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90화 우리 꼬맹이

어머니와 진씨 아주머니를 쉬게 한 뒤 김주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방에 많은 손님이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안서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특히...

바로 이 방에서 그녀가 아기를 버리고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생각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산모 수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3년 가까이 안서희와 함께 먹고 자며 같이 살았지만 이 수첩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휴대폰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안유진은 여전히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이미 그가 음 소거로 설정해 둔 상태였다.

김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똑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부드럽게 성숙한 안서희에 비해 안유진은 극단적이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안유진의 본성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전에는 단지 안유진이 활발하고 털털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정작 만나고 보니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

드디어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배터리가 다 떨어진 거다.

김주혁은 목에 걸린 올가미가 드디어 풀린 것 같은 안도감만 느꼈다.

그는 심호흡을 내쉬며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을 켜고 침대에 기대어 산모 수첩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첫 페이지를 넘기니 안서희의 예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늘이 당신을 순탄한 길로 인도하고

운명이 당신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길

저 멀리 햇빛과 찬란한 불빛이

미래의 모든 하늘을 비추길

--내 아기를 위하여]

그녀의 손 글씨는 우아함 속에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씨체였다.

글씨가 사람을 닮았다는 말이 맞는지 그녀는 온화하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후자를 줄곧 그가 알아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니 그녀의 글은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 직접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아이가 생겼단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