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진씨 아주머니를 쉬게 한 뒤 김주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지난 한 달 동안 이 방에 많은 손님이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안서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특히...바로 이 방에서 그녀가 아기를 버리고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생각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의 손에 들려 있던 산모 수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3년 가까이 안서희와 함께 먹고 자며 같이 살았지만 이 수첩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휴대폰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안유진은 여전히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이미 그가 음 소거로 설정해 둔 상태였다.김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똑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부드럽게 성숙한 안서희에 비해 안유진은 극단적이었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2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안유진의 본성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전에는 단지 안유진이 활발하고 털털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정작 만나고 보니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드디어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배터리가 다 떨어진 거다.김주혁은 목에 걸린 올가미가 드디어 풀린 것 같은 안도감만 느꼈다.그는 심호흡을 내쉬며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을 켜고 침대에 기대어 산모 수첩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첫 페이지를 넘기니 안서희의 예쁜 글씨가 적혀 있었다.[하늘이 당신을 순탄한 길로 인도하고운명이 당신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길저 멀리 햇빛과 찬란한 불빛이미래의 모든 하늘을 비추길--내 아기를 위하여]그녀의 손 글씨는 우아함 속에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씨체였다.글씨가 사람을 닮았다는 말이 맞는지 그녀는 온화하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었다.다만 후자를 줄곧 그가 알아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첫 페이지를 넘기니 그녀의 글은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오늘 직접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아이가 생겼단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모두 공백 페이지였다.김주혁은 여러 번 확인하다가 마침내 뒤 페이지가 찢겼고 안쪽에 찢어진 종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한눈에 봐도 규칙적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이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찢어버린 것 같았다.김주혁은 안서희가 무엇을 썼는지 알고 싶었다.그는 노트를 불빛에 가까이 가져다 댔고 희미한 스탠드 불빛을 통해 뒷면의 빈 종이에 얕게 새겨진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글씨를 쓰면서 남겨진 자국이었다!그는 즉시 호텔 전화를 들고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당장 연필 가져다주세요!”직원은 지체하지 않고 재빨리 연필을 전달했다.김주혁이 연필을 기울여 종이에 슥슥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글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거창한 글은 아니었고 미안하다는 말만 적었다.종이 한 장에 뺴곡히...엄청난 무력감과 고통이 그를 사로잡았다.그녀가 아이를 지울 결심을 굳힌 날이겠지.발코니에서 안유진과 그가 나눈 대화를 들었던 그녀는 안유진이 나타난 첫날부터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명목상 사모님이었지만 안유진은 거듭 우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시험하고 그녀의 일상에 침범하며 계속해서 그들 셋 중 제삼자는 안서희라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안서희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 애를 써봤지만 그날 그녀는 자신의 두 귀로 안유진이 그 선을 넘는 것을 들어버렸다.그녀는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멍하니 절망한 채 날이 밝기만 기다렸을까, 아니면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했을까?이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는 울면서 수없이 많은 미안하단 말을 적었겠지.김주혁은 일기장을 덮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따르릉-호텔 전화가 울리고 전화기를 들어보니 리조트 프론트 데스크였다.“김주혁 씨, 방금 안유진 씨가 전화해서 여기 계시냐고 물었어요.”그는 여전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멍하니 되물었다.“안유진 씨?”접수원은 그가
곧 전화기 너머에서 안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주혁! 어떻게 감히 내 전화를 안 받아? 내가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알아? 왜 안 받았어?”김주혁이 나지막이 말했다.“안유진. 로비에서 기다려, 얼굴 보고 제대로 얘기할 게 있어.”“로비? 나 임산부인데 로비에 앉아있으라고요? 몇 호실이야? 지금 바로 갈게.”“내가 내려갈게.”이곳의 발코니는 모두 바깥 계곡을 향하고 있었고 지난번 8층에서 안유진과 대화를 나눈 것도 안서희가 2층에서 다 들었는데 안유진을 자기 방으로 오게 하면 위층에 있는 엄마에게도 소음이 들릴까 봐 겁이 났다.“아니, 난 로비에 있기 싫어!”“그럼 다른 방을 달라고 할게...”“김주혁, 네 방에 뭐 수상한 거라도 숨겨놨니? 아니면 여자를 숨기고 있는 거야?”김주혁은 무겁게 말했다.“아니.”“그럼 왜 날 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분명 수상한 게 있어!” 곧 그녀는 프런트 여직원에게 소리쳤다.“김 대표님 어느 방에 있어, 말해!”김주혁이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이건 우리 둘의 일인데 왜 남을 난처하게 해!”“왜 그 여자를 그렇게 감싸는 거야! 걘 그냥 접수원일 뿐인데, 너 이 여자랑 바람피우는 거야?”“안유진, 왜 넌 항상 내가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해? 내가 네 오해를 살 만한 행동 하나라도 한 적 있어? 왜 매번 미친 것처럼 히스테리를 부려? 한 번이라도 좀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없어?”“정상적? 허.” 안유진이 콧방귀를 뀌었다.“됐어, 내가 직접 볼 거야! 일어나!”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컴퓨터 앞에 있는 여직원을 밀어내고 김주혁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방 번호를 조회했다.“김주혁, 너 안서희가 묵었던 방에 있어? 이래도 그 여자 생각하는 게 아니야?”김주혁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곧장 계단으로 내려갔고 마침내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로비 입구에서 격앙된 안유진을 멈춰 세웠다.안유진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려 했다.“안서희 방에
김주혁은 분노가 치밀었다.“안유진, 손 놔, 나중에 얘기하자고!”“안 돼, 감히 내 전화를 안 받아?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넌 다음번에 또 이럴 거야!”진씨 아주머니도 옆에서 말렸다.“안유진 씨, 지금 사람 목숨이 위태로워요. 여사님 아파서 못 견뎌 하신다고요! 여사님이 얼마나 잘해주셨어요, 정말 이대로 치료 지체할 거예요? 얼른 놔요, 할 말 있으면 나중에...”“닥쳐! 나랑 주혁이가 얘기하는데 아랫사람인 당신이 왜 끼어들어!”진씨 아주머니의 얼굴이 그녀의 욕설을 듣고 창백해졌다.그녀 역시 김씨 가문의 어른이었고 김주혁마저도 존경하는 사람이며 김씨 집안에서 위아래로 그녀에게 막 대하는 사람이 없는데 안유진의 갑작스러운 질책에 할 말을 잃었다.밖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안내 직원이 기뻐하며 말했다.“구급차 왔어요! 대표님, 의사 선생님 왔어요!”김주혁은 너무 기뻤지만 발은 여전히 단단히 묶여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진씨 아주머니는 이 상황을 보고 김주혁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구급차를 맞이했다.구급차에서 뛰어내린 안서희는 진씨 아주머니를 보고 살짝 당황했다.“아주머니?”진씨 아주머니도 놀랐다.“사모님?”안서희는 호칭을 바로잡을 틈도 없이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혹시 어머님께서?”진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사님께서 며칠 전부터 두통이 심했는데 오늘 갑자기 심해져서 고통에 기절하셨어요.”“어디 계세요?”“8층이요.”“알겠어요, 아주머니 당황하지 말고 얼른 안내해 주세요.”“네네.”안서희는 침착하게 말했다.“들것과 산소통, 혈압계 챙겨서 같이 가요.”“네, 안 선생님.”진씨 아주머니가 앞에서 잔달음으로 달리고 있었고 안서희가 뒤를 따랐는데 오늘 일은 너무 갑작스러워 흰 가운도 입지 못하고 권진아가 준 원피스만 입고 있었다.그녀는 마스크와 의료용 장갑을 끼고 걸음을 옮겼다.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안으로 들어선 권진아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김주혁의 얼굴엔 화가
백금희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외쳤다.“라이트.”곧바로 누군가 라이트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고 그녀는 백금희의 동공을 확인하며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다.“혈압 어때요?”“50 90,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산소.”“네.”진씨 아주머니는 옆에서 불안하게 발을 동동 구르다가 진찰이 거의 끝날 때쯤 겨우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사모님, 여사님 왜 이러세요?”안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명의 조수에게 지시했다. “병원 응급 뇌졸중 센터에 연락해서 도착하는 대로 응급실로 보내세요. 환자를 옮길 때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조심해요.”“네.”몇 명의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함께 백금희를 들것에 조심스럽게 옮긴 뒤 질서정연하게 산소를 주입했다.그제야 안서희는 틈을 내서 답했다.“지금 봤을 땐 급성 뇌졸중 같네요.”진씨 아주머니는 잘 몰랐다.“그게 무슨 병인데요, 위험한 건가요?”“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뇌출혈이고 아주 위험한 병입니다. 아주머니, 어머님 상태 이렇게 된 지 오래됐어요?”“오래됐어요.”“언제부터요?”“그냥... 그냥...” 진씨 아주머니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도련님이 안유진 씨를 만나고 사모님과 이혼할 때부터요. 그때부터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전에는 진통제를 드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안서희가 단호하게 말했다.“두통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어요. 내가 의사인데 어머님 상황 저한테 말하셨어야죠.”진씨 아주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도련님이 그런 행동을 했는데 여사님께서 차마 사모님 볼 낯이 없다고 하셨어요.”안서희는 화가 나면서도 속이 상했다.“나랑 김주혁 사이가 어떻든 어머님은 달라요...”“안 선생님, 다 준비됐어요.”안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아주머니도 구급차 타고 가세요. 병원에 도착하면 협조해야 할 일이 있어요.”진씨 아주머니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네네!”안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조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가요, 빨리, 병원으로!”
진씨 아주머니가 차에 올라타더니 깜짝 놀랐다.“사모님, 괜찮으세요?”안서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에 붙은 하얀 거즈에서 선홍빛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몇몇 조수들도 놀랐다.“안 선생님, 괜찮아요?”안서희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전 괜찮아요, 주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주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고 안서희가 잡으려는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김주혁은 안서희를 가볍게 안고 일어나 구급차에 뛰어들었다.그는 안서희를 옆으로 살며시 내려주며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안서희는 고개를 숙였다.“고마워요.”“... 내가 너한테 할 말이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다른 건 신경 쓸 틈도 없었기에 안서희는 목소리를 높여 지시했다.“기사님, 출발하세요!”구급차는 활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리조트 호텔을 빠져나와 산길을 달려 내려갔다.길이 조금 울퉁불퉁했고 안서희는 백금희의 머리 뒤쪽에 손을 얹어 진동을 완충했다.진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사모님, 제가 할까요?”안서희는 그녀에게 다독이는 눈빛을 보냈다.“괜찮아요, 제 자세가 딱 좋아요.”“안 선생님, 환자 혈압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어요.”안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계속 살펴봐 주세요.”“네.”“병원 측에 연락했나요?”“연락했어요, 응급실은 비워졌고 병원 입구에 사람 나와 있대요.”안서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네요.”“안 선생님.”“네?”“이 아주머니가 왜 선생님을 사모님이라고 불러요?”안서희는 얼굴을 찡그리며 차갑게 말했다.“사람 살리는 게 중요한데 지금 그게 중요해요?”남자는 즉시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구급차는 막힘없이 달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백금희는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고 안서희는 응급실 밖에 붉은 등이 켜지는 걸 보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문득 종아리에 갑자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굳이 보지 않아도 조금 전 넘어지면서 상처가 찢어진 게 분명했다.아까는 백금희의
그녀를 아는 간호사가 물었다.“안 선생님? 환자 친척이세요?”“네, 환자가 제 시어머니입니다.”안서희는 사인을 하고 고지서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부탁드릴게요. 한 달 정도 두통이 있으셨는데 오늘 처음 뇌졸중이 왔고 제가 도착했을 때 혈압은 50 90,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70 110, 혈중 산소 86%, 여기 오는 45분 동안 산소를 공급했어요.”간호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유 교수님께서도 이 정보가 필요했는데 바로 돌아가서 말씀드릴게요.”“수고하세요.”간호사가 돌아서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자 응급실 문이 다시 한번 닫혔다.진씨 아주머니는 미안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정말 사모님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에요.”그녀는 김주혁이 있는 방향을 힐끗 쳐다보았다.“도련님은... 어휴.”안서희가 말했다.“아주머니, 전 상처부터 치료하고 올 테니 여기서 쉬고 계세요. 금방 올게요.”그제야 진씨 아주머니가 피가 나는 그녀의 종아리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세상에,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하얀 거즈 절반은 이미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붕대를 감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니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고 오늘 계단을 오르내린 데다 넘어지고 들것을 든 채 달리기까지 했으니 상처가 이렇게 된 건 놀랍지 않았다.“괜찮아, 외과 가서 붕대 감고 올게요.”“제가 동행할게요.”“저 혼자 갈 수 있으니까 여기서 어머님 기다리세요. 만약 간호사가 또 찾는데 밖에 가족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여기 도련님이 계시는데...” 진씨 아주머니는 말하려다 말았다.도련님, 도련님이 와도 소용이 없었다.안유진은 덩굴처럼 단단히 김주혁을 묶고 있었고 하필 임신 중이라 조심하던 김주혁은 벗어나기 힘들었다.안서희는 진씨 아주머니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다정하게 말했다.“전 먼저 가볼게요. 얼른 갔다 올게요.”진씨 아주머니는 미안해했다.“알았어요...”외과는 1층에 있었고 그 말인즉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통해 가야 한
임수경은 곧바로 표정이 굳어졌다.“네? 흉터가 남아요? 유 선생님, 방법 좀 생각해 주세요. 우리 안 선생님 요즘 너무 고생했는데 흉터라도 생기면 정말 안 되잖아요.”유 교수는 호랑이 같은 얼굴로 말했다.“이제야 겁이 나요? 의사는 자기 자신을 먼저 지켜야 남을 살릴 수 있다고 대학에서 처음 배운 걸 잊었어요?”안서희는 이를 악물고 소독수의 따끔거림을 견뎠다.“환자가 뇌졸중이었어요. 흉터와 뇌졸중 후유증에서 전 흉터를 택했죠.”유 교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이해했다.뇌졸중이 더 심각한 병이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그래서인지 그는 한결 움직임이 부드러워졌고 안서희도 조금은 견딜 만했다.다시 붕대를 감은 후 유 교수가 진지하게 당부했다.“다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요, 알겠어요?”안서희는 유 교수가 자신을 위해 그러는 줄 알았기에 순순히 응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그... 남편이랑 할 때도 조심하라고 해요. 너무 거칠게 해서 상처 건드리지 않게... 흠흠...”안서희가 당황한 채 입술만 축였다.“... 아, 네.”외과 진료실에서 나오고 임수경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녀를 부축하며 돌아갔다.“안 선생님, 왜 이혼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유 선생님 저 나이에도 얼굴이 붉어지시네요, 하하하.”안서희는 그녀를 노려보았다.“이혼이 뭐 좋은 일이라고요? 온 세상에 내 남편 바람났다고 알려줄까요?”임수경이 혀를 홀라당 내밀었다.“하긴... 엇, 고 선생님!”안서희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 흰 가운을 입은 고유준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무슨 일이야?”안서희는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어쩌다 이렇게 됐냐고?”안서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채혈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가 있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응급실에 인력이 부족해서 마침 한가해서 119 따라갔어.”“상처는 치료받았어?”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유 교수님이 직접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