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마마가 묘의각의 여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식사가 차려졌다. 그들은 미리 배를 불려야 했다. 신시 이후가 되면 신부는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췬 뒤에도 묘의각의 여인들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그중 한 명이 왕부까지 동행하였다. 합근주를 마신 후, 신랑과 신부는 차를 올리는 예를 갖추어야 했기에, 한 명이 신부의 화장을 고치기 위해 따라가야 했다. 왕부에는 손님이 많아 자주 차와 술을 권해야 했으므로, 화장이 쉽게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신시가 되어 혼수가 출문했다. 징이 울리고 경쾌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송씨 가문의 자제들이 직접 혼수를 메고 길을 나섰다. 육십사 가마의 혼수에는 값지고 귀중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중 하나는 심청화의 그림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평서백부와 국공부는 두 개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그들도 신시에 혼수를 내보냈다.왕청여도 가례 복을 입고 혼수가 출문한 후, 유시에 전북망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국공부의 혼수가 출문하였는지 확인하게 하고, 육십사 가마가 맞는지 세어 보게 하였다. 시녀 유월이가 나가서 세어보니, 육십사 가마가 맞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국공부의 공주가, 혼수는 나 같은 백부의 딸보다 못하구나.” 그녀는 송석석의 혼수가 얼마나 값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왕청여가 조금 우쭐해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징과 북을 울리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남 시씨 가문에서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금사오십필, 금상옥 머리장식 세 세트, 옥여의 한 쌍, 용봉 팔찌 십팔 쌍을 더합니다.”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다니, 가짜겠구나?’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려 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청옥방에서 국공부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현철검 두 자루, 장창 한 자루, 금옥도 한 자루, 금은보석 한 상자.”그 소리는 내공을 사용한 듯, 징 소리보다 더 높
적염문 후에는 진성에 위치한 약왕당이었고, 각종 귀중한 약재와 백년삼, 설연 등을 보내왔다. 약왕당의 보고 후에는 동해파였으며, 동일하게 희귀한 보배를 보내왔고, 그중 동주가 가장 귀한 것에 속했다. 그들은 마치 적염문을 압살하려는 듯했고, 동주 외에도 각종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가 무려 세 개가 있었다.왕청여는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이 떨려왔고, 송석석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온몸을 떨며 예단을 거의 듣지 못하고 문파의 이름만 들릴 뿐이었다. 많은 문파들이 그녀와 전혀 접촉이 없는 곳이었는데, 어떻게 예물을 보내올 수 있단 말이지? 사부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이 틀림없다. 마침내 예닐곱 문파를 더 들은 후, 송석석은 다섯 사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종문 문주께서 따님을 시집보내시니, 혼수 108 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바치겠나이다.”그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고, 인근 10개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종문에서 딸을 시집보낸다고? 송석석이 만종문의 제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냥 제자는 아니지 않은가? 이 혼수의 무게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주었다. 왕청여는 묘의각의 낭자에게 화장을 부탁했는데, 그녀의 흰 피부에 주근깨가 몇 개 있었기 때문에 화장은 조금 두꺼웠지만, 연지도 발라주니 화장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여러 거리를 뒤흔드는 외침을 들었을 때, 화장을 한 그녀의 낯빛이 심하게 어두워졌다. 뭐라고? 만종문에게 혼수 108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보내다니? 이럴 리가 없다, 황금 만 냥이면 무게가 얼마나 되는데, 게다가 그렇게 많은 혼수라니, 이는 가짜임에 틀림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게 얼마나 천 탈의 금이냐고요? 어떻게 들어 올리나요? 가짜임이 틀림없다.“유월, 빨리 나가서 살펴보거라.”그녀가 소리쳤다. 국공부에서 송석석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아, 사부님은
혼수가 이미 나왔기 때문에, 반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혼인이 성사될 것이다. 사여묵은 이전에 신부를 맞이하겠다고 했으니, 그녀가 울어서 망가진 화장을 또다시 묘의각의 낭자에게 부탁해야 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사부님과 첫째 사형의 어깨를 두드렸고, 둘째 사저는 도무지 칠 수가 없어서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둘째 사저, 저는 사부님과 사형, 사저들이 안 오는 줄 알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그러자 둘째 사저 평무종은 웃으며 그녀의 눈물을 서툴게 닦아주었다. 사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고,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졌던가. 평무종은 가슴이 미어지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이제 울지 말자. 오늘은 가장 기쁘고, 가장 예뻐야 하는 날인데 이렇게 울어서 되겠어?”평무종은 몸매가 늘씬하고 용모가 수려했으며, 언뜻 보기에는 대갓집 규수처럼 보였다. 그녀의 경공은 매우 뛰어났고, 은폐와 위장술은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한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녀는 현재 무림 제일의 정탐원이며, 만종문의 둘째 사저일 뿐만 아니라 운익각의 각주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는 운익각을 부각주에게 맡겼고, 그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익숙했다. 오늘 온 사람도 운익각 사람이었고, 그녀가 단독으로 운익각 이름으로 혼수를 보낸 것이다. 묘의각의 낭자도 큰판을 본 셈이며, 갑자기 무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왔고, 게다가 보통 강호의 사나이들처럼 옷차림도 평범하지 않고 화려하게 입었기에 처음 본다면 호족 대가인 줄 알았을 것이다. 소진은 송석석의 화장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여전히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옆에 서서 그녀가 이야기를 다 끝내고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송석석은 눈물을 닦아내고, 사숙이 첫째 사형의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또 한바탕 억울한 듯 말을 꺼냈다. “사숙, 저는 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겁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벌하시면 안 됩니다.”
이때, 진복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꽃가마가 곧 도착하니 서둘러 화장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송석석은 사부님과 사형들을 만나 몇 마디밖에 나누지 못하고 바로 떠나려 하니, 섭섭한 마음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한 시진만 더 늦출 수는 없느냐?”“안 됩니다 아가씨, 반드시 길시에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그러자 평무종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가거라, 가서 화장을 잘 고치고. 이렇게 기쁜 날에 울고불고하는 것이 말이 되니? 우리는 널 시집보내러 온 거고, 곧 너와 같이 갈 거야. 북명 황실에 우리의 자리도 있을 거고 혼인 잔치에도 참석할 거다.”송석석은 눈을 깜빡였고,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한 채로 말했다. “그 말은 왕께서 여러분이 온 걸 알고 계셨다는 건가요?”“그래, 하지만 왕께서는 네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셔.”그렇다면 왕이 알고도 보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송석석은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자신을 축복하러 온 문파 장문들과 제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려 했다. “됐다, 가서 화장을 고치거라.”임양운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송석석은 돌아서며 속으로 사부는 정말 예의 하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화장을 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누군가 다급하게 와서 보고했다. “신부를 맞이하는 북명왕의 행렬이 도착했습니다. 왕께서 친히 맞이하러 오셨습니다!”사숙 무소위는 이런 호들갑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말했다. “뭐지? 장가를 가서 직접 신부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그런데 왜 이런 호들갑을 떠는 것이지? 그가 감히 오지 않으면, 내가 그의 귀를 잘라 버리겠다!”사숙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본 문지기는 순식간에 황당한 얼굴로 물러났다. 왕청여는 현재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전북망이 직접 와서 아내를 맞는 것이고, 친왕인 사여묵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여묵이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을 데리고 일찍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
송석석은 무의식적으로 사부의 손을 잡았지만, 다른 손 하나가 다가왔다.그 손바닥은 넓고 길었으며, 굳은살이 가득했고 손톱은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바닥에서 조금 위로 가면, 용무늬가 수놓아진 예복이 있다는 것이다. 친왕의 예복은 용무늬를 사용해도 되고, 조복도 가능하지만 오조구룡 무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사여묵, 그녀의 남편이었다.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손바닥을 뻗었고, 그는 손을 잡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는 손바닥을 모아 그녀의 손을 잡았고, 몇 번이고 손을 돌려 위치를 잡은 후 마침내 그녀의 열 손가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송석석은 가슴이 북처럼 뛰었고, 그 소리에 고막까지 떨려왔다. 그녀가 가슴이 뛰지 않았다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상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심지어 현기증까지 느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여묵은 그녀의 손을 잡고 꽃가마로 향해 걸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규칙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듯했다.신부의 시중을 드는 자가 등에 업고 꽃가마로 가는 것이 규칙에 맞았지만, 그런 규칙은 개나 줘버리고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란히 걸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그는 그녀보다 훨씬 크지만, 누가 상관이나 하겠는가?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솜을 밟는 듯했고, 이 광경은 꿈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그는 예전에 슬프고 절망적이었지만, 하늘이 그를 이렇게 구원해 주며 그에게 이런 복을 내려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부는 그를 노려보았고, 그것은 그가 규칙을 따르지도 않고, 문안드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누가 그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는 벌을 마땅히 받을 수 있었고, 몇 번의 채찍질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오직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송석석만 보였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에는 자신의 낭자만 들어왔다. 그는 기절할까 두려워 호흡을 가다듬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꽃가마를
신부를 맞이하는 두 행렬이 정면으로 마주했다. 전북망은 사여묵을 바라보았고, 사여묵도 전북망을 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자 사여묵은 감사한 마음만 남았다.송석석을 놓아주어서 감사했지만, 송석석을 괴롭힌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전북망의 눈은 복잡했고, 그 또한 한때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송석석을 신부로 맞아들였다. 그때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그러나 하늘의 뜻에 농락당했고, 송석석은 북명왕비가 되었고 그 또한 장가를 갔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그는 사여묵의 복잡한 눈동자를 마주했고, 그 눈동자에는 시기와 질투, 원망, 불쾌함,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이 순간, 그는 자신과 송석석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정말 깨달은 듯했고, 이제 그들 사이는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이 뚜렷한 생각이 그를 스쳐 지나가자, 사여묵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제가 원하지 않은 버려진 부인과 결혼한 것을 축하드립니다.”그는 자신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쩌면 북명왕의 분노에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여묵은 그저 그를 보고 웃으며 말의 고삐를 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자네의 눈이 멀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네.”전북망은 어안이 벙벙했고, 북명왕이 의기양양하게 대열을 이끌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슨 뜻이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송석석과 혼인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자리에서 멀리 벗어난 후, 사여묵의 미소가 사라졌다. 망할 전북망 같으니라고.장대성이 앞장서서 말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말을 듣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을 쓸까요?”“내일!”사여묵이 말했고, 오늘은 기쁜 날이니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부님이 계신 것이었고, 그는 혼인 첫날밤 사부의 곤봉에 맞고 싶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사여묵이 말을 덧붙였다. “뭇
황실로 들어가자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익숙한 목소리와 낯선 목소리가 서로 축하한다는 말이 섞였다.그리고 듣기 싫은 장공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가의 군주도 온 모양이군. 결혼식이 걱정되는군.’곧이어 심청화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신부가 아닌 그에게로 향했다. 이때, 시만자가 몰래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누군지 맞춰봐.”“유치해!”송석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몽동이구나.”“몽동이겠어?”시만자가 풉, 이라며 웃었다. “몽동이는 지금 저 옆에 있을 거야, 혼수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어.”송석석도 풉, 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지만 향을 피운 다는 말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향을 피워? 혼인식을 치르기도 전에 벌써 사여묵이랑 끝났다는 거야?’생각을 바꾸어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이때, 혜 태비가 등장한다는 말이 들렸다. 자신의 부모에게 절을 하려고 준비하는 모양이다.곧이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혜 태비가 자리에 앉은 모양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자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임양문이 자신의 사부에게 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임양운은 송석석의 사부가 아닌가, 새신부라면 친가에서 부모를 뵙고 나서야 이곳에 올 수 있다. 어떻게 신랑 측의 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절을 받을 수 있는가, 규칙에 어긋난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곧이어 큰 소리가 멀리 울렸다.“천지군친사를 모시는 것은 천경지의. 저는 사여묵의 사부입니다, 제자에게 한번 절을 받아 보고 싶습니다.”만종문의 사람은 신부 측이 절을 해야 하는 풍습이 있다. 무소위의 도리는 맞추었다, 사부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어떠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소위가 의견을 내놓았다.“선배가 서있는데 후배가 앉아 있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정녕 진성에는 이러한 규칙이 있단 말인가.”그의 말 한마디에 곧이어 임영운 앞으로 의자가 생겼다. 이리하여
붉은 보자기를 슬쩍 들자 혼주비가 보자기를 걷어 냈다.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순간 숨이 멎었다. 사여묵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처음 보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복숭아나무에서 사는 복숭아 요정을 연상케 했다. 한편, 송석석은 반짝거리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전보다 훨씬 더 준수해 보였다. 게다가 사모관대에 그려져 있는 용 그림이 그의 지위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귀족의 기운에는 어떠한 차가움도 느껴져지지 않았다.오로지 눈빛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건장한 몸에서 느껴지는 존귀함 뿐이다.두 사람은 서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무언가를 동시에 느낀 모양이다.이때, 혼주비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대군, 대군부인. 밖에서 부인들과 소녀들이 그다음 순서를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송석석은 잠시 멈칫했다.‘합경주부터 마셔야 하지 않은가?’그녀의 궁금증이 해결되기도 전에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순식간에 들어왔다. 이때, 송석석이 큰 감동을 받았다. 시만자, 모신신, 만두 그리고 목에 붉은 비단 실을 한 몽동이가 재빠르게 송석석의 앞으로 줄을 섰던 것이다.이리하여 다른 친척들과 소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뒤에서 축하를 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외모에 깜짝 놀라 낮게 소리 지르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송석석이 서둘러 상황 정리에 나섰다.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축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두 잔이라도 더 마시고 가십시오. 유모, 주머니에 금 몇 개 넣어서 사람들한테 전해줘.”양 마마의 손에는 큰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다름 아닌 금이 가득 채워진 작은 주머니들이다.황실의 혼인식에 금을 나눠 주는 일은 사치도 아니다. 하지만 혼수가 너무 많아 별채뿐만 아니라 회랑까지 가득 찬 모습에 혜 태비가 깜짝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