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299 챕터

제11화

경험이 풍부한 한의사조차 성유리의 대답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원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성유리의 말을 듣고, 한의사는 무심코 박한빈을 쳐다보았다.박한빈 역시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듯해 보였고, 그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졌다.그러나 한의사는 곧 평정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그 약은 인제 그만 드시고 우선 몸을 잘 보살피셔야 합니다. 제가 약을 하나 처방해 드릴 테니, 관리를 시작해 봅시다.”성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의사가 약 처방전을 건넸을 때는 빠르게 손을 뻗어 받았다.“감사합니다.”그러고는 머뭇거림 없이 병원을 나섰다. 박한빈도 그녀를 따라나섰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자신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밖에 나가자마자 혼자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박한빈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차에 타.”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눈빛 역시 그랬다.“필요 없어. 나 혼자 갈 수 있어.”“성유리, 차에 타라고 했어.”박한빈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병원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성유리는 주변을 살피고 나서 결국 차 문을 열었다.하지만 성유리가 안전벨트를 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갑작스럽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성유리는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간신히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성유리는 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데려다주기 싫은 거라면, 지금 차에서 내려줄래?”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을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왜 피임약을 먹고 있었던 거지?”그의 질문은 마치 여섯 살짜리 아이도 답을 알 만큼 간단했다. 성유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서.”박한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유리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똑바로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마침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고, 박한빈은 차를 멈추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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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박한빈은 결국 성유리를 별장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후,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길가에 내려주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속 페달을 밟고 떠났다.검은색 포르쉐는 성유리 곁을 스쳐 지나갔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성유리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였다.‘더 이상 저 녀석에겐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마.’밖에 나온 김에 성유리는 잠시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상가에 들어가자마자 원유진을 마주쳤다.“어머, 이게 누구야! 박씨 가문의 사모님 아니신가?”원유진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네. 나는 네가 사람들 틈에서 어울리는 방법을 모를 줄 알았는데, 쇼핑도 하러 나오네.”원유진은 성유정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성유리를 앙숙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다른 사람들은 성유리가 박한빈과 결혼한 이후, 그에 대한 태도를 어느 정도 바꾸었지만, 원유진은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모님 자리가 성유정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성유리는 그와 말싸움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그를 피하려고 했지만, 원유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그녀를 막아섰다.“어딜 가려고? 보아하니 혼자 있네. 같이 다니는 게 어때?”성유리는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불편해.”“뭐가 불편해? 누군가를 따로 만나려는 건 아니지? 혹시 애인이라도 있는 건가?”성유리는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유진 씨, 교육은 제대로 받은 거지?”“무슨 소리야? 당연히 받았지!”“그러면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알고 있지? 함부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안 된다는 걸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르쳐준 적 없어?”성유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말은 정확하게 원유진에게 전달되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기가 죽은 듯 얼굴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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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원유진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갑자기 가볍게 웃었다. 그 반응에 당황한 원유진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뭐가 웃겨서 웃어?”“유진 씨, 시간이 남으면 책 좀 많이 읽어.”성유리는 차분히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교양 없는 건 둘째 치고, 말하는 것마다 남들 웃음거리밖에 안 되거든. 진짜 무식하고 악랄하네.”이번에는 성유리가 아예 대놓고 원유진을 모욕했다.그러자 원유진의 얼굴은 즉시 창백해졌고, 분노로 가득 찼다.성유리가 그녀를 지나쳐 가려는 순간, 원유진은 성유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소리쳤다.“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시골에서 올라온 주제에! 네가 감히 여우처럼 굴면서, 박한빈을 차지했다고 착각해? 너 같은 게 뭐라고...”원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그녀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그 행동은 놀랍도록 단호하고 정확했다.순간 멍해진 원유진은 곧바로 성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성유정은 이를 막으려다 원유진에게 밀려났는지, 아니면 스스로 유리 진열장으로 몸을 던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그녀의 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손을 들자, 피가 팔을 타고 줄줄 흘렀다.성유정은 울먹이며 성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너무 아파...”...“성유리!”복도 끝에서 긴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성유리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성유정을 일으키기도 전에 윤청하가 성유리 앞까지 걸어와 떡하니 서 있었다.“유정이는 괜찮니? 많이 다쳤어?”“엄마...”뒤에서 성유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청하는 성유리를 외면하고 바로 성유정 쪽으로 돌아섰다.성유정의 팔에 감긴 붕대와 몸에 묻은 핏자국을 본 윤청하는 표정이 굳어졌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많이 아프니?”“의사 선생님이 잘 치료해 주셔서 이제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성유정은 약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엄마, 왜 갑자기 돌아오셨어요? 다음 주에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빠는요?”“네가 걱정돼서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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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언니!”성유정은 급히 다가와 성유리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언니, 언니... 화난 거야? 엄마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닐 텐데.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문제야...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돼. 곧 집에서 나갈 거니까. 더 이상 언니랑 오빠를 방해하지 않을게...”“응. 그래.”성유리는 아주 간단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윤청하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고, 성유정은 예상치 못한 성유리의 반응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나 먼저 갈게.”성유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성유정의 손을 뿌리친 뒤, 뒤돌아 떠났다.성유정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엄마, 어쩌죠? 언니가 저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아요...”성유리는 그 말을 듣고 돌아서서 ‘그래. 맞아. 난 널 싫어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충동을 억제했다. 그런 말을 내뱉는다면 아마 윤청하의 뺨을 맞게 될지도 몰랐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기에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성유리는 처음에는 그들이 왜 자신보다 성유정을 편애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이 친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녀가 시골에서 보낸 그 시간은 그들에게 수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의 어리석고 초라한 모습까지 딸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의 딸은 성유정처럼 지적이고 품위 있어야 했다. 성유리는 그들에게 실패작에 불과했다.집에 돌아온 성유리는 숙자 아주머니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전에, 성씨 가문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성유정의 짐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성유리는 당연히 막지 않았다. 그러나 숙자 아주머니는 연신 궁금한 듯 말했다.“이게 무슨 일이죠? 유정 씨가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이사를 가나요?”그 질문에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결국 숙자 아주머니는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성유리는 이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성유리는 원고 마감이 늦어져 몇 날 며칠을 끌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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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성유리는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급히 손으로 옷을 내려 몸을 가렸다. 그녀는 곧바로 문 쪽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박한빈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부부가 아니라, 서로를 겨냥한 적과 같은 분위기로 대치했다.“별일 없으면 나가줘. 나 자야 해.”성유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예상과 달리, 박한빈은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문을 나서기 전에 말했다.“내일 점심시간은 비워둬.”“무슨 일인데?”성유리는 무심코 물었지만,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성유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말했다.“성유정에게 사과하러 가라는 거라면 절대 안 가.”박한빈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반응은 성유리의 추측이 맞았음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성유리는 다시 한번 주먹을 꼭 쥐었다.박한빈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성유리, 유정이는 네 동생이야.”“난 동생 없어. 그리고 성유정은 스스로 넘어진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데?”성유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네가 잘한 건 뭐지?”박한빈은 비웃으며 말했다.“공공장소에서 싸운 게 잘한 행동이야? 네가 지금 무슨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긴 해?”“내 위치? 내가 뭐야? 시골에서 데려온 들러리일 뿐이잖아.”성유리도 비웃었다.“맞아. 10년 동안 시골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교양 없을 거야. 너희가 원하는 그런 고상한 사람이 될 수 없어. 그래서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가? 어쨌든, 당신의 아이는 나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나면 안 되잖아.”그녀의 말에 박한빈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성유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어차피 난 사과하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그렇게 창피하다면...”“성유리, 그만해. 생각 좀 하고 말해.”박한빈은 거친 말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성유리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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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성유리는 고민 끝에 이혼합의서를 집어넣고는 이튿날 박한빈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성씨 집안 저택으로 향했다.저택은 금성 시내와 교외의 접점 지역에 있었는데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아주 호화로운 별장들이 몰려있는 곳에 있었다.성유리가 도착했을 때 가사 도우미 하나가 성유리를 보았지만 달려 나와서 인사를 하지 않고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마찬가지로 가사 도우미를 본 성유리는 그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알아서 차 문을 열고 내렸다.그래도 사과하러 오는 거라고 성의라도 보이기 위해 성유리는 특별히 건강식품을 이것저것 챙기고는 저택 대문으로 향했다.“아가씨, 오셨어요?”성유리가 집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 아까 봤던 그 도우미였다.그에 성유리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밝은 목소리가 성유리를 불러왔다.“언니!”언제 인기척을 들은 것인지 내려온 성유정이었다.새하얀 원피스에 검은색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순진무구한 얼굴은 누가 봐도 예쁘다고 인정할만한 미모였다.언니를 부르며 달려오던 성유정은 성유리 뒤를 빤히 보더니 혼자 온 것 같은 성유리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언니, 설마 혼자 운전해서 온 거야?”“응.”고개를 끄덕인 성유리는 성유정의 손을 보며 물었다.“너 상처는 좀 어때?”“괜찮아...”성유정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밝은 척을 하며 말을 돌렸다.“엄마는 위에 있어, 근데... 아직도 화나 보여. 언니가 올라가서 봐봐.”“응.”성유리가 너무 흔쾌히 대답해서 성유정이 의외라고 여기고 있던 사이, 성유리는 빠르게 성유정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 시각 성씨 집안 안주인은 2층에서 꽃꽂이를 하며 성유리가 부르는 엄마 소리에도 코웃음을 쳤다.“내가 챙겨온 거 1층에 뒀어요.”성유리는 그런 엄마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지 바로 말을 꺼냈다.“어제 일은...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그때 신경을 쓰지 못해서 이미 사람 보내서 CCTV 확인하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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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네가 뭘 잘못했어.”잘못했다고 말하는 딸의 모습을 본 윤청하는 마음이 아파와 성유정을 끌어당기며 말했다.“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 팔을 다쳤으니 망정이지 얼굴이라도 다쳐서 흉지면 어쩌려고.”“나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언니가 원유진이랑 싸우게 둘 수는 없잖아요...”고개를 젓는 성유정을 본 윤청하는 무언가 떠오른 듯 책망 어린 눈길로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봐봐, 네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언니씩이나 돼서 유정이가 이렇게까지 널 도와야겠어? 부끄럽지도 않니?”“난 유정이 도움 필요 없어요.”성유리의 대답에 윤청하의 안색은 다시 어두워졌다.“너 방금 뭐라고 했어?!”“유정이가 나서서 막지 않으면 넌 어떻게 했을 건데? 그게 공공장소라는 건 생각 안 하니? 누가 찍어서 올리기라도 하면 우리 성씨 집안의 얼굴은 뭐가 되고 박 씨 집안에선 널 뭐라고 생각하겠니.”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윤청하에게 자신은 그딴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그에 윤청하는 화가 나 몸을 떨며 소리쳤다.“너 지금 그게 무슨 눈빛이야, 인정 못 하겠다는 거야? 당장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윤청하의 호통에도 움직이지 않는 성유리를 보더니 성유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엄마, 그만 화내요. 언니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넌 신경 쓰지 마.”윤청하는 성유정의 말을 끊고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왜, 이젠 내 말도 안 듣겠다는 거지? 내가 안중에도 없는 거지?”“그때 너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윤청하가 이 말을 내뱉자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에 윤청하도 자신이 말을 심하게 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홧김에 마음속에만 담아두던 말을 뱉어버린 본인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했다.그 사이 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너...”윤청하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성유리는 거실로 걸어가더니 거실 중앙에 얌전히 꿇어앉았다.그에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윤청하가 미간을 찌푸리자 성유정이 그런 엄마를 보며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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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성유정의 마지막 말에 주먹을 꽉 쥔 성유리가 마침내 성유정을 바라보자 성유정은 그런 그녀를 비웃듯 웃어 보였다.그 크고 동그란 눈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성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성유리 역시 한번 웃어 보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잡종.”누구에게나 건드리면 안 될 역린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성유정의 역린은 바로 잡종이라는 두 글자였다.그에 표정이 썩어들어간 성유정은 아무 생각 없이 화가 나는 대로 손을 휘둘러 성유리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갑자기 타오르는 분노에 이성이 집어 삼켜져 빚어진 정말로 무의식적에 나온 행동이었다.성유정 본인이 무언가 잘못됐음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그때 인기척을 듣고 나온 윤청하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에 재빨리 몸을 돌린 성유정이 뭐라 해명하려 했지만 윤청하는 빠르게 그녀를 지나쳐 성유리에게로 향했다.그 잠깐 새에 성유리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나지막이 말했다.“전 괜찮아요.”그 모습은 평소의 성유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성유리 얼굴에 성유정을 향한 비웃음이 가득해졌을 뿐이었다.하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한 윤청하는 성유정을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엄마, 그게 아니라요...”성유리가 뭐라 더 말하려 할 때 아래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더니 그들 모녀를 향해 말했다.“사모님, 한빈 도련님이 오셨습니다.”그 순간 가사 도우미를 따라 올라오던 박한빈이 마침 눈물을 떨어트리는 성유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됐어, 얼른 눈물부터 닦아.”윤청하는 박한빈을 보며 성유정을 다그쳤다.“한빈이 왔어?”“여사님, 안녕하셨어요?”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친 박한빈이 좀전의 일에 대해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요?”“별일 아니야, 그냥 유리가 잘못하다 넘어진 것뿐이야.”아직도 성유정을 감싸고 도는 윤청하에 성유리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엄마, 제가 잘못해서 넘어진 거예요?”“그래.”너무나도 단호한 윤청하의 말투에 성유리는 제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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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도우미의 말과 성유정의 억울한 모양새까지 더 해지니 윤청하는 이미 마음속으로 잘잘못을 다 따지고는 성유리를 향해 소리쳤다.“성유리!”박한빈이 없었다면 윤청하는 바로 성유리의 뺨을 때렸을 것이다.“유정이는 네 동생이고 우리 성씨 집안에서 인정한 둘째야, 근데 네가 뭐라고 나서서 그런 말을 해! 감히 우리 성씨 집안 전체를 무시하는 거야?!”성유리는 대답하지 않고 눈물범벅인 성유정을 한 번, 그리고 차가운 표정을 하고 서 있는 박한빈을 한 번 바라보았다.박한빈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성유리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제 아내가 이런 교양 없는 말을 했다는 게 불만이고 또 제 귀여운 동생이 이딴 평가를 들었단 게 불만이겠지.하지만 성유리한테 가장 중요한 건 성유정에 대한 박한빈의 믿음, 성유정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한테 손대지 않는다던 그 말 한마디였다.성유정은 그렇게 믿는 사람이 어제 성유리가 원유진과 싸웠을 때는 이유조차 묻지 않았었다.아마도 관심할 필요가 없어서겠지.박한빈은 그 앞에서 성유리를 지켜주지도 않았다. 그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성유리를 데려다 성유정한테 사과를 시키는 것뿐이었다.생각을 마친 성유리는 헛웃음을 한번 흘리고는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네,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성유리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또렷했다.“근데 제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요?”성유리의 말에 듣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고 윤청하는 화가 나 몸을 벌벌 떨었다.그때 묵직한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유리.”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을 보지 않고 성유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쟤는 그냥 엄마랑 집안사람들이 입양한 잡종이잖아요. 알아요, 나보다 쟤가 더 성씨 집안 아가씨 같다는 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성씨 집안 피가 흐르는 건 저예요.”성유리는 아직 할 말이 많았지만 박한빈이 그 앞을 막아서며 성유리를 차갑게 내려다봤다.“너 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헛소리 아니야. 내가 틀린 말 했어?”하지만 지금의 성유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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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도 가만히 있던 박한빈은 서유리를 한번 보고 마침내 그 이혼합의서를 받아들었다.이혼합의서의 마지막 페이지부터 들추어본 박한빈은 이미 사인이 되어있는 성유리의 이름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성유리가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박한빈은 이혼서류를 반으로 찢어버렸다.그 모습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성유리였지만 그녀는 애써 평온한 척하며 물었다.“이 서류가 맘에 안 들면 다시 인출해서 줄게.”박한빈은 여전히 말없이 찢어진 서류를 쓰레기통에 던져놓고는 성유리를 향해 한걸음 성큼 다가왔다.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낯빛이 변한 성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그렇게 성유리의 등은 빠르게 뒤에 있던 테이블에 닿았고 원래도 상처가 있던 등에 딱딱한 테이블이 닿으니 느껴지는 통증에 성유리가 신음을 흘려댔다.“이혼?”박한빈은 아파하는 성유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아님 밀당하는 건가.”“너의 이런 치졸한 수법들이 난 매번 역겨워.”남편이 아내에 대한 평가가 역겹다라니.성유리는 아까 성유정 앞에서 박한빈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박한빈은 그 순간에 성유정을 보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유리에게 혐오를 드러내고 있었다.지금껏 참 많이도 실망했던 성유리였지만 심장은 아직도 이런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누군가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왔다.성유리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구멍이 막혀버린 듯한 느낌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아이러니한 건 이 와중에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목소리를 되찾은 성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협박 아니고 진심이야.”눈을 가늘게 뜨는 박한빈에 성유리가 말을 이었다.“우리 결혼을 더 지속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그럼 너한테 뭐가 의미 있는 건데? 아, 진씨 집안 그 혼외자?”박한빈이 진무열을 언급할 줄 몰랐던 성유리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그 눈도 따라서 커졌다.하지만 박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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