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왕 부부가 떠나자 승은백부의 하인들이 저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량소와 연유만 화청에 남았고, 승은백도 부인과 함께 노부인을 배웅하러 떠났다.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노부인은 밖으로 나가면서 승은백에게 다시금 량소를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우리 가문에 량소처럼 뛰어난 자가 어디 있더냐? 그는 황제가 친히 책봉한 탐화랑이니 면직도 일시적일 것이다. 지금 첩이 없는 남자가 또 어디 있느냐?“어머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세요.”승은백은 노부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부인보고 노부인을 부축하라고 말할 뿐이였다. 그러고는 량소 품에 안겨 흐느끼는 연유를 보고 짜증이 나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네가 울긴 왜 우느냐? 오늘 네가 군주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그러자 량소가 연유를 감싸며 말했다.“아버지, 어떻게 연유 탓할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도 군주 방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들은 나도 감히 때릴 수 있습니다.”“못난 놈, 닥치거라!”승은백은 그만 화가 치밀어 올라 연유를 향해 소리쳤다. “넌 당장 가서 무릎 꿇거라. 내 명령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그러자 량소가 말했다.“그럴 순 없습니다. 연유의 얼굴을 보십시오. 연유는 이미 그 악독한 여자에 의해 온 몸이 다 상했습니다.”승은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량소의 뺨을 후려갈겼다.“이런 못난 놈, 너는 아직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감이 안 잡히느냐?”여러 번 뺨을 맞은 량소는 결국 분노가 극에 달해 소리쳤다.“그래요. 모두들 나와 연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니 세자의 신분도 포기하고 우린 백부를 떠나겠습니다. 나도 이 작은 백부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그는 말을 한 후 당장 방에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승은백은 의자에 앉아 세자가 짐을 싸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연유가 세자를 말리던가?” “아니요. 오히려 세자와 함께 짐을 쌌습니다.” 승은백은 눈을 감고 북명왕비
량소는 정착하자마자 북명황실을 규탄하는 글을 썼다.랑소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학생 열여 명을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 온 학생은 그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조차도 그가 쓴 글을 보고 놀라서 일이 있다는 저마다의 핑계로 재빨리 자리를 떴다.량소는 어리둥절해서 급히 뒤쫓아가 그들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너희는 왜 북명황실이 사람을 괴롭히는 걸 뻔히 보고서도 나를 돕지 않느냐?”그 학생은 성이 무 씨고, 이름은 무삼랑이다. 그는 작년에 국자감에 입학해 량소를 존경해 왔다. 하지만 그건 량소가 홍등가의 여인을 첩으로 맞기 전에 일이고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량소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량소가 쓴 글 속엔 남강을 수복한 친왕을 규탄하는 듯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북명왕이 연유라는 여인을 경시하는 내용들이었다.무삼랑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이 글이 발표되는 순간 량소가 세상 사람들에게 꾸짖음을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이 일에 엮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몸가짐이 바르면 말하지 않아도 따르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말을 해도 따를 수 없느니라.”량소의 질문에 무감랑은 이렇게 대답하고 떠났다.그러자 량소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난 황제폐하께서 직접 책봉한 탐화랑인데 몸가짐이 바르지 않을 리가 있나? 권세에 빌붙어 아부나 하는 것들이라고! 예전엔 그들이 기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북명왕의 명성을 이렇게나 두려워하다니.’량소는 화가 나 찻집에서 물건을 부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지 호통을 쳐도 찻집 주인은 차가운 얼굴로 그에게 배상을 요구했다.북명황실에서 사여묵이 관아로 돌아간 후 혜 태비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송석석이 문안드리러 오자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석석아, 그 연유라는 여인은 어떻게 된 것이냐? 진정 장공주의 서녀란 말이냐?”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어머님, 모두 사실이옵니다. 그리고 고청우.. 그러니까 연
송석석은 만자에게 사람을 보내 량소를 감시하게 했다. 탐화랑이 노부인의 보살핌을 받아 여전히 패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들고 국자감으로 가 황제에게 제출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국자감에선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국자감의 사람들이 인재를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분개하여 한림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으려 하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기만 하면 피하기 바빴다. 황제께서 직접 면직을 선포한 탐화랑이 첩을 들여 아내를 냉대한 것도 모자라 백부를 떠나 세자까지 포기했다는 소문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게다가 그가 상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내의 돈으로 홍등가의 여인을 데리고 나온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욕하 바빴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꺼려했다. 량소는 며칠을 계속 뛰어다녔으나 성과가 없자 분노가 극에 달했고 시여묵의 압박 때문에 자신과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속으로 분해서 술을 잔뜩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며 마구 소리쳤다. “황권은 권세만 지켜주는구나! 사여묵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 군공을 믿고 멋대로 행패를 부리는데 어쩜 나서서 막는 사람 한 명 없느냐? 조정의 문무백관은 모두 겁쟁이인 것이냐?!”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 심한 말을 하자 불과 3일 만에 돌풍처럼 온 진성을 휩쓸어 결국 조정의 문무백관들까지 다 알게 되었다. 그 말에 탐화랑이 안하무인격으로 잘난 체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상주문이 승상에게로 날아왔다. 묵 승상은 이 일을 숨기지 않고 황제에게 바로 알렸다. 그러자 황제가 사여묵에게 물어 그날의 일을 알게 되었다. 란이는 황제의 사촌 여동생이다. 황제는 사촌 여동생이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철이 들어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녀에게 그렇게 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연유의 신분이 장공주의 서녀라는 사실에 황제는 이상을 느꼈다.연유의 정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전북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시오? 이 혼인은 폐하의 어명이오. 더군다나 이방이 들어온다고 한들, 서로 다른 별채에 머물 텐데, 뭐가 걱정이오? 이방은 안살림에 관심이 없소. 또한 그대의 권한을 빼앗는 일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 이방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겠소?”“권한이요? 제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십니까?”송석석이 반문했다. 장군부(將軍府: 장군의 집) 살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한테 들어가는 약값만 해도 매달 수십 냥(两: 화폐 단위)이었고, 그 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들고 온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이 집안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헌신한 대가가 겨우 이거라니, 정말 황당했다.반면, 전북망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됐소. 더 말하지 않겠소. 본래 통보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그대가 허락하든 하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오.”그 말을 끝으로 전북망은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석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가씨.”보주(寶珠)가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장군님도 참 너무하세요.”“됐어, 이렇게 된 이상 움직이자.”송석석이 차갑게 눈빛을 굳히며 보주를 쳐다보았다.“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는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지. 일단 가서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올 때 들고 온 지참금 목록을 가지고 와 봐.”“지참금 목록은 왜요?”보주가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답했다.“바보야. 계속 이 집에 머물 거야?”그러자 보주가 이마를 감싸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직접 예비하신 거잖아요. 어르신도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가씨가 잘 살길 바라셨는데요.”부모님의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송석석의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았다. 그녀를 포함해 자식이 여섯이나 됐지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알겠어.”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아가씨!”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
노부인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이제 겨우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어차피 폐하께서 정하신 혼사, 무를 수는 없잖니. 앞으로 두 사람은 밖에서 나랏일을 하고, 너는 내실 관리하면서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나쁘지 않죠.”송석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명색이 장군님이신데,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노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그게 무슨 말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인인데,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조정(朝廷)의 대신, 나랏일 하는 관리(官員)다. 그런 분을 어떻게 첩으로 앉힐 수가 있겠니? 당연히 평처로,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지.”송석석이 대답했다.“당연히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요? 조정에 그런 규칙도 있었습니까?”노부인이 다소 냉담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석석아, 너 마음이 넓은 아이였잖아. 장군부에 시집왔으면, 장군부의 며느리 답게 굴어야지. 병부(兵部: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나라 부서) 심사에서도 이방 장군이 북망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 발표됐어. 너는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어 앞으로도 쭉 내실 관리를 해주면 돼. 그럼 언젠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거야.”송석석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노부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사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내실 담당은 너였잖니?”송석석이 말했다.“아니죠. 내실 담당은 원래 큰형수님의 소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큰형수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잠시 돌봤지만, 이젠 괜찮아졌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죠. 내일 장부 맞춰서 인수인계 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러자 큰형수라 불린 여인, 민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나 아직 다 회복 못 했어.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잘해왔으니, 앞으로 내실 관리는 네가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