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집안사람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송태공이 자제들을 불러와 그들 노비들을 데려왔다.고위급 가문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결혼식 당일에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전에 친인척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이후에는 사흘 동안 잔치를 열어 백성들이 함께 축하하게 한다. 하지만 이번은 두 번째 결혼이라, 송석석은 노파를 불러 머리를 손질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묘의각의 여인에게 부탁하여 머리를 올리기로 했다.사부님과 사제들이 오지 않기로 해서인지, 송석석은 식전 의식들에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북명왕과의 혼인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이고 모든 일을 척척 알아서 해내어 남편이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 해도, 친정에 사람이 없으니 썩 내키지 않았다. 전북망에게 시집갈 때처럼 아쉬워하거나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가족을 떠나는 것도 담담하기만 했다.결혼을 앞두고도 우울해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보주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양마마를 찾아갔다. “마마, 아가씨께서 이렇게 기운이 없으시니, 극단을 불러 국공부의 극장에서 연극을 보여드리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을까요?”잠시 생각하던 양마마가 말했다.“급히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진복에게 한번 알아보라고 해라.”보주는 진복을 찾아가 극단을 부르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그 말에 ‘풍경’을 부르려 했는데, 평서백부에서 불러갔구나.”‘풍경’은 진성에서 가장 유명한 극단이었고, 그들이 부르는 유용희봉은 특히 뛰어났다.“풍경이 안 된다면 다른 극단은 어떨까요? 많은 분들이 와서 도와주고 있으니, 한가할 때 극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그러면 다른 극단을 부르도록 하겠다. 풍경 외에도 뮤션이라는 극단이 있는데 실력이 좋더라.”“뮤션이요? 이름이 좀 이상하네요.”“이름이 어떻든, 연극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잠시 멈칫하던 진복이가 덧붙였다. “그런데 뮤션의 연기들은 훌륭하지만
송석석은 집안의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그리고 여러 자매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서우 역시 따라가고 싶어 했다. 예전에 거지로 지낼 때, 극장에 몰래 들어가 구걸한 적이 있었다. 연극을 재미있게 보다가 발각되어 얻어맞고 쫓겨났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의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연극이 시작되자 북과 징 소리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송석석도 결혼식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결국,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서우가 그녀 곁에 있는 한 괜찮을 것이다.송석석은 연극 목록을 살펴보고는 있지만 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터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송세안의 아내에게 연극을 고르도록 했다. 그녀는 연극을 즐겼고, 결혼식에 어울리는 연극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결량연이라는 연극을 골랐다. 이 연극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차차 얘기하도 록하고 하자.아무튼 지금 상황과 아주 딱 맞았다.남자 주인공은 장군이었고, 관료 집 공주님과 사랑에 빠졌다. 부모님의 지지와 중매인의 도움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후,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주인공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부인은 집에서 가계를 관리하며 시부모님을 모셨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남자 주인공 역시 전장에서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결국 남자 주인공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후작의 지위를 받는다. 후작에 봉해진 날, 그는 손님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고, 아내의 손을 잡고서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헌신과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말한다. 그는 아내를 맞은 것이 자신에게 있어 이생 최고의 복이라고 한다.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이었다.연극이 중반을 향하자, 자신이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도중에 중단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보았다. 그녀는 송석석이
염구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장군을 손님들께 돌려보내거라. 그리고 내일 저녁 신부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만약 그 전에 장군께서 밖에 나갔다면 모든 경호원의 석 달치 봉급을 삭감하겠다.”염구진의 말에, 경호원들은 눈을 부릅뜨고 사여묵의 발을 주시했다. 그들의 압박에 뒷걸음질 치던 사여묵은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다들 왜 그러는 거냐? 나는 그저 취기가 올라와 술도 깰 겸 바람 좀 쐬러 나왔을 뿐이다.”그러자 염구진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장군께 해장국 한 그릇 올리거라!”한 그릇... 화가 난 사여묵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차가운 심장을 가진 염구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그때 바쁘게 뛰어다니던 노 집사가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추운 날씨에도 바삐 돌아치다 보니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사여묵을 나무랐다.“아이고, 장군, 제발 좀 가만히 계세요. 내일이 결혼식인데 그새를 참지 못해서 처가에 달려가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비웃을 겁니다.”“알았으니 잔소리 그만하거라.”사여묵은 짜증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다시 들어가서 이덕회와 한 잔 더 마시면 되지 않느냐! 그 자식은 두 끼나 먹고도 남들이 다 물러갔는데도 계속 마시고 있구나.”“아이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상서께서는 체면을 세워주려는 겁니다.”노 집사는 할 수만 있다면 사여묵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평소에는 점잖은 양반이 요 며칠 새 아주 딴사람이 되어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다.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그를 바라보던 사여묵은 눈을 찡긋거리더니 다시 손님들을 접대하러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한편, 혜 태비는 한창 여자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들의 경사스러운 일에 그녀가 더 부산을 떨었다. 하루에 다섯, 여섯 벌의 옷을 갈아입고, 머리 장식도 여러 번 바뀌었다.궁에서는 마음먹고 차려입는다고 한들 태비들 볼 뿐
혜 태비는 이러한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 사여묵이 전장에 나가 있을 때, 혼인 이야기만 꺼내면 늘 단호히 거절하곤 했었다. 서신에 드러난 그의 강경한 태도는 혜 태비로 하여금 아들이 평생 혼자 살겠다고 작정한 줄 알았다.그랬던 그가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송석석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비록 송석석이 재혼이지만, 그가 마침내 결혼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여겼다. 게다가 전북망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아 그녀는 완벽했다. 그래서 혜 태비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혜 태비는 고 씨 유모와 함께 동쪽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온통 붉은 색의 '희' 자가 붙어 있었고, 새 가구들은 붉은 비단으로 덮여 있었으며, 모두 나비매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새로 구매한 물건들 모두 동일한 매듭이었다.심지어 큰 병풍조차도 비단 두르고 매듭으로 마무리되었다.혜 태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은 매듭이라니, 내가 아들을 낳은 건가, 딸을 낳은 건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성스러웠지?’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붉은색과 노란색이었다. 새로 짠 비단 이불이 차곡차곡 침대 위에 쌓여 있고, 복숭앗빛의 커튼이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신부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방안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가구들은 모두 새로 바뀌었으며, 그녀 공간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다만, 고가의 진열품들과 골동품들이 없었을 뿐이었다.전에 그녀에게 사치를 부리지 않도록 암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가 사치를 부리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아닌 그들 둘을 위한 것이었다.방을 한 바퀴 둘러본 혜 태비는 이마를 주무르며 고 씨 유모에게 말했다. “나는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씨 유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하지만 고 씨 유모는 기뻤다. 왕자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켜보니 나에게 효심이 깊은 것 같더구나. 심청화 선생의 그림을 몇 점이나 선물했
곰곰이 생각하던 혜 태비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전장에 있는 사여묵이었지만 혼사를 막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머나먼 거리라는 것을 간과했다.송석석이 혼인하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해도, 그가 이를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전장의 간고함도 역시 알지 못했다. 사여묵은 송 부인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줄 알고 별 걱정 하지 않았고 그저 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하지만 이에 대해 알지 못했던 혜 태비는 송석석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그녀의 완벽한 인생에 흠집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더더욱 복잡했다. 아들이 결혼하는 것은 기뻤지만 그 상대가 송석석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한편, 장군부와 평서백부에서도 내일의 경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이미 세 번째 결혼이었지만, 이전 두 번과는 사뭇 다른 마음이었다. 송석석과 결혼할 때,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삼생에 걸쳐 쌓은 복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결혼식 당일 비록 출정을 명령받았지만, 마냥 설렜다.그 기쁨 속에는 짙은 아쉬움도 있었다. 붉은 베일을 들어 올리자 드러나는 매혹적인 송석석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때 그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송석석을 놓치고 말았다.그 후 이방을 맞이했을 때, 그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방과는 마음이 통했다. 이방이 송석석의 예물을 차지하라는 편지를 보낸 것에 불만을 느끼긴 했지만, 이방과 함께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결혼에 불과했다. 그는 왕청여를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이방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송석석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와 왕청여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바라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지난번 이방과의 결혼으로 재정이 거의 텅 비었고
이방은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분했다. “저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말은 그저 일시적 충동이었나요?”전북망은 답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방에게 흔들렸던 건 사실이지만, 스치는 감정이었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이방과 결혼하고, 송석석이 떠난 후, 그는 조금 후회했다. 송세안에게 송석석이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그 순간 그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그렇다고 이방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분명 사랑하고 있었다.남자는 왜 두 여자를 모두 품을 수는 없단 말인가? 많은 남자들이 첩을 두었지만 송석석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는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에 스스로 화가 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송 부인은 이미 죽었고,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송가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어쩌면 그는 당시 자신이 송석석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아에 기댈 친정이 없었기 때문이고 무공이 뛰어나 그와 이방조차도 쉽게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전장을 누비며 많은 공을 세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몬을 공격할 때, 용감하고 결단력 넘치는 그녀를 직접 목격했다. 그녀는 수많은 화살비 속에서도 침착했다. 그 침착함이 연출된 것일지라도 적들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전북망도 그 모습에 압도당했다.여전히 대답이 없는 그를 본 이방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이건 업보에요. 우리가 함께 송석석을 괴롭혔는데, 왜 당신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또 결혼하는 거죠? 게다가 백작부의 딸과 결혼해 왕씨 가문과 연을 맺었으니 이제 당신은 막힘이 나아갈 테죠.”이러한 말들이 불쾌했던 전북망은 짜증스럽게 말했다.“남녀 사이에 업보가 웬 말이요? 나는 송석석을 버렸지만,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았소. 정말로 업보가 있다면, 당신의 업보는 어디에서 비롯됐소? 혹 논분성에서 있었던 일을 잊었소? 녹분성과 송씨 가문의 참사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
평서백부도 매우 분주했다. 왕표가 북명군을 맡고 있는 덕에 요즘 평서백부 댁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내일이 대혼일이었지만, 오늘부터 이미 시작되었다.왕청여가 이혼서를 들고 방씨 가문에서 나올 때 그들은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수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은전을 보태주었다. 심지어 방시원이 전사한 후 받은 위로금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토지도 따로 떼어주었다. 방씨 가문은 무장세가였다. 그들은 그녀가 홀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때 왕청여는 절대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말했기에 방씨 가문은 친정에서 남은 생을 보낼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주었다.왕청여는 그 재산으로 새로운 혼수를 준비했고 많은 물건들은 새롭게 장만했다. 그렇게 총 68개의 혼수 상자가 마련되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간 상자가 64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이혼한 송석석이 궁으로 들어가 얼마나 화려하게 살게 될지는 그녀 일이지만 출가하는 날 만큼은 반드시 송석석에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군부에서 체면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여겼다.듣기로, 심청화는 이미 진성을 떠났고, 송국공부에서는 친인척들만 참석할 거라고 들었다. 그들이 초대하지 않은 것인지, 초대받았지만, 손님들이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가는 모습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오직 그래야만 내일 대혼식 때, 그녀의 체면이 송석석을 능가할 것이다.북명왕은 친왕이기 때문에 직접 맞이하러 오지 않겠지만, 전북망은 직접 올 것이다. 그렇게 왕청여는 또 한 번 송석석을 짓눌렀다.송석석과 경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송석석이 먼저였고 그녀가 뒤에 가는 사람으로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게다가 그녀는 그날 전소환이 와서 한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믿지 말라고 하셨다. 연로한 어머니는 내실 일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일에 대해 잘 모르신다.송석석이 전북
음력 12월 24일, 아침에 눈이 내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차가운 바람은 칼날 같았다. 양마마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오늘 우리 아가씨께서 시집가는 날입니다. 그동안 너무 가혹하게 대하셨으니, 오늘은 맑은 날씨를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앞으로 매일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드리겠습니다."송석석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야 했다. 묘의각의 양인들이 찾아와 그녀의 얼굴을 정돈하고 피부 관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반죽 같은 것을 그녀의 얼굴에 바르고는 조용히 누워 말을 말라고 했다.어젯밤 복잡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그녀는 오늘 침상에 눕혀져 눈을 감고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자꾸만 잠이 몰려왔다.어젯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완전히 단념했다. 스승과 다른 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시만자 또한 그럴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잠시 눈을 붙인 사이, 묘의각 소진이 그녀의 얼굴에 바른 반죽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손 까딱할 필요 없었지만, 잠에서 깨어났고 그저 그대로 누워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맡겼다. 옆에서 거들고 있는 그들은 모두 서른 살 남짓했고 눈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 관리 실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시녀들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유독 즐거워 보이는 서우를 데려욌다. 고모가 아름다운 신부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단다.서우는 고모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서우의 발음이 이제 꽤 많이 유창해진 것 같다.“서우도 친정 사람입니다. 제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요.”송석석은 서우가 보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감정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다. 그녀는 서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고모에게 당연히 친정이 있어. 고모는 지금 아주 기쁘단다. 서우가 좋아하는 아저씨와 함께 우리 이제 궁에서 살게 될 거야. 새 옷으로 입어 볼까? 고모가 한번 보고 싶구나.”"네!" 서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보주는 미소를 지으며 서우와 함께 옷방으로 갔다.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