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 태비는 이러한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 사여묵이 전장에 나가 있을 때, 혼인 이야기만 꺼내면 늘 단호히 거절하곤 했었다. 서신에 드러난 그의 강경한 태도는 혜 태비로 하여금 아들이 평생 혼자 살겠다고 작정한 줄 알았다.그랬던 그가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송석석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비록 송석석이 재혼이지만, 그가 마침내 결혼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여겼다. 게다가 전북망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아 그녀는 완벽했다. 그래서 혜 태비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혜 태비는 고 씨 유모와 함께 동쪽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온통 붉은 색의 '희' 자가 붙어 있었고, 새 가구들은 붉은 비단으로 덮여 있었으며, 모두 나비매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새로 구매한 물건들 모두 동일한 매듭이었다.심지어 큰 병풍조차도 비단 두르고 매듭으로 마무리되었다.혜 태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은 매듭이라니, 내가 아들을 낳은 건가, 딸을 낳은 건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성스러웠지?’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붉은색과 노란색이었다. 새로 짠 비단 이불이 차곡차곡 침대 위에 쌓여 있고, 복숭앗빛의 커튼이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신부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방안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가구들은 모두 새로 바뀌었으며, 그녀 공간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다만, 고가의 진열품들과 골동품들이 없었을 뿐이었다.전에 그녀에게 사치를 부리지 않도록 암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가 사치를 부리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아닌 그들 둘을 위한 것이었다.방을 한 바퀴 둘러본 혜 태비는 이마를 주무르며 고 씨 유모에게 말했다. “나는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씨 유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하지만 고 씨 유모는 기뻤다. 왕자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켜보니 나에게 효심이 깊은 것 같더구나. 심청화 선생의 그림을 몇 점이나 선물했
곰곰이 생각하던 혜 태비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전장에 있는 사여묵이었지만 혼사를 막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머나먼 거리라는 것을 간과했다.송석석이 혼인하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해도, 그가 이를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전장의 간고함도 역시 알지 못했다. 사여묵은 송 부인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줄 알고 별 걱정 하지 않았고 그저 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하지만 이에 대해 알지 못했던 혜 태비는 송석석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그녀의 완벽한 인생에 흠집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더더욱 복잡했다. 아들이 결혼하는 것은 기뻤지만 그 상대가 송석석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한편, 장군부와 평서백부에서도 내일의 경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이미 세 번째 결혼이었지만, 이전 두 번과는 사뭇 다른 마음이었다. 송석석과 결혼할 때,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삼생에 걸쳐 쌓은 복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결혼식 당일 비록 출정을 명령받았지만, 마냥 설렜다.그 기쁨 속에는 짙은 아쉬움도 있었다. 붉은 베일을 들어 올리자 드러나는 매혹적인 송석석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때 그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송석석을 놓치고 말았다.그 후 이방을 맞이했을 때, 그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방과는 마음이 통했다. 이방이 송석석의 예물을 차지하라는 편지를 보낸 것에 불만을 느끼긴 했지만, 이방과 함께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결혼에 불과했다. 그는 왕청여를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이방보다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송석석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와 왕청여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바라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지난번 이방과의 결혼으로 재정이 거의 텅 비었고
이방은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분했다. “저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말은 그저 일시적 충동이었나요?”전북망은 답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방에게 흔들렸던 건 사실이지만, 스치는 감정이었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이방과 결혼하고, 송석석이 떠난 후, 그는 조금 후회했다. 송세안에게 송석석이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그 순간 그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그렇다고 이방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분명 사랑하고 있었다.남자는 왜 두 여자를 모두 품을 수는 없단 말인가? 많은 남자들이 첩을 두었지만 송석석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는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에 스스로 화가 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송 부인은 이미 죽었고,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송가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어쩌면 그는 당시 자신이 송석석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아에 기댈 친정이 없었기 때문이고 무공이 뛰어나 그와 이방조차도 쉽게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전장을 누비며 많은 공을 세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몬을 공격할 때, 용감하고 결단력 넘치는 그녀를 직접 목격했다. 그녀는 수많은 화살비 속에서도 침착했다. 그 침착함이 연출된 것일지라도 적들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전북망도 그 모습에 압도당했다.여전히 대답이 없는 그를 본 이방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그녀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이건 업보에요. 우리가 함께 송석석을 괴롭혔는데, 왜 당신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또 결혼하는 거죠? 게다가 백작부의 딸과 결혼해 왕씨 가문과 연을 맺었으니 이제 당신은 막힘이 나아갈 테죠.”이러한 말들이 불쾌했던 전북망은 짜증스럽게 말했다.“남녀 사이에 업보가 웬 말이요? 나는 송석석을 버렸지만,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았소. 정말로 업보가 있다면, 당신의 업보는 어디에서 비롯됐소? 혹 논분성에서 있었던 일을 잊었소? 녹분성과 송씨 가문의 참사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
평서백부도 매우 분주했다. 왕표가 북명군을 맡고 있는 덕에 요즘 평서백부 댁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내일이 대혼일이었지만, 오늘부터 이미 시작되었다.왕청여가 이혼서를 들고 방씨 가문에서 나올 때 그들은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수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은전을 보태주었다. 심지어 방시원이 전사한 후 받은 위로금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토지도 따로 떼어주었다. 방씨 가문은 무장세가였다. 그들은 그녀가 홀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때 왕청여는 절대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말했기에 방씨 가문은 친정에서 남은 생을 보낼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주었다.왕청여는 그 재산으로 새로운 혼수를 준비했고 많은 물건들은 새롭게 장만했다. 그렇게 총 68개의 혼수 상자가 마련되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간 상자가 64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이혼한 송석석이 궁으로 들어가 얼마나 화려하게 살게 될지는 그녀 일이지만 출가하는 날 만큼은 반드시 송석석에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군부에서 체면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여겼다.듣기로, 심청화는 이미 진성을 떠났고, 송국공부에서는 친인척들만 참석할 거라고 들었다. 그들이 초대하지 않은 것인지, 초대받았지만, 손님들이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가는 모습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오직 그래야만 내일 대혼식 때, 그녀의 체면이 송석석을 능가할 것이다.북명왕은 친왕이기 때문에 직접 맞이하러 오지 않겠지만, 전북망은 직접 올 것이다. 그렇게 왕청여는 또 한 번 송석석을 짓눌렀다.송석석과 경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송석석이 먼저였고 그녀가 뒤에 가는 사람으로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게다가 그녀는 그날 전소환이 와서 한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믿지 말라고 하셨다. 연로한 어머니는 내실 일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일에 대해 잘 모르신다.송석석이 전북
음력 12월 24일, 아침에 눈이 내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차가운 바람은 칼날 같았다. 양마마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오늘 우리 아가씨께서 시집가는 날입니다. 그동안 너무 가혹하게 대하셨으니, 오늘은 맑은 날씨를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앞으로 매일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드리겠습니다."송석석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야 했다. 묘의각의 양인들이 찾아와 그녀의 얼굴을 정돈하고 피부 관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반죽 같은 것을 그녀의 얼굴에 바르고는 조용히 누워 말을 말라고 했다.어젯밤 복잡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그녀는 오늘 침상에 눕혀져 눈을 감고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자꾸만 잠이 몰려왔다.어젯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완전히 단념했다. 스승과 다른 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시만자 또한 그럴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잠시 눈을 붙인 사이, 묘의각 소진이 그녀의 얼굴에 바른 반죽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손 까딱할 필요 없었지만, 잠에서 깨어났고 그저 그대로 누워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맡겼다. 옆에서 거들고 있는 그들은 모두 서른 살 남짓했고 눈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 관리 실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시녀들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유독 즐거워 보이는 서우를 데려욌다. 고모가 아름다운 신부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단다.서우는 고모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서우의 발음이 이제 꽤 많이 유창해진 것 같다.“서우도 친정 사람입니다. 제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요.”송석석은 서우가 보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감정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다. 그녀는 서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고모에게 당연히 친정이 있어. 고모는 지금 아주 기쁘단다. 서우가 좋아하는 아저씨와 함께 우리 이제 궁에서 살게 될 거야. 새 옷으로 입어 볼까? 고모가 한번 보고 싶구나.”"네!" 서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보주는 미소를 지으며 서우와 함께 옷방으로 갔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서우가 다가왔다.몇 달 동안 키가 훌쩍 자란 서우는 맞춘 옷이 몸에 딱 맞았다. 빨간 비단에 토끼가 수 놓여 있었고 겉에는 가죽 안감을 덧댄 작은 망토를 걸쳤다. 망토의 모자는 겉은 검고 안은 붉은 색으로 되어 뒤로 늘어뜨리면 협객이 다름없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아증맞은 리본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어쩜 이리 귀엽고 잘생겼을까?” 송석석은 서우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방금전 시술 때문에 얼굴이 조금 따끔거렸지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모가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정말 멋지구나.”서우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이모, 그런 말은 어린애들한테나 하는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입니다.”“어린아이가 아니라니? 고모에게 너는 언제나 어린아이란다.” 그를 품에 안은 송석석은 가족의 온기를 느꼈다.옆에 있던 소진도 미소를 지었다.“서우 도련님, 참 잘생겼네요. 나중에 커서도 반드시 용맹하고 늠름한 사내대장부가 될 겁니다.”평소 자신을 사내대장부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서우는 몰래 간직하고 있던 사탕 하나를 소진에게 선뜻 내밀었다.“이모, 사탕 드세요. 고생하셨어요.”사탕을 한입에 넣은 소진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 사탕 너무 달콤합니다.”보주는 서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제 우리 밖에 나가서 놀아요. 아가씨께서 혼례복을 입으면 다시 보러 옵시다.”신시에 혼례물이 나갈 예정이었고, 혼례물이 나간 뒤 세 경이 지나면 신부가 출발할 예정이었기에, 지금은 혼례복을 입고 화장을 해야 했다. 결혼식은 유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겨울철이므로 유시쯤이면 왕부에 도착해 하늘과 땅에 예를 올려야 하니,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지만 눈 오는 날씨이기에 일찍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다행히도 양마마의 기도가 통했는지, 정오가 되자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비추고 대지가 눈부시게 반짝여 너무 아름다웠다.정오가 지나자, 송석석도 혼
양마마가 묘의각의 여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식사가 차려졌다. 그들은 미리 배를 불려야 했다. 신시 이후가 되면 신부는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췬 뒤에도 묘의각의 여인들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그중 한 명이 왕부까지 동행하였다. 합근주를 마신 후, 신랑과 신부는 차를 올리는 예를 갖추어야 했기에, 한 명이 신부의 화장을 고치기 위해 따라가야 했다. 왕부에는 손님이 많아 자주 차와 술을 권해야 했으므로, 화장이 쉽게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신시가 되어 혼수가 출문했다. 징이 울리고 경쾌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송씨 가문의 자제들이 직접 혼수를 메고 길을 나섰다. 육십사 가마의 혼수에는 값지고 귀중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중 하나는 심청화의 그림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평서백부와 국공부는 두 개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그들도 신시에 혼수를 내보냈다.왕청여도 가례 복을 입고 혼수가 출문한 후, 유시에 전북망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국공부의 혼수가 출문하였는지 확인하게 하고, 육십사 가마가 맞는지 세어 보게 하였다. 시녀 유월이가 나가서 세어보니, 육십사 가마가 맞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국공부의 공주가, 혼수는 나 같은 백부의 딸보다 못하구나.” 그녀는 송석석의 혼수가 얼마나 값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왕청여가 조금 우쭐해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징과 북을 울리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남 시씨 가문에서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금사오십필, 금상옥 머리장식 세 세트, 옥여의 한 쌍, 용봉 팔찌 십팔 쌍을 더합니다.”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다니, 가짜겠구나?’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려 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청옥방에서 국공부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현철검 두 자루, 장창 한 자루, 금옥도 한 자루, 금은보석 한 상자.”그 소리는 내공을 사용한 듯, 징 소리보다 더 높
적염문 후에는 진성에 위치한 약왕당이었고, 각종 귀중한 약재와 백년삼, 설연 등을 보내왔다. 약왕당의 보고 후에는 동해파였으며, 동일하게 희귀한 보배를 보내왔고, 그중 동주가 가장 귀한 것에 속했다. 그들은 마치 적염문을 압살하려는 듯했고, 동주 외에도 각종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가 무려 세 개가 있었다.왕청여는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이 떨려왔고, 송석석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온몸을 떨며 예단을 거의 듣지 못하고 문파의 이름만 들릴 뿐이었다. 많은 문파들이 그녀와 전혀 접촉이 없는 곳이었는데, 어떻게 예물을 보내올 수 있단 말이지? 사부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이 틀림없다. 마침내 예닐곱 문파를 더 들은 후, 송석석은 다섯 사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종문 문주께서 따님을 시집보내시니, 혼수 108 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바치겠나이다.”그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고, 인근 10개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종문에서 딸을 시집보낸다고? 송석석이 만종문의 제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냥 제자는 아니지 않은가? 이 혼수의 무게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주었다. 왕청여는 묘의각의 낭자에게 화장을 부탁했는데, 그녀의 흰 피부에 주근깨가 몇 개 있었기 때문에 화장은 조금 두꺼웠지만, 연지도 발라주니 화장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여러 거리를 뒤흔드는 외침을 들었을 때, 화장을 한 그녀의 낯빛이 심하게 어두워졌다. 뭐라고? 만종문에게 혼수 108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보내다니? 이럴 리가 없다, 황금 만 냥이면 무게가 얼마나 되는데, 게다가 그렇게 많은 혼수라니, 이는 가짜임에 틀림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게 얼마나 천 탈의 금이냐고요? 어떻게 들어 올리나요? 가짜임이 틀림없다.“유월, 빨리 나가서 살펴보거라.”그녀가 소리쳤다. 국공부에서 송석석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아, 사부님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