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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Bab

제561화

신연은 강압적이고 거칠게 태지연의 입안을 헤집었다. 그는 더 깊이 들어오기 위해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 감쳐물 듯 빨아올리는 뜨거운 숨결에 태지연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질식감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쳐왔다. 그녀는 손톱이 살갗에 파고들 정도로 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뜨거운 숨결이 서로의 입속을 파고들며 누구도 먼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신연이 먼저 무너져 내렸다. 그는 태지연을 놓아주더니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연우진이 뭐라고 했어?” 태지연 역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문에 기댄 채 순식간에 응집된 열기를 드디어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키 차이가 워낙 나는 바람에 이마만 그녀의 어깨에 닿았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지연은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그녀는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들었잖아. 류 선생님의 연락처를 추천해 줬어.”“그 전에 말이야. 네가 혼자 있고 싶다고 했을 때 연우진이 찾아왔잖아.”신연은 확신에 찬 말투였다. “그냥 인사만 했을 뿐이야.”“그래, 확실히 성격도 집안도 훌륭하지, 근데 지연아...”신연은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다시 한번 태지연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만약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랑 연우진을 동시에 만났을 때 누구를 선택했을 것 같아?”태지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역시 신연은 그녀와 장수영이 나눈 대화를 알고 있었다. “지연아, 대답해.”신연은 다시 한번 그녀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방금 전 키스 때문인지 붉어진 그녀의 눈가는 마치 봄철의 연분홍 벚꽃 같았다. 신연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살짝 고개를 돌렸지만 신연은 다시 그녀의 턱을 부여잡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진 오빠한테 그런 감정 아니야.”신연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얼른 씻어. 돌아올 때 비 맞았잖아.”돌아오는 길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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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태지연은 신연을 거절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이런저런 변명을 할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그의 의견에 따르는 게 더 시간 절약이다. 게다가 거절한다면 신연이 직접 병원에 찾아올지도 모른다.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엄마도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태지연은 신연이 와서 전혜린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 원치 않았다.신연은 태지연의 대답에 약간 놀랐지만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차 문에 놓았던 손을 다시 내렸다. 그는 넥타이를 약간 풀어 헤치며 대답했다. “기다릴게.”태지연은 전화를 끊고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검진 예약을 하러 갔다. 모든 일을 끝내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전혜린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녀는 태지연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연아, 고생 많았어.”“원래 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전혜린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오빠가 곁에 있었더라면 너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사고 이후로 전혜린은 태지연 앞에서 거의 태송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태지연은 전혜린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마음이 씁쓸해졌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오빠가 신연 때문에 집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빠는 분명 괜찮을 거예요.”“그래, 엄마도 알아. 너희 둘 다 착한 아이들이잖아.”전혜린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지연아, 곧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우리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태지연은 병원에서 전혜린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떠났다. 시간을 보니, 신연이 전화를 끊고 나서 이미 세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병원 밖으로 나갔더니 여전히 신연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태지연은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그는 노트북을 무릎에 올린 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노트북을 바로 닫더니 한쪽에 두고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태지연은 당연히 신연이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떠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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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신연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태지연은 너무나도 진지한 그의 표정에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신연이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절대로 우연일 리가 없었고 게다가 그는 태지연에게 잘 지켜보라는 말도 했었다. 태지연은 온 몸이 공포로 인해 벌벌 떨렸고 새하얘진 머리로 계속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제대로 신연의 본 모습을 봐야 해.’ 그녀는 방금 그 순간, 신연이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냉정하고 몹쓸 짓을 해도 수수방관하며 생명 하나가 자신의 앞에서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신연말이다. ‘진짜 감정이라는게 있는 사람일까?’ 태지연은 늘 신연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었지만 신연의 눈빛을 볼 때마다 희망의 불씨가 천천히 꺼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신연과도 같은 사람은 정말 싫어졌다. 태지연은 박안희가 여전히 인공 호수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몇 명의 보안들이 급히 달려와 호수 안에 몸을 던지더니 박안희를 에둘러 쌌다. “보지마, 무슨 일은 없을 거니까.” 신연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많이 놀랐을 태지연의 손을 잡아줬다. 차디찬 태지연의 손에는 긴장한 것 때문에 땀이 나있었지만 신연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종이를 꺼내 그녀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두 손으로 태지연의 작은 손을 감싸주더니 차가운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녹였다. 돌아갈 때 보니 입구에 있던 몇 대의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비록 박안희가 사람들에게 구출을 받은 사실은 알지만 태지연은 그래도 저도 모르게[ 인공 호수 쪽을 쳐다보게 됐다. ‘이제 이곳은 다시 안 오겠네.’ 신연은 오후에 다른 일이 더 있어 태지연을 데려다주고는 바로 떠나갔다. 하지만 태지연은 지금 당장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안에 신연의 냄새와 흔적이 남아있을 생각을 하니 더욱 더 돌아가기가 두려워졌다. 한참을 생각하던 태지연은 누군가가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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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장수영은 문득 자신의 사용한 단어가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바꿨다. “비겁한 것도 아니지 뭐. 박안희 씨가 스스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들킬 일도 없었을 테니까.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사람을 도와준 것도 같긴 한데 또 다시 생각하면 어딘가 이상하단 말이지.” 태지연이 장수영의 말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안희 씨와 권우현 씨 사이에 뭐가 있었던지는 모르겠어도 남의 사생활은 폭로하면 안 되지. 게다가 박안희 씨도 하마터면 목숨도 잃을 뻔했잖아.” 장수영은 태지연의 말에 반박했다. “지연아, 넌 생각이 너무 단순한 것 같아. 모든 사람을 다 너무 좋게 생각하잖아? 박안희 씨가 전에 너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잊었어? 비록 그 사람이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래도 전제는 박안희 씨가 스스로 바람을 피웠다는 거잖아.” 태지연은 이미 속으로 신연이 벌인 짓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수영의 말에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행여나 그가 권우현을 시키지 않았다 해도 그 사진들은 아마 신연이 보내준 것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모든 것이 너무 다 우연이니까. 하지만 태지연이 알았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신연한테 찾아가 왜 그랬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태지연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신연이 이미 태지연의 앞에서 숨겨왔던 이빨을 다 드러냈으니 이번에는 태지연도 더 참아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팔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자 그제야 태지연은 정신을 좀 차렸다. 장수영은 태지연의 손을 꼭 잡아주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멍 때리고 있어? 나랑 같이 아저씨랑 아줌마 보러 가겠다고 했잖아. 아저씨 상황은 좀 어때?” 태성민의 상황을 떠올릴 때면 태지연도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녀는 장수영과 함께 태성민의 병실로 향했고 때마침 전혜린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회색의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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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서준혁은 요즘 하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하씨 집안 또한 이러저러한 방면에서 서준혁을 묘하게 괴롭히고 있었으니 신유리는 서준혁의 표정을 보고는 그가 하씨 집안에 의견이 있는 줄로 여겼다. 하지만 서준혁은 하성과는 사이를 아주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하성은 의사라 하씨 집안의 일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신유리는 낮은 소리로 서준혁에게 말을 했다. “지연이는 네가 하 선생님께 아버지 잘 부탁드린다고 한 마리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 만약 불편하고 시간이 없으면 괜찮다고 했고.” 서준혁이 물었다. “신연 씨가 이미 다 손을 쓰지 않았나?” “그리고 또.” 서준혁은 신유리의 그릇에 갈비 한 점을 집어주며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자기 맘대로 불로 죽으려다가 저 지경이 됐으면 남을 탓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의 말 속에는 조롱하려는 의도가 가득 담겨있었다. 신유리는 원래 그에게 조금 더 물으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몇 번이나 말했어? 애 앞에서 그런 말투로 말하지 말라고! 애가 잘 못 배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자두는 할아버지의 말에 얼른 위쪽으로 기어오며 말을 보탰다. “아빠! 나빠.” 신유리는 머릿속으로 서준혁이 한 말의 뜻을 알아내려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서준혁은 신유리의 손을 꼭 잡았고 지루함에 그녀의 손가락을 몇 번 가지고 놀더니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마. 그건 다 다른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잖아. 너 내일 또 법정도 가야지.” 내일 법정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들은 신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지음이 드디어 재판을 받는 날이니 신유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법정에 가야 했다. 송지음의 안건은 질질 끌다가 겨우 재판을 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사실 이 안건은 증거도 명확하고 충분하기에 진즉에 판결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누가 송지음에게 귀띔을 해준 것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자신에게 심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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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송지음은 신유리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췌하고 볼품없는 송지음과는 달리 신유리는 윤기가 흘러넘치면서도 우아해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신유리의 냉랭하고 싸늘하게 식은 눈빛은 서준혁 특유의 눈빛과도 묘하게 닮아있었다. 자신의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살짝 혀로 핥던 송지음은 잠긴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니까 이제 만족해?” 최근 몇 년간 송지음은 예전에 깜찍하고 애교가 많아 사랑을 받던 여자의 모습과는 달리 10년은 더 늙은 듯 급격한 노화가 찾아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신유리는 묻는 송지음에게 차디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네요.” “참나.” 송지음은 신유리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안광 하나 없는 눈으로 신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신유리 너의 어떤 모습을 제일 싫어하는지 알아?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잘난 척 하면서 우쭐거리는 모습이었어. 진짜 보기만 해도 더럽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신유리, 나는 너한테 진 것이 아니야. 만약 너도 나랑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내 생각에 너도 지금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송지음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도 이미 다 알았어. 사람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는거 말이야. 서준혁이나 신연, 그리고 이신까지 나서서 너한테 도움을 주니까 참 행복하겠다? 근데 나는? 나는 그냥 불쌍하고 가여운 벌레 새끼 한 마리 일뿐이잖아.” “전엔 나도 내가 너보다 가정배경은 좋다고 생각했어. 근데 결과는? 부모라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나를 늙고 병난 정신병자한테 팔아넘겼잖아. 그래, 뭐 어쩌면 잘됐어. 내가 안에서 23년을 살면 적어도 그런 더러운 인간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신유리, 말하고 보니까 너한테도 참 고마운게 많네?” 지금의 송지음은 신유리한테 말을 거는 것보다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울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는 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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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서준혁은 잠간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다 태씨 가문 일이야. 옆에서 상관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을 거고. 지금 태씨 가문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우니까 부산에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다 지켜만 보고 있잖아.” “태지연 씨는... 내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 부부가 참 예뻐하는 아이였다고 하더라.” 서준혁은 지금 신유리에게 태지연의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업계는 마치 소리 없는 전쟁과도 같았고 특히나 태지연과 신연의 지금 상황으로는 옆에서 자칫 참여를 했다가 똑같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준혁과 신유리의 뒤에는 화인 그룹이 있으니 그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지는 않다. 신유리는 마음이 많이 무겁기는 하지만 이 일은 자기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태씨 가문도 부산에서 이름난 가문이고 신연 또한 주목받는 능력이 뛰어난 신인이 아닌가? 서준혁의 말대로 두 쪽 다 쉬운 사람들이 아니니 화인이 만약 참여를 한다면 양쪽의 미움을 다 받을 확률도 있었다. 신유리가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준혁과 화인의 의견 또한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마음이 무겁고 속이 답답하다고 한들 서준혁의 말도 맞는 말이다. 태지연은 뭐가 어떻게 됐건 태씨 가문의 소중한 딸이 맞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필경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이연지같은 사람은 아닐 테니까. “알겠어.” 신유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너 일은 다 처리했어?” 그녀가 법정에서 나올 때, 서준혁은 오후에 신유리를 데리고 갈 곳이 있다고 말을 했다. “일은 이석민 씨한테 맡겼지.” 서준혁은 신유리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우리 점심부터 먹으러 갈까?” 자두는 처음으로 화인 그룹으로 와보았으니 무엇을 봐도 호기심이 가득했다. 신유리도 먼 곳까지 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 없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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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집안에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벽지와 바닥, 그리고 구석구석 디테일 한 곳까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전보다 더 넓고 밝아보였다. 심지어 집안에 배치돼있던 가구들의 위치는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새로운 가구들을 들였다. 신유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 집에서 자라왔기에 이곳에는 추억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신유리는 이 집에 별로 밥을 들이지 않았다. 항상 집에 돌아왔을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날 집이라 마치 이 집안만 시간이 멈춘 듯 한 기분이 들어 더욱 돌아오기를 꺼렸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온 집안은 새롭게 장식이 되어 분위기도 180도 바뀌었고 베란다에는 두 개의 식물도 더 놓아져있었다. 쓸쓸하고 공허하던 집안이 다시 숨을 쉬는 듯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제일 먼저 집안에 달려 들어간 자두는 귀여운 곰 인형이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서준혁은 신유리의 뒤에 서서 천천히 현관문을 닫으며 말했다. “여기 땅도 이제 팔렸어. 내년쯤에 아마 다 새롭게 바뀔 거야. 우리도 하린이 데리고 이 집에 들어와서 살자.” 신유리는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차분했다. 하지만 신유리는 서준혁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다 바뀌고 없어질 건데 왜 다시 인테리어를 한 거야?” 신유리가 물었다. “어차피 내년부터 시작할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말이지. 나중에 더 늦으면... 아마 못 볼지도 모르잖아.” 서준혁은 이 집이 신유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와 추억이 있는지, 그리고 신유리가 이 집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준혁은 나중에 신유리가 이 집을 회상할 때, 쓸쓸하고 공허함보다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신유리는 가슴이 빠르게 뛰었고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했다. ‘기억 속 그 집이랑 별 다른 차이는 없네.’ 한참을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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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태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하성은 계속해 태지연에게 태성민의 병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태성민의 몸 상태가 다른 환자들보다는 특수했고 이쪽 병원에도 하성과 함께 손발을 맞출 인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태성민에게는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치료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지연은 매일같이 병원으로 와 전혜린의 옆을 지켰지만 그녀는 이미 살이 너무 빠져 담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전혜린은 태성민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 맞이해야했다. 다행히도 신연이 요즘 바쁜 탓에 태지연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태지연은 삐쩍 마른 전혜린을 보며 마음이 아파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엄마, 가서 조금 편히 쉬다오세요. 여기는 제가 지킬게요.” 전혜린은 태지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겠니.” 태씨 가문이 살던 별장은 이미 불에 다 타버려 전혜린은 돌아갈 집도 없었다. 전혜린의 대답에 태지연은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듯이 고통이 느껴졌다. “그럼 호텔 방 하나 잡아 드릴게요. 그래도 매일 병원에서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좋을 것 같은데.” 전혜린이 대답하려는 찰나,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로 표시된 연락처는 바로 그날 신고를 했던 경찰서였다. 별장의 화재 사건은 전혜린이 신연이 벌인 짓임을 확신해 고집을 피우며 경찰에 신고를 했었다. 그러나 요즘 태성민의 일 때문에 바삐 보낸 탓에 신고한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갑자기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전혜린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경찰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통화를 끝마쳤다. “엄마, 왜 그래요?” 태지연이 물었다. “사건현장으로 가봐야 한다네. 게다가 신연한테도 연락해서 조사에 협조해라고 할 거래.” 전혜린은 대답을 해주고는 피로가 가득 쌓인 눈빛으로 태성민의 병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태지연은 지금 전혜린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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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그 시각, 신연은 누군가와 업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몹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태지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신연은 그 사람과 잠시 대화를 멈춘 뒤, 태지연에게 물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다정다감하게 말을 하는 신연은 오늘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태지연은 핸드폰을 더욱 꽉 쥐며 말했다. “경찰서에서 연락 왔었어. 집에 돌아가서 조사에 협조 해달라고.” 그녀는 잠간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너도 협조해야 된대.” “알겠어.” 신연은 태지연의 말에 짧은 대답을 해주고는 물었다. “지금 어디야? 병원 아니면 집?” 신연이 태지연이 한 말이 하나도 엄중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 듯,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마냥 담담했다. 태지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신연에게 경고와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신연, 만약 정말 네가 한 일이라면 난 죽을 때까지 너를 원망하고 또 원망할 거야.” 신연은 웃음기가 싹 사라지더니 책상을 툭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아직도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해?” “...” 태지연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신연이 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박안희가 인공호수에 빠지는 모습을 떠올릴 때면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휩싸였다. 너무나도 냉담한 신연은 다른 사람의 생사 따위에 관심조차 없어보였다. 태지연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뗐다. “조사 결과 기다리자.” 태지연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신연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딘데? 알려줘.” “...” 신연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태지연을 발견하고는 사무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지연아, 대답해줘. 내가 지금 너 찾으러 갈게.” “오지마, 올 필요 없어.” 신연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다시 물었다. “병원이야?” 태지연은 신연의 고집을 잘 알기에 눈을 질끈 감고는 대답했다. “병원 입구야.” 통화를 마친 신연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자 뒤에 있던 직원이 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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