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음은 신유리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췌하고 볼품없는 송지음과는 달리 신유리는 윤기가 흘러넘치면서도 우아해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신유리의 냉랭하고 싸늘하게 식은 눈빛은 서준혁 특유의 눈빛과도 묘하게 닮아있었다. 자신의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살짝 혀로 핥던 송지음은 잠긴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니까 이제 만족해?” 최근 몇 년간 송지음은 예전에 깜찍하고 애교가 많아 사랑을 받던 여자의 모습과는 달리 10년은 더 늙은 듯 급격한 노화가 찾아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신유리는 묻는 송지음에게 차디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네요.” “참나.” 송지음은 신유리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안광 하나 없는 눈으로 신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신유리 너의 어떤 모습을 제일 싫어하는지 알아?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잘난 척 하면서 우쭐거리는 모습이었어. 진짜 보기만 해도 더럽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신유리, 나는 너한테 진 것이 아니야. 만약 너도 나랑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내 생각에 너도 지금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송지음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도 이미 다 알았어. 사람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는거 말이야. 서준혁이나 신연, 그리고 이신까지 나서서 너한테 도움을 주니까 참 행복하겠다? 근데 나는? 나는 그냥 불쌍하고 가여운 벌레 새끼 한 마리 일뿐이잖아.” “전엔 나도 내가 너보다 가정배경은 좋다고 생각했어. 근데 결과는? 부모라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나를 늙고 병난 정신병자한테 팔아넘겼잖아. 그래, 뭐 어쩌면 잘됐어. 내가 안에서 23년을 살면 적어도 그런 더러운 인간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신유리, 말하고 보니까 너한테도 참 고마운게 많네?” 지금의 송지음은 신유리한테 말을 거는 것보다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울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는 송지음
서준혁은 잠간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다 태씨 가문 일이야. 옆에서 상관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을 거고. 지금 태씨 가문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우니까 부산에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다 지켜만 보고 있잖아.” “태지연 씨는... 내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 부부가 참 예뻐하는 아이였다고 하더라.” 서준혁은 지금 신유리에게 태지연의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업계는 마치 소리 없는 전쟁과도 같았고 특히나 태지연과 신연의 지금 상황으로는 옆에서 자칫 참여를 했다가 똑같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준혁과 신유리의 뒤에는 화인 그룹이 있으니 그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지는 않다. 신유리는 마음이 많이 무겁기는 하지만 이 일은 자기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태씨 가문도 부산에서 이름난 가문이고 신연 또한 주목받는 능력이 뛰어난 신인이 아닌가? 서준혁의 말대로 두 쪽 다 쉬운 사람들이 아니니 화인이 만약 참여를 한다면 양쪽의 미움을 다 받을 확률도 있었다. 신유리가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서준혁과 화인의 의견 또한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마음이 무겁고 속이 답답하다고 한들 서준혁의 말도 맞는 말이다. 태지연은 뭐가 어떻게 됐건 태씨 가문의 소중한 딸이 맞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필경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이연지같은 사람은 아닐 테니까. “알겠어.” 신유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너 일은 다 처리했어?” 그녀가 법정에서 나올 때, 서준혁은 오후에 신유리를 데리고 갈 곳이 있다고 말을 했다. “일은 이석민 씨한테 맡겼지.” 서준혁은 신유리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우리 점심부터 먹으러 갈까?” 자두는 처음으로 화인 그룹으로 와보았으니 무엇을 봐도 호기심이 가득했다. 신유리도 먼 곳까지 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 없거니와
집안에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벽지와 바닥, 그리고 구석구석 디테일 한 곳까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전보다 더 넓고 밝아보였다. 심지어 집안에 배치돼있던 가구들의 위치는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새로운 가구들을 들였다. 신유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 집에서 자라왔기에 이곳에는 추억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신유리는 이 집에 별로 밥을 들이지 않았다. 항상 집에 돌아왔을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날 집이라 마치 이 집안만 시간이 멈춘 듯 한 기분이 들어 더욱 돌아오기를 꺼렸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온 집안은 새롭게 장식이 되어 분위기도 180도 바뀌었고 베란다에는 두 개의 식물도 더 놓아져있었다. 쓸쓸하고 공허하던 집안이 다시 숨을 쉬는 듯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제일 먼저 집안에 달려 들어간 자두는 귀여운 곰 인형이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서준혁은 신유리의 뒤에 서서 천천히 현관문을 닫으며 말했다. “여기 땅도 이제 팔렸어. 내년쯤에 아마 다 새롭게 바뀔 거야. 우리도 하린이 데리고 이 집에 들어와서 살자.” 신유리는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차분했다. 하지만 신유리는 서준혁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다 바뀌고 없어질 건데 왜 다시 인테리어를 한 거야?” 신유리가 물었다. “어차피 내년부터 시작할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말이지. 나중에 더 늦으면... 아마 못 볼지도 모르잖아.” 서준혁은 이 집이 신유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와 추억이 있는지, 그리고 신유리가 이 집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준혁은 나중에 신유리가 이 집을 회상할 때, 쓸쓸하고 공허함보다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신유리는 가슴이 빠르게 뛰었고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했다. ‘기억 속 그 집이랑 별 다른 차이는 없네.’ 한참을 집을
태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하성은 계속해 태지연에게 태성민의 병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태성민의 몸 상태가 다른 환자들보다는 특수했고 이쪽 병원에도 하성과 함께 손발을 맞출 인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태성민에게는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치료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지연은 매일같이 병원으로 와 전혜린의 옆을 지켰지만 그녀는 이미 살이 너무 빠져 담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전혜린은 태성민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 맞이해야했다. 다행히도 신연이 요즘 바쁜 탓에 태지연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태지연은 삐쩍 마른 전혜린을 보며 마음이 아파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엄마, 가서 조금 편히 쉬다오세요. 여기는 제가 지킬게요.” 전혜린은 태지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겠니.” 태씨 가문이 살던 별장은 이미 불에 다 타버려 전혜린은 돌아갈 집도 없었다. 전혜린의 대답에 태지연은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듯이 고통이 느껴졌다. “그럼 호텔 방 하나 잡아 드릴게요. 그래도 매일 병원에서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좋을 것 같은데.” 전혜린이 대답하려는 찰나,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로 표시된 연락처는 바로 그날 신고를 했던 경찰서였다. 별장의 화재 사건은 전혜린이 신연이 벌인 짓임을 확신해 고집을 피우며 경찰에 신고를 했었다. 그러나 요즘 태성민의 일 때문에 바삐 보낸 탓에 신고한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갑자기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전혜린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경찰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통화를 끝마쳤다. “엄마, 왜 그래요?” 태지연이 물었다. “사건현장으로 가봐야 한다네. 게다가 신연한테도 연락해서 조사에 협조해라고 할 거래.” 전혜린은 대답을 해주고는 피로가 가득 쌓인 눈빛으로 태성민의 병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태지연은 지금 전혜린이 무슨
그 시각, 신연은 누군가와 업무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몹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태지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신연은 그 사람과 잠시 대화를 멈춘 뒤, 태지연에게 물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다정다감하게 말을 하는 신연은 오늘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태지연은 핸드폰을 더욱 꽉 쥐며 말했다. “경찰서에서 연락 왔었어. 집에 돌아가서 조사에 협조 해달라고.” 그녀는 잠간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너도 협조해야 된대.” “알겠어.” 신연은 태지연의 말에 짧은 대답을 해주고는 물었다. “지금 어디야? 병원 아니면 집?” 신연이 태지연이 한 말이 하나도 엄중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 듯,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마냥 담담했다. 태지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신연에게 경고와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신연, 만약 정말 네가 한 일이라면 난 죽을 때까지 너를 원망하고 또 원망할 거야.” 신연은 웃음기가 싹 사라지더니 책상을 툭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아직도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해?” “...” 태지연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신연이 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박안희가 인공호수에 빠지는 모습을 떠올릴 때면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휩싸였다. 너무나도 냉담한 신연은 다른 사람의 생사 따위에 관심조차 없어보였다. 태지연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뗐다. “조사 결과 기다리자.” 태지연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신연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딘데? 알려줘.” “...” 신연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태지연을 발견하고는 사무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지연아, 대답해줘. 내가 지금 너 찾으러 갈게.” “오지마, 올 필요 없어.” 신연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다시 물었다. “병원이야?” 태지연은 신연의 고집을 잘 알기에 눈을 질끈 감고는 대답했다. “병원 입구야.” 통화를 마친 신연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자 뒤에 있던 직원이 쫓아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 태지연은 신연의 얼굴이 그날 산장에서 본 모습과 겹쳐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는 박안희의 일에 대해 그렇게나 냉담했지만 사실 그가 벌인 일이었다. 사진을 권우현에게 보낸 것도 그였다. 태지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저 신연과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연은 이내 태지연의 손목을 붙잡더니 그녀를 자신의 앞쪽으로 잡아당겼다. 신연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산은 태지연 쪽으로 기울어진 채 그녀를 위해 비를 막아주었다. 신연은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도망치는 건데?” 신연 그녀의 눈에 가득 찬 두려움을 보았다. 그는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태지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집이 불타버린 모습을 보며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손목을 살짝 당기며 쉰 목소리로 신연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이거 놔.” 신연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피식하고 웃더니 얼굴에는 서늘한 표정이 서렸다. “태지연, 경찰도 아직 나한테 죄를 묻지 않았는데, 네가 먼저 죄를 물어?”태지연은 고개를 들더니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 “그럼 박안희 일은 네가 저지른 게 아니라고, 일부러 권우현한테 사진 보낸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신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널 괴롭혔잖아. 걔한테 주는 작은 교훈일 뿐이야.” 태지연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연이 말하는 작은 교훈이란 박안희를 거의 익사하게 했다. 신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 있어?” “악독?” 신연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강렬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태지연의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쥐더니 냉혹한 말들을 뱉어냈다. “이제야 내가 악독하다는 걸 알았어? 누가 나를 먼저
신유리는 파티가 끝난 후 바로 서준혁을 데리러 갔다.그녀는 룸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어린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여자는 깔끔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얼굴이었다.신유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비서팀에 새로 온 인턴 송지음이었다.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언니.”방금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신유리의 몸에는 차가운 공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녀는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주 웃지 않는 탓에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주곤 했다.신유리는 담담하게 송지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시선을 송지음에게 멈추었다. “준혁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서준혁의 이름을 듣자 송지음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신유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룸 안의 스피커 소리에 거의 묻힐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다.“서 대표님, 제 음료수 사러 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상한 감정이 조금 더 많아졌다.그녀도 서준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뭘 해달라고 번거롭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난달, 신유리의 차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왼쪽 손목이 다쳤었다. 모든 거동이 불편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준 적이 없었다.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에 송지음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서 대표님, 금방 오실 거예요.”하지만 신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저번 주에 급히 합정에 회의를 참석하러 갔었다. 오늘 서둘러 서씨 집안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서준혁은 집안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가족 모임은 항상 신유리보고 대신 참
신유리가 다음 날 다시 회사에서 송지음을 보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송지음도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신유리는 발걸음이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단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비서팀의 리사가 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리사가 바로 아침에 송지음을 곤란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다.오후가 되었을 때, 신유리는 대표 사무실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에 서 있었고, 풋풋함이 가득한 앳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언니, 성 대표님이 대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서준혁의 말이 맞다. 송지음은 확실히 착한 사람이었다.신유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거렸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비록 앉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압박감은 엄청났다.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준혁이 너 보고 뭐 하라고 했어?”송지음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하셨어요.”신유리는 서류를 덮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 하나를 그녀에게 가리켰다. “저기로 가.”대표 사무실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 달랐다. 신유리까지 합쳐도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이렇게 송지음이 많아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구석진 자리를 그녀에게 남겨줄수 밖에 없었다.송지음의 얼굴은 대놓고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다.머뭇대는 송지음의 모습에 신유리가 물었다. “더 할 말 있어?”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신유리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송지음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준혁이랑 어디까지 갔어?”송지음은 꼬리가 잡힌 듯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송한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신유리에게 해명했다.“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