 프로젝트 총괄 이사님이신데 제가 어떻게 핵심멤버에요, 저는 사모님 비서로서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죠.”애초에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따르는 책임도 큰 법이라서 그런 타이틀을 가질 생각도 없었는데 민예원이 알아서 뺏어주니 원서윤이 버틸 이유도 없었다.“하하, 언니, 그때 일은 그냥 작은 오해였죠? 언니가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오해도 빨리 풀렸을 텐데!”민예원은 원서윤의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말했다.“오늘 제 생일이라 선생님이 룸 잡아 놨어요. 좀 있으면 올 테니까 같이 생일 파티해요.”“머리 안 아프세요?”원서윤은 민예원의 요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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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민예원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사실 나도 언니처럼 잘못한 거 알면 바로 고치고 싶어요, 나 그렇게 못된 애 아니거든요, 직원들이 사과만 제대로 한다면 선생님한테 잘 말해볼게요.”“어떻게 사과하길 원하는 거예요?”원서윤이 넌지시 묻자 민예원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말투만 들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애가 우물쭈물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말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뭐 너무 거창한 사과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그저 온라인에 사과 영상만 올리면 돼요. 내 능력과 재능을 질투했던 거라고 인정하는 걸로요.”“실명 공개하고 주민등록증 들고 찍는 영상 말하는 거예요?”“당연하죠, 신분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어야죠.”당당하게 말하는 민예원에 어이가 없어진 원서윤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사모님, 직원들도 다 사모님처럼 금방 대학 졸업한 어린애들이에요, 그런 애들이 실명 공개까지 하고 사과를 하면 앞으로 어디서 받아주겠어요, 정말 그 사람들 인생 이렇게 망치실 거에요?”“하지만 직원들이 저 괴롭힌 건 맞잖아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언니, 이것도 엄연한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원서윤이 안 좋은 소리 조금 했다고 민예원은 바로 테이블에 엎드리며 눈물을 쏟아냈다.“언니,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 아니죠? 나 협박하려고, 내가 잘못한 거라고 가스라이팅하러 온 거죠?”“사모님, 저는...”원서윤이 바로 해명을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민예원이 의자에서 미끄러지면서 테이블에 배를 살짝 부딪쳤는데 그 때문에 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직업정신이라는 게 있었던 원서윤은 다급히 달려가 간단한 처치를 해주고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심호흡해요, 네, 그렇게요. 일단 피부터 닦아줄 테니까 허리 좀 들어봐요, 네, 잘하고 있어요.”그때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여승재에 의해 방문이 떨어져 나갔다.여승재를 보자마자 아까까지만 해도 원서윤의 말에 잘 따르던 민예원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그녀를 괴물 보듯 보며 몸을 떨어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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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누나, 왜 나 피해?”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고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방이연에 원서윤은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방이연은 바로 펄쩍 뛰며 말했다.“여승재 그 자식은 어디 가서 대가리라도 맞았대? 민예원 그 발연기를 보고 어떻게 믿지? 그런 놈이 무슨 세계 1위 협상 전문가야, 나사 하나 빠진 놈 같은데.”방이연이 대신 화내주니 원서윤은 서운함이 가시는 것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원서윤은 여승재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관심이 없었다.5년 전 그 일이 있은 뒤로 둘은 원수가 아니면 원수가 되어가는 사이였기에 애초에 저를 싫어할 사람에게 좋은 말을 기대하진 않았었다.하지만 방이연 말대로 원서윤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늘 그를 향해 웃어 보이는 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저 대신 화를 내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니 그게 또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누나, 가자. 내 아지트 보여줄게.”그전에 먼저 정형외과에 가 보았지만 전문의 말로는 뼈에는 문제가 없는데 주변 근육이 놀란 거라 약만 잘 바르고 조심하면 금방 나을 거라고 했다.그래서 원서윤은 약을 바르고 깁스까지 하고 난 뒤 방이연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위층까지 올라갔다.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옥상까지 가려면 캄캄한 복도를 지나야 했기에 방이연이 그녀 앞에 주저앉으며 웃어 보였다.“누나, 내가 업어주고 싶어.”업어준다는 게 아니라 업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방이연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원서윤은 천천히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하지만 그래도 몸이 완전히 닿는 건 좀 어색해서 원서윤은 허리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챘는지 방이연이 갑자기 휘청대자 원서윤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의 목을 꼭 감싸 안으며 몸을 방이연의 등에 붙여버렸다.그에 사탕을 받아 신난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방이연이 손을 뒤로해 원서윤의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누나,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우리가 남도 아닌데 그냥 나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대해.”동생이라는 단어가 방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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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5년 전에 원서윤이 죽을 만큼 사랑한 사람은 여승재였는데 지금의 여승재는 온 힘을 다해 민예원을 감싸고 돌 듯이 사랑은 그렇게 부질없는 것이었다.“누나, 이리 와, 빨리 나 따라와!”방이연은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앉아있으면 이유 모를 두려움이 몰려와 원서윤은 아까부터 무릎을 세운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방이연이 눈앞에서 힘차게 뛰어다녔지만 원서윤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따라가진 않았다.그때 옥상 난간 쪽으로 다가간 방이연이 허공에 대고 힘껏 소리를 질렀다.“여승재, 이 나쁜 놈아! 넌 진짜 쓰레기 같은 놈이야! 머리통이 문틈에 끼인 거냐, 어떻게 네 사람도 못 지켜!”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온 병원의 사람들이 다 들을 것 같아 원서윤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방이연은 뒤로 돌며 몸을 난간에 기댄 채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누나, 여기 CCTV는 내가 진작에 망가뜨렸으니까 아무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 그러니까 누나도 여승재 그 개자식 욕 해도 돼.”“방이연, 그만해. 민예원이 이 병원에 있을 수도 있어.”자리에서 일어난 원서윤이 방이연을 끌어오려고 했지만 방이연은 오히려 원서윤을 품 안에 가두며 허공에 대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여승재, 눈부터 똑바로 뜨고 다녀! 민예원은 불쌍한 척 연기할 줄밖에 모르는 허영심에 찌든 바보 멍청이라고!”“방이연!”사실 원서윤도 속이 시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이성은 여기서 멈추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기에 원서윤은 방이연을 말려보았다.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서윤의 목을 잡으며 말했다.“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누나는 왜 아직도 가면을 쓰고 있는 거야? 이럴 때는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소리쳐도 돼.”“이연아, 나는...”난처해하는 원서윤에 방이연이 그녀를 자극할 만한 말만 골라서 했다.“그럼 설마 아직도 여승재를 사랑해서 욕도 못 하는 거야?”“아니야!”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원서윤이 바로 대답하자 그걸 노렸던 방이연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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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여승재는 귀찮은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옥상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예원이는 여기서 반년 동안만 부원장으로 있을 거니까 역임할 사람 미리 준비시켜두세요.”“그럼 대표님 뜻은...”이런 데엔 누구보다 빠삭한 원장인걸 알지만서도 여승재는 굳이 자신이 생각해둔 사람을 알려주었다.“피라드에서 온 일 잘하는 사람,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공단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 누군지 말 안 해도 아시죠?”여승재의 말에 병원장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당연하죠, 원 선생은 안 그래도 의료계에서 다 탐내는 인재인데 사람들까지 부릴 줄 아니 부원장으로 제격이죠.”“네.”말을 마친 여승재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비서더러 병원에 남아서 민예원을 지켜보라고 하고 자신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병원장은 그런 여승재를 배웅하며 외람돼는 질문을 했다.“대표님이 직접 원 선생을 국민건강보험 협상 프로젝트에 참여시키시고 부원장으로까지 추천하는 걸 보면 두 분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어떤 사이이신지 물어도 될까요?”“제 동생이에요.”전혀 예상 못 했던 대답에 병원장이 깜짝 놀라자 여승재는 그런 그를 한번 보고는 뒤 돌아 병원을 빠져나왔다.차에 타기 전 여승재는 아까 소리가 났던 옥상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부원장도 아는 걸 왜 너만 몰라...”그렇게 롤스로이스가 병원을 떠나가는 와중에도 원서윤과 방이연은 미친 사람처럼 뛰어놀고 있었다.술을 거나하게 마신 둘은 팔과 다리를 대자 모양으로 뻗은 채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세기 시작했다.그때 원서윤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방이연에게 물었다.“가족들 보고 싶지?”“응, 보고 싶지.”대답이 빠른 건 둘째치고 기대에 차 보이기까지 하는 방이연에 원서윤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받치며 물었다.“가족들이 너 잃어버린 건데 안 미워? 미워야 정상이잖아.”“잃어버린 거 아니야. 누나, 누가 그러는데 이런 건 그냥 잠시만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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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진짜 사랑해요, 원 비서님!”“그래도 대표님이 원 비서님은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에요.”“진짜 저더러 고르라고 하면 저는 당연히 여 대표님이랑 원 비서님이죠! 두 분 다 유능하셔서 완전 잘 어울려요.”“민예원 같은 바보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우리 원 비서님이 백 배, 천 배 더 잘났죠.”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던 팀원들이 정원준의 연락을 받고 자리를 뜨자 입꼬리를 올려 웃은 원서윤은 어쩔 수 없이 단톡방에서 해명을 하기로 했다.그런데 핸드폰을 든 채로 뒤로 도니 무기력해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민예원이 여승재에게 기대는 게 보였다.민예원은 입술을 깨물더니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제가 선생님 졸라서 해결한 거긴 하지만 직원들이 언니한테 감사 인사 하는 거 이해해요, 나한테 언니는 언제나 친구 같은 존재이고 또 어제 나랑 우리 아기도 구해줬잖아요.”“제대로 해명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애초에 잘못한 것도 없었기에 원서윤은 담담히 대꾸하며 여승재의 옆으로 지나갔다.그러다가 어제 일이 떠오른 원서윤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여승재를 향해 말했다.“룸 안에 있던 의자가 이상했어요, 알아보세요.”뒤에 있었던 일은 민예원의 연기가 맞았지만 의자에서 미끄러진 것 그녀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민예원이 자신과 여승재의 아이를 두고 그런 장난을 칠 리가 없다는 건 원서윤도 잘 알고 있었다.“원서윤 씨, 예원이는 원서윤 씨와는 달라요. 일할 때 빼고는 거리를 둬요.”원서윤을 잡지는 않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여승재에 그나마 기분이 좋아진 민예원이 그의 팔에 기대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선생님, 괜찮아요, 언니가 저랑 아기 살려주기까지 했잖아요. 그동안의 일은 오해니까 언니 놀라게 그러지 마요.”“내가 약속한 대로 너랑 아기는 꼭 지킬 거야.”민예원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여승재에 토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원서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오후쯤 되자 시청 주요 인사 중 한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서윤 씨, 이번 정상회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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