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진복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꽃가마가 곧 도착하니 서둘러 화장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송석석은 사부님과 사형들을 만나 몇 마디밖에 나누지 못하고 바로 떠나려 하니, 섭섭한 마음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한 시진만 더 늦출 수는 없느냐?”“안 됩니다 아가씨, 반드시 길시에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그러자 평무종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가거라, 가서 화장을 잘 고치고. 이렇게 기쁜 날에 울고불고하는 것이 말이 되니? 우리는 널 시집보내러 온 거고, 곧 너와 같이 갈 거야. 북명 황실에 우리의 자리도 있을 거고 혼인 잔치에도 참석할 거다.”송석석은 눈을 깜빡였고,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한 채로 말했다. “그 말은 왕께서 여러분이 온 걸 알고 계셨다는 건가요?”“그래, 하지만 왕께서는 네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셔.”그렇다면 왕이 알고도 보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송석석은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자신을 축복하러 온 문파 장문들과 제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려 했다. “됐다, 가서 화장을 고치거라.”임양운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송석석은 돌아서며 속으로 사부는 정말 예의 하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화장을 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누군가 다급하게 와서 보고했다. “신부를 맞이하는 북명왕의 행렬이 도착했습니다. 왕께서 친히 맞이하러 오셨습니다!”사숙 무소위는 이런 호들갑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말했다. “뭐지? 장가를 가서 직접 신부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그런데 왜 이런 호들갑을 떠는 것이지? 그가 감히 오지 않으면, 내가 그의 귀를 잘라 버리겠다!”사숙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본 문지기는 순식간에 황당한 얼굴로 물러났다. 왕청여는 현재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전북망이 직접 와서 아내를 맞는 것이고, 친왕인 사여묵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여묵이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을 데리고 일찍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
송석석은 무의식적으로 사부의 손을 잡았지만, 다른 손 하나가 다가왔다.그 손바닥은 넓고 길었으며, 굳은살이 가득했고 손톱은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바닥에서 조금 위로 가면, 용무늬가 수놓아진 예복이 있다는 것이다. 친왕의 예복은 용무늬를 사용해도 되고, 조복도 가능하지만 오조구룡 무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사여묵, 그녀의 남편이었다.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손바닥을 뻗었고, 그는 손을 잡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는 손바닥을 모아 그녀의 손을 잡았고, 몇 번이고 손을 돌려 위치를 잡은 후 마침내 그녀의 열 손가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송석석은 가슴이 북처럼 뛰었고, 그 소리에 고막까지 떨려왔다. 그녀가 가슴이 뛰지 않았다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상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심지어 현기증까지 느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여묵은 그녀의 손을 잡고 꽃가마로 향해 걸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규칙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듯했다.신부의 시중을 드는 자가 등에 업고 꽃가마로 가는 것이 규칙에 맞았지만, 그런 규칙은 개나 줘버리고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란히 걸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그는 그녀보다 훨씬 크지만, 누가 상관이나 하겠는가?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솜을 밟는 듯했고, 이 광경은 꿈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그는 예전에 슬프고 절망적이었지만, 하늘이 그를 이렇게 구원해 주며 그에게 이런 복을 내려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부는 그를 노려보았고, 그것은 그가 규칙을 따르지도 않고, 문안드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누가 그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는 벌을 마땅히 받을 수 있었고, 몇 번의 채찍질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오직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송석석만 보였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에는 자신의 낭자만 들어왔다. 그는 기절할까 두려워 호흡을 가다듬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꽃가마를
신부를 맞이하는 두 행렬이 정면으로 마주했다. 전북망은 사여묵을 바라보았고, 사여묵도 전북망을 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자 사여묵은 감사한 마음만 남았다.송석석을 놓아주어서 감사했지만, 송석석을 괴롭힌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전북망의 눈은 복잡했고, 그 또한 한때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송석석을 신부로 맞아들였다. 그때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그러나 하늘의 뜻에 농락당했고, 송석석은 북명왕비가 되었고 그 또한 장가를 갔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그는 사여묵의 복잡한 눈동자를 마주했고, 그 눈동자에는 시기와 질투, 원망, 불쾌함,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이 순간, 그는 자신과 송석석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정말 깨달은 듯했고, 이제 그들 사이는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이 뚜렷한 생각이 그를 스쳐 지나가자, 사여묵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제가 원하지 않은 버려진 부인과 결혼한 것을 축하드립니다.”그는 자신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쩌면 북명왕의 분노에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여묵은 그저 그를 보고 웃으며 말의 고삐를 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자네의 눈이 멀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네.”전북망은 어안이 벙벙했고, 북명왕이 의기양양하게 대열을 이끌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슨 뜻이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송석석과 혼인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자리에서 멀리 벗어난 후, 사여묵의 미소가 사라졌다. 망할 전북망 같으니라고.장대성이 앞장서서 말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말을 듣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을 쓸까요?”“내일!”사여묵이 말했고, 오늘은 기쁜 날이니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부님이 계신 것이었고, 그는 혼인 첫날밤 사부의 곤봉에 맞고 싶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사여묵이 말을 덧붙였다. “뭇
황실로 들어가자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익숙한 목소리와 낯선 목소리가 서로 축하한다는 말이 섞였다.그리고 듣기 싫은 장공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가의 군주도 온 모양이군. 결혼식이 걱정되는군.’곧이어 심청화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신부가 아닌 그에게로 향했다. 이때, 시만자가 몰래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누군지 맞춰봐.”“유치해!”송석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몽동이구나.”“몽동이겠어?”시만자가 풉, 이라며 웃었다. “몽동이는 지금 저 옆에 있을 거야, 혼수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어.”송석석도 풉, 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지만 향을 피운 다는 말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향을 피워? 혼인식을 치르기도 전에 벌써 사여묵이랑 끝났다는 거야?’생각을 바꾸어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이때, 혜 태비가 등장한다는 말이 들렸다. 자신의 부모에게 절을 하려고 준비하는 모양이다.곧이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혜 태비가 자리에 앉은 모양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자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임양문이 자신의 사부에게 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임양운은 송석석의 사부가 아닌가, 새신부라면 친가에서 부모를 뵙고 나서야 이곳에 올 수 있다. 어떻게 신랑 측의 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절을 받을 수 있는가, 규칙에 어긋난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곧이어 큰 소리가 멀리 울렸다.“천지군친사를 모시는 것은 천경지의. 저는 사여묵의 사부입니다, 제자에게 한번 절을 받아 보고 싶습니다.”만종문의 사람은 신부 측이 절을 해야 하는 풍습이 있다. 무소위의 도리는 맞추었다, 사부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어떠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소위가 의견을 내놓았다.“선배가 서있는데 후배가 앉아 있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정녕 진성에는 이러한 규칙이 있단 말인가.”그의 말 한마디에 곧이어 임영운 앞으로 의자가 생겼다. 이리하여
붉은 보자기를 슬쩍 들자 혼주비가 보자기를 걷어 냈다.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순간 숨이 멎었다. 사여묵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처음 보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복숭아나무에서 사는 복숭아 요정을 연상케 했다. 한편, 송석석은 반짝거리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전보다 훨씬 더 준수해 보였다. 게다가 사모관대에 그려져 있는 용 그림이 그의 지위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귀족의 기운에는 어떠한 차가움도 느껴져지지 않았다.오로지 눈빛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건장한 몸에서 느껴지는 존귀함 뿐이다.두 사람은 서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무언가를 동시에 느낀 모양이다.이때, 혼주비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대군, 대군부인. 밖에서 부인들과 소녀들이 그다음 순서를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송석석은 잠시 멈칫했다.‘합경주부터 마셔야 하지 않은가?’그녀의 궁금증이 해결되기도 전에 무리의 사람들이 방으로 순식간에 들어왔다. 이때, 송석석이 큰 감동을 받았다. 시만자, 모신신, 만두 그리고 목에 붉은 비단 실을 한 몽동이가 재빠르게 송석석의 앞으로 줄을 섰던 것이다.이리하여 다른 친척들과 소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뒤에서 축하를 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외모에 깜짝 놀라 낮게 소리 지르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송석석이 서둘러 상황 정리에 나섰다.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축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두 잔이라도 더 마시고 가십시오. 유모, 주머니에 금 몇 개 넣어서 사람들한테 전해줘.”양 마마의 손에는 큰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다름 아닌 금이 가득 채워진 작은 주머니들이다.황실의 혼인식에 금을 나눠 주는 일은 사치도 아니다. 하지만 혼수가 너무 많아 별채뿐만 아니라 회랑까지 가득 찬 모습에 혜 태비가 깜짝
자신의 사부에 대한 뒷담화는 거침이 없었다.이어서 송석석이 손을 흔들어 시녀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시자만이 입을 열었다. “내려 온 지는 이틀이나 지났어. 하지만 진성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신 건 네 사부야.들어오기 전에는 진성 밖에 있는 시골 객실에서 지냈는데, 어쩜 그 작은 시골에도 도둑이 그렇게 많니?그래도 혼수는 하나도 안 도둑맞았어.”이틀 전, 대사형이 떠나면서 사부와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하지만 네 사부는 매일 선배를 데리고 진성으로 들어갔어.아침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면 다시 시골로 내려오긴 했지만 말이야.어디서 들은 소식 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진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혼수가 준비된 걸 다 보고 나서야 서둘러서 들어온 거야.”시자만이 계속 해서 흉을 보았다.“이렇게 피곤한 적은 처음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뻤어. 모든 과정을 지켜 본 거 잖아.”옆에 있던 모신신도 흥분하며 말했다. “와, 진짜 엄청 시끌벅적 하더라. 우리 경화파 사형들 발성이 어찌나 또랑또랑 하던 지, 진성 전체에 다 들렸을 거야.”송석석이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그럼 당연하지.”시자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 시골이 얼마나 추웠는 지 알아? 손 좀 녹이려고 태운 연탄 냄새 때문에 눈이 다 아팠다니까.내가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너 때문에 참는 거야.”그녀는 자신을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다. 모신신이 말했다.“다른 건 괜찮은 데, 먹는 게 좀 부실했어.”사실 특출난 요리를 자랑하는 파들이 있다. 그들이 한 음식들은 색과 향이 모두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모신신이 소속한 경화파는 요리에 대한 명성이 자자하다. 한편, 송석석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수장들이랑 후배들이 그 작은 객실에서 지냈다는 게 마음이 좋지 않네. 내가 큰 은혜를 졌어.”시자만이 답했다.“그렇다고 네가 갚을 필요는 없어. 네 사부가 갚는 다고 그러셨어. 만약 명단대로
오늘의 황실은 유난히도 떠들썩했다.조정의 모든 백무무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4품 이상의 관료들 중 오지 않은 사람은 평서백부의 혼례 잔치를 갔다. 혹은 전북망의 혼례 잔치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연은 송석석이라는 새로운 왕비가 아니다.바로 임양운이 데리고 온 무림인들이다. 임양운의 등장 하나 만으로도 사람들 입에 오르기 바빴기 때문이다. 임양운은 영향력 있는 가문의 사람이다. 그는 오래전에 권력층에서 나와 종립파를 만들었다. 무림계에는 맹주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지만 임양운의 현재 위치가 그러하다, 전해진다.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무술 실력이 월등하게 올라갔다.또한 부유한 집안이었기에 산이나 밭은 셀 수 없이 많았다.어쩌면 겨우 매산 하나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매산은 흔한 산이 아니다. 산 밑에 위치한 밭과 여러 상점이 모두 그의 명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그가 데려온 무림인들의 태도는 예의 바르고,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무림인들이 난폭하다는 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그다음으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그들이 추가한 혼수였다.한 덩이 황금들이 여러 상자에 가득 담겨 있어 저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금을 항상 보았던 사람들이라 순도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희귀한 보물을 본 사람은 적다. 동주의 크기는 몇 년 동안 자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다.게다가 그들이 가져온 혼수의 양을 통해 북명왕비의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이후로 북명왕이 수많은 후궁을 들인다고 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혜 태비도 깜짝 놀란 눈치다.혼수를 둘러 보면서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동시에 마음 속으로는 부처님을 부르기 바빴다. ‘내가 다 좋아하는 물건이야.’곧이어 북명왕이 신부를 데리고 축배를 할 순서가 되었다.빠르게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송석석으로 바뀌었다.북명왕이 여인의 외모에 홀라당 반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빛이 났다,
결혼식의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었다.임양운도 만종문의 후배들과 함께 축배를 올렸다.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심청하는 물론 다른 관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축배를 올려야 한다.임양운은 혼인을 주최한 안만수에게 먼저 술을 따랐다.그는 술을 들이켜고 안만수는 살짝 맛만 본 덕에 체면이 한껏 세워졌다.한편, 송석석은 만종문 사람들의 행동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오늘의 주인공은 북명왕이 맞다.하지만 이 자리는 영원히 송석석을 위한 자리라고 낙인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명문가에게는 없는 규칙이지만 무술인들을 향해 비난을 하는 사람은 없다.게다가 임양운은 권력층 집안 출신이 아닌가.심청하까지 같은 소속이기 때문에 체면을 감히 구길 수 없었다.한편, 장공주와 가의 군주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잠시 표정을 바꾸어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곧이어 장공주가 기회를 틈타 혜 태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혜 태비, 본궁은 태비의 훗날이 걱정됩니다. 저렇게 기가 센 며느리를 들이셨으니 말입니다.자칫 말이라도 잘못하시면 같이 차도 못 마시게 되실 겁니다.이후에는 항상 조심 하셔야 하겠습니다.”혜 태비는 마음이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오늘의 북명황실은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송석석의 혼수와 넓은 인맥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그녀는 오늘의 복이 자신이 아니라 북명활실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장공주의 시비 한 번에 마음이 더 복잡 해졌다.어쩌면 훗날에 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이 며느리였을 적에는 불효는 감히 생각한 적도 없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당시 시절대로 엄격할 수는 없다. 그저 송석석이 뒤에서 자신을 해 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혜 태비는 자신의 상황을 어느 정도 깨달은 표정이다.그녀는 모두의 총애를 받으면서 살아왔었다. 후궁에서는 다른 공주에게 보호를 받은 탓에 고생을 한 적이 없다.만약 송석석이 교묘한 술책을 부린다면 크게 당할
전북망은 무의식 중에 문 앞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하려고 한 동작이 아니라, 마음에 걱정이 많아 무슨 일을 하든 들키는 것이 제일 걱정되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전북망의 움츠린 모습에 이방의 경계는 조금 더 줄었다. 전북망은 맑은 물처럼 속이 훤히 보여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그날 말한 일을 돌아가서 심사숙고해 봤지만, 승산이 적다고 느꼈소. 게다가 서경 사람들이 어떻게 소 대장군을 데리고 가는지, 무슨 방법이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소. 북명왕부에서 손을 쓸지 우리가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오."그는 낮은 소리로 이방의 눈빛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어쨌든 부부 사이에 이렇게 그녀를 속이고 그녀에게서 단서를 얻으려는 것은 그녀를 팔아먹는 것이다. 그는 비록 마음이 괴로웠지만 장군부를 연루시키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분명 될 것입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나가서 준비만 하시면 됩니다.""말을 참 쉽게 하오. 홀로 어찌 구한다는 말이오? 사람을 더 찾아 돈을 더 써야 할 것 아니오? 하지만 성사될지 모르는 일에 어찌 돈을 쓴다는 말이오? 돈을 아까워한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 장군부가 무슨 상황인지 알지 않소?"집안 처지를 말하고 나니, 전북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람을 찾다니요? 무슨 사람을 찾습니까? 이 일에 어찌 함부로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사람을 찾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컸기에 이방은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람을 구할 때 기회를 틈타 움직이면 되지 않습니까? 장군의 무공도 충분하니 말입니다."전북망이 말했다."나를 매정하다 탓하지 마시오. 이 일은 내가 나서서 구할 수 없소. 그저 밖에서 도울 수 있을 뿐이오. 자네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수 있지만 장군부와 목숨을 버릴 순 없소."이방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었다."어찌 그리 모질고 매정하신 것입니까?""장군의 목숨만 중요하고, 제 목숨은 보잘것없는 것입니까?
사여묵은 평서백 부인이 도와 조사한 결과를 먼저 그에게 알려주고 확신을 내렸다."배후에 숨은 사람이 임가를 통해 이방에게 연락한 것은 확정할 수 있소. 상대는 시녀를 시켜 그녀에게 알리고 자네 어머니의 빈소에 가게 했소. 그러면 임 부인도 빈소로 가서 그녀와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는 것이오. 임 부인과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 부부는 죽임을 당했소."전북망은 깜짝 놀랐다."정말입니까?""그러면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사온의 역모를 조사할 때, 대리사에서 임가도 조사하고 있었소. 하지만 역모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없어 줄곧 건드리지 않았소. 임 부인에게 이방을 찾으라 시킨 배후가 사온의 배후기도 하고 역모의 진정한 주모자요."사여묵이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이방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서 서경으로 끌려갔소. 자네는 이방의 남편이오. 역모 사건이 조사되면 장군부가 어떤 벌을 받을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오."전북망은 입술을 살짝 떨었다. 그는 과거 황제의 곁에서 일한 적 있기에 황제가 역모 사건을 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크게 화를 내신 것도 알고 있었다. 역모는 황제의 역린이다. 누구든지 역린을 건드린 자는 아무도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전북망. 자네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소. 공을 세워야 죄를 면할 수 있소."공을 세우고 죄를 묻고 면한다는 이 말들이 전북망의 심장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호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그때의 결정으로 인해 집안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를 악물을 뿐이었다. "무엇을 시키려는 것입니까? 얼마든지 분부하십시오."사여묵은 그를 보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임 부인에게서 서경인이 누구인지 들은 적 있는지 이방에게 물으시오. 어떻게 물을지 무슨 방법을 써서 답을 얻어낼지는 자네의 능력에 달렸소."전북망은 침묵을 지키다 답했다."예!"집안사람의 목숨이 달린 이상 전북망은 반드시 갈 것이다. 답을 얻어낼지 말지는 둘째 치고 그
2월 말이라 날씨는 예전보다 많이 따뜻해졌긴 했지만 문 앞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으니 여전히 조금 추웠다.문밖을 지키는 시위들은 회동관의 문 앞 오두막을 사용하였는데, 그 안에 숯 난로가 있어 차를 끓일 수 있었다. 송석석은 시만자의 옷차림이 두껍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를 데리고 오두막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오늘 난 이곳에서 지낼 테니 나와 함께 있을 필요 없다."송석석이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시만자가 찻잔을 호호 불며 말했다."괜찮다. 마침 홍현도 쉬고 있으니 직접 보고 있으면서 너와 함께 있겠다."홍현은 몰래 서경인의 출입과 그들이 어디로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감시했다. 장공주와 신하들은 회동관을 자주 나서지 않았지만 일행에 워낙 사람이 많고, 전북망과 평서백부 노부인이 조사한 일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정말 그들과 몰래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연락할 수도 있었다."참. 나올 때 염선생한테서 들었다."시만자가 송석석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내일 장군께서 형부에 가서 전북망을 보러 가신다더구나."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네.""그럼 만날 필요가 있느냐? 알고 있는 건 이미 모두 말하지 않았느냐?""이방이 도망친 경로를 말하지 않았다.""그게 그리 중요한 것이냐? 이방은 분명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도망친 경로는 연왕과 상관없이 스스로 계획한 것이니, 특별히 이것만 물을 필요는 없다."송석석은 손끝으로 그녀의 이마를 한 번 톡 치고 웃으며 말했다."사제는 단지 핑계를 대고 그가 이방을 찾아 묻게 하려는 것 뿐이다. 혹시 무엇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느냐? 어쨌든 누구인지 알아야 평 사저에게 손을 쓰라 전할 수 있다. 워낙 은밀히 숨어 있어 담판의 막바지에 문제라도 생기면 늦지 않았느냐?"시만자가 이해한 듯 답했다."그렇구나. 3일 동안 담판하면서 아직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으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형부.전북망은 북명왕이 직접 그를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형부 감랑중이 찾아온 것을
사여묵은 따뜻한 음식을 먹은 후 오늘 담판한 일에 대해 말했다.그의 곁에 앉아 있는 송석석은 그의 힘을 빌리려는 듯했다. 바로 옆에 붙어 앉아있으니, 적어도 뱉은 말이 사숙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염선생이 물었다."폐하께서 그들의 조건을 알고 계십니까? 폐하의 뜻은 어떻습니까?""이덕회가 궁에 들어가 말씀을 드리고 홍려사에 돌아왔을 때 폐하의 뜻을 전했습니다. 변선은 절대 물러설 수 없고 다른 것은 참작하여 조건을 주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보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폐하의 뜻입니다."무소위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변선을 양보하지 않으면, 이방이 서명한 협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서경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이방이 서명한 협의가 무효라 인정하면, 변선은 이전대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변선의 전쟁을 해왔고 상국 상황이 복잡할 때 침입한 것이라 참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사여묵이 말했다."오늘 밤 홍려사에서 상의한 것이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서경에서 이방의 협의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저희도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변선으로 물러나면 백성들이 욕설을 퍼부을 것입니다. 심지어 이방을 영웅으로 치켜세울 수도 있다는데, 어찌 죄가 많은 사람이 영웅이 된다는 말입니까?""정말 힘든 문제로구나."무소위는 두 가지 문제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파왔다. 사여묵이 말했다."선조 때 정한 변선의 지도와 서경과의 협정을 정리했습니다. 서경을 설득하여 그때의 협정으로 이방의 협의를 대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침범했을 때, 저희는 동의하지 않아 새로운 변선 협의도 없었습니다.""쉽지 않을 것입니다."송석석이 말했다.무소위가 담담하게 말했다."쓸데없는 말이구나.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쉬웠다면 폐하께서 어찌 그를 불러 협의하라 했겠느냐? 이렇게 되면 공을 그저 넘기는 꼴이 아니더냐?"송석석은 짧게 한마디 했을 뿐인데 무소위에게 혼나버려 입도 다물고
사여묵은 대사형을 한 번 힐끔 보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사부님, 어찌하여 또 대사형께 벌을 내리신 것입니까? 사건사고가 많아 그의 도움이 필요하온데, 사부님께서 내린 벌을 받느라 저를 도울 시간이 없사옵니다.” 그제서야 무소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내 친히 면해 주리다.” 그러자 밖에 있던 심청화과 평무종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듯 눈을 반짝였다.평무종은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스승님께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 회왕의 금은패물을 모조리 바꿔치기하였는데, 그 상자들 속에는 온통 돌멩이로 가득 차 있었사옵니다.” “그들도 눈치챘느냐?” “그들이 작은 숲에서 쉬는 동안 저희가 모두 기절시켰으니 아마 깨어난 뒤에야 확인했을 것입니다.” “사람을 붙였느냐?” 평무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지금 왜 묻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당연히 사람을 시켜 면밀히 감시하게 했다. 그녀도 이제 노해졌기에 운익각에 그녀의 공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심청화가 아직 항아리 벌을 받고 있는 광경에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미 사람을 배치하였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사여묵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송석석과 시만자가 급히 달려와 담판 상황을 물었다.그 모습에 무소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껏 바삐 돌아쳤을 것이니 밥 한 톨 입에 대지도 못했을 것이다. 뜨신 밥이 있지 않더냐? 얼른 대령하게 하여라.” 심기가 불편해진 사숙의 얼굴과 마주하자 송석석은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무소위가 사여묵에게 말했다.“네가 오냐오냐하니 저리도 너를 막 대하는 것 아니더냐!.” 그러자 사여묵이 웃으며 대답했다.“이미 조금 먹고 오는 길입니다. 석석이도 담판 때문에 긴장하고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세요.” 사여묵의 말에 심청화와 평무종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소위는 너무나 무던한 제자의 모습에 그저 한숨만 조용히 내쉴 뿐이었다. ‘그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네가 변호할 일도 없을
최 씨를 배웅한 뒤, 송석석과 시만자는 의사당으로 돌아왔다.전에는 대체로 서재에서 일을 의논하였지만, 사숙이 온 뒤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의사당으로 향했다.사숙은 하루 종일 의사당에 머물었고, 사여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담판은 이미 끝났고 내일의 일정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것이다.송석석은 이날 조사한 일들을 사숙에게 보고했고 사숙은 모두가 예상한 결론을 내렸다."사람을 죽여 증거를 인멸하거라." 그러자 심청화가 물었다."사숙, 혹 처음부터 이방이 서경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면요? 누군가가 이미 오래전에 서경과 내통하여 소대장군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듣고 있던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허나, 회왕은 이미 도망친 터라 수란석이 그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심청화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회왕과 수란석이 아니라면? 회왕과 수란석은 너를 겨냥한 것이나, 연왕은 수년을 준비하였으니, 치밀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혹여 이 속에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소대장군일지도 모르느니라." 사형의 면밀한 분석에 송석석은 그러한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왕은 참으로 노련하고 계략에 능하였다.또한, 이방이 일찍부터 도망칠 경로를 계획한 듯했다. 아마 오래전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사람을 배치하여 계속 그녀를 감시하였으니, 그녀 또한 이를 알고 있을 게 틀림 없었다. 더군다나, 장군부를 떠나면 다시 암살당할까 쉬이 움직일 수 없었기에 장군부에서 기회를 엿보며 버텨왔고, 그렇게 결국 형부에 체포된 것이다.이방은 아마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소대장군을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이번이 그녀의 마지막 기회이기에 형부에서 전북망의 진술도 받으면서 그녀는 부득불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래야만 전북망은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다.그녀 말대로 소대장군이 죄가 있다면 행동대장인 전북망의 죄가 더욱 무거워질 것이기에 하여 즉시 말을 바꿔 자신이 일시적인
영인은 하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조사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기에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최 씨가 노부인의 제사 전날 고향 사람과 차를 마신 일에 대해 물어보고 나서야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날 함께 차를 마신 것은 림씨 가문에서 시녀로 있는 저의 동생이옵니다. 잠깐 고향으로 돌아간다하여 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사옵고, 함께 선물을 고르자고 권하였사..."너무 많은 말을 했던 탓에 피곤했던 최 씨는 단번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날 이방에게 전하라는 말은 없었더냐?" 잠시 생각하던 영인이 답했다. "…있었사옵니다. 림 낭자께서도 노부인의 제사에 갈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이방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라고는 하지 않았느냐?" "한약재 한 꾸러미를 전해주라 하였사옵니다." "그 한약재가 무엇이었느냐?" "생지황이었사옵니다." "거기에 쪽지는 끼워져 있지 않았더냐?" 그러자 영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거기까진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을 전하기 바쁘게 이 부인께서 물러가라 고 하셨습니다."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아, 뭔가 틀림없이 있었던 것 같사옵니다! 소인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바닥에 잿더미가 조금 있었는데, 뭔가를 태운 것 같았사옵니다." 최 씨는 혹시나 빼먹은 것은 없는지 다시 물었고 그 말에 한참을 생각하던 영인은 더는 없다고 말하자 영인에게 떠날 채비를 하라고 명했다.벌써 여러 번 편전에 왔던 왕청여는 최 씨가 하인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마침 영인을 데려간다는 말에 대뜸 물었다."형님,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에게 자세하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형님 때문이 집안은 난장판이고 하인들이 죄다 숨어서 게으름만 피우고 있습니다. 차 한 잔 내오라 해도 없고, 이 시간이 되도록 저녁 식사조차 차리지 않고 있사옵니다." 최 씨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내
송석석은 곧바로 평서백부로 가서 최씨를 찾아 상황을 전달했다. 최씨는 단호히 한 마디만 했다."소 대장군과 관련된 일이니 지체할 수 없군요. 당장 나서겠습니다."전북망이 형부로 끌려간 이후 왕청여는 줄곧 불안에 떨었다.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최씨는 그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이건 두 나라의 중대한 문제입니다. 당신 같은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겁니까?"그렇다고 최씨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전북망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전북망이 형부에 갇혀 있지만 특별 대우를 받고 있으며 고생하거나 고문당하지는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최씨는 왕청여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왕청여는 눈물을 머금으며 하소연했다."겨우 현철위 지휘사가 되었는데 이제 이방 일 때문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씨 부인이 이런 혼사를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셨겠지요!”최씨는 그 말을 듣고 꾸짖었다."일이 생길 때마다 원망만 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질 생각을 좀 하십시오!"형수의 꾸짖음에 왕청여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녀는 결국 장군부로 돌아갔지만 안채의 일을 모두 시아버지 전기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장군부 안에서 왕청여에 대한 뒷말이 돌기도 했다.최씨는 장군부에 도착하자마자 왕청여에게 말했다."모든 하인들의 노비문서를 가져오게 하세요."왕청여가 이유를 묻자 최씨는 단호히 답했다."전북망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는 겁니다."왕청여는 자세히 물어보려 했지만 최씨가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잘랐다."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시키는 대로 당장 실행하세요."결국 왕청여는 노비문서를 찾아와 그녀에게 건넨 후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최씨는 노비문서를 확인한 뒤 집안 관리인을 불러 하인들의 신원을 물었다. 특히나 이방을 보좌했던 하인들을 주목했다.대략적인 정보를 얻은 후 최씨는 다시 문지기를 불러다 물었다.그
서경 사신들이 홍려사를 떠나 회동관으로 돌아간 뒤에도 상국 측 협상 담당자들은 홍려사에 남아 다음 협상에 대해 계속 논의했다.목 승상 역시 논의에 참여했다. "곡물을 배상해야 한다 해도 절대로 그렇게 많은 양은 안 됩니다. 그들은 지난해 흉작으로 군량이 부족한 상황인데 우리가 삼십만 석의 곡물을 배상한다는 건 그들의 군량을 채워주는 꼴입니다. 따라서 곡물 배상을 한사코 물고 늘어지다 하더라도 삼만 석을 넘겨서는 안됩니다."목 승상은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덧붙였다."또한 황제께서는 국경선 문제에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셨습니다."이 두 가지를 말한 후 그는 자리를 떴다. 북명왕의 협상 진행 방식에 대해 목 승상은 꽤 안심하는 듯했다.한편, 형부에서는 전북망이 이택을 만나겠다는 요청을 했다.어젯밤 이방과 대화를 나눈 뒤, 전북망은 이방이 서경이 소 대장군을 데려갈 방법이 있다고 말한 점이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돌아가서 아무리 고민해도 이방이 어떤 방법으로 서경 측이 소 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엔 이택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그녀가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입니까?"이택이 직접 전북망을 찾아와 서둘러 그에게 질문했다."그럼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도 말했습니까?"전북망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말하지 않았습니다. 물어봐도 답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도망칠 경로를 계획해 둔 걸 보면 서경 사신들을 설득해 소 대장군을 데려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이택은 아직 협상 결과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 대장군이 협상에서 주요 쟁점으로 논의될 것은 분명했다. 만약 상국 측이 협상 중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경 측이 소 대장군을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그렇다면 협상이 끝난 뒤에는 과연 서경이 어떤 수단으로 상국의 손에서 소 대장군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인가?그런데 이방은 어떻게 서경 사신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걸까?"그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