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481 - 챕터 490

565 챕터

제481화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첫 질문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승은백은 급히 대답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 누구도 태비를 괴롭히지 않았사옵니다…”그러나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그 말은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너희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그..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승은백은 비록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지만, 북명왕처럼 냉혹한 전장 장군 앞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얼어붙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해입니다, 모두 오해이옵니다.”“북명왕께서는 권세만 믿고 사람을 억누시키려는 것입니까?” 정신을 차린 조월순이 물었다.그러자 량소도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떠올렸다. 권력에 아첨하는 친왕을 가장 경멸했던 그가 차갑게 말했다.“태비께서는 권세를 믿고 우리 가문의 내정을 간섭하셨지요. 이제는 왕까지 합세하여 우리 작은 백부를 억누르려 하십니까?”사여묵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말이 많구나. 장대성, 저 입을 닥치게 하여라!”장대성도 바깥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큰 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지체없이 량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량소는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량소는 큰 충격을 받아 얼굴 반쪽은 이미 마비가 된듯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겨우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한 번의 손이 날아왔다. 그는 다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소야!” 조월순과 승은백부인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승은백부인은 다가가서 그를 부축할 용기가 없었다.오직 조월순만이 격노할 뿐이었다.“뭣들 하는 것이냐! 얼른 세자를 부축해라!”집안의 하인들이 량소를 부축했지만, 그는 머리가 어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비틀거렸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약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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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방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이 느렸기에 자식들이 그녀를 붙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는 그저 사여묵을 겁주어 부대가 물건을 부수는 것을 멈추게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부대원들 또한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부수어 댔고 일부 겁에 질린 부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후원으로 도망치기 바빴다.조월순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사여묵이 이 정도로 무정한 인간인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자살 협박에도 눈 깜빡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부대는 내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원은 남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고 몽동이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원과 화청만 있는 힘껏 망가뜨렸다.그 광경에 승은백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오늘 밤 사여묵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짐작했다. 바로 란이가 오늘 량소에게 밀려 태기가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량소를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빨이 부러지고, 피범벅 된 입을 본 노태부인이 너무나도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그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회왕부에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기에, 그들은 잠시나마 방심하고 있었다.혜태비가 밤늦게 찾아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분쟁을 일으켜 사여묵과 왕비를 불러들인 것이다.잘못은 그들 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여묵이 오늘 밤 무슨 일을 하든 승은백부는 그저 참아야 했다.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승은백부의 사람이 혜태비를 때린 죄로 반역의 죄목이 쓸 것이다.더 나아가 파면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 량소가 정실을 박대하고 첩을 편애해 태기가 움직여 한 달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그 중의 어떤 것이든 지금의 승은백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사여묵의 분노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러면 황제에게까지는 일이 번지지 않을 것이다.량소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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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승은백부의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가 보았더니 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승은백은 창백한 얼굴로 앞으로 나가더니 사여묵에게 공손히 말했다.“이제 분이 좀 풀리셨는지요?”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대신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그대는 어떻소?”승은백은 뒷니를 꽉 물고 대답했다.“어찌 감히 원한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감히?” 송석석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보이지 않았다.“감히 그럴 마음조차 없기를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엔 승은백부가 평지가 될 것이오.”승은백은 그녀가 출가할 때의 화려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녀 뒤에 북명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림의 인사들도 그녀의 지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승은백부에도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승은백부를 부수는 것은 물론이고, 승은백부를 몰살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하지만 오늘 밤 그는 조상들의 얼굴에 먹칠을 단단히 하고 말았다.이번 일이 소문이 나면 그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그는 송석석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의 속도 모르고 량소가 난데없이 날뛰었다.“권세로 사람을 억누르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그를 바라보던 송석석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내일 아침이면 경성의 학자들을 모아 북명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쓸 생각이시지요? 게다가 천자 제자의 명성을 이용해 오늘 밤의 일을 크게 벌리려 하실 테지요?”량소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어찌 알았지?’그는 당당하게 턱을 들고,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이제야 겁이 나오? 하지만 이미 늦었소. 내 두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나는 반드시 당신들 비난하는 글을 쓸 것이오.”송석석은 차분했다.“그대 두 손을 자를 이유는 없지요. 그대처럼 글 쓰는 자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낭비지요. 기억하세요. 글은 잘 써야 합니다. 충효와 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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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시만자가 송석석을 바라보자, 송석석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시만자는 냉랭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청관이라 하였느냐? 량소 같은 모자란 자는 속일 수 있어도 감히 우리를 속일 수는 없다.”그 말에 량소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감히 그녀를 비방하다니!”하지만 시만자는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비방이라니? 그런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연유야, 네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이 자들에게 말해줄까? 네 아비가 네게 지어준 그 아름다운 이름 말이다. 아마 ‘고청우’라 하였겠지? 하지만, 장공주는 너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 장공주는 너를 ‘무녀’라 불렀을 것이야.”연유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러나 곧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승은백과 그의 가족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연유의 아름답고 고상한 얼굴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녀가 장공주의 딸이라니?장공주의 친딸은 아닐 것이다. 장공주는 슬하에 딸인 가의군주만을 본인의 딸로 두었다. 그러고 보니 장공주가 남편에게 많은 첩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첩들은 외부에 나서는 일이 없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이 일은 너무도 말이 안 된다.장공주의 친딸이 아니어도 장공주를 적모로 불러야 했을 터이니 장공주가 서녀를 홍등가로 내몰리게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시만자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미 샅샅이 조사했으니 부인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 작은 비밀로 왕비님을 정말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아니야, 그런 거 아닙니다.” 연유는 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량소의 소매를 붙잡았다.“제가 장공주의 딸이라면, 어찌 홍등가에 머물고 있었겠습니까?”눈물을 흘리고 있는 연유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량소는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나는 그대를 믿소. 저 자는 당신을 통해 장공주를 비방하려는 것이오.”“어리석은 놈!” 사여묵이 차갑게 비웃었다. 송석석은 승은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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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연유는 여전히 울먹였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손가락만은 량소의 옷자락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몹시 두려움에 차 있는 모습이였다.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흘러 내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억울하고 가련하게 들려왔다.“일어나시오. 이 지저분한 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사여묵이 송석석의 손을 잡고, 옆에 서 있던 혜태비를 향해 말했다.“어머니, 이제 돌아가시지요.”그러자 혜태비도 놀란 표정을 거두고 일어서고는 회왕비를 한 번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아까 제가 란이를 보러 갔을 때, 그대가 온 줄 알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아니어서 실망했지요. 어미가 이토록 나약하니, 딸도 그 뒤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소란을 피운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그대도 잘 알고 있지요? 어미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면, 오늘 일은 쉽게 넘기지 말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그대를 경멸할 것입니다.”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니, 가시지요. 어머니라면 누구든 모성애를 가질 것이니 숙모께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실 겁니다.”“석석아!” 그녀를 불러 세운 회왕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네가 란이를 위해 온 것은 알겠다만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란이가 승은백부에서 지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은 생각해 보았느냐?”“지금은 뭐, 잘 지내고 있습니까?” 송석석은 반문하며 방 안을 한 번 쭉 가리켰다. “이들을 보세요. 란이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석소 사저가 그를 때리지 않았다면, 란이를 밀친 일도 그저 몇 마디 질책으로 끝났을 겁니다.”송석석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그녀는 회왕부부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회왕은 실권이 없고 조정에서 직무를 맡고 있지 않더라도, 친왕이라는 칭호는 작은 백작부를 능가하기에 충분했다.그러나 란이가 이토록 큰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왕비는 오히려 그녀를 질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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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회 왕비가 그녀의 입을 막고 경고했다.“다시는 그 두 글자 절대 꺼내지 말거라. 너는 군주라 연봉과 식읍이 나오는데 승은백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너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지 않느냐? 그리고 나는 량세자가 반드시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 여자는 장공주의 딸이다. 그녀가 저택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 음모가 있을 것이다.”란이는 속으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란이는 그 여자의 수단이 아무리 비겁해도 량소가 자신을 믿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란이는 그렇게 량소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회 왕비는 란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말 대로 하겠다는 뜻인 줄 착각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내 말을 듣거라. 아이가 태어나면 량세자가 아이를 보아서라도 변할 것이고, 노부인께서도 증손자를 예뻐하지 않을 리가 있겠나? 그러니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도 너에게 잘해줄 것이야. 이 기간만 버틴다면 괜찮아질 것이니 좀만 참거라.”“사실 아무리 말해봤자 모두 그 여자의 문제다. 너희 시부모는 그 천한 년을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내가 오늘 그녀를 만나보니 량세자가 왜 그녀에게 현혹되었는지 바로 알겠더구나. 모습은 다소 낭패스럽긴 했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게 남자 다 홀리게 생겼더군. 하지만 그녀의 신분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백부에서는 그녀를 들일 리가 없다. 그녀는 장공주가 홍등가로 보낸 사람이다. 들이면 분명 장공주와 맞서는 게 될 텐데 그렇게 할 리가 없잖니?”회 왕비가 란이의 야윈 얼굴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리고 량세자는 네가 고른 남편이니 잘못 골랐더라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넌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겸손하게 행동하는지 아느냐? 네 아버지의 분배받은 땅이 혹독하게 추운 곳에 있는 데다 만약 겸손하지 못하게 행동하다 사고를 쳐서 황제폐하를 불쾌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니? 남은 생에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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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회왕 부부가 떠나자 승은백부의 하인들이 저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량소와 연유만 화청에 남았고, 승은백도 부인과 함께 노부인을 배웅하러 떠났다.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노부인은 밖으로 나가면서 승은백에게 다시금 량소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우리 가문에 량소처럼 뛰어난 자가 어디 있더냐? 그는 황제가 친히 책봉한 탐화랑이니 면직도 일시적일 것이다. 지금 첩이 없는 남자가 또 어디 있느냐?“어머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세요.”승은백은 노부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부인보고 노부인을 부축하라고 말할 뿐이였다. 그러고는 량소 품에 안겨 흐느끼는 연유를 보고 짜증이 나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네가 울긴 왜 우느냐? 오늘 네가 군주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그러자 량소가 연유를 감싸며 말했다.“아버지, 어떻게 연유 탓할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도 군주 방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들은 나도 감히 때릴 수 있습니다.”“못난 놈, 닥치거라!”승은백은 그만 화가 치밀어 올라 연유를 향해 소리쳤다. “넌 당장 가서 무릎 꿇거라. 내 명령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그러자 량소가 말했다.“그럴 순 없습니다. 연유의 얼굴을 보십시오. 연유는 이미 그 악독한 여자에 의해 온 몸이 다 상했습니다.”승은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량소의 뺨을 후려갈겼다.“이런 못난 놈, 너는 아직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감이 안 잡히느냐?”여러 번 뺨을 맞은 량소는 결국 분노가 극에 달해 소리쳤다.“그래요. 모두들 나와 연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니 세자의 신분도 포기하고 우린 백부를 떠나겠습니다. 나도 이 작은 백부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그는 말을 한 후 당장 방에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승은백은 의자에 앉아 세자가 짐을 싸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연유가 세자를 말리던가?” “아니요. 오히려 세자와 함께 짐을 쌌습니다.” 승은백은 눈을 감고 북명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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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량소는 정착하자마자 북명황실을 규탄하는 글을 썼다.랑소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학생 열여 명을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 온 학생은 그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조차도 그가 쓴 글을 보고 놀라서 일이 있다는 저마다의 핑계로 재빨리 자리를 떴다.량소는 어리둥절해서 급히 뒤쫓아가 그들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너희는 왜 북명황실이 사람을 괴롭히는 걸 뻔히 보고서도 나를 돕지 않느냐?”그 학생은 성이 무 씨고, 이름은 무삼랑이다. 그는 작년에 국자감에 입학해 량소를 존경해 왔다. 하지만 그건 량소가 홍등가의 여인을 첩으로 맞기 전에 일이고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량소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량소가 쓴 글 속엔 남강을 수복한 친왕을 규탄하는 듯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북명왕이 연유라는 여인을 경시하는 내용들이었다.무삼랑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이 글이 발표되는 순간 량소가 세상 사람들에게 꾸짖음을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이 일에 엮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몸가짐이 바르면 말하지 않아도 따르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말을 해도 따를 수 없느니라.”량소의 질문에 무감랑은 이렇게 대답하고 떠났다.그러자 량소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난 황제폐하께서 직접 책봉한 탐화랑인데 몸가짐이 바르지 않을 리가 있나? 권세에 빌붙어 아부나 하는 것들이라고! 예전엔 그들이 기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북명왕의 명성을 이렇게나 두려워하다니.’량소는 화가 나 찻집에서 물건을 부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지 호통을 쳐도 찻집 주인은 차가운 얼굴로 그에게 배상을 요구했다.북명황실에서 사여묵이 관아로 돌아간 후 혜 태비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송석석이 문안드리러 오자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석석아, 그 연유라는 여인은 어떻게 된 것이냐? 진정 장공주의 서녀란 말이냐?”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어머님, 모두 사실이옵니다. 그리고 고청우.. 그러니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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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송석석은 만자에게 사람을 보내 량소를 감시하게 했다. 탐화랑이 노부인의 보살핌을 받아 여전히 패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들고 국자감으로 가 황제에게 제출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국자감에선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국자감의 사람들이 인재를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분개하여 한림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으려 하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기만 하면 피하기 바빴다. 황제께서 직접 면직을 선포한 탐화랑이 첩을 들여 아내를 냉대한 것도 모자라 백부를 떠나 세자까지 포기했다는 소문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게다가 그가 상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내의 돈으로 홍등가의 여인을 데리고 나온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욕하 바빴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꺼려했다. 량소는 며칠을 계속 뛰어다녔으나 성과가 없자 분노가 극에 달했고 시여묵의 압박 때문에 자신과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속으로 분해서 술을 잔뜩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며 마구 소리쳤다. “황권은 권세만 지켜주는구나! 사여묵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 군공을 믿고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데 어쩜 나서서 막는 사람 한 명 없느냐? 조정의 문무백관은 모두 겁쟁이인 것이냐?!”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 심한 말을 하자 불과 3일 만에 돌풍처럼 온 진성을 휩쓸어 결국 조정의 문무백관들까지 다 알게 되었다. 그 말에 탐화랑이 안하무인격으로 잘난 체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상주문이 승상에게로 날아왔다. 묵 승상은 이 일을 숨기지 않고 황제에게 바로 알렸다. 그러자 황제가 사여묵에게 물어 그날의 일을 알게 되었다. 란이는 황제의 사촌 여동생이다. 황제는 사촌 여동생이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철이 들어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녀에게 그렇게 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장공주의 서녀라는 사실에 황제는 이상을 느꼈다.연유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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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재스민 차의 향기가 혼 화청에 풍겼다. 보주는 구름떡을 들고 들어왔는데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 그녀의 수놓은 신발이 흠뻑 젖어 바닥에 두줄의 발자국이 생길 정도였다. 송석석은 말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렇게 이모와 조카는 네모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보주는 구름떡을 탁자 위에 놓고 나가 문밖을 지켰다. 송석석은 보주가 놓고 간 손으로 구름떡을 집어 천천히 먹었는데 떡을 먹는 소리가 하도 작아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회 왕비도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서 부스러기가 보라색 꽃무늬 저고리 치마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아하게 작은 접시로 받치고 조금씩 집어 먹었다. 회 왕비의 피부가 안 그래도 노란 축에 속해 있는데 보라색 옷을 입으니 피부색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리고 눈 밑이 검푸른 것이 며칠 동안 밤을 설친 게 분명했다. 송석석이 계속 입을 열지 않자 회 왕비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접시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석석아, 넌 이모가 낯설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전 이모가 절 낯설어한다고 생각하옵니다.” 회 왕비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네가 란이에게 혼수를 보탠 일 때문에 그러느냐? 그 일은 이모가 사과할 테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니? 가족끼리 이러는 걸 네 어머니가 하늘에서 본다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시는 것이 저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회 왕비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모께서 란이에게 보낸 혼수를 거절하신 일을 저는 전혀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어머니 얘기는 그만하시고 오늘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는지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그러자 회 왕비가 복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너 때문에 회왕부가 황제에게 한 달 동안 금족을 당한 건 알고 있느냐? 그 해 섣달 그믐날에도 우리는 너 하나 때문에 궁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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