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은 그녀를 잊지 못해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00 챕터

제71화 형 일에 참견하지 마

“고유준, 나랑 한 글자 달라.”김주혁의 눈이 위험하게 가늘어졌다.“의사야?”고유현이 기뻐했다.“형, 우리 형 알아? 대단한데, 우리 형 잘난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잘났어? 형처럼 본 적 없는 사람도 다 알 정도로...”김주혁이 피식 웃었고 마침 웨이터가 술을 가져오기에 건네받아 단번에 들이켰다.고유현이 말렸다.“형, 이거 보드카야. 한 모금에 다 들이켜는 게 아니라고, 천천히 마셔.”“네 형이 누구 좋아하는지 알아?”고유현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도 철저히 숨겨서 우리 엄마도 몰라.”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유현은 지인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주호민, 여기야!” 주호민은 한걸음에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형.”고유현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형이 한참 기다렸어.”“차가 막혀서, 밖에 차 엄청나게 막혀.”주호민은 김주혁 옆에 앉자마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금 화면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물었다.“형, 내가 알려줄까 아니면 직접 볼래?”김주혁이 물었다.“또 올렸어?”“응, 조금 전에.”고유현이 물었다.“뭘 올려? 얼마인데? 주호민, 왜 이렇게 흥분해?”주호민은 그를 흘겨보았다.“SNS에 사진 올렸다고, 돈이 아니라.”“누가 사진 올렸는데?”“권진아.”고유현은 순간 당황한 듯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그 여자 SNS는 왜 보는 거야?”주호민은 콧방귀를 뀌었다.“형 일에 참견하지 마.”그러고는 SNS를 열어 김주혁에게 건넸다.“형, 봐.”김주혁은 전화를 건네받았고 권진아는 글 없이 사진 한 장만 올렸다.사진 속 장소는 그도 아는 곳이었는데 오늘 그 식당 밖이었다. 권진아가 주위 구경꾼들을 모자이크 해놓아서 가운데 있는 두 사람이 무척 눈에 띄고 분위기가 있었다.남자는 카메라를 등진 채 여자를 품에 안고 달리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너무 작아서 그의 몸에 완전히 가려져 폭포수처럼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과 날리는 치맛자락만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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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저 참 재미없죠?

고유현은 헛웃음을 짓더니 자리에 앉아 술을 두어 모금 마시며 어색함을 감추려 애썼다. “사실 갖고 논 건 아니지. 유진 누나는 계속 형을 제일 좋은 친구로 여긴다고 말했잖아.”“친구? 그걸 믿어?” 주호민은 불만을 털어놓았다.“형이 오랫동안 누나한테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하나도 몰랐다고? 누가 믿어.”고유현은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쥔 채 그저 웃을 뿐 더 반박하지 않았다.주호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 일에서 제일 불쌍한 건 안서희야. 유진 누나 대역이었는데 하나도 몰랐고 형이 잘해준 것도 본인 때문이 아니라 유진 누나 때문이었잖아. 지금 유진 누나가 마음을 돌려서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데 참 안됐어.”고유현은 크게 웃었다.“왜, 형이랑 결혼한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이야? 이혼할 때 재산 많이 가져가잖아.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애쓰지도 않고 편히 살 수 있잖아.”주호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그 여자 집안 형편은 어때?”“별로야. 해성에서 집도 못 마련하고 형네 집에서 나온 뒤로 친구 집에서 지내. 아, 그 친구가 권진아야.”고유현은 술을 마시며 허허 웃었다.“그럼 됐네. 형이랑 몇 년 결혼하다가 곧바로 차든 집이든 다 살 수 있잖아. 오히려 유진 누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유진 누나 아니었으면 그럴 기회나 있었겠어?”...다음 날, 안서희는 마침 쉬는 날이었지만 다리를 다쳐 오전에 병원에 와서 치료해야 했다. 약을 바른 후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것도 귀찮아 바로 사무실로 갔다.점심시간에 임수경이 병원 식당으로 가서 밥을 가져다주다가 안서희가 진료기록을 살펴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장 달려가 단숨에 덮어버렸다.안서희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요?”“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그거 보지 말고 밥부터 먹어요.”안서희는 웃으며 도시락을 열었다.“어차피 한가해요.”“한가하면 잠을 자든가 게임을 하든가 하세요.”안서희는 처음엔 미소를 지었다가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임수경 씨.”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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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새로 온 마취과 의사

안서희도 사실 불안했다. 임수경에게 약을 받았을 때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즉, 현재 센트럴 병원의 데이터에는 그녀가 낙태했다는 기록이 없었다.이 과정을 엄격하게 따진다면 임수경은 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안서희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나중에 원장님이 책임을 묻게 되면 모든 책임을 나한테 돌려요. 내가 시킨 거고 내 조수라서 거역할 수 없었다고.”임수경은 난감한 표정이었다.“안 선생님, 저는...”안서희는 그녀를 다독이는 눈빛을 보냈다.“그냥 그렇게 말해요, 겁내지 말고.”10분 후,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임수경이 목을 움츠린 채 문을 열었다.“원장님.”원장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내가 그렇게 무서워?”라는 표정을 지었다.“무서운 게 아니라 원장님을 존경하는 거예요.” 원장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는데 수경 씨는 좀 다르네.”임수경은 입꼬리를 당기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원장이 들어오자 안서희는 책상을 붙잡고 일어섰다.“원장님.”원장은 다리를 다친 것에 크게 놀라지 않는 듯 손을 들어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다리가 불편하니 얼른 앉아.”“원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업무에 지장 없고 걷는 데 조금 불편할 뿐이지 앉거나 서서 수술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원장님은 안심시키듯 웃었다.“그렇게 능력이 뛰어난데 아직도 내가 해고할까 봐 겁나? 그래, 당분간 푹 쉬고 무슨 일 있으면 조수한테 시켜. 절대 잔병 남기면 안 돼. 센트럴 병원 산부인과는 서희 씨한테 달렸다고.”“원장님 과찬이세요.”“잘하면 칭찬을 받아야지. 참, 요즘 병원에 피가 부족한데 헌혈 차로 가 있어. 채혈은 앉아서 하니까 힘들지도 않고 푹 쉬면서 마음도 추스르고.”안서희가 물었다.“원장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아, 원래는 다음 주 월요일 정기 회의 때 발표하기로 했는데 우리 병원에 유학파 마취과 선생님을 데려왔어. 학력이나 이력서도 아주 훌륭하고 외국에서 높은 연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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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응.” 고유준은 주저하지 않았다.“전에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때 네가 교통사고 당한 걸 보고 내가 병원에 데려온 거야.”안서희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고유준이 연애편지 이런 걸 언급한 줄 알았다.원장이 말했다.“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면 더 좋지. 서로 알아가는 시간도 줄어들고 두 사람 능력이면 우리 산부인과는 나날이 좋아질 것 같네!”“원장님...”구석에 서 있던 임수경이 나지막이 말했다. “안 선생님 보러 오신 게 그거 때문인가요?”“그래, 이것 말고 뭐가 있겠어? 안 선생이 이렇게 잘해주는데 내가 트집 잡을 일은 없지 않나?”임수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고요, 전 또...”“뭐라고 생각했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 안 선생님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승진시켜 주실 줄 알았어요.”원장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사실 그럴 생각도 있긴 하지만 고민하고 있어. 안 선생 결혼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이라도 했다고 하면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그건 큰일이니까...”“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안 선생님은 이혼하셨고 임신하실 일 없어요.”빠르게 얘기를 마친 임수경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입을 가렸다.원장은 놀란 눈으로 임수경을 바라보다가 안서희를 돌아보았다.“이혼했어?”안서희는 다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언제?”“연차 휴가 중에요.”“뭐 때문에? 둘이 사이도 좋았고 남편이 매일 출퇴근할 때 태워다 주는데 왜 이혼했어?”안서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전...”고유준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원장님, 약품 창고 보여 주신다고 하지 않았어요?”“아, 맞다 맞다.”원장은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가지, 내가 지금 데려다줄게.”나가는 길에 고유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서희를 돌아보았다.안서희는 그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미소만 지으며 원장을 따라 나갔다.임수경은 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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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친구라는 말

남자와 선배 사이에서 선배를 고른 임수경은 의리를 지키며 다가와 그녀에게 물 한 잔을 건네고 등까지 토닥여주었다.“안 선생님, 왜 그렇게 급하게 먹어요? 채혈은 내일이나 돼야 하는데요.”안서희는 목이 메어 말하지 못하고 손을 흔들었다.“아, 아뇨, 괜찮아요. 좀 매워서요.”“국물 좀 먹어.” 고유준이 보온 도시락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약재 삼계탕인데 기력 보충에 좋을 거야.”이라며 보온 도시락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밖에서 사 왔어?”병원 구내식당에는 이렇게 좋은 음식이 없었고 미역국이나 끓여주면 다행이었다.“내가 직접 끓였어. 천천히 마셔. 난 원장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이따 도시락 가지러 올게.”고유준은 담담하게 웃었고 나갈 때도 조용했다.안서희만 홀로 요란하게 밥을 씹고 있었다.임수경은 얼굴을 감싼 채 은근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안 선생님...”그 소리에 안서희는 눈살을 찌푸렸다.“제대로 말하면 안 돼요? 그런 말투는 듣기 힘든데.”임수경은 다 꿰뚫어 봤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보온 도시락을 두드렸다.“고 선생님은 안 선생님 때문에 오신 것 같은데요?”안서희는 고개를 숙여 밥을 먹었다.“무슨 소리야? 집이 해성에 있고 우리 병원 내부 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왔다고 했잖아.”“쳇.”임수경이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손수 국까지 끓여서 줘요?”안서희가 말했다.“자기 점심으로 먹으려고 한 걸 수도?”“그렇다면 참 친절하시네요.”안서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계속했다.임수경이 손을 뻗어 보온 도시락을 열어보려고 했다.“국물 냄새나 맡아봐야지. 고 선생님 솜씨 한번 볼까나...”손을 뻗으려는 순간 안서희가 탁 때렸다.“건드리지 마요, 그대로 돌려줘야 해요.”임수경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렇게 매정하게 굴 필요 있어요?”안서희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서로 알아갈 생각 없으면 처음부터 오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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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남편을 죽일 듯이

“안 선생님...”“돌려주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요. 사진만 찍을게요.”임수경은 망설였지만 결국 과자를 그녀에게 건넸다.“선생님도 사게요? 이 과자 진짜 맛있어요. 게다가 살도 안 쪄서 엄청나게 잘 팔려요. 사기 무척 힘들어요...”안서희가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임수경은 재빨리 과자를 다시 낚아챘다.“걱정 마요, 돌려주라고 안 해요.”그제야 임수경은 안심했다.“그럼 다행이고요. 안 선생님, 저한테 사주시려고요? 우와, 선생님 최고!”안서희는 급히 손을 뻗어 포옹하려는 그녀를 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네, 지난번 낙태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줬으니 고마워서 반년치 과자 내가 다 책임질게요.”“앗싸!”임수경은 다리가 불편한 안서희를 병원 대문까지 부축해 주고 그녀가 택시를 타는 것까지 지켜보았다.안서희는 차에 앉아 권진아에게 사진을 보냈다.[?][인맥 넓으신 권진아 씨, 이 브랜드 과자 살 수 있을까?][문제없지, 몇 개나 필요해?][200박스 정도.][친구야, 장사라도 할 생각이야? 그렇게 많이 사서 뭐 하게.][내 조수인 아가씨가 이걸 좋아해. 내가 유산할 때 도와줘서 보답하고 싶어.][아, 그 아가씨 기억나. 의리가 있었지. 알겠어, 도와줄게. 200박스? 기다려.][진아야, 두 박스 더 부탁해.][네가 먹게?][나 단 거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그럼 나한테 주는 거야? 수고비로?][그럼 5개 더. 세 개는 네가 갖고 두 개는 내가 빚 갚는 데 써야겠어.][빚을 갚아? 무슨 빚?][마음의 빚.]...다음 날 아침, 안서희는 일찍 일어났다.권진아는 그녀의 다리가 불편했기에 기어코 차로 병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고집을 부리면서 말했다.“김주혁이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어.”안서희의 다리에 생긴 찰과상은 가볍지 않았고 더운 날씨에 바지를 입으면 분명 상처가 곪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치마가 없었다.없는 게 아니라 전부 김주혁의 집에 있는데 그 남자가 보내주지 않았다.권진아의 눈빛이 갑자기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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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내가 못 주겠다면?

주호민이 보낸 스크린 캡처를 본 김주혁의 눈썹이 찡그려졌다.그는 담배 케이스를 꺼내더니 무의식적으로 발코니로 향했다.“어디 가?” 안유진이 묻자 김주혁의 눈썹이 더 일그러졌다.요즘 안유진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요즘 그의 움직임을 단속했다.그가 조금이라도 시야를 벗어나면 이렇게 물었다.“어디 가?”김주혁이 답했다.“발코니에 담배 피우러.”하지만 안유진이 멈추지 않고 또 물었다.“담배 피우러 가는데 휴대폰은 왜 들고 가? 누구한테 전화하려고?”김주혁은 짜증이 밀려왔다.“뉴스도 못 봐? 휴대폰을 가져가면 꼭 누구한테 전화해야 해? 회사 일로 부하 직원한테 지시할 수도 있잖아. 그것도 안 돼?”안유진은 살짝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안 된다고 한 적 없어. 그냥 널 걱정하는 마음에...”“날 걱정해?” 김주혁은 비웃었다.“안유진, 네 그 걱정 때문에 나한테는 자유가 하나도 없어졌어!”안유진의 웃던 얼굴이 굳어지며 그의 손을 놓은 채 일부러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그냥 뉴스 보는 건데 왜 그렇게 크게 반응해?”“내가 크게 반응하는 이유는... 안유진, 나 통제하려고 들지 마. 숨을 못 쉬겠어.”“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할까? 네 전 부인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낼까? 그 여자가 널 걱정하지도, 너도 그 여자한테 관심도 없이 그렇게 지내는 게 네가 말하는 자유야? 주혁아, 넌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한 것뿐이야. 다 그 안서희가 잘못된 거라고.”김주혁은 곧바로 비아냥거리며 맞받아쳤다.“난 그게 별로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오히려 지금이 더 불편해.”“그럼 그 여자 찾아가!” 안유진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이젠 내가 싫어졌지? 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네 아이가 아니라서 마음이 불편하지? 내가 교통사고 났을 때 아기 잃을 수도 있었는데 네가 나를 병원에 보냈고 안서희가 날 수술해 줬잖아. 그래서 아이도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던 건데 지금 와서야 나를 원망해?”김주혁은 피곤한 듯 말했다.“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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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여기가 네 집이야?

“그럼 내가... 내가...”안유진은 좌우를 살피더니 장롱 위의 도자기 장식을 들고 배에 갖다 댔다.“안 보여 주면 이거 부숴 버릴 거야!”김주혁은 잠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꼭 보겠다는 거지?”안유진이 말했다.“그래!”“좋아.” 김주혁은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봐.”김주혁의 휴대폰은 심플했다.이메일, 몇 가지 뉴스 앱, 그리고 카톡.안유진은 하나하나 훑어보았다.메일함에는 대부분 회사 부하 직원들과의 연락이 있었고 가장 빈번한 대화 상대가 그녀의 사촌 동생이자 현재 비서인 안우재였다.뉴스 앱에서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고 평소 금융과 경제 섹션만 읽던 그에게 알고리즘이 띄운 뉴스도 모두 금융과 경제 관련이었다.카톡은 맨 위에 김주혁의 어머니 백금희 연락처가 있었고 ‘엄마’라 저장되어 있었다.[주혁아, 나 요즘 두통이 심한데 어떤 약을 먹으면 좋을까?][두통의 원인은 다양한데 병원 가서 검사해 보실래요?]됐어, 그냥 진통제 좀 먹을게.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그런가 봐.] [엄마,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응, 근데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일해. 한솔그룹 일로 바쁜데 엄마 걱정은 하지 마.]고작 메시지 몇 줄, 그게 다였다.김주혁이 물었다.“다 봤어?”안유진은 만족스러우면서도 민망했지만 꿋꿋이 턱을 치켜들고 오만하게 말했다.“괜찮네.”김주혁은 그녀의 손에서 가차 없이 휴대폰을 낚아채 갔다.“비켜.”안유진이 투덜거렸다.“똑바로 얘기할 수 없어? 나 임산부요, 말조심해.”“알았어. 존경하는 안유진 씨, 여기서 나가게 문 앞에서 비켜주시겠어요?”“김주혁, 비아냥거리지 마!”김주혁은 무시한 채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옆으로 당긴 뒤 문을 열고 나갔다.“김주혁!”“또 뭐야!!!”안유진은 삐죽거렸다.“왜 화를 내? 핸드폰 안 보여주니까 내가 의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왜 무섭게 얘기해!”“할 말이나 해.”“갈 때 쓰레기 버려.”“그래.”김주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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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쓰레기가 되어버린 책들

안유진은 눈을 흘겼다. “내가 이 집 안 주인이야!”“법적으로는 안서희지.”“안서희가 발을 질질 끌면서 이혼을 거부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이혼 서류 접수했지!”김주혁이 말했다.“이 물건들 말고 남기고 간 책들은?”“아, 책장에 있던 그 책들? 팔아버렸어.”“...뭐?!”“그 책들이 무겁고 공간도 많이 차지해서 이 물건들과 함께 버리려고 했는데 그럼 내가 직접 들고 내려가야 하잖아. 그래서 고물상 집으로 불러서 다 팔았어.”김주혁은 기가 막혔다.“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서 팔아버린 거야?”“너한테 왜 물어봐?” 안유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넌 어릴 때부터 내 말만 들었잖아?”“안유진!!!”딩동-초인종이 울리자 김주혁은 이를 악물고 걸어가 문을 열었다.고유현이었다.“좋은 아침이야, 형, 유진 누나!”김주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유진 누나한테 스피커 주려고!”김주혁은 안유진을 돌아보았다.“스피커?”안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 태교 음악 들으려고.”고유현이 피식 웃었다.“유진 누나, 롹 음악으로 태교하려고? 애가 뱃속에서 드럼이라도 치면 어떡해.”안유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가져와.”“알았어!”“잠깐.” 김주혁이 그를 말렸다. “가져가.”“왜?”김주혁이 말했다.“여긴 아파트고 위 아래층에 사람들 살고 있잖아. 빌라도 아니고 스피커로 롹 음악 틀면 층간소음이야.”고유현은 조금 망설였다.말하는 동안 안유진이 다가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층간 소음은 무슨, 내 집에서 노래도 못 들어?”김주혁이 말했다.“스피커는 울림이 심해서 위 아래층 사람들이 다 들어.”“너무 시끄러우면 그냥 이사하면 되잖아.”“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내가 이성적이지 않다는 거야?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해 알려줄 수도 있어. 내 집에서 음악 듣는 건 죄가 아니야. 경찰서든 법원이든 얼마든지 가서 이르라고 해. 어차피 경찰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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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그 여자 건드리지 마

“발코니에 있는 저 상자 내 차로 옮겨.”고유현은 말하며 소매를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알았어, 힘쓰는 일은 나한테 맡겨. 내가 제일 남아도는 게 체력이야!”“그리고... 스피커도 집에 두고 가지 말고 가져가.”고유현은 당황한 채 김주혁과 안유진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김주혁의 말을 듣기로 하고 안유진을 설득했다.“유진 누나, 형 말이 일리가 있어. 우리 생각만 하고 이웃들한테 민폐가 되면 안 되잖아. 이렇게 해, 형한테 별장 사달라고 그래. 그럼 내가 별장에 스피커 가져갈게. 얼마든지 크게 틀어.”안유진은 싫은 기색이 역력한 채 여전히 꾸물거리고 있었고 김주혁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유현아, 나 일하러 가야 하니까 서둘러.”“아, 알았어.”고유현은 발코니로 가서 세 번의 시도 끝에 상자를 들고 나갔다. “형, 내가 먼저 내려가서 아래층에서 기다릴게.”“그래.”김주혁은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안유진을 경고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임신했으면 얌전히 태교나 해, 자꾸 심술부리지 말고. 네 사촌 동생이 그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내가 뒤처리 다 하고 있잖아. 자꾸 선 넘으면 걔를 바로 경찰서에 보낼 거야.”사촌 동생 얘기에 안유진은 마침내 풀이 죽었다.“주혁아, 우재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그러자 김주혁은 곧장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나 일하러 갈 거야.”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고유현은 이미 차 옆에 상자를 놓아둔 상태였다.그는 차를 열어 상자를 트렁크에 넣었다.고유현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형, 박스에 죄다 여자 옷이던데?”김주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훑어봤다. “문제 있어?” 고유현은 두려움에 목을 움츠렸다.“아니, 아니야.”“앞으로 안유진이 너한테 부탁할 일이 생기면 나한테 먼저 말해.”“알았어, 형.”김주혁은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랐지만 바로 시동을 걸지 않고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렸다.“유현아.”“형 왜 그래?”“내 이혼에 끼어들지 마.”“왜? 그 여자는 형 돈을 노리고 이혼을 질질 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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