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왕비가 그녀의 입을 막고 경고했다.“다시는 그 두 글자 절대 꺼내지 말거라. 너는 군주라 연봉과 식읍이 나오는데 승은백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너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지 않느냐? 그리고 나는 량세자가 반드시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 여자는 장공주의 딸이다. 그녀가 저택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 음모가 있을 것이다.”란이는 속으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란이는 그 여자의 수단이 아무리 비겁해도 량소가 자신을 믿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란이는 그렇게 량소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회 왕비는 란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말 대로 하겠다는 뜻인 줄 착각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내 말을 듣거라. 아이가 태어나면 량세자가 아이를 보아서라도 변할 것이고, 노부인께서도 증손자를 예뻐하지 않을 리가 있겠나? 그러니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도 너에게 잘해줄 것이야. 이 기간만 버틴다면 괜찮아질 것이니 좀만 참거라.”“사실 아무리 말해봤자 모두 그 여자의 문제다. 너희 시부모는 그 천한 년을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내가 오늘 그녀를 만나보니 량세자가 왜 그녀에게 현혹되었는지 바로 알겠더구나. 모습은 다소 낭패스럽긴 했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게 남자 다 홀리게 생겼더군. 하지만 그녀의 신분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백부에서는 그녀를 들일 리가 없다. 그녀는 장공주가 홍등가로 보낸 사람이다. 들이면 분명 장공주와 맞서는 게 될 텐데 그렇게 할 리가 없잖니?”회 왕비가 란이의 야윈 얼굴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리고 량세자는 네가 고른 남편이니 잘못 골랐더라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넌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겸손하게 행동하는지 아느냐? 네 아버지의 분배받은 땅이 혹독하게 추운 곳에 있는 데다 만약 겸손하지 못하게 행동하다 사고를 쳐서 황제폐하를 불쾌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니? 남은 생에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냐?”
회왕 부부가 떠나자 승은백부의 하인들이 저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량소와 연유만 화청에 남았고, 승은백도 부인과 함께 노부인을 배웅하러 떠났다.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노부인은 밖으로 나가면서 승은백에게 다시금 량소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우리 가문에 량소처럼 뛰어난 자가 어디 있더냐? 그는 황제가 친히 책봉한 탐화랑이니 면직도 일시적일 것이다. 지금 첩이 없는 남자가 또 어디 있느냐?“어머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세요.”승은백은 노부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부인보고 노부인을 부축하라고 말할 뿐이였다. 그러고는 량소 품에 안겨 흐느끼는 연유를 보고 짜증이 나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네가 울긴 왜 우느냐? 오늘 네가 군주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그러자 량소가 연유를 감싸며 말했다.“아버지, 어떻게 연유 탓할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도 군주 방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들은 나도 감히 때릴 수 있습니다.”“못난 놈, 닥치거라!”승은백은 그만 화가 치밀어 올라 연유를 향해 소리쳤다. “넌 당장 가서 무릎 꿇거라. 내 명령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그러자 량소가 말했다.“그럴 순 없습니다. 연유의 얼굴을 보십시오. 연유는 이미 그 악독한 여자에 의해 온 몸이 다 상했습니다.”승은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량소의 뺨을 후려갈겼다.“이런 못난 놈, 너는 아직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감이 안 잡히느냐?”여러 번 뺨을 맞은 량소는 결국 분노가 극에 달해 소리쳤다.“그래요. 모두들 나와 연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니 세자의 신분도 포기하고 우린 백부를 떠나겠습니다. 나도 이 작은 백부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그는 말을 한 후 당장 방에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승은백은 의자에 앉아 세자가 짐을 싸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연유가 세자를 말리던가?” “아니요. 오히려 세자와 함께 짐을 쌌습니다.” 승은백은 눈을 감고 북명왕비
량소는 정착하자마자 북명황실을 규탄하는 글을 썼다.랑소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학생 열여 명을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 온 학생은 그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조차도 그가 쓴 글을 보고 놀라서 일이 있다는 저마다의 핑계로 재빨리 자리를 떴다.량소는 어리둥절해서 급히 뒤쫓아가 그들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너희는 왜 북명황실이 사람을 괴롭히는 걸 뻔히 보고서도 나를 돕지 않느냐?”그 학생은 성이 무 씨고, 이름은 무삼랑이다. 그는 작년에 국자감에 입학해 량소를 존경해 왔다. 하지만 그건 량소가 홍등가의 여인을 첩으로 맞기 전에 일이고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량소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량소가 쓴 글 속엔 남강을 수복한 친왕을 규탄하는 듯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북명왕이 연유라는 여인을 경시하는 내용들이었다.무삼랑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이 글이 발표되는 순간 량소가 세상 사람들에게 꾸짖음을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이 일에 엮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몸가짐이 바르면 말하지 않아도 따르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말을 해도 따를 수 없느니라.”량소의 질문에 무감랑은 이렇게 대답하고 떠났다.그러자 량소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난 황제폐하께서 직접 책봉한 탐화랑인데 몸가짐이 바르지 않을 리가 있나? 권세에 빌붙어 아부나 하는 것들이라고! 예전엔 그들이 기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북명왕의 명성을 이렇게나 두려워하다니.’량소는 화가 나 찻집에서 물건을 부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지 호통을 쳐도 찻집 주인은 차가운 얼굴로 그에게 배상을 요구했다.북명황실에서 사여묵이 관아로 돌아간 후 혜 태비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송석석이 문안드리러 오자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석석아, 그 연유라는 여인은 어떻게 된 것이냐? 진정 장공주의 서녀란 말이냐?”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어머님, 모두 사실이옵니다. 그리고 고청우.. 그러니까 연
송석석은 만자에게 사람을 보내 량소를 감시하게 했다. 탐화랑이 노부인의 보살핌을 받아 여전히 패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들고 국자감으로 가 황제에게 제출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국자감에선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국자감의 사람들이 인재를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분개하여 한림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으려 하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기만 하면 피하기 바빴다. 황제께서 직접 면직을 선포한 탐화랑이 첩을 들여 아내를 냉대한 것도 모자라 백부를 떠나 세자까지 포기했다는 소문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게다가 그가 상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내의 돈으로 홍등가의 여인을 데리고 나온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욕하 바빴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꺼려했다. 량소는 며칠을 계속 뛰어다녔으나 성과가 없자 분노가 극에 달했고 시여묵의 압박 때문에 자신과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속으로 분해서 술을 잔뜩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며 마구 소리쳤다. “황권은 권세만 지켜주는구나! 사여묵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 군공을 믿고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데 어쩜 나서서 막는 사람 한 명 없느냐? 조정의 문무백관은 모두 겁쟁이인 것이냐?!”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 심한 말을 하자 불과 3일 만에 돌풍처럼 온 진성을 휩쓸어 결국 조정의 문무백관들까지 다 알게 되었다. 그 말에 탐화랑이 안하무인격으로 잘난 체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상주문이 승상에게로 날아왔다. 묵 승상은 이 일을 숨기지 않고 황제에게 바로 알렸다. 그러자 황제가 사여묵에게 물어 그날의 일을 알게 되었다. 란이는 황제의 사촌 여동생이다. 황제는 사촌 여동생이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철이 들어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녀에게 그렇게 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장공주의 서녀라는 사실에 황제는 이상을 느꼈다.연유의 정
재스민 차의 향기가 혼 화청에 풍겼다. 보주는 구름떡을 들고 들어왔는데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 그녀의 수놓은 신발이 흠뻑 젖어 바닥에 두줄의 발자국이 생길 정도였다. 송석석은 말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렇게 이모와 조카는 네모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보주는 구름떡을 탁자 위에 놓고 나가 문밖을 지켰다. 송석석은 보주가 놓고 간 손으로 구름떡을 집어 천천히 먹었는데 떡을 먹는 소리가 하도 작아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회 왕비도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서 부스러기가 보라색 꽃무늬 저고리 치마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아하게 작은 접시로 받치고 조금씩 집어 먹었다. 회 왕비의 피부가 안 그래도 노란 축에 속해 있는데 보라색 옷을 입으니 피부색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리고 눈 밑이 검푸른 것이 며칠 동안 밤을 설친 게 분명했다. 송석석이 계속 입을 열지 않자 회 왕비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접시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석석아, 넌 이모가 낯설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전 이모가 절 낯설어한다고 생각하옵니다.” 회 왕비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네가 란이에게 혼수를 보탠 일 때문에 그러느냐? 그 일은 이모가 사과할 테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니? 가족끼리 이러는 걸 네 어머니가 하늘에서 본다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시는 것이 저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회 왕비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모께서 란이에게 보낸 혼수를 거절하신 일을 저는 전혀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어머니 얘기는 그만하시고 오늘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는지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그러자 회 왕비가 복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너 때문에 회왕부가 황제에게 한 달 동안 금족을 당한 건 알고 있느냐? 그 해 섣달 그믐날에도 우리는 너 하나 때문에 궁에 들어
송석석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이 안 통한다고 느꼈는지 물음을 무시했다. “보주야, 손님을 배웅하거라.” 자신보다 어린 조카에게 무시를 당하자 회 왕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송석석,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날 쫓아내려는 것이냐? 내가 네 이모라는 사실을 잊었느냐?” 회 왕비는 화가 나서 찻잔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이 났다. 송석석은 깨진 찻잔과 자신의 젖은 발을 보더니 고개를 들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가 승은백부에서 찻잔을 던지며 화를 내고 량소를 양심 없는 자식이라며 욕해줬다면 저도 무척이나 기뻐하고 이모가 존경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지금 란이가 얼마나 큰 억울함을 당했는지 그날 밤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모는 계속 일을 구워삶기만 했습니다. 란이가 이혼하면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느냐고 물어볼 때 이모가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고개를 끄덕였어도 그녀에겐 엄청난 위안이었을 것입니다. 일시적인 억울함 때문에 이혼하려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모가 단칼에 거절하니 란이가 얼마나 절망했을지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란이는 이혼하면 안 된다.” 회 왕비는 안색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이제껏 말했는데 넌 지금까지 뭘 들은 것이냐? 내가 이혼을 허락했다가 란이가 정말로 임신한 몸으로 처가로 돌아오면 어떡할 것이냐? 넌 진심으로 란이를 위해서 생각해 보았느냐? 란이는 널 그렇게 존경하는데 어떻게 그녀를 해칠 수 있느냐!” 회 왕비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리며 손수건으로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잠깐의 억울함이 뭐 어때서 그러느냐! 란이는 군주고 본처인데 홍등가의 출신인 첩을 두려워할 리가 있겠냐? 아무리 장공주의 서녀라고 해도 홍등가 같은 곳에 버러 져 자랐으니 시간이 지나면 량세자도 그녀에게 싫증이 날 테고, 난 결국엔 란이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네가 란이에게 이러한 도리를 설명해 주면 된다. 란이는 네 말을 잘 듣지 않느냐? 그러니 네가 말하면 분명 들을 것이다.”회 왕비는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더
몇일 후 송석석이 회 왕비에게 화를 낸 일이 혜 태비의 귀에 들어갔다. 그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발을 동동 굴리며 보주를 불러 설명하게 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석석이 아무리 친척이라도 그렇지 나였으면 따귀를 몇 대나 때렸을 것이다!” 그러고는 급히 보주에게 명령했다. “어서 부엌에 가서 석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라고 하거라. 계화꽃떡, 대추떡.. 아니다, 차라리 진성의 8가지 만두를 사 와서 석석에게 주거라. 그딴 사람 때문에 자신의 몸을 망치면 가치가 없는 일 아니겟느냐?” 소월이 급하게 사러 나가려 하자 시만자가 말했다. “제가 날렵하니 제가 가서 사오겠습니다.” “그래, 만자가 가서 사 오도록 해.” 혜 태비는 다소 긴장한 목소리였다. 그녀도 이전에 며느리가 화를 내는 것을 봤기 때문에이런 상황이 마치 언니에게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언니는 그래도 도리를 따지고 날 위해서 화내는 것인데 어떻게 자신의 딸도 돌보지 않는 회 왕비와 같겠어?’ 하지만 이내 자신의 언니가 더 낫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송석석은 화가 나서 매화원으로 돌아가서도 오래도록 진정할 수 없었다. ‘책봉한 땅으로 들어갈까 봐 이렇게 비천하게 군다고? 친왕의 존엄마저 버리고 란이까지 자신들처럼 모욕을 당하라는 거야?’ 송석석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들 여자들은 다 엄마가 되면 강해진다고 하던데, 회 왕비는 왜 일반 여자들보다 더 나약한 거야?’ 송석석은 란이가 분명 군주인데도 찍소리도 못 하는 연약한 성격이 모두 그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석석이 고민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시만자가 혜 태비의 팔짱을 끼고 손에는 붉은색으로 칠한 찬합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건넸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시만자가 찬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웃으
송석석은 혜 태비에게 만두 한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전 이제 괜찮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어서 드십시오.” 송석석이 만두를 덕섭 집어 자신에게 주자 혜 태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 며느리 행동이 너무 거친 거 아니야?’ 하지만 혜 태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혜 송석석이 건네 온 만두를 건네 받았다. ‘괜찮아, 뭐 죽기라도 하겠어?’ 어사대는 다시 바쁘게 움직이며 탕화랑 량소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어사는 그가 덕을 잃고 사람들 앞에서 조정의 문무백관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황권을 경멸했으니 천자문생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여겨 황제폐하께 등과록에서 량소의 이름을 취소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동시에 승은백 세자의 자리를 취소해 달라고도 했다. 다시 말해 승은백부에서 세자를 바꿔야 했다. 황제는 아침 조정에서 량소의 승은백자 자리를 취소했지만 탐화랑의 자격은 취소하지 않았다. 탐화랑은 애초에 황제폐하께서 직접 지목하신 거라 취소를 하면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승은백을 훈계했다. 그리고 퇴조 후 승은백을 황실 서재로 불러냈다. 황제는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며 통곡하는 승은백을 보며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이 내가 승은백부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군주까지 승은백부에서 억울함을 당한다면 승은백의 직위까지 그만둬야 할 것이다.” 황제의 말을 들은 승은백은 벼락을 맞은 듯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그제야 군주가 황제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회왕 부부가 아무리 무능하더라도 황제는 남매의 정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넋을 잃고 나가다가 북명왕이 황실 서재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날 밤 승은백부가 부서졌을 때가 떠올라 황급히 인사를 건넸다.승은백이 떠나자 사여묵이 서재에 들어가자 황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승은백부에 대한 분노를 삭인 뒤 사여묵에게 말했다. “예의 차릴 필요 없다. 앉거라.” “네.” 사여묵은 의자에 앉았다. “저보고 밖
노주에는 영락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영락루에 소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귀족이었다. 하지만 영락루의 왼쪽 모퉁이에는 난잡하고 텅 빈 곳이 있었는데 장사꾼은 매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밥을 파는 사람, 떡을 파는 사람, 완탕을 파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여 음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과 부두의 노동자들이었다. 장사하는 자리 밖에는 몇 개의 낮은 탁자와 걸상이 놓여 있었는데 손님들은 거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끌벅적했고, 어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중 완탕을 파는 노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도 수수하고 평범했다. 한 사람은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30살 좌우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대략 40살 좌우로 보였는데 청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옷차림이 다소 얇아 보였다. 하지만 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내려놓고 회색 저고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냥 놔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지.”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거 참 아쉽군요.”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에게도 초조한 맛을 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남의 자리가 안정되어 승산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 “나는 진성에서 왜 연왕을 돌려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성에서 연왕이 역모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연왕을 풀어준 건 호랑이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
마을은 이미 그들의 사람들로 가득 차 뜨거운 물이며 옷이며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옷들이 상대적으로 짧아 무소위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몸에 맞는 옷으로 한 벌 구해오라고 했다. 사여묵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송석석은 그의 몸에 묻은 흙을 닦아준 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씻어주었다. 사청엽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머리를 감는 비누도 좋아서 잠깐 문질렀더니 머리카락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여묵의 머리카락이 너무 더러워 물을 세 번이나 갈아서야 깨끗해졌다. 그리고 송석석은 천천히 그의 수염을 깎아주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었다. 사여묵은 홀쭉해진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아마 그동안 잠도 못 자고 매일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여묵은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편지를 한 통 보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옷을 사 오지 않아 일단 사청엽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좀 짧긴 했지만 큰 영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사여묵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올 줄 몰랐소. 심 사형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것 같소.”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송석석은 그의 품에 안겨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쌌는데 몸이 밀착되어 전해오는 진실함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근심과 초조함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소.” 그의 뜨거운 입술은 송석석의 이마에 닿았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방금 송석석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평시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여묵도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참아왔던 것이었다.그는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사여묵과 장대성은 식량을 배달하는 행렬을 따라 나갔다. 현지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두 명이나 등장하자 그들은 다소 이상하게 여겼지만, 특별히 묻지는 않았다. 그저 새로 온 사람이라 계속 뒤에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잘 된 대석촌의 사람들과 비하면 사청엽 쪽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무소위와 송석석은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가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사여묵은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송석석과 사부님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식량을 훔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인솔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임시로 고용된 노동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송석석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여묵을 보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거리가 너무 멀어 머리만 보였다. 그녀가 계속 고개를 돌린 이유는 방금 장대성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시만자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아까 혼란을 틈타 두 사람이 우리 대오로 잠입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왕야님과 장대성일 거야.” 잠시 후, 시만자는 무소위를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 “게다가 네 사숙이 얼마나 담담하게 걸어가는지 봐라. 만약 왕야님이 이 안에 들어온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보다 조급해할 것인데 말이야.” 송석석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더니 시만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숙님은 확실히 그녀만큼 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숙은 귀가 밝아 송석석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왠지 돌아가는 길이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들은 금방 밀도로 연결되었고 식량이 쌓여 있는 밀실에 도착했다. 무소위와 송석석은 먼저 나갔고 심청화와 사청엽을 밀실에 남겨두었는데 사청엽은 뒤에 비수가 있어 다리가 나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 있었다. 심청화는 모든 사람들이 두 번째로 나르려고 할 때 명령을 내렸다. “진국장군의 명령이다. 오늘은 그만 나르거라.” 모두들 의아해하
그들은 걸으면서 사방을 끊임없이 살펴보며 다른 곳과 연결된 밀실이 있는지 확인했다.그때 갑자기, 앞쪽에서 채찍이 휘둘리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렸다.그 후, 수령이 분노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규율을 잊었냐? 두리번대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채찍에 맞은 사람은 수령 앞에서 횃불을 들고 있던 사람이었고, 그의 등에 선명한 혈흔이 비쳤다. 그만큼 채찍을 세게 휘두른 것이었다.채찍에 맞은 사람은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바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에 든 횃불을 더 높이 들으며 침착하게 걸어갔다.사여묵과 장대성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군기가 꽤나 엄격하군.’반대쪽에서는 송석석 일행이 이미 사청엽을 끌고 밀실로 들어가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멀지 않은 앞에는 식량을 운반하는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이 밀실은 수레를 밀 수 없기에, 한 사람이 큰 자루 하나씩 어깨에 메고 힘겹게 걸어야 했다.식량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아마 오늘 밤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아니면 며칠 동안 계속해서 운반해야 할 수도 있었다.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밀실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모든 길은 문이 잠겨 있었고, 문을 열어보아야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었다.무소위와 송석석은 이를 조용히 눈여겨보았다. 이 문들이 지도에 표시된 밀실의 위치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일치한다면 지도에 그려진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하며, 이후 탐색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었다.중간에 건장한 남자들이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했지만, 얼마 쉬지 않고 곧바로 다시 일어나 식량을 운반하기 시작했다.그 무거운 식량 자루가 그들의 허리를 펼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들 모두 큰 자루를 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여전히 빠르게 걸어갔다. 그렇게 약 한 시진 정도 걸어갔을 때, 앞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와서 맞이하는 것 같았다.송석석 일행은 앞서 가는 식량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있었고,
사여묵은 오늘 밤 저녁 식사가 개선된 것을 느꼈다. 장대성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구웠지만 겉과 속을 전부 태워버렸다. 먹고 나면 입안이 비린내와 탄내로 가득했다.개선되었다고 말한 이유는 적어도 먹고 나서 기름지지 않고 단순히 역겨운 맛만 남았기 때문이다.오늘 밤, 동굴 안에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 명확히 보였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산으로 올라왔다. 모습을 보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았다.사여묵은 구운 물고기를 먹고 나서 나무 위로 뛰어올라 아래를 주시했다.장대성은 이미 동굴 근처로 기어갔다. 그곳은 그들이 오랫동안 관찰해온 곳으로, 사람들이 대소변을 보는 곳이었다.냄새가 구역질이 날만큼 역겨웠긴 했지만 이곳은 가장 좋은 공격 지점이었다. 그들은 종종 두세 명씩 오면 기습적으로 공격해 옷을 바꿔 입곤 했다.거의 반 시진 동안 기어가던 중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용변을 보러 왔고, 장대성은 즉시 그들에게 다가가 단 몇 초 만에 그들을 제압했다.그는 그들을 한 명씩 어깨에 메고 빠르게 산 위로 향해 돌아왔다. 사여묵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그 옷으로 갈아 입은 후, 그들의 혈점을 풀어주었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목을 조르고 몇 대를 때리자 두 사람은 힘없이 쓰러졌다.사여묵은 그들의 검은 옷을 입었는데, 꽤나 따뜻했고 그 사람의 몸집이 꽤 컸기에 외투로 입으니 딱 맞았다.장대성은 칼을 그들의 앞에서 흔들었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들은 식량을 운반하러 가는 일이었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식량은 석달에 한 번씩 운반되었는데, 마을에서 경작한 양이 부족해 외부에서 운반해 와야 한다고 덧붙였다.왜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냐고 묻자, 그들은 식량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상위에서 지시한 대로 신비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들이 누구의 병사인지 물었을 때,
그 날, 사청엽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농장에 왔다. 그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장, 식초, 소금, 설탕 등의 물자를 실은 마차가 도착했다.이것들은 새로 추가된 것들이었고, 식량은 이미 이전에 농장으로 보내졌다.이 곳의 경비는 그다지 삼엄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무종은 낮에도 조용히 지붕 위에 올라 농장 안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잠시 후 청엽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밤부터 작업을 시작하라."농장쪽 뿐만아니라 다른 출구에서도 사람들의 활동이 잦아졌다.무소위는 처음엔 밖에서 감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나누어 활동하기로 하자 차라리 지하도로도 진입하여 상황을 조사하고, 지도에 표시된 대로인지 확인해보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가장 좋은 방법은 이 노주에 정말 오천 병력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는 대담한 계획이 있었다. 매산에서는 또다른 무리들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며칠 내로 다양한 신분으로 노주에 들어올 것이었다.사여묵은 그의 유일한 직계 제자였기에 이번에는 그도 약간 당황한 상태였다. 만약 사여묵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그래서 그는 사형을 시켜 매산의 여러 문파에 편지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노주에 인원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편지였다.그가 당황한 주된 이유는 사여묵이 일을 매우 잘 처리하는 사람이었기에, 실종된 후 그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는 것이 비정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노주로 출발하기 전, 그는 노주의 모든 자료를 뒤져보는 와중에 사여묵이 지하도를 감시하며 노주의 군권 소유와 사병의 인원을 확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정말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만약 제자가 노주에서 죽었다면, 최소한 시체를 찾아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노주에 도착한 후, 그는 심청화를 통해 사여묵이 완전한 매화 표식을 남겼
송석석은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사숙을 바라보았다. 사숙이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한 장의 지도 위에 머리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지도 위에 표시된 지하도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지만 입구는 단 네 개뿐이었다.동쪽에 두 개, 서쪽에 한 개, 남쪽에 한 개의 지하도 입구가 있었다. 그러나 대석촌 마을 입구 북쪽에는 하나도 없었다.즉, 유일한 길은 지하도 입구가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네 개의 입구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 속에는 많은 입구가 있다. 그러나 산에서 지하도로 들어가면 결국 네 개의 출구를 통해서만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산 속 어디서 들어가든, 결국 이 네 개의 출구에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 보기도 전에 무소위가 두 번째 지도를 펼쳤다. 손으로 지도를 밀며 손가락으로 그가 표시한 기호들을 하나씩 찍었다.이 마을들에는 모두 입구가 있으며 총 13개의 마을이 있다. 빨리 보고,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어라. 이제 각 대열로 나뉘어 네 개의 출구로 흩어져 그들을 지원하러 가야하니. 나머지 마을은 따로 사람을 보내서 조사할 것이다.”그러자 송석석은 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소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사숙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시자마자 막힌 상황을 깨주셨어요. 대열이 나뉘면 저는 사숙과 함께 가겠습니다.”무소위는 그녀를 보고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나는 안 간다.”“데리러 가는 것도 내가 가야 하겠냐? 이 사람들을 모조리 데리고 왔으면 됐지.”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예, 사숙님. 안 가셔도 됩니다. 그런데 진짜 그 둘이 지하도를 탐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위험에 처했을까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무소위가 그녀에게 물었다.“너희들이 며칠 동안 산을 돌아다녔을 때 혹시 훼손된 매화꽃을 본 적 있느냐?”산에 들어갔다 온 이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발견한 매화꽃은 두 송이뿐이었고, 모두 온전한 상태였다
그는 아마도 며칠 내로 사람들이 식량을 운반해 올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두 명뿐이었기에, 밤이 되면 몰래 그들 틈에 섞여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사람 수가 많으면 오히려 더 번거로울 것이었다.그때 출구를 찾고 한두 명을 잡아 심문한다면 대개는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불지 않는다면 말을 할 때까지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면 됐다.“조금만 더 참자. 최대한 삼 일이면 끝날 테니.” 사여묵이 말했다.“찐빵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이미 배불리 먹은 장대성이 꺼억 트림을 하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밀가루 음식을 못 먹으면 사람은 죽는다고 하던데, 매일 이렇게 고기만 구워 먹으니 기름져서 느끼합니다.""풀 하나 뜯어서 입에 넣고 씹으면서 입맛을 달래라." 사여묵이 손을 뻗어 풀 한 줌을 꺾어 주었다. 이 풀은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 시기가 가장 부드러울 때였다. “자, 빨리 먹게.”“써서 못 먹겠습니다.” 장대성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사여묵의 호의를 거절했다.그가 먹지 않자, 사여묵이 대신 먹었다. 이 풀은 뿌리도 먹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잎에서는 약간 쓴맛이 났지만 입맛을 달래는 데는 꽤 좋았다. 심지어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심선생께서 왕비께 우리가 실종되었다고 편지를 보냈을까요?” 장대성이 물었다.“아마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곳곳에 표식을 남겼으니 대사형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야.” 사여묵은 칼로 작은 구멍을 파고, 먹고 남은 뼈를 뱉어 땅에 묻었다.왕비를 언급하자마자, 사여묵에게 송석석을 향한 그리움이 다시 물밀듯 밀려왔다. “일이 끝나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진성으로 돌아간다." “당연합니다!” 장대성이 말했다.사여묵은 나무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석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그는 송석석이 노주에 있고 심지어 이 산에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산에서의 거리로 보면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긴 했다.
시만자는 송석석이 이전보다 확실히 살이 많이 빠진 듯한 것 같다고 느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는 그녀가 안타까워, 꼭 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대고 말했다. “내 어깨를 빌려줄게. 울면 조금은 나아질거야.”송석석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쳐내더니 급히 일어나 작은 개울을 뛰어넘어 몇 걸음 더 달려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췄다.나무 줄기에는 뚜렷하게 매화꽃이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그 완전한 매화꽃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완전한 꽃 형태라 하더라도, 나무 줄기와 매화 표식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 표식은 확실히 대사형과 몽동이가 발견한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발견하긴 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만자, 너희는 먼저 산을 내려가. 나는 이 산을 조금 더 돌아볼게. 이렇게 흔적을 남겼으니 아마 더 있을 거야.”시만자가 놀라며 송석석의 머리를 한 대 탁 치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는 함께 가고 함께 남는 거야. 가고 싶으면 같이 가고, 머물고 싶으면 같이 머물어."“그치만 식량이 부족하잖아.” 송석석이 말했다.“그럼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면 되지.” 그러자 시만자가 그녀의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말했다. “시경님과 장대성도 그렇게 살아남았을 거야.”송석석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여묵과 장대성이 이 산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가지고 올라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산에는 열매도 별로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끼나 산닭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이 길에서 송석석은 그런 생물들을 꽤 많이 봤고, 서쪽 산 중턱에, 수염이 덥수룩한 두 명의 남자가 작은 동굴에 앉아 갓 구운 야생 토끼를 잡아먹고 있었다.이 두사람의 옷은 이미 더러워졌고, 온 몸엔 기름기가 가득했으며, 머리는 매우 헝클어져 있었다.다행히 얼굴은 마침 오늘 근처에서 발견한 작은 샘에서 씻을 수 있었기에 덜 지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