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3화

작가: 송진
숙자 아주머니가 성유리를 붙잡으려 할 때 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오자 아주머니는 빠르게 뛰쳐나가 박한빈에게 말했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이 무슨 일인지 짐을 다 싸 들고 나가려고 하세요!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라 박한빈은 놀라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마침 짐을 끌고 내려오는 성유리가 보였다.

박한빈은 캐리어를 한번 보더니 손바닥 자국이 선명히 나 있는 성유리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성유리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법원에 언제 갈 거야?”

“변호사 오라고 했어.”

성유리의 얼굴에서 눈을 뗀 박한빈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지만 성유리는 빠르게 대꾸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난 원하는 거 없거든.”

성유리의 말에 계단을 올라가던 박한빈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 푼도 안 가지고 나가도 합의서에는 사인해야 해.”

박한빈의 뜻을 알아들은 성유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상황파악을 끝낸 숙자 아주머니가 물었다.

“도련님, 이혼... 하세요?”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박한빈은 말을 마친 뒤 바로 2층으로 올라갔고 성유리는 짐을 현관까지 끌고 간 뒤 캐리어 위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숙자 아주머니는 서둘러 김서영에게 연락했고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자 아주머니는 알겠다는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성유리는 비록 그들의 대화를 듣진 못했지만 숙자 아주머니의 반응으로부터 김서영이 이혼에 결국 동의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바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서영에 대해서는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젠 다 잘 해결된 것 같았다.

박한빈이 부른 변호사는 금방 집에 도착했고 이혼 합의서에는 성유리가 말한 대로 재산분할은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원래 박한빈에게서 뭘 바란 적이 없던 성유리였기에 고민도 없이 바로 사인을 마쳤다.

“대표님, 법원은 내일 오전 열 시에 다녀오시면 됩니다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4화

    성유리는 문득 결혼할 때의 광경을 떠올렸다.성씨 집안에서 반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성유리는 성씨 집안의 장녀였기에 그녀의 결혼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반년 동안 예식장, 드레스, 결혼사진 할 것 없이 이런저런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었다.그때는 모든 일정을 다 중지하고 결혼이라는 대사 중심으로 하며 오랜 시간 들여 준비했었는데 이혼은 말 몇 마디로 끝내버리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유능한 변호사 덕분에 성유리와 박한빈은 유예기간도 없이 30분 만에 모든 걸 정리해버렸다.그리고 빠르게 이혼 증명서를 받는 날이 다가왔다.이미 이혼 증명서를 받은 박한빈은 지금 아주 바빠 보였다.여기저기에서 온 연락들을 처리하며 한 손으론 이혼 증명서를 챙겨 들고 다른 손으론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성유리는 마지막으로 박한빈에게 작별인사나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법원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이혼 증명서만 떡하니 놓여있었다.성유리는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이혼 증명서를 집어 들었다.2년의 결혼생활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허무하게 끝나버린 결혼생활, 그 2년 동안 성유리는 매일매일 홀라 조마조마하며 살았던 것 같다.그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이 성유리의 생각을 멈추었다.“이게 뭐야?!”성유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너 장난해? 아침에 보낸 다음 편, 남자 주인공이 왜 갑자기 죽는데?!”“적혀있잖아, 교통사고라고.”“미쳤어? 프러포즈 당일에 죽는 남자 주인공이 어딨어? 너 독자분들한테 치여 죽고 싶은 거야?”편집자의 말에 성유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리가, 그분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내가 알아! 제발 장난치지 말고 유리야... 이거 이대로 올리면 위에서 나만 갈군다고...”“괜찮아, 다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진짜? 남자 주인공 환생해? 아니면 시간을 되돌리나? 안돼, 나한테 먼저 알려줘 일단.”“아니, 여주가 환생하는 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5화

    송효주는 그런 성유리를 노려보며 말했다.“뭐가 좋아?”“네가 그리는 건 로맨스 만화라고, 달달하고 사랑만 하는 그런 거! 네가 쓴 대로 내보냈다가는 우리 사이트만 욕먹어.”“기분이 나쁘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한 보름 정도 쉬어도 좋으니까 마음 추스르고 다시 그려.”송효주의 단호한 태도에 성유리도 더는 반박을 하지 않았다.그제야 송효주도 성유리를 보며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남편이랑 이혼은 왜 한 거야?”“전에는 잘 살았잖아, 삼시 세끼 챙겨주는 사람 있고 한도 없는 카드에 신경 쓰지 않는 남편, 이건 완전 완벽한 거잖아!”성유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책을 책장에 꽂아 넣으며 고개를 돌려 물었디.“밥 아직 안 먹었지? 가자, 밥 사줄게.”...자경 라운지.이곳은 금성에서 제일가는 럭셔리한 곳이었다.접대하는 모든 손님들은 금성에서 이름 꽤나 알린 사람들이었고 다들 회원카드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출입을 하지 않던 성유정도 오늘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다.당연히 저 소파 정중앙에 앉아있는 사람 때문이었다.상류사회의 주축이 되는 박한빈의 이혼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오늘 이 자리는 박한빈이 다시 솔로가 된 걸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박한빈은 차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이 굳이 마련한 자리를 거절하진 않았다.그런 와중에 성유정이 룸으로 들어오자 모두들 그녀를 보며 물었다.“너희 언니랑 한빈이 이혼했다는 거 진짜야?”박한빈에게는 차마 물을 용기가 없었던 그들이기에 마침 들어온 성유정을 붙잡고 따져 물었다.성유정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아이고, 그때는 그 난리를 치면서 결혼하더니 이혼은 이렇게 쉽게 해?”“그러니까, 나도 엄청 놀랐어.”성유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울상을 지은 채 말했다.“분명 잘 사는 것 같았는데...”“성유리 지도 해보니까 안된다는 걸 안 거겠지.”“그냥 짜증 한 번 부린 건데 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6화

    아무도 성유정의 말에 대답하지 않자 아까 진무열 얘기를 꺼냈던 사람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건 모르지. 근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니, 어차피 우리랑 어울릴 사람은 아닌데.”“한빈이 형, 제가 한잔 따라드릴게요.”남자의 이 행동은 아까의 실언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함이었다.박한빈이 아무리 성유리를 싫어한다 해도 결혼 기간 동안 진무열이랑 엮여서 이혼했다는 소문이라도 떠돌게 되면 그건 또 다른 개념의 문제였기에 남자는 눈치가 조금은 남았는지 서둘러 굽히고 들어갔다.다행히 박한빈도 별말 하지 않고 술잔을 부딪쳐주었다.그렇게 한 잔씩 마시고 나서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박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난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내 앞으로 계산서 달아두고 잘 놀다가.”“네? 왜...”인사를 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밖으로 나갔고 성유정은 빠르게 그 뒤를 쫓아갔다.“오빠!”“왜?”고개를 돌린 박한빈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표정에 성유정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나... 택시 타고 왔는데, 데려다줄 수 있어?”“그래.”박한빈은 예전처럼 성유정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저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성유정이 안도의 숨을 내뱉고는 전처럼 예쁘게 웃으며 박한빈과 나란히 서서 라운지를 빠져나갔다.자경 라운지가 번창하면서 거리 전체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늦은 시각에도 거리에는 많은 바와 라운지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그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한 잔 한 잔의 칵테일 같았고 서늘한 밤공기에도 사치의 냄새가 자욱했다.하지만 그런 것들은 박한빈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기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때 박한빈에게 물어볼 게 있어 고개를 들던 성유정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파란색 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는 성유리였는데 평소와 달리 진한 화장에 하늘 높이 솟은 아이라인은 그녀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했고 입가에 걸린 미소는 그녀를 한껏 더 매혹적이게 만들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7화

    사람은 그곳에 서 있었지만 시선은 성유리에게로 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박한빈은 성유리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거기 서서 성유정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그래서 성유리도 박한빈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는 성유정을 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집에 가자 언니. 엄마 아빠랑 그만 싸우면 안 돼?”“미안한데 난 안가.”성유정이 애원하듯 말했지만 성유리는 그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하지만 성유정은 포기하지 않고 그 옆에 있는 송효주를 보며 말했다.“언니 친구분이시죠? 언니한테 저랑 같이 집에 좀...”“언니도 이 나이 먹었으면 동생분이 말 안 해도 알아서 해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웃으며 말하는 송효주에 성유정은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부모님이 언니를 보고 싶어 하세요! 언니는 엄마 아빠가 언니 걱정만 하게 내버려 둘 거야? 어쩜 사람이 그래?”말을 마친 성유정이 눈물까지 흘리자 송효주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동생분이 연기를 잘하시네, 연예이나 해보지 그래요?”필터링 없는 송효주의 말에 성유정이 벙쪄있자 송효주는 그 틈을 타 성유리를 잡아끌며 말했다.“가자 우린.”“언니!”하지만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성유정이 성유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걸 먼저 예상하고 있었던 성유리가 팔을 피했는데 여기서 또 의외인 것은 그 동작 하나 때문에 성유정이 넘어졌다는 것이다.그제야 박한빈도 더는 그곳에 서 있지 않고 성유정에게로 다가와 그녀를 잡아주었다.“나 괜찮아 한빈 오빠. 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마.”“한빈? 박한빈? 당신이 유리 전남편이에요?”“가자.”또 그들과 엮이기 싫었던 성유리가 송효주를 잡아끌었지만 송효주는 움직이지 않고 박한빈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건 무슨 상황이에요? 처제랑 형부? 이거 뭐 드라마에요?”“헛소리하지 마세요!”송효주의 말에 성유정이 다급히 나서며 해명했다.“나랑 한빈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요즘이 어떤 시댄데, 남녀 둘이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8화

    집으로 돌아온 성유리는 바로 화장부터 지우려 했는데 순간 편집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성유리가 그린 만화가 사이트 규정에 어긋난다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편집장의 통보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어긋난다는 거죠?”“회사에서 방금 전해 들은 소식인데 그리시고 있는 만화가... 한 분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네요.”편집장의 말을 들은 성유리는 박한빈의 짓임을 알아챘다.박한빈은 평소에 성유리가 하는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방금도 그는 말 한마디로 성유리가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성유리는 바로 박한빈에게 연락해 따지려고 했으나 이곳에 사는 이상 박한빈과 부딪쳐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성유리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만화 주인공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박한빈이었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했다.그때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아까 성 회장님께 연락 드렸는데 이번 달부터 오 여사님 병원비는 아가씨께서 부담하신다고요?”“네, 내일 병원 갈게요.”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난 성유리는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계좌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긴 했지만 평소에 박한빈이 주는 카드를 안 쓰고 다 본인의 카드로 결제했던 터라 성유리의 잔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약값 한번 결제하면 사라질 돈이었다.갑자기 벼랑 끝에 선 듯한 기분이 든 성유리는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모두가 저를 낭떠러지 아래로 미는 것 같았다. 그냥 떨어져서 온몸이 부서져 버리라는 듯.이튿날, 성유리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성씨 집안 집사에게서 연락이 왔다.윤청하가 성유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집에 돌아오라는 전화였지만 성유리는 역시나 거절했다.“안 가요.”그 단호한 대답에 집사는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유리 아가씨, 진짜 왜 이러세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9화

    “아니에요. 근데 요새 엄청 바쁘신가 봐요? 몇 달 만에 얼굴 뵙는 것 같아요.”“바쁜 건 아니었어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성유리가 그녀를 향해 웃자 간호사도 오랜만에 보는 성유리가 반가웠는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병원 오기 편하라고 일부러 가까운데 집을 맡았기에 성유리는 택시를 타는 대신 우산을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그런데 집밖에는 예상외의 인물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온갖 짜증을 부리며 서 있었다.윤청하 역시 성유리를 보았는지 대뜸 말을 걸었다.“드디어 왔네.”보고 싶지 않았던 윤청하의 모습에 성유리는 쌀쌀맞은 말투로 물었다.“여긴 무슨 일이세요?”“네가 집에만 왔어도 내가 여기 올 일은 없었어.”윤청하는 녹슨 집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하고 온다는 데가 여기야? 성유리, 너 진짜 미쳤구나!”“제 선택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성유리는 윤청하가 이곳을 탐탁지 않아 해서 문도 안 열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걸 알기에 굳이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윤청하는 그런 성유리를 아니꼽게 보며 한숨을 쉬었다.“병원에서 온 거지? 가서 그 여자 봤어?”“네.”“성유리, 너 생각 잘해. 성씨 집안에 안 들어오면 넌 병원비도 못 내!”“알아요.”“아는데 왜...”“용건만 말씀하세요.”부모님이 정말로 제 걱정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니란 걸 성유리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집사가 전화할 때부터 집에 자신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은 예상했었기에 뭐 그간의 정을 나눌 마음도 없었던 성유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에 윤청하도 입을 열려고 했는데 하필 3층 계단 입구에 있는 집이라서 내려가고 올라가는 사람마다 그들 모녀를 한 번씩 보면서 지나갔다.그냥 한번 보는 거였지만 그게 또 신경 쓰였는지 윤청하는 굳은 표정으로 성유리를 보며 말했다.“밖에서 말하라고? 안에도 안 들여보내 줄 거야?”사실 원래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 성유리는 입술을 말아 물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0화

    윤청하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대꾸도 하지 않고 침묵만 유지했다.원래도 작아서 답답하던 집 안에 정적까지 감도니 전체적인 분위가 훅 가라앉는 것 같았다.그런 정적 속에서 윤청하를 바라보는 성유리의 평온한 시선은 윤청하의 심장까지 철렁이게 했다.“너...”“나가요.”그때 한참 만에 입을 연 성유리의 입에서 낯선 말이 튀어나왔다.그에 깜짝 놀란 윤청하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너 방금 뭐라고 했니?”“나가라고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도 마세요.”성유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저번에 한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면 기자회견도 열게요. 그래서 저는 성씨 집안과 연을 끊었으니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성씨 집안과 상관없다고 말할게요. 그럼 제가 집안 망신시킬까 더 걱정 안 하셔도 되잖아요.”성유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청하가 성유리의 뺨을 내리쳤다.오늘 금방 한 네일의 큐빅이 성유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피까지 흘러내렸지만 성유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성유리는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평온하게 윤청하를 보고 있었다.“너... 너 다 컸다고 이젠 내 말도 안 듣겠다는 거니? 성유리, 넌 내 딸이야. 넌...”“나더러 조씨 집안에 시집가라는 거 집안 이익 때문이잖아요.”성유리는 윤청하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그게 아니면 어머니가 이렇게 다급하게 절 찾아오실 리가 없잖아요.”“집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거예요? 됐어요, 어차피 전 그 집안에 원하는 게 없으니까 알고 싶지도 않아요.”“원하는 게 없어? 너를 키우느라 든 돈은 다 헛된 거였니?”“그리고 병원에 누워있는 그 여자, 우리 성씨 집안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어. 아직도 숨 붙어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나도 알아, 네가 돌아올 때부터 넌 날 엄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 너한테는 병원에 누워있는 그 여자밖에 없잖아. 그게 네 유일한 엄마잖아. 우리가 막지 않았으면 병원을 아주 제집 드나들듯 했겠지. 그 여자가 너한테 뭘 해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1화

    윤청하는 그래도 성유리와 더 얘기해보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생각해봤어?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병원비 만으로도 너 충분히 힘들어질 거야. 네 아빠는...”“어차피 굶어 죽진 않아요.”“이건 어머니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앞으로는 그냥 저 같은 딸 찾은 적도 없는 셈 치고 사세요.”“어머니 딸 성유리는 5살 때 이미 죽었어요. 어머니가 저를 잃어버린 그날이요.”결국 윤청하는 밖으로 나갔고 그렇게 한참을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던 성유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테니스라켓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중학교 근처의 체육관에서 라켓을 한참이나 휘두른 탓에 에어컨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운동을 해서인지 성유리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그 땀방울이 성유리의 앞머리를 적셨고 또 시야도 흐려지게 했다.그때 상대방의 서브를 기다리고 있던 성유리에게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가 한 게임 해도 될까요?”임시 파트너인 대학생은 남자의 제안에 순순히 라켓을 넘겨주고는 옆으로 가 물을 마셨다.“여기 있을 줄 알았어.”진무열의 목소리에도 성유리는 대답 없이 손에 들린 공만 보고 있었다.“땀도 많이 흘리는 것 같은데 좀 쉬었다 하자.”그런 진무열을 빤히 바라보던 성유리는 상대가 저랑 공을 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뒤 돌아 다른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진무열은 빠르게 달려가 성유리의 손을 잡았다.“놔.”진무열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성유리를 끌고 다른 쪽으로 갔다.“이 손 놓으라고 진무열!”성유리는 계속해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진무열의 힘이 너무 세서 끝끝내 손은 빼내지 못했고 오히려 힘을 잘못 주어 진무열의 품에 안겨버리기까지 했다.성유리가 또 빠져나가려 하자 진무열은 그녀를 가둔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힘들면 울어도 돼. 여기 너 보는 사람 없어.”진무열의 말에 성유리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성유리는 천천히 몸에 힘을 풀과 라켓까지 땅에 내려놓았다.이를 악물고 있던 성유리는 운동

최신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53화

    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러다 에릭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흠, 듣고 보니 꽤 재미있을 것 같군.”“그럼 이 일은 네게 맡길게.”“뭐라고?”“너도 알다시피 난 이미 죽은 사람이야. 그리고 사씨 가문 쪽도...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내가 직접 손을 대긴 어려워.”“예전부터 네가 한국 시장에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 지금이 바로 기회 아닌가?”에릭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박한빈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이 마을 사람들은 일찍 잠드는 편이었다.지금은 사방이 조용했기에 그 작은 소리조차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내려놓고 물었다.“누구십니까?”아직도 업무 모드였던 탓에 목소리에는 저절로 냉기가 서려 있었다.그랬더니 문밖에서 들리던 노크 소리가 멈췄다.하지만 대답은 없었다.불안해진 박한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혹시 연정우 씨가 또 사람을 보낸 걸까?’그는 반사적으로 방 안을 둘러보며 무기로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문밖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저예요.”박한빈은 순간 멍해졌다.그리고는 에릭이 뭐라고 하는지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고 문 쪽으로 향했다.느슨하게 걸린 낡은 나무문을 밀어 열자 문 앞에는 성유리가 서 있었다.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 한 그릇이 들려 있었고 발치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주전자도 놓여 있었다.“아직 안 주무셨어요?”성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어딘가 머뭇거리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는 이내 시선을 떨구며 덧붙였다.“저... 저녁을 드셨는지 몰라서요. 그리고 여기 불 때는 곳도 없길래... 그냥 면을 좀 끓였어요. 따뜻한 물도요.”박한빈은 그녀가 들고 있는 그릇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둔탁하게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박한빈이 문득 물었다.“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성유리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52화

    마을에서는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윤도준이 일부러 사람들을 데려와 집을 정리해 준 덕분에 겨우 머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신호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다행히 박한빈은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아냈고 마침내 에릭과의 통화를 연결할 수 있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에릭은 비꼬듯이 물었다.“난 또 네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네?”“실망시켜서 미안한데 난 아주 잘 살아 있었어.”박한빈이 대답했다.“난 안 좋아.”에릭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지금 회사 쪽에서 어떤 난리가 났는지 알아? 전부 나한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제야 확실히 알겠어. 네가 전에 말했던 불편해서 직접 나서지 못한다는 말, 결국 다 핑계였잖아. 나보고 대신 뒤집어쓰라는 거였지?”“일이 끝나면 내 몫의 이익 절반을 넘기지.”박한빈이 제시한 그 금액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하지만 돈은 이미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나 다름없었다.그들이 하는 일에서 중요한 건 오직 짜릿함이었다.애초에 한 번에 일을 끝낼 수도 있었다.에릭은 심지어 축하 파티에서 마실 술까지 이미 골라 두었었다.그런데 갑자기 박한빈이이 모든 걸 멈추라고 했다.그 순간, 에릭은 마치 새벽녘 힘차게 울 준비를 하던 수탉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목을 눌린 듯한 기분이었다.숨이 막히고 무엇보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그때 박한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파티장에서 사고 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너를 급하게 건지러 가지 않았어도, 성유리는 애초에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 거야.”“뭐야? 지금 나한테 책임이라도 묻겠다는 거냐?”“책임을 묻겠다는 건 아냐. 다만 우리나라엔 이런 말이 있지. 한 방울의 은혜에도 샘물처럼 보답하라는 말.”“너...”“됐고, 본론부터 들어가자.”박한빈이 그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성유리를 찾았어.”“오, 그건 축하할 일이네.”그러나 에릭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기쁨도 담겨 있지 않았다.오히려 실망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그도 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51화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저희 또 만났네요.”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여기 사는 겁니까?”성유리는 묻는 남자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여기 삽니다.”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네. 오늘 막 이사 왔거든요.”“아...”성유리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어딘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런데 이 집, 꽤 오래됐어요. 비라도 오면 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상했다. 정작 상대방의 이름조차 모르는 데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도 박한빈이 이곳에 산다는 말에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이 집과 그 남자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럼 그는 어디에 살아야 할까?성유리는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할머니는 박한한이 성유리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 순간, 할머니의 표정이 확 변했다.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휘두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이 망할 놈아! 감히 내 딸한테 손을 대?”“어서 손 안 놔! 당장 안 놓으라고!”박한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성유리가 먼저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진정하세요. 그냥 얘기 좀 나누고 있었던 것뿐이니까.”할머니는 조금 전까지 윤도준을 쫓아 몇 바퀴나 뛰었는지 이미 숨이 가빠져 있었다.그런데도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박한빈을 보는 시선엔 노골적인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엄마, 우리 들어가서 밥 먹어요.”성유리가 부드럽게 말했다.할머니가 아직 노려보는 와중에도 성유리는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그쪽도 오늘 새로 이사 온 이웃이에요.”그 말에 할머니의 주의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성유리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할머니는 박한빈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50화

    “설아?”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렸다.“네. 엄마, 왜 그러세요?”“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지.”할머니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성유리의 밥그릇을 탁탁 두들겼다.“밥 먹는데 무슨 넋을 놓고 앉아 있어?”성유리가 그 말에 재빨리 고개를 숙여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럼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오늘 일에 대해 생각하는 거지? 그 경찰들 다 헛소리 지껄이는 거야.”“어쨌든 결혼 날짜는 이미 정해졌으니 결혼식은 먼저 치러.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 만큼 결혼하자마자 빨리 애 낳아. 내가 돌봐줄 수 있게.”“제가 누구랑 결혼해요?”성유리가 물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복섭이지! 예물도 이미 받았는데 뭘 더 바라?”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지며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그 모습을 본 성유리가 재빨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네가 지금 행복에 겨워서 정신이 없는 모양이구나. 예전에 다 정해진 일 아니었니? 게다가 너랑 복섭이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결혼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어?”“제가 우섭이랑 오래 사귀었어요?”“그럼! 너희 어릴 때부터 함께 목욕도 했잖아. 몇 년이 아니라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거야!”할머니의 말이 끝나가도 성유리는 아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녀가 애써 기억을 더듬으려는 순간, 머리가 격렬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고통을 무릅쓰고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밖에서 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마을 길이 고르지 못해 차체가 격하게 흔들리며 지나가더니 성유리와 할머니가 앉아 있는 식탁 앞으로 먼지가 고스란히 날려왔다.그러자 할머니의 얼굴이 확 붉어졌고 젓가락까지 내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눈이 안 달렸냐! 밥 먹는데 먼지를 날리다니! 망할 놈의 새끼들아!”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르는 할머니의 욕설은 매 한 마디가 다 아주 더러운 말들이었다.마을 누구나 아는 할머니의 억척스러움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49화

    “할머니, 보세요. 이게 바로 박한빈 씨의 아내 사진인데 여성분이랑...”“무슨 사진? 저 남자 아내가 생긴 거랑 우리 설이랑은 무슨 상관인데? 이 애는 내 딸이야!”“알겠습니다만 의혹이 제기된 이상 검사 한번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DNA 검사라도...”“DNA는 무슨 DNA! 너희들 다 미친 거 아냐? 내 딸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남의 아내가 되냐고? 설아, 따라와!”할머니는 성유리의 손을 단호히 잡아끌며 몸을 돌렸다. 윤도준이 막 말을 걸려는 순간 박한빈이 오히려 그를 제지했다.“박한빈 씨, 이건...”“저 사람들 사는 마을이 어딥니까?”박한빈이 한없이 차가운 태도로 물었다.“네?”“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세상에 닮은 사람이 둘 있는 건 흔한 일이란 말을 누구나 했다. 하지만 박한빈은 확신했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것을.그녀의 눈동자 깊이 스민 습관, 손가락을 깨무는 버릇까지 모든 게 36일 전 사라진 아내와 일치했다.사실 그는 강제로 성유리를 데려갈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만 한다면 설령 그녀가 저항해도 가장 가까운 신분으로 법적 조치가 가능했다.그러나 박한빈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이 선택을 하기까지 결정했던 순간은 성유리가 노파의 품으로 달려가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이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성유리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느끼지 못한 가족의 온기를 이 할머니에게서 찾고 있음을.병상에 누워 생명이 사라져가는 엄마와 달리 옆에서 챙겨주는 노파의 따스함이 지금 성유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만약 강제로 성유리를 데려간다면 그녀가 무조건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할 것이라고 믿었다.게다가 성유리를 데려간 사람들 또한 잘해주는 것 같았고 그녀 스스로도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가짜라고 한들 동년의 아쉬움과 공허한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고 있으니 박한빈은 어쩌면 성유리에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당연하게도 염우섭이라는 남자의 존재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그래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48화

    “이 근처에 병원 없습니까?”박한빈의 목소리엔 이미 짜증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유전자 검사 한번 해보면 바로 알 텐데?”“그렇죠.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윤도준은 이제서야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는지 그들을 병원으로 안내할 사람을 준비하려 했다.그런데 순간 염우섭이 불만을 표출했다.“안 돼. 다들 한 패거리잖아.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저 남자 돈 좀 있다고 아부하는 거 다 뻔히 보인다고! 결과는 다 너희 마음대로 만들 테고!”“염우섭 씨, 말조심하십시오.”날뛰는 염우섭의 고함에 윤도준의 안색이 즉시 어두워졌다.“지금 어디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난... 어쨌든 너희들은 공모한 거야. 우린 지금 당장 집에 갈 거라고.”말을 마친 염우섭은 성유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 순간, 박한빈이 일어섰다.“그 손 떼.”그의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나... 네가 뭔데 참견이야? 말해두는데 저놈들이 너한테 아부하는 거랑 난 상관없어. 지금 당장...”“염우섭 씨, 만약 강제로 데려가면 납치와 감금, 그리고 성폭행이나 성매매 혐의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윤도준 또한 염우섭에게 다가오며 경고하자 염우섭의 눈이 동그래졌다.그때, 성유리가 염우섭의 소매를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집에 가고 싶어.”그 말이 끝나자 현장은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박한빈을 포함한 모두가 그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성유리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성유리는 계속 몸을 피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염우섭을 바라보았다.“제발 가자. 부탁이야.”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염우섭은 비웃듯 박한빈을 보며 말했다.“봐. 얘는 당신을 전혀 모른다고.”“경찰관님, 다들 보셨죠? 이 여자는 저 남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 남자가 데려가는 게 바로 범죄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공범이고.”“이건...”윤도준도 이런 상황을 처리해 본 적이 없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박한빈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47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은 내 와이프야. 우리 오늘 혼인신고 하러 가기로 했다고! 이 사람 어머니도 이미 예물을 받아 갔어.”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박한빈의 정신도 그 순간 제대로 돌아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았다.마치 그녀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을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났는데도 성유리는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손가락을 잡고 몸부림치며 벗어나려고 했다.  “성유리.”박한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너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빨을 꽉 악문 채 그녀를 잡아당겨 물어보려는 순간, 성유리는 비명을 지르며 놔달라고 외쳤다.그 날카로운 목소리에 박한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야 했다.  그러자 성유리는 즉시 뒤로 물러나 그 남자 뒤에 숨었다.  “봤어? 이 사람은 당신을 전혀 모른다고. 아내? 내 와이프가 예뻐 보여서 꼬신 거지?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 같은데 이렇게 무례할 줄이야.”남자는 매우 화가 난 듯 보였고 담방이라도 마치 박한빈과 싸우려고 달려들 것 같았다. 하지만 박한빈은 그를 전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그 남자 뒤에 있는 성유리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성유리는 감히 박한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앞에 있는 남자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박한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여기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윤도준이 급히 상황을 정리하며 동료를 돌아보았다.“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여성분 신원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빨리 확인해 보십시오.”“그리고 여성분의 가족도 즉시 연락하세요!”...박한빈의 손에 있던 상처가 점점 크게 벌어져 피가 붕대를 적셨지만 그는 이미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그저 제 자리에 앉아 시선을 성유리에게 고정했고 그 시선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46화

    그의 휴대폰 벨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고 옆에 있던 윤도준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그녀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박한빈의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박한빈의 시야에는 오직 앞에 있는 그 여자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멀리 보이는 여자는 남자 옆에 앉아 있었는데 깨끗하지만 낡아 보이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거기에 더해 머리를 낮게 묶고 있었다. 하지만 박한빈이 서 있는 위치는 그녀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그러나 여자의 모습은 마치 박한빈의 뇌리에 새겨진 것 같았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두 주먹을 꽉 쥐었으며 심지어 어깨까지 떨리고 있었다.“박한빈 씨?”윤도준은 계속 말을 걸고 있었지만 박한빈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불렀다.그럼에도 박한빈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직 여자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박한빈 씨, 당신...”윤도준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을 때, 박한빈은 이미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발걸음이 망설이는 듯 아주 느리게 내디뎌졌다.그러나 점점 그의 발걸음은 빨라졌다.박한빈이 그 테이블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발걸음은 이미 비틀거릴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그리고 그는 마침내 멀리서 보이던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봤다.자신이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그 얼굴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36일 동안의 공백 끝에.박한빈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고 있었고 입술까지 바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는 여자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대와 다른 모든 감각들이 이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린 듯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박한빈은 오직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그토록 바라던 그녀는 살이 빠진 듯 피부도 조금 까매졌고 이마에는 못 보던 상처 자국도 생겼다.  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박한빈은 그녀의 모든 변화를 알아차렸다.  “당신 누구야? 뭘 하려는...”남자도 그를 발견하고 이상하다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45화

    하지만 결국 그는 차분하게 말을 마쳤다.그 모습에 윤도준조차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윤도준 또한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안심하세요! 제가 꼭 돕겠습니다! 아, 아니죠. 원래 저희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걱정 마세요!”그러면서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곧이어 박한빈의 휴대폰 속 사진이 출력되었다.사진을 다시 마주한 순간, 윤도준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어딘가 낯이 익었고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윤도준 씨?”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윤도준은 여전히 박한빈이 사무실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아, 맞다. 박 대표님, 이쪽으로 오세요. 호텔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박한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윤도준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뻗어 문을 열어 주었다.한편, 방금 경찰서로 끌려온 남자는 여전히 소리치고 있었다.“아니, 우리는 정말 자발적으로 결혼한 거라니까요! 나랑 이 사람 같은 마을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도 얘네 집에서 밥 먹은 적도 있다니까요!”“이번 결혼도 양가 부모님 다 동의하셨고 어제 막 신부 집에 예물까지 보냈어요! 200만원 이나 줬다고!”“설아, 너도 빨리 말해 봐! 내 말이 다 사실이지?”여자는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남자의 옆에서 고개만 끄덕였다.“진정하세요. 문제는 현재 민설 씨 신분과 서류상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기 신분증상의 출생 연도를 보세요. 서류상 민설 씨는 지금 마흔 살이어야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마흔 살처럼 보이나요?”경찰이 그들 맞은편에서 차분히 설명했다.남자는 여전히 뭐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박한빈은 더 이상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걸어 나갔고 막 로비를 빠져나가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서훈이었다.그때 그 상황에서, 박한빈은 절대 이길 수 없었다.경찰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창문이 깨진 후엔 결국 그들과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