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은 그녀를 잊지 못해의 모든 챕터: 챕터 81 - 챕터 90

100 챕터

제81화 10분 후 형수님 만나러

하지만 고유현은 오늘 계산을 잘못했다.불구덩이가 아니라 엄청난 미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미인은 의료종사자인지 헌혈 차 옆에서 바삐 맴돌고 있었고 하늘색 긴 드레스를 입었는데 날씬한 체형이 두드러지고 꼿꼿한 자세에서 우아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그는 재빨리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보냈고 곧바로 거긴 난리가 났다.[대박, 저 여자 예쁜 것 같은데? 근데 왜 뒷모습만 있어?][그래, 유현아. 정면도 좀 찍어봐.]고유현이 크게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초상권은 지켜줘야지. 우리 유진 누나 법을 배운 여자라고. 유진 누나 말 안 들으면 주혁이 형이 때릴걸?]김주혁의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단톡방은 조용해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호르몬이 왕성한 젊은 남자들은 본능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유현아, 조심해. 뒷모습만 예쁘고 앞은 엉망일 수도 있어.][얼굴 사진 안 보냈다고 내가 못 본 게 아니거든? 멍청하긴.][어때, 얼굴도 예뻐?][내 생각엔...]고유현은 일부러 뜸을 들이면서 그들을 자극한 뒤 말했다.[끝판왕을 만난 것 같아.][끝판왕? 무슨 뜻이야?][10분만 기다려. 10분 뒤에 형수님 보러 오라고.][10분? 허세 적당히 부려!][이 고유현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두고 봐!]고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채혈 차량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사실 아무 대가 없이 헌혈하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안서희는 다리가 불편한 탓에 간호사 몇 명의 도움을 받아 테이블과 의자, 벤치 등을 정리한 뒤 옆에 앉아 책을 읽었다.그런데 갑자기 사람 모양의 그림자가 눈앞에 드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안서희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물었다.“안녕하세요, 혹시 헌혈하러 오셨어요? 저쪽에 가서 먼저 접수하시고 저희 간호사가 검사를...”“예쁜 아가씨, 물어볼 게 있는데요.”고유현은 말하며 슬쩍 몸을 숙여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천천히 다가갔다.“무상으로 헌혈하면 정말 아무런 보상이 없나요?”고유현은 말을 하면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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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약속한 대로

그렇게 말하며 고유현은 옆에 있는 안서희를 가리켰고 이 선생님은 당황했다.“네?”“네는 무슨, 백 명이 한 사람당 400cc면 적지 않잖아요? 보통 헌혈하는 사람 100명 찾으려면 몇 번 나와야 해요? 연락처 하나로 그렇게 많은 피를 바꾸는 건데 합리한 거래 아닌가?”이 선생님은 다소 망설였다.“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그게 뭐 어때서요? 안 되면 이백 명, 삼백 명도 괜찮아요.”이 선생님은 헛웃음을 지으며 안서희를 바라보았다.“안 선생님...”안서희가 물었다.“요즘 병원 혈액이 많이 부족하나요?”이 선생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부족해요. 요즘 산부인과에 수혈이 필요한 고위험 산모들이 몇 명 있는데 혹시나 수혈할 때 다른 병원에서 가져오다가 시간이 지체돼서 위험해질까 걱정이에요.”그녀는 몇몇 심각한 상태의 산모를 전부 담당하고 있었기에 잘 알았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고유현이 물었다.“어때요? 번호 하나에 500명, 거래할래요?”이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그건 규정에 어긋...”“해요.” 안서희는 고유현에게 말했다.“정말 오백 명 부를 수 있어요?”고유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별거 아니죠.”“합법적인 건가요?”고유현은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날 뭐로 보는 거예요? 인신매매범? 걱정하지 마세요,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고 헌혈하러 오는 사람들도 절대 자진해서 하는 거니까.”“좋아요, 그럼 지금 전화해요.”“그냥 불렀다가 사람 다 도착한 후에 그쪽이 말을 바꾸면 어떡해요?”안서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테이블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한 손으로 글씨를 쓰고 다른 손으로 글씨를 가린 뒤 다 쓴 종이를 책상 위에 거꾸로 올려놓았다.“제 연락처 적은 종이 여기 위에 둘게요. 우리 두 사람이 한 쪽씩 잡고 있다가 500명이 헌혈 끝내면 이 종이 가져가요.”고유현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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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기억 속 그녀와는 다른

“이게 뭐예요?”“내 연락처요.”고유현은 종이를 거꾸로 뒤집고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오픈 채팅?”안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전화번호나 카톡, 이메일은 없나요? 친구나 동료들과도 오픈 채팅으로 연락해요?”안서희는 가볍게 말했다.“어떤 연락처인지 말씀 안 하셨잖아요. 하지만 장담컨대 메시지 받으면 답장은 꼭 할게요.”...고유현은 화가 나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김주혁은 이 불청객과의 대면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고유현은 집안에 형이 한 명 있지만 그의 친형은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귀국한 적이 없었고 학창 시절부터 고유현은 그를 따라다니며 고유준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이 말을 들은 김주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네가 여자들한테 상처만 줬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네. 잘됐어.”“뭐가 좋아? 날 갖고 노는 거잖아!”“그 사람 말도 틀린 건 없지. 오픈 채팅으로 연락할 수는 있잖아. 다만 그 확률이 너무 높지 않을 뿐이지.”“높지 않아? 차라리 바다에서 바늘을 찾으라고 해! 고씨 가문 도련님인 내가 여자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안 되겠어, 형. 나 좀 도와줘.”김주혁은 팀장 몇 명이 보내온 보고서를 넘기며 대답했다.“내가 널 어떻게 도와줘, 그 여자를 납치해서 너희 집으로 보내?”“안 될 건 없지.”김주혁은 그를 노려보았다.“없기는 개뿔, 그건 범죄야!”법을 어긴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고유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형은 진짜 유진 누나 골수팬이구나. 변호사라는 걸 알고 우리한테 나쁜 일은 전혀 못 하게 하네.”사인하던 김주혁의 펜이 멈칫했다.“...너희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건 형으로서 내 책임이지 다른 누구와도 상관없어.”고유현은 피식 웃었다.“웃기네, 유진 누나에 대한 형의 마음을 우리 중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형, 나 진짜 형이 부럽다.”“뭐가 부러워?”“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워. 난 연애를 많이 해봤지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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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내 아내니까

“중학교 때 모습을 말하는 거야?”“아니,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아마 7, 8살 정도 됐을 때는 수줍음도 많고 아주 착한 아이였어. 처음 부모님과 함께 조상님께 제사 지내러 갔다가 가정부와 헤어지게 됐는데 그 숲에서 길을 찾도록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걔였어.”그 말을 듣던 고유현은 두 눈을 크게 떴다.“유진 누나랑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네.”“응, 그때 평생 잘해주겠다고 맹세했지.”“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네.”“근데...”“근데 뭐?”김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하지만 최근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그는 친구와 연인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친구일 때는 자기 자리만 지키면서 그녀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했다.그녀도 지금처럼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금고아나 그의 목을 옥죄는 철조망처럼 숨이 막힐 정도로 그를 괴롭히지도 않았다....질식할 것 같았다.예전에는 퇴근 시간이 되면 안서희를 데리러 병원에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안서희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곤 했다.안서희는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친해지고 나면 생각만큼 꽉 막힌 성격이 아니었고 오히려 재치 있는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시사나 가십거리, 주변 일화 등 어떤 이야기를 하든 항상 다채롭고 재미있게 풀어냈다.하지만 본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의사처럼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로 돌아섰다.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임산부들을 늘 상대한 탓인지 그녀는 늘 상대를 배려하며 말했고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그의 삶에 나타난 여자는 많지 않았고 딱 이 둘이었기에 더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하지만 단순히 책임감과 선량함만 놓고 보더라도 안서희가 훨씬 나았고 안유진은...예전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형, 아직 얘기 안 했어. 나 도와줄 거야, 말 거야?” 고유현은 초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그쳤다.“형, 이 여자가 내 승부욕을 자극했어. 전에 여자들은 다 내 말이면 그대로 따라서 재미없었는데 갑자기 도발하는 상대를 만났으니까 절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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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결혼했으면 책임져야지

퇴근한 김주혁은 곧장 저택으로 돌아갔고 가정부가 문을 열어주었다.“도련님, 오셨어요?”“네, 엄마는 어디 계세요?”“여사님 지금 글 쓰고 계세요.”“...글이요?”“네.”김주혁은 서재로 갔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깜짝 놀랐다.한 달 넘게 보지 못한 어머니는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평소 자기 관리도 잘하고 건강하게 사셨던 어머니는 또래보다 젊어 보였다.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심플한 잠옷을 입은 채 머리도 전보다 하얗게 세서 제법 초췌해 보였다.“엄마.”고개를 들어 아들인 것을 확인하고도 백금희는 반가운 기색 없이 덤덤하게 말했다.“여긴 왜 왔어?”“몸이 안 좋으시다고 해서 병원에 모셔다드리려고요.”백금희는 가볍게 웃더니 계속해서 글을 쓰면서 답했다.“괜찮아, 너 일하느라 바쁘잖아. 아줌마가 약 사줬고 먹고 많이 좋아졌어.”“아주머니가 무슨 약을 샀는데요, 어디 봐요.”“너 약에 대해 알아?”“...잘 몰라요.”“모르는데 봐도 무슨 소용이 있어?”김주혁은 어머니의 마음속에 분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최근 들어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두통까지 느낀다는데 아마도 자신의 결혼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김주혁은 씁쓸함을 느꼈다.그가 다가가 말했다.“엄마, 제가 마사지해 드릴게요.”“그래.”그는 어머니 뒤에 서서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살살 문질렀다.“엄마 어때요? 좀 나아졌어요?”백금희는 눈을 감고 무기력하게 말했다.“네가 한의학까지 찾아가서 특별히 배운 마사지인데 안 좋을 리가 있겠어?”“...괜찮으면 됐어요. 앞으로 매일 찾아와서 마사지해 드릴게요.”“그럴 필요 없어, 날 위해 배운 것도 아니잖아.”김주혁의 손이 멈칫했다.백금희는 가볍게 그의 손을 떼어낸 뒤 문을 가리켰다.“됐어, 네 효심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아무도 너 욕할 사람 없어. 이만 돌아가.”“여기가 내 집인데 어디로 돌아가요?”“안유진한테 가. 그 애 때문에 처자식도 버리고 죄까지 뒤집어썼잖아. 걔를 사랑한다며? 그럼 걔한테 가지 뭣 하러 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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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후회해?

아이 얘기를 듣는 순간 김주혁의 가슴은 칼로 찌르는 것 같았고 고통의 흔적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백금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누구 보라고 그렇게 아픈 척하는 거야?”김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제 아이기도 해요.”“허, 그건 알고 있네?”“제가... 늦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갔으면 아이 살렸을 지도 모르는데...백금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못 살렸을 거야. 서희가 독하게 마음먹고 절망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니까. 너랑 모든 인연을 끊고 싶었던 거야. 그게 아니고서야 단호하게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거야.”김주혁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자기 심장을 잡고 찢고 비틀고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심장이 있던 자리를 주먹으로 치며 심호흡을 내뱉었다.그랬다, 그날 병원 문밖에서 안서희는 그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그때 그가 제때 도착해서 낙태를 막았다고 해도 안서희는 차갑게 마음이 식었고 언젠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백금희가 물었다.“하나만 물어볼게. 유진이 배 속에 있는 아이, 너랑 상관있어 없어?”“당연히 없죠!” 김주혁은 즉각 부인했다. “귀국했을 때 이미 임신 5개월이었고 걔가 출국한 뒤로는 만난 적도 없어요.”이 말을 들은 백금희는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남의 자식 계부나 되려고 자기 친자식을 죽인 거야?”김주혁의 양옆으로 드리워졌던 주먹이 순식간에 꽉 쥐어졌다.백금희가 말을 이어갔다.“주혁아, 네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 너한테는 옳은 선택이길 바란다.”따르릉=전화벨이 울렸고 김주혁은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유진이지?”“...네.”“받아.”김주혁은 곧장 전화를 끊었다. “아침에 나올 때 다 준비해 뒀으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김주혁은 다시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곧 세 번째 전화가 걸려 왔다.백금희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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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철저히 망가뜨릴 거야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렇다.“안유진, 우리가 함께하고 나서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어. 요 며칠 엄마 몸이 안 좋으셔서 저택에서 엄마랑 지낼 생각이야. 우리 각자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그래서 지금 저택에 있어?”“그래.”“안 선생님과 함께?”“나 혼자.”안유진은 만족스러웠다.“그럼 왜 아까 나한테 거짓말했어? 내가 질투하는 걸 일부러 보려고?”김주혁은 콧방귀를 뀌었다.“맘대로 생각해.”“그래, 부부 사이에 질투도 해야 재밌지. 하지만 김주혁 경고하는데, 다른 여자랑은 절대 엮이지 마. 안 그러면 나 가만히 안 있어.”“이미 네가 내 주변의 여자 비서와 직원들 다 바꿨는데 내가 누구랑 엮여?”안유진이 말했다.“네 전처. 두 사람 이혼하기 전까지 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주혁아, 난 소유욕이 강해. 넌 이제 내 거야. 누구도 널 빼앗아 갈 수 없어.”김주혁은 순간적으로 경계했다. “무슨 속셈이야?”“뭐가 무서워, 네가 얌전히 있으면 내가 그 여자 건드릴 일은 없어. 안 그러면 철저히 망가뜨릴 거야!”“그 여자는 잘못한 게 없어. 안유진, 이성적으로 생각해!”“난 지금 아주 이성적이야. 참, 이따 우재한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 거야. 나도 이젠 이모 며느리인데 몸이 불편하면 당연히 내가 찾아봬야지...”김주혁은 곧바로 말렸다.“엄마가 잠을 잘 못 주무시는데 오지 마.”“안 돼, 못난 며느리라도 시어머니는 만나야지. 오늘 꼭 갈 거야.”“안유진! 다른 사람 말 좀 들어! 엄마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푹 쉬어야 해. 네가 의사도 아닌데 와서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쉬는데 방해만 되지.”“방해 안 해. 이모가 날 얼마나 예뻐하시는데, 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곧 손자가 될 텐데 그 생각에 기뻐서 쾌차하시지 않을까?”“하지만 넌...”“됐어, 그만해. 내 결정은 아무도 바꿀 수 없어. 지금 바로 우재한테 연락할 거야. 끊어”“여보세요...”뚜뚜뚜-안유진은 바로 전화를 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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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김주혁 마음에 박힌 가시

진씨 아주머니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며 서둘러 백금희의 방으로 달려가 짐을 챙겼다.김주혁이 어머니를 쳐다보니 백금희는 이미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염주 팔찌를 손으로 굴리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그녀는 아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주혁은 어쩔 수 없이 진씨 아주머니를 찾아갔고 진씨 아주머니는 재빠르게 옷가지와 생필품을 챙기며 이미 짐을 싸고 있었다.“진씨 아주머니?”“네, 도련님.”“제가 도와드릴게요.”“아뇨 아뇨, 그냥 앉아 계세요. 제가 할게요.”김주혁이 뻗은 손이 허공에서 멈추며 쓸쓸하게 손을 거두었다.“진씨 아주머니, 안유진을 무서워하시는 것 같은데요?”진씨 아주머니는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아, 아니에요.”“무슨 일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진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덤덤하게 웃었다.“도련님, 저는 평생을 가정부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셨지만 진정으로 저를 가족으로 대접해 주는 사람은 오직 여사님 한 분뿐이었고 도련님도 제가 친아들처럼 챙기고 있어요.”“알아요.”“도련님이 듣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 과감하게 얘기할게요. 사모님과 이혼하고 안유진 양을 선택한 걸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도련님, 결혼은 평생 함께할 두 사람이 하는 건데 좋아하는 것과 늙을 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 건 별개예요. 안유진 양은... 어렸을 때부터 얌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도련님과 만나면 적지 않은 사고를 일으킬 거예요. 게다가... 험담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본성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김주혁은 얼굴을 찡그렸다. “뭐 알고 계신 건가요?” “별건 아니고 어렸을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팔던 거 기억나요?”“네.”“병아리 파는 장사꾼이랑 말다툼하다가 벽돌로 상자 안에 있는 병아리를 전부 때려죽이는 걸 제 눈으로 봤어요.”김주혁은 경악했다.“... 때려죽였다고요?”“네, 그 장면은 정말... 어른인 제가 봐도 무서웠는데 저렇게 어린 여자애가 어떻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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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산모수첩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진씨 아주머니는 이미 짐을 다 쌌다.“도련님, 그럼 저랑 여사님은 이만 가볼게요. 여사님 요즘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안유진 씨 만나면 며칠 동안 잠을 못 주무실 것 같아요.”밖에서 백금희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씨 아주머니, 짐 너무 많이 싸지 마시고 얼른 가요. 부족한 건 사면 되죠.”“네 여사님, 바로 갈게요.”진씨 아주머니는 대답을 하고는 김주혁에게 나지막이 말했다.“도련님, 오늘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진씨 아주머니는 가방을 들고 재빨리 걸어나갔다.“여사님, 가요.”“그래요, 가요.”김주혁은 뒤돌아 곧장 따라간 뒤 진씨 아주머니의 손에서 가방을 건네 받았다.“제가 모셔다 드릴게요.”백금희가 말했다.“신경 쓰지 마, 진씨 아주머니가 차를 부를 거야.”김주혁은 이미 두말없이 가방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 차 트렁크를 열었다.그런데...트렁크에 물건이 있었고 그건 안서희 것이었다.뒤이어 나온 백금희도 그걸 보고 단번에 알아보았다.“이거 안서희 옷 아니야? 왜 상자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그리고... 이건 뭐야?”핏자국이다.끈적끈적하고 악취가 나는 액체로 변한 죽은 물고기의 핏자국이 연노란 니트에 묻어 있었다.다른 옷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거의 모든 옷이 훼손되어 온전한 것은 거의 없었다.백금희는 한눈에 알아채고 차갑게 웃었다.김주혁은 입을 꾹 다물고 상자를 들어 조수석에 올려놓은 뒤 어머니의 여행 가방을 그 안에 넣었다.그리고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엄마, 진씨 아주머니, 차에 타세요. 며칠 동안 산에 있는 리조트 호텔에서 지내요. 거긴 공기 좋고 조용해서 쉬기 좋아요.”“...”김주혁이 다시 물었다.“엄마, 괜찮아요?”그런데 백금희가 되물었다.“주혁아, 너 정말 이혼하고 유진이랑 같이 살기로 마음 먹은 거니?”“전...”“사실대로 말해봐“...”백금희가 말했다.“정말 평생을 같이 살 생각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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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우리 꼬맹이

어머니와 진씨 아주머니를 쉬게 한 뒤 김주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지난 한 달 동안 이 방에 많은 손님이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안서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특히...바로 이 방에서 그녀가 아기를 버리고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생각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의 손에 들려 있던 산모 수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3년 가까이 안서희와 함께 먹고 자며 같이 살았지만 이 수첩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휴대폰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안유진은 여전히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이미 그가 음 소거로 설정해 둔 상태였다.김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똑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부드럽게 성숙한 안서희에 비해 안유진은 극단적이었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2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안유진의 본성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전에는 단지 안유진이 활발하고 털털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정작 만나고 보니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드디어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배터리가 다 떨어진 거다.김주혁은 목에 걸린 올가미가 드디어 풀린 것 같은 안도감만 느꼈다.그는 심호흡을 내쉬며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을 켜고 침대에 기대어 산모 수첩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첫 페이지를 넘기니 안서희의 예쁜 글씨가 적혀 있었다.[하늘이 당신을 순탄한 길로 인도하고운명이 당신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길저 멀리 햇빛과 찬란한 불빛이미래의 모든 하늘을 비추길--내 아기를 위하여]그녀의 손 글씨는 우아함 속에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씨체였다.글씨가 사람을 닮았다는 말이 맞는지 그녀는 온화하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었다.다만 후자를 줄곧 그가 알아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첫 페이지를 넘기니 그녀의 글은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오늘 직접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아이가 생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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