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565 챕터

제311화

눈이 이틀 동안 내리다 그쳤다. 그러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정원은 온통 눈으로 덮였지만, 하인들이 치워서 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한창인 매화는 두꺼운 눈에 덮여 있었다. 한 번 툭 건드리면 눈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꽃들도 날아다녔다.눈 속에서 흩어지는 붉은 꽃을 바라보던 송석석은 서우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서우는 두 개의 조약돌을 찾아 눈사람의 눈으로 사용했다. 투박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송석석은 눈사람에게 두꺼운 망토를 입히고 모자까지 씌웠다. 멀리서 보면 진짜 사람이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심청화는 이미 화판을 펼쳐두고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활짝 웃는 송석석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이 그림을 사문에 보내줄 생각이었다.음력 12월 20일, 대혼이 다가오면서 송석석은 점점 더 바빠졌다.몇 달 전에 주문한 혼례복이 마침내 도착했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옷이었다. 외투는 진홍색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무거워 보였지만, 매우 가볍고 부드러웠다. 혼례복에는 금실로 구름과 물결무늬를 수놓았고 그렇게 일품 내명부의 예복이 완성되었다.머리에 쓸 비단 장식은 청금색이 어우러져 있었고 거기에 금실로 짠 구름과 용의 문양이 있었다. 봉황관은 청금색으로 되었고 푸른색과 붉은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봉황관 뒤에는 부채 모양의 연청황색 띠가 달려 있었고, 끝부분이 살짝 올라가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겨울에 혼례를 올리기 때문에 혼례복을 맞출 때, 좋은 가죽과 여우 털을 사용해 붉은색 망토를 하나 더 만들었다. 가죽 바깥에는 구름 비단을 덮어 꿰맸고, 꿰매기 전에 문양을 수놓았다.망토에는 큰 모란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이는 부귀와 번영을 상징했다.혼례는 일생에 한 번뿐인 예외적인 행사이므로, 용 문양과 봉황 문양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란 문양 외에도 봉황 문양이 수놓아져있었던 것이다.송석석이 혼례복을 입고 나서자, 모든 사람이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보주가 그녀에게 화장을 해주었다.보주가 화장을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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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이제 사흘 남았지만, 사부와 사제들이 아직 오지 않아 송석석은 몹시 초조했다. 그녀는 심청화에게 물었다. “사부님께 비둘기 편지를 보내셨나요? 언제쯤 도착하실까요?”조각칼을 들고 무언가를 조각하던 심청화가 뭐가 떠오른 듯 것 같았다.“아, 네가 아니면 나도 깜빡할 뻔했구나. 사부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 네 결혼식에는 오지 못한다고 네가 나중에 시간 될 때 남편과 함께 매산에 찾아오면 된다고 하셨다.”“안 오신다고요?” 송석석은 크게 실망했다. “왜요? 원래는 오신다고 하셨잖아요?”심청화는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사부님은 요즘 들어 몸을 거의 움직이려 하지 않으셔. 누워 있을 수 있으면 절대 앉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절대 서지 않으시지. 특히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더 게을러지셔. 그래서 그냥 오지 않기로 하신 거야. 나중에 네가 찾아뵈면 된다.”“사부님이 아니더라도 사형들과 사제들은요? 그들은 올 수 있잖아요.”“사부님이 오지 않으시니, 그들도 당연히 오지 않지. 너는 열다섯 살에 매산을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자연히 소원해졌을 거야. 너를 기억해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수백 리 길을 달려 너의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는 아니야.”“소원해졌다고요?” 송석석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심청화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조각하며 말했다. 서우를 위해 만들고 있는 인장이었다. 그는 서우와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너도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사부님께 말하지 않았잖아.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돌아가지 않았으니, 너에게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지.”송석석은 깊은 상실감을 느꼈지만, 심청화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자신이 무정하게 굴었던 게 사실이었다.오랜 세월 동안 돌아가지 않았고, 서신도 몇 번밖에 보내지 않았다. 정작 도움을 청할 때가 돼서야 서신을 보내 사부님을 찾았으니, 사형과 사제가 나선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사부님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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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음력 12월 22일, 심청화는 정말로 떠났다.송석석은 그의 옷깃을 붙잡고 대문까지 배웅했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고, 날은 흐렸다. 다시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사형마저 떠나니, 이제 결혼식 날에 눈만 안 내리길 바랄 뿐이었다. 꽃가마가 잘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외에 다른 큰 기대는 없었다.심청화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금점에 너를 위한 장신구를 맞췄으니, 사람을 보내서 가져가도록 해라. 돈은 이미 지불했고, 영수증은 아저씨께 맡겨두었다.”“그럼, 집사더러 다녀오게 할게요.” 마부가 그의 말을 끌어오는 것을 본 송석석은 마음이 아팠다. “이리도 급히 떠나야 하나요? 이틀만 더 기다릴 수는 없어요?”“안 된다, 중요한 일이다.” 그는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다… 너도 매산에 돌아갈 거라며?”“네!” 송석석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조심하세요.”“알았다, 그만 배웅하고 돌아가거라.” 채찍을 받은 심청화는 말에 올라타 고삐를 당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돌아가거라.”송석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싫습니다.”심청화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사형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송석석은 마음속 깊은 상실감에 젖어 들었다. 다들 오기로 해놓고 왜 갑자기 오지 않겠다는 걸까? 그녀는 완전 저기압이었다.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진복에게서 금점의 영수증을 받아 보주와 함께 사형이 맞춘 장신구를 찾으러 갔다.금점은 꽤 큰 가게였다. 두 개의 점포를 연결해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가게 이름은 ‘금루’였다. 금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보석들도 팔고 있었다. 금루의 디자인도 괜찮았지만, 금경루에는 비길 수 없었다.불과 몇 년 전에 문을 연 금루는 금경루의 이름을 따라가려는 듯한 의도가 보였지만,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니 배후의 세력이 강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수증을 1층의 점원에게 내밀었고, 점원은 차를 내어주며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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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그날 송석석은 전북망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왕청여가 전북망에 대해 꽤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전북망이 그녀의 지참금을 노렸다고 말했더라면, 왕청여는 오히려 송석석을 원망하고 의심하며, 그녀가 일부러 비방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내 그 어리석은 딸이 승상부인이 묻자마자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이 혼사를 수락해 버렸어요. 게다가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혼사가 아니란 것도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왕표가 북명군을 장악하게 되어 황제의 뜻은 전북망이 왕씨 가문의 딸과 혼인하여 왕표가 전북망을 승진시키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평서백부가 이를 거절한다면, 북명군의 장군은 교체될 것이어서 쇠락해 가고 있는 평서백부로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그래서 그날 전북망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셔서 청여는 아가씨가 전북만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판단해 앙심은 품지 않을 겁니다.”얼핏 들으면 논리적이지 않지만, 송석석은 이해할 수 있었다.그날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단지 왕청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가 전북망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북망이 그녀의 지참금을 노렸든 아니든,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을 알았다.따라서 그날 모녀는 전북망의 성품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송석석이 전북망에 대해 앙금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마음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만약 앙금이 남아있다면 그녀를 비방했을 것이고, 마음이 있었다면, 적대감을 드러냈을 것이다.하지만 두 가지 모두 없었기에, 왕청여는 안심할 수 있었다.그날 그녀는 왕청여의 의도를 알았기에 일부러 말을 아꼈던 것이다.평서백부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지참금을 노린 장군부는 아가씨를 내쫓으려고 계획했지만, 전북망은 이를 반대하며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이후 이방이 서신으로 지참금의 절반을 남기도록 지시하자, 전북망은 그때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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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찻집을 떠난 송석석은 그만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왕청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소환의 말을 믿었을까? 전소환이 왜 그런 이야기를 꾸며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날 혜 태비의 상설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전소환은 사여묵이 마음에 들었다. 하여 사여묵의 측비로 들어앉으려 했다.화가 난 왕청여가 쳐들어 와 난리를 피우면 사여묵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혹시라도 믿게 된다면 송석석에 소홀해지거나 아예 등 돌릴 수도 있었다.전소환은 적어도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왕청여는 좋게 말해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투박하고 거칠어서 쉽게 영향을 받아 선동되기 쉬웠다.장군부는 이제 진정한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왕청여와 이방,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었다.그날 그녀는 오해를 피하고 싶지 않아서 왕청여와 대면했지만, 왕청여의 마음을 간파한 후에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만약 왕청여가 전소환의 믿었다면, 그냥 믿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와 시비를 걸지 않는 한, 알아서 하도록 두면 될 일이었다.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보주는 화가 나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보주는 분노하고 있었다.“전씨 가문은 대체 무슨 병에라도 걸린 건가요? 이미 이혼한 지 오랜데도 왜 자꾸 얽히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그들과 다시는 겸상하지 않을 텐데, 전소환의 야비함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북명왕의 측실이 되고 싶은 것이 분명합니다.”송석석은 그녀의 작은 코를 살짝 눌러주며 말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데, 왜 네가 이리도 화 난 것이냐? 화는 네 몸만 상할 뿐이다.”“왜 화내지 않으세요? 아가씨는 불같은 성격이시잖아요!” 보주는 속상한 듯 말했다. “예전에 매산에서 누군가가 아가씨를 건드리거나 험담을 하면 반드시 가서 따졌잖아요.”매산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은 정말로 울적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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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집안사람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송태공이 자제들을 불러와 그들 노비들을 데려왔다.고위급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결혼식 당일에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전에 친인척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이후에는 사흘 동안 잔치를 열어 백성들이 함께 축하하게 한다. 하지만 이번은 두 번째 결혼이라, 송석석은 노파를 불러 머리를 손질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묘의각의 여인에게 부탁하여 머리를 올리기로 했다.사부님과 사제들이 오지 않기로 해서인지, 송석석은 식전 의식들에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북명왕과의 혼인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이고 모든 일을 척척 알아서 해내어 남편이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해도, 친정에 사람이 없으니 썩 내키지 않았다. 전북망에게 시집갈 때처럼 아쉬워하거나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가족을 떠나는 것도 담담하기만 했다.결혼을 앞두고도 우울해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보주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양마마를 찾아갔다. “마마, 아가씨께서 이렇게 기운이 없으시니, 극단을 불러 국공부의 극장에서 연극을 보여드리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을까요?”잠시 생각하던 양마마가 말했다.“급히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진복에게 한번 알아보라고 해라.”보주는 진복을 찾아가 극단을 부르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그 말에 ‘풍경’을 부르려 했는데, 평서백부에서 불러갔구나.”‘풍경’은 진성에서 가장 유명한 극단이었고, 그들이 부르는 유용희봉은 특히 뛰어났다.“풍경이 안 된다면 다른 극단은 어떨까요? 많은 분들이 와서 도와주고 있으니, 한가할 때 극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그러면 다른 극단을 부르도록 하겠다. 풍경 외에도 뮤션이라는 극단이 있는데 실력이 좋더라.”“뮤션이요? 이름이 좀 이상하네요.”“이름이 어떻든, 연극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잠시 멈칫하던 진복이가 덧붙였다. “그런데 뮤션의 연기들은 훌륭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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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송석석은 집안의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그리고 여러 자매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서우 역시 따라가고 싶어 했다. 예전에 거지로 지낼 때, 극장에 몰래 들어가 구걸한 적이 있었다. 연극을 재미있게 보다가 발각되어 얻어맞고 쫓겨났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의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연극이 시작되자 북과 징 소리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송석석도 결혼식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결국,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서우가 그녀 곁에 있는 한 괜찮을 것이다.송석석은 연극 목록을 살펴보고는 있지만 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터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송세안의 아내에게 연극을 고르도록 했다. 그녀는 연극을 즐겼고, 결혼식에 어울리는 연극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결량연이라는 연극을 골랐다. 이 연극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차차 얘기하도 록하고 하자.아무튼 지금 상황과 아주 딱 맞았다.남자 주인공은 장군이었고, 관료 집 공주님과 사랑에 빠졌다. 부모님의 지지와 중매인의 도움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후,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주인공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부인은 집에서 가계를 관리하며 시부모님을 모셨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남자 주인공 역시 전장에서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결국 남자 주인공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후작의 지위를 받는다. 후작에 봉해진 날, 그는 손님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고, 아내의 손을 잡고서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헌신과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말한다. 그는 아내를 맞은 것이 자신에게 있어 이생 최고의 복이라고 한다.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이었다.연극이 중반을 향하자, 자신이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도중에 중단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보았다. 그녀는 송석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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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염구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장군을 손님들께 돌려보내거라. 그리고 내일 저녁 신부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만약 그 전에 장군께서 밖에 나갔다면 모든 경호원의 석 달치 봉급을 삭감하겠다.”염구진의 말에, 경호원들은 눈을 부릅뜨고 사여묵의 발을 주시했다. 그들의 압박에 뒷걸음질 치던 사여묵은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다들 왜 그러는 거냐? 나는 그저 취기가 올라와 술도 깰 겸 바람 좀 쐬러 나왔을 뿐이다.”그러자 염구진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장군께 해장국 한 그릇 올리거라!”한 그릇... 화가 난 사여묵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차가운 심장을 가진 염구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그때 바쁘게 뛰어다니던 노 집사가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추운 날씨에도 바삐 돌아치다 보니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사여묵을 나무랐다.“아이고, 장군, 제발 좀 가만히 계세요. 내일이 결혼식인데 그새를 참지 못해서 처가에 달려가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비웃을 겁니다.”“알았으니 잔소리 그만하거라.”사여묵은 짜증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다시 들어가서 이덕회와 한 잔 더 마시면 되지 않느냐! 그 자식은 두 끼나 먹고도 남들이 다 물러갔는데도 계속 마시고 있구나.”“아이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상서께서는 체면을 세워주려는 겁니다.”노 집사는 할 수만 있다면 사여묵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평소에는 점잖은 양반이 요 며칠 새 아주 딴사람이 되어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다.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그를 바라보던 사여묵은 눈을 찡긋거리더니 다시 손님들을 접대하러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한편, 혜 태비는 한창 여자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들의 경사스러운 일에 그녀가 더 부산을 떨었다. 하루에 다섯, 여섯 벌의 옷을 갈아입고, 머리 장식도 여러 번 바뀌었다.궁에서는 마음먹고 차려입는다고 한들 태비들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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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혜 태비는 이러한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 사여묵이 전장에 나가 있을 때, 혼인 이야기만 꺼내면 늘 단호히 거절하곤 했었다. 서신에 드러난 그의 강경한 태도는 혜 태비로 하여금 아들이 평생 혼자 살겠다고 작정한 줄 알았다.그랬던 그가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송석석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비록 송석석이 재혼이지만, 그가 마침내 결혼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여겼다. 게다가 전북망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아 그녀는 완벽했다. 그래서 혜 태비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혜 태비는 고 씨 유모와 함께 동쪽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온통 붉은 색의 '희' 자가 붙어 있었고, 새 가구들은 붉은 비단으로 덮여 있었으며, 모두 나비매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새로 구매한 물건들 모두 동일한 매듭이었다.심지어 큰 병풍조차도 비단 두르고 매듭으로 마무리되었다.혜 태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은 매듭이라니, 내가 아들을 낳은 건가, 딸을 낳은 건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성스러웠지?’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붉은색과 노란색이었다. 새로 짠 비단 이불이 차곡차곡 침대 위에 쌓여 있고, 복숭앗빛의 커튼이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신부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방안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가구들은 모두 새로 바뀌었으며, 그녀 공간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다만, 고가의 진열품들과 골동품들이 없었을 뿐이었다.전에 그녀에게 사치를 부리지 않도록 암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가 사치를 부리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아닌 그들 둘을 위한 것이었다.방을 한 바퀴 둘러본 혜 태비는 이마를 주무르며 고 씨 유모에게 말했다. “나는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씨 유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하지만 고 씨 유모는 기뻤다. 왕자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켜보니 나에게 효심이 깊은 것 같더구나. 심청화 선생의 그림을 몇 점이나 선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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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곰곰이 생각하던 혜 태비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전장에 있는 사여묵이었지만 혼사를 막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머나먼 거리라는 것을 간과했다.송석석이 혼인하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해도, 그가 이를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전장의 간고함도 역시 알지 못했다. 사여묵은 송 부인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줄 알고 별 걱정 하지 않았고 그저 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하지만 이에 대해 알지 못했던 혜 태비는 송석석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그녀의 완벽한 인생에 흠집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더더욱 복잡했다. 아들이 결혼하는 것은 기뻤지만 그 상대가 송석석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한편, 장군부와 평서백부에서도 내일의 경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이미 세 번째 결혼이었지만, 이전 두 번과는 사뭇 다른 마음이었다. 송석석과 결혼할 때,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삼생에 걸쳐 쌓은 복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결혼식 당일 비록 출정을 명령받았지만, 마냥 설렜다.그 기쁨 속에는 짙은 아쉬움도 있었다. 붉은 베일을 들어 올리자 드러나는 매혹적인 송석석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때 그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송석석을 놓치고 말았다.그 후 이방을 맞이했을 때, 그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방과는 마음이 통했다. 이방이 송석석의 예물을 차지하라는 편지를 보낸 것에 불만을 느끼긴 했지만, 이방과 함께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결혼에 불과했다. 그는 왕청여를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이방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송석석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와 왕청여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바라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지난번 이방과의 결혼으로 재정이 거의 텅 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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