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31 - Chapter 40

299 Chapters

제31화

성유리가 택시에 타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윤청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당장 집에 와.”윤청하는 성유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성유리는 원래도 가려고 했던 집이기에 별로 고민은 하지 않았다.정말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윤청하는 문이 열리자마자 성유리의 뺨을 때렸다.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성유리는 문을 열자마자 맞은 강한 세기의 뺨에 귀 뒤로 넘겼던 머리카락도 흘러내렸고 귀에서 이명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아?”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윤청하가 또다시 손을 들어 올릴 때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 손을 멈추었다.“그만해.”그 목소리에 윤청하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손은 내렸다.낯선 그녀의 고분고분한 모습에 성유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회색 조끼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은 중년 남자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관리를 잘해서인지 남자는 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몸매에 주름 하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 남자는 바로 성유리의 아버지 성시원이었다.성시원은 성유리가 보는 앞에서 윤청하는 자기 쪽으로 끌며 말했다.“애도 다 컸는데 손을 왜 대?”“나는 뭐 손대고 싶어서 대는 줄 알아요? 쟤가 하는 짓을 좀 봐요!”윤청하는 목이 쉴 정도로 소리치며 말했다.“전에 유정이더러 한빈이랑 결혼하라 했더니 네가 반대했잖아. 그렇게 고집 피워서 결혼해놓고 이제 와서 이혼한다고? 그냥 우리 성씨 집안 망신시키려고 작정했지?”“됐어, 당신도 진정해.”히스테리를 부리는 아내와 달리 성시원은 많이 차분해 보였다.성시원은 제 아내부터 다독여놓고는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나랑 같이 박씨 집안에 가자, 가서 잘 사과드리고 오늘 일은 없었던...”“안 가요.”제 말까지 끊으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성유리에 성시원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성유리, 뭐 하자는 거야 지금?”“충동적으로 결정한 거 아니고 많이 고민해보고 내린 결정이에요.”“우리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한 결정이 어떻게 고민을 많이 해보고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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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왜 성유정을 더 좋아할까.이건 성유리가 이 집에 금방 들어왔을 때 매일매일 생각하던 문제였다.사랑받고 싶은 건 매한가지였기에 성유리는 성유정이 이쁨받으려고 하는 행동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항상 성유정만을 좋아했다, 하다못해 부모님 역시.그러던 어느 날 성유리가 어머니께 차를 타드렸는데 겉으로는 고맙다고 하던 어머니가 바로 뒤로 돌아 차를 화분에 버리는 모습을 보고 난 뒤부터 성유리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던 것 같다.그리고 부모님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도 바로 그날 밤이었다.윤청하가 성시원에게 자신의 HIV 검사에 대해 제안하는 대화였다.그때는 어려서 HIV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에이즈 병이었다.성유리가 어렸을 때 양부에게 강간을 당할뻔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성유리를 더럽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성유리에게는 그들 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던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제 눈앞의 저 잔인한 얼굴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하지만 성유리는 이내 제 감정을 추스르고 눈을 떴다.“뭐가 됐든 이젠 저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이제 부모님의 사랑 따위 필요 없거든요.”“무슨 말이야 그게?”“계속 저 데려온 거 후회하셨잖아요. 이젠 그러실 필요 없다고요. 제가 나갈게요.”“앞으로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성유정이라는 자랑스러운 딸밖에 없어요.”“너...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윤청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게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놀라서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성유리는 더 이상 그런 게 궁금하지 않았기에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어머니 아버지뿐만 아니라 저도 후회했거든요.”“만약 그때 제가 그 마을에서 죽어버렸다면 내 부모님은 날 사랑한다는 환상이라도 안고 죽었을 테니까.”그 말에 윤청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만 떨어댔다.성유리는 그런 그녀에게는 눈길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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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숙자 아주머니가 성유리를 붙잡으려 할 때 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오자 아주머니는 빠르게 뛰쳐나가 박한빈에게 말했다.“도련님, 작은 사모님이 무슨 일인지 짐을 다 싸 들고 나가려고 하세요!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라 박한빈은 놀라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마침 짐을 끌고 내려오는 성유리가 보였다.박한빈은 캐리어를 한번 보더니 손바닥 자국이 선명히 나 있는 성유리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성유리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법원에 언제 갈 거야?”“변호사 오라고 했어.”성유리의 얼굴에서 눈을 뗀 박한빈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지만 성유리는 빠르게 대꾸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원하는 거 없거든.”성유리의 말에 계단을 올라가던 박한빈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한 푼도 안 가지고 나가도 합의서에는 사인해야 해.”박한빈의 뜻을 알아들은 성유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상황파악을 끝낸 숙자 아주머니가 물었다.“도련님, 이혼... 하세요?”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박한빈은 말을 마친 뒤 바로 2층으로 올라갔고 성유리는 짐을 현관까지 끌고 간 뒤 캐리어 위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간신히 정신을 차린 숙자 아주머니는 서둘러 김서영에게 연락했고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자 아주머니는 알겠다는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성유리는 비록 그들의 대화를 듣진 못했지만 숙자 아주머니의 반응으로부터 김서영이 이혼에 결국 동의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상했던 바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서영에 대해서는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젠 다 잘 해결된 것 같았다.박한빈이 부른 변호사는 금방 집에 도착했고 이혼 합의서에는 성유리가 말한 대로 재산분할은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하지만 원래 박한빈에게서 뭘 바란 적이 없던 성유리였기에 고민도 없이 바로 사인을 마쳤다.“대표님, 법원은 내일 오전 열 시에 다녀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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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성유리는 문득 결혼할 때의 광경을 떠올렸다.성씨 집안에서 반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성유리는 성씨 집안의 장녀였기에 그녀의 결혼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반년 동안 예식장, 드레스, 결혼사진 할 것 없이 이런저런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었다.그때는 모든 일정을 다 중지하고 결혼이라는 대사 중심으로 하며 오랜 시간 들여 준비했었는데 이혼은 말 몇 마디로 끝내버리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유능한 변호사 덕분에 성유리와 박한빈은 유예기간도 없이 30분 만에 모든 걸 정리해버렸다.그리고 빠르게 이혼 증명서를 받는 날이 다가왔다.이미 이혼 증명서를 받은 박한빈은 지금 아주 바빠 보였다.여기저기에서 온 연락들을 처리하며 한 손으론 이혼 증명서를 챙겨 들고 다른 손으론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성유리는 마지막으로 박한빈에게 작별인사나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법원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이혼 증명서만 떡하니 놓여있었다.성유리는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이혼 증명서를 집어 들었다.2년의 결혼생활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허무하게 끝나버린 결혼생활, 그 2년 동안 성유리는 매일매일 홀라 조마조마하며 살았던 것 같다.그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이 성유리의 생각을 멈추었다.“이게 뭐야?!”성유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너 장난해? 아침에 보낸 다음 편, 남자 주인공이 왜 갑자기 죽는데?!”“적혀있잖아, 교통사고라고.”“미쳤어? 프러포즈 당일에 죽는 남자 주인공이 어딨어? 너 독자분들한테 치여 죽고 싶은 거야?”편집자의 말에 성유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리가, 그분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내가 알아! 제발 장난치지 말고 유리야... 이거 이대로 올리면 위에서 나만 갈군다고...”“괜찮아, 다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진짜? 남자 주인공 환생해? 아니면 시간을 되돌리나? 안돼, 나한테 먼저 알려줘 일단.”“아니, 여주가 환생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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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송효주는 그런 성유리를 노려보며 말했다.“뭐가 좋아?”“네가 그리는 건 로맨스 만화라고, 달달하고 사랑만 하는 그런 거! 네가 쓴 대로 내보냈다가는 우리 사이트만 욕먹어.”“기분이 나쁘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한 보름 정도 쉬어도 좋으니까 마음 추스르고 다시 그려.”송효주의 단호한 태도에 성유리도 더는 반박을 하지 않았다.그제야 송효주도 성유리를 보며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남편이랑 이혼은 왜 한 거야?”“전에는 잘 살았잖아, 삼시 세끼 챙겨주는 사람 있고 한도 없는 카드에 신경 쓰지 않는 남편, 이건 완전 완벽한 거잖아!”성유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책을 책장에 꽂아 넣으며 고개를 돌려 물었디.“밥 아직 안 먹었지? 가자, 밥 사줄게.”...자경 라운지.이곳은 금성에서 제일가는 럭셔리한 곳이었다.접대하는 모든 손님들은 금성에서 이름 꽤나 알린 사람들이었고 다들 회원카드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출입을 하지 않던 성유정도 오늘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다.당연히 저 소파 정중앙에 앉아있는 사람 때문이었다.상류사회의 주축이 되는 박한빈의 이혼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오늘 이 자리는 박한빈이 다시 솔로가 된 걸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박한빈은 차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이 굳이 마련한 자리를 거절하진 않았다.그런 와중에 성유정이 룸으로 들어오자 모두들 그녀를 보며 물었다.“너희 언니랑 한빈이 이혼했다는 거 진짜야?”박한빈에게는 차마 물을 용기가 없었던 그들이기에 마침 들어온 성유정을 붙잡고 따져 물었다.성유정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아이고, 그때는 그 난리를 치면서 결혼하더니 이혼은 이렇게 쉽게 해?”“그러니까, 나도 엄청 놀랐어.”성유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울상을 지은 채 말했다.“분명 잘 사는 것 같았는데...”“성유리 지도 해보니까 안된다는 걸 안 거겠지.”“그냥 짜증 한 번 부린 건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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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아무도 성유정의 말에 대답하지 않자 아까 진무열 얘기를 꺼냈던 사람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건 모르지. 근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니, 어차피 우리랑 어울릴 사람은 아닌데.”“한빈이 형, 제가 한잔 따라드릴게요.”남자의 이 행동은 아까의 실언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함이었다.박한빈이 아무리 성유리를 싫어한다 해도 결혼 기간 동안 진무열이랑 엮여서 이혼했다는 소문이라도 떠돌게 되면 그건 또 다른 개념의 문제였기에 남자는 눈치가 조금은 남았는지 서둘러 굽히고 들어갔다.다행히 박한빈도 별말 하지 않고 술잔을 부딪쳐주었다.그렇게 한 잔씩 마시고 나서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박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난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내 앞으로 계산서 달아두고 잘 놀다가.”“네? 왜...”인사를 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밖으로 나갔고 성유정은 빠르게 그 뒤를 쫓아갔다.“오빠!”“왜?”고개를 돌린 박한빈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표정에 성유정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나... 택시 타고 왔는데, 데려다줄 수 있어?”“그래.”박한빈은 예전처럼 성유정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저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성유정이 안도의 숨을 내뱉고는 전처럼 예쁘게 웃으며 박한빈과 나란히 서서 라운지를 빠져나갔다.자경 라운지가 번창하면서 거리 전체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늦은 시각에도 거리에는 많은 바와 라운지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그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한 잔 한 잔의 칵테일 같았고 서늘한 밤공기에도 사치의 냄새가 자욱했다.하지만 그런 것들은 박한빈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기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때 박한빈에게 물어볼 게 있어 고개를 들던 성유정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파란색 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는 성유리였는데 평소와 달리 진한 화장에 하늘 높이 솟은 아이라인은 그녀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했고 입가에 걸린 미소는 그녀를 한껏 더 매혹적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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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사람은 그곳에 서 있었지만 시선은 성유리에게로 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박한빈은 성유리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거기 서서 성유정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그래서 성유리도 박한빈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는 성유정을 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집에 가자 언니. 엄마 아빠랑 그만 싸우면 안 돼?”“미안한데 난 안가.”성유정이 애원하듯 말했지만 성유리는 그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하지만 성유정은 포기하지 않고 그 옆에 있는 송효주를 보며 말했다.“언니 친구분이시죠? 언니한테 저랑 같이 집에 좀...”“언니도 이 나이 먹었으면 동생분이 말 안 해도 알아서 해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웃으며 말하는 송효주에 성유정은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부모님이 언니를 보고 싶어 하세요! 언니는 엄마 아빠가 언니 걱정만 하게 내버려 둘 거야? 어쩜 사람이 그래?”말을 마친 성유정이 눈물까지 흘리자 송효주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동생분이 연기를 잘하시네, 연예이나 해보지 그래요?”필터링 없는 송효주의 말에 성유정이 벙쪄있자 송효주는 그 틈을 타 성유리를 잡아끌며 말했다.“가자 우린.”“언니!”하지만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성유정이 성유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걸 먼저 예상하고 있었던 성유리가 팔을 피했는데 여기서 또 의외인 것은 그 동작 하나 때문에 성유정이 넘어졌다는 것이다.그제야 박한빈도 더는 그곳에 서 있지 않고 성유정에게로 다가와 그녀를 잡아주었다.“나 괜찮아 한빈 오빠. 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마.”“한빈? 박한빈? 당신이 유리 전남편이에요?”“가자.”또 그들과 엮이기 싫었던 성유리가 송효주를 잡아끌었지만 송효주는 움직이지 않고 박한빈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건 무슨 상황이에요? 처제랑 형부? 이거 뭐 드라마에요?”“헛소리하지 마세요!”송효주의 말에 성유정이 다급히 나서며 해명했다.“나랑 한빈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요즘이 어떤 시댄데, 남녀 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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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집으로 돌아온 성유리는 바로 화장부터 지우려 했는데 순간 편집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성유리가 그린 만화가 사이트 규정에 어긋난다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편집장의 통보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어긋난다는 거죠?”“회사에서 방금 전해 들은 소식인데 그리시고 있는 만화가... 한 분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네요.”편집장의 말을 들은 성유리는 박한빈의 짓임을 알아챘다.박한빈은 평소에 성유리가 하는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방금도 그는 말 한마디로 성유리가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성유리는 바로 박한빈에게 연락해 따지려고 했으나 이곳에 사는 이상 박한빈과 부딪쳐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성유리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만화 주인공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박한빈이었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했다.그때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아까 성 회장님께 연락 드렸는데 이번 달부터 오 여사님 병원비는 아가씨께서 부담하신다고요?”“네, 내일 병원 갈게요.”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난 성유리는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계좌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긴 했지만 평소에 박한빈이 주는 카드를 안 쓰고 다 본인의 카드로 결제했던 터라 성유리의 잔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약값 한번 결제하면 사라질 돈이었다.갑자기 벼랑 끝에 선 듯한 기분이 든 성유리는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모두가 저를 낭떠러지 아래로 미는 것 같았다. 그냥 떨어져서 온몸이 부서져 버리라는 듯.이튿날, 성유리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성씨 집안 집사에게서 연락이 왔다.윤청하가 성유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집에 돌아오라는 전화였지만 성유리는 역시나 거절했다.“안 가요.”그 단호한 대답에 집사는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유리 아가씨, 진짜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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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아니에요. 근데 요새 엄청 바쁘신가 봐요? 몇 달 만에 얼굴 뵙는 것 같아요.”“바쁜 건 아니었어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성유리가 그녀를 향해 웃자 간호사도 오랜만에 보는 성유리가 반가웠는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병원 오기 편하라고 일부러 가까운데 집을 맡았기에 성유리는 택시를 타는 대신 우산을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그런데 집밖에는 예상외의 인물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온갖 짜증을 부리며 서 있었다.윤청하 역시 성유리를 보았는지 대뜸 말을 걸었다.“드디어 왔네.”보고 싶지 않았던 윤청하의 모습에 성유리는 쌀쌀맞은 말투로 물었다.“여긴 무슨 일이세요?”“네가 집에만 왔어도 내가 여기 올 일은 없었어.”윤청하는 녹슨 집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하고 온다는 데가 여기야? 성유리, 너 진짜 미쳤구나!”“제 선택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성유리는 윤청하가 이곳을 탐탁지 않아 해서 문도 안 열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걸 알기에 굳이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윤청하는 그런 성유리를 아니꼽게 보며 한숨을 쉬었다.“병원에서 온 거지? 가서 그 여자 봤어?”“네.”“성유리, 너 생각 잘해. 성씨 집안에 안 들어오면 넌 병원비도 못 내!”“알아요.”“아는데 왜...”“용건만 말씀하세요.”부모님이 정말로 제 걱정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니란 걸 성유리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집사가 전화할 때부터 집에 자신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은 예상했었기에 뭐 그간의 정을 나눌 마음도 없었던 성유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에 윤청하도 입을 열려고 했는데 하필 3층 계단 입구에 있는 집이라서 내려가고 올라가는 사람마다 그들 모녀를 한 번씩 보면서 지나갔다.그냥 한번 보는 거였지만 그게 또 신경 쓰였는지 윤청하는 굳은 표정으로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밖에서 말하라고? 안에도 안 들여보내 줄 거야?”사실 원래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 성유리는 입술을 말아 물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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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윤청하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침묵만 유지했다.원래도 작아서 답답하던 집 안에 정적까지 감도니 전체적인 분위가 훅 가라앉는 것 같았다.그런 정적 속에서 윤청하를 바라보는 성유리의 평온한 시선은 윤청하의 심장까지 철렁이게 했다.“너...”“나가요.”그때 한참 만에 입을 연 성유리의 입에서 낯선 말이 튀어나왔다.그에 깜짝 놀란 윤청하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너 방금 뭐라고 했니?”“나가라고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도 마세요.”성유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저번에 한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면 기자회견도 열게요. 그래서 저는 성씨 집안과 연을 끊었으니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성씨 집안과 상관없다고 말할게요. 그럼 제가 집안 망신시킬까 더 걱정 안 하셔도 되잖아요.”성유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청하가 성유리의 뺨을 내리쳤다.오늘 금방 한 네일의 큐빅이 성유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피까지 흘러내렸지만 성유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성유리는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평온하게 윤청하를 보고 있었다.“너... 너 다 컸다고 이젠 내 말도 안 듣겠다는 거니? 성유리, 넌 내 딸이야. 넌...”“나더러 조씨 집안에 시집가라는 거 집안 이익 때문이잖아요.”성유리는 윤청하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그게 아니면 어머니가 이렇게 다급하게 절 찾아오실 리가 없잖아요.”“집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거예요? 됐어요, 어차피 전 그 집안에 원하는 게 없으니까 알고 싶지도 않아요.”“원하는 게 없어? 너를 키우느라 든 돈은 다 헛된 거였니?”“그리고 병원에 누워있는 그 여자, 우리 성씨 집안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어. 아직도 숨 붙어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나도 알아, 네가 돌아올 때부터 넌 날 엄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 너한테는 병원에 누워있는 그 여자밖에 없잖아. 그게 네 유일한 엄마잖아. 우리가 막지 않았으면 병원을 아주 제집 드나들듯 했겠지. 그 여자가 너한테 뭘 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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