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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 태지연은 신연의 얼굴이 그날 산장에서 본 모습과 겹쳐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는 박안희의 일에 대해 그렇게나 냉담했지만 사실 그가 벌인 일이었다. 사진을 권우현에게 보낸 것도 그였다. 태지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저 신연과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연은 이내 태지연의 손목을 붙잡더니 그녀를 자신의 앞쪽으로 잡아당겼다. 신연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산은 태지연 쪽으로 기울어진 채 그녀를 위해 비를 막아주었다. 신연은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도망치는 건데?” 신연 그녀의 눈에 가득 찬 두려움을 보았다. 그는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태지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집이 불타버린 모습을 보며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손목을 살짝 당기며 쉰 목소리로 신연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이거 놔.” 신연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피식하고 웃더니 얼굴에는 서늘한 표정이 서렸다. “태지연, 경찰도 아직 나한테 죄를 묻지 않았는데, 네가 먼저 죄를 물어?”태지연은 고개를 들더니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 “그럼 박안희 일은 네가 저지른 게 아니라고, 일부러 권우현한테 사진 보낸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신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널 괴롭혔잖아. 걔한테 주는 작은 교훈일 뿐이야.” 태지연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연이 말하는 작은 교훈이란 박안희를 거의 익사하게 했다. 신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 있어?” “악독?” 신연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강렬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태지연의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쥐더니 냉혹한 말들을 뱉어냈다. “이제야 내가 악독하다는 걸 알았어? 누가 나를 먼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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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여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희는 아직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하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하거든요.”태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경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쁜 사람은 절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피해자를 위해 정의를 추구할 겁니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힐 테니 저희만 믿으세요.”태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경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떠나기도 전에 여경은 그녀를 불러 세우며 우산을 건넸다. “비가 많이 오네요. 우산 챙기세요.”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나무 밑에 날아간 검은 우산에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속눈썹을 내리깔며 눈동자에 서린 감정을 숨겼다. 별장은 원래 시내 중심에 있지 않았고 비까지 많이 내리다 보니 택시를 잡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걷다가 택시를 잡지 못하면 할 수 없이 장수영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코너를 돌자마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검은색 벤츠, 눈에 별로 띄지 않았지만 신유리는 단번에 알아봤다. 신연의 차였다. 차창을 천천히 내리자 신연의 서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태지연을 바라보며 새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태지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신연이 이미 떠난 줄 알았다. 그녀는 마치 땅에 뿌리를 박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신연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진 채 차에서 내리더니 무작정 태지연의 손목을 잡아당겨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태지연이 들고 있던 우산은 그만 땅에 떨어졌다. 신연은 그 우산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순간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선명하게 빛이 났다. 그는 갑자기 웃으며 몸을 굽혀 우산을 집어 들었다. 흐릿한 하늘을 배경으로 보슬비가 내렸다. 신연의 옷은 이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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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그는 늘 태지연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연우진은 책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사람들은 그를 성인군자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그는 태지연을 위해 자신의 규칙을 여러 번 어겼다.그는 성남에서 이미 다져온 기반을 포기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포기할 생각 없이 결연히 부산시로 갔다. 그는 태지연이 감금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는 후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태씨 가문을 도왔다.연우진은 풋내기가 아니었다. 비록 이십 년 넘게 연애를 해본 적 없지만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태지연을 좋아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감정을 숨긴 채 영원히 오빠의 신분으로 그녀 곁에 머물 각오도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태지연이 신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지연의 청춘은 신연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건 연우진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새까만 눈동자에 서린 감정을 가렸다. 연우진은 태지연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살며시 내렸다. 실수로 그녀의 귀 옆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건드리자 살짝 간지러웠다. 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한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나랑 송백이 친구잖아. 전에 널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었거든.”“그리고 태씨 가문의 상황에 나도 마음 아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도와야지.”연우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건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할 뿐이야.”“그럴 리가요...”태지연은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맑은 눈동자에 감사함이 서려 있었다. “오빠가 이미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저랑 엄마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연우진은 입꼬리를 휘어 올리며 테이블 위에 있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애써 참았다. “밥 먹자. 먼저 주문했는데 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연우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 그는 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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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신연은 태지연을 아파트로 데려왔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신연은 다짜고짜 그녀를 욕실로 데리고 가서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너한테서 연우진의 고약한 냄새가 나거든.”여름옷은 워낙 얇아서 물에 닿자마자 태지연의 피부에 밀착되어 그녀의 가냘픈 몸매를 드러냈다.태지연의 몸매는 결코 섹시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 마른 나머지 신연이 한 손으로 허리를 감쌀 수 있을 정도였다.물이 점차 따뜻해지면서 욕실 안에는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신연의 감정도 서서히 달아올랐다.신연은 고개를 숙여 태지연의 목을 깨물며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위아래로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같이 씻을까.”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태지연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신연은 그녀를 안은 채 다시 한번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비록 그녀는 어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잠이 쏟아졌다.신연은 그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그녀의 배를 가볍게 만지작거렸다.그는 태지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연아, 우리 아이 가질까. 너랑 딸한테 잘할게.”방금까지만 해도 피곤했던 태지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주먹을 서서히 움켜쥐었다.비록 신연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난 딸이 좋아. 너를 닮았으면 좋겠어. 아들은 안 돼. 날 닮으면 안 되잖아, 매력이 없으니까.”“딸이 좋겠어. 태명은 사랑이가 어때?”그의 목소리는 태지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지만 그녀는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태지연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는 결코 신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은 어떻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을까?분명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협박을 가하더니 지금은 다정하게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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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태지연은 살짝 움찔했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혜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연아, 넌 여전히 순진하네,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믿는구나.”태지연은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네.”태성민의 검사 결과는 오후에 나왔다. 몸 상태는 이전 검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 교수님과 류 선생님은 상의 끝에 계획대로 수술을 모레 아침에 진행하기로 했다.태지연과 전혜린은 눈이 마주쳤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여전히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어쩌면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수술의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했다.의사 사무실을 나가기 전, 하 교수님은 수술의 성공률에 대해 100%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태지연은 전혜린의 팔을 붙잡고 그녀가 걱정할까 봐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류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성공 확률이 60%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아빠는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전혜린은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담감은 누구보다 컸다. 화재로 인해 태성민이 혼수상태에 빠지며 발생한 여러 합병증으로 결국 뇌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그들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전혜린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만약 태성민이 이번 사고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녀는 어떡할까? 태씨 가문은 어떻게 될까?그녀는 전혜린이 모레 진행되는 수술을 걱정하느라고 얼굴이 수척해졌다고 생각했다.태지연은 전혜린을 품에 안은 채 엄마의 버팀목이 되려 했다. “엄마,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어릴 때부터 애지중지하던 딸이 건네는 위로에 그녀는 눈꺼풀을 들어 태지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이 많이 빠져버린 딸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눈에 잠시 고통스러운 빛이 스쳤다.전혜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말을 꺼냈다.“지연아, 너도 알지? 아빠랑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걸.”그녀는 전혜린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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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신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태지연을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안절부절못하며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부탁할게.”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신연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후에 데리러 올게.”태지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서둘러 병원으로 들어갔고 신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조용히 몸을 돌렸다.태성민은 아침 일찍 수술실로 옮겨졌다. 전혜린의 눈밑에 다크써클이 심하게 내려와 있는 걸 보니 전날 밤 제대로 쉬지 못한 티가 났다. 태지연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전혜린 옆에 앉았다. 간호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삐 오갔다.전혜린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고 태지연은 수술실 문을 조용히 바라봤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수술실 문이 열리며 허 교수님이 나왔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물었다. “허 교수님, 수술은...”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앞으로 환자분은 무균실에서 한동안 지내야 합니다. 거부 반응이 없다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겁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태지연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넘어질 뻔했다. 전혜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마치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나올 것만에 같았다.태성민이 수술실에서 무균실로 옮겨지고 전혜린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지연아, 네 아빠 이제 괜찮아.”태지연도 아직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지만 엄마가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다. 전혜린은 태성민과 어린 시절에 만나 양가 부모의 축복하에 결혼했다. 전혜린은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 태성민과 함께 태씨 그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평생을 서로 존중하며 지냈다. 거의 다툰 적이라고 없었다.그녀는 진정한 사랑이란 어쩌면 부모님처럼 서로 지지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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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장을 보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태지연은 신유리의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수술은 끝났어요? 상태는 어때요?”그녀는 옆에 있는 신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수술은 잘 됐어요. 조금 더 지켜보면 된대요.”“다행이네요. 허 교수님은 실력이 뛰어난 분이시잖아요.” “네, 두 분 덕분이에요.”말을 마치고 태지연은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확실히 신연이 허 교수님을 모셔 온 덕분에 수술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신연을 쳐다보았다. 날렵한 턱선과 콧대를 뽐내며 빛나는 옆태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신연은 늘 잘생겼다. 학교 다닐 때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그를 몰래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연의 외모는 사실 청초했다. 그러나 웃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오히려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오른쪽 눈 밑에 희미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태지연은 그 점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로 가득 찼다. 신연과 이런 관계로 발전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전화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두는 신나서 외삼촌이라고 부르며 신연을 찾았다. 비록 신유리가 자두한테 태지연과 신연의 관계를 설명해도 자두는 많은 걸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나 하나는 확실했다. 바로 태지연 곁에는 외삼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두의 발랄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려 퍼지며 마치 차 안에 생기를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신연은고개를 들어 태지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신연을 보며 말했다.“하율이가 찾아.”신연은 짧게 대답했다. 자두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더 흥분하더니 핸드폰을 안고 깔깔대며 웃었다. 신유리는 다소 난감했지만 신연과 태지연이 함께 있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술 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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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서재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다. 신연이 일부러 낮춘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태지연은 순간 움찔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신연은 위에 대충 셔츠를 걸친 채 회색의 홈웨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분명 나른하고 편한 차림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싸늘했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어두움이 깔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멍청한 새끼, 숨는 법도 모르는 건가? 태성민의 수술 때문에 뛰쳐나오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어.”“그냥 내버려둬. 쥐잡기 놀이를 좋아한다면 하게 놔둬. 한낱 방탕아 따위로는 큰일을 일으킬 수 없을 거야.”“그가 처음에 태씨 가문을 내 손에 넘겼을 때부터 각오는 돼 있었을 거야. 계속 감시하기만 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전화 너머로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신 대표님, 태송백의 손에 아직 그 물건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냥 두면...”신연은 대답했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거야.”“하지만.”무심했던 목소리는 이내 차가워졌다. “만약 그 물건을 되찾지 못하면 태송백은 돌아올 필요 없어.”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지만 결단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신연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태지연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신연도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있는 태지연을 보더니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깼어?”그녀는 이불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좀 추워서, 에어컨 끄려고.” 신연은 다가와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차갑다 못해 마치 얼음장 같았다.그는 에어컨 온도를 조금 올렸다.“물 좀 떠줄래? 목이 좀 말라.”신연이 물을 가지러 나가자 태지연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이불을 꼭 잡은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심장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무엇을 들은 걸까? 신연이 둘째 오빠의 소식을 알고 있다니. 그리고 오빠가 갖고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왜 오빠가 물건을 되찾지 못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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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태지연은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경찰은 태씨 가문의 화재가 신연과 관련이 없으며 그들의 점검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공허할 뿐이었다.그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도 살짝 들었다. 마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화재 원인이 밝혀졌는데도 기뻐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녀는 신연의 짓이라고 단언했던 전혜린의 말과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한 신연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과 적대감도...그러나 이번 사건은 신연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모두 신연을 오해했었다.태지연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곧 숨이 멎을 것 같은 질식감이 온몸을 조여왔다.그녀는 몸을 뒤로 기울인 채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어젯밤 신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물건을 돌려받지 못하면 태송백이 태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의 과감한 결단력은 진심이었다.전혜린의 슬픈 얼굴과 신연의 서늘한 얼굴이 겹쳤다.결국 태송백의 장난 섞인 말투와 태성민의 창백한 모습까지 겹쳐졌다. 태지연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점차 그녀의 시야는 병원 복도의 낯선 얼굴들로 가득 찼다. 앞에서는 슬픔을 표현하던 사람들이 뒤돌아서는 순간 아무렇지 않게 술 약속을 잡았고 그들이 건네던 위로는 순식간에 경멸로 바뀌었다. 드디어 모두의 가면이 벗겨졌다.태지연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진실과 거짓, 슬픔, 분노, 억울함, 원망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결국 거대한 그물처럼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도망치고 싶었다.태지연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바닥에 주저앉았는지 몰랐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멍하니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았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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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태송백은 처음부터 신연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아끼는 여동생이 이 따위 남자 친구를 찾은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한 번도 신연에게 좋은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또한 태송백은 여러 가지 이유와 증거를 찾아내며 태지연과 신연을 헤어지게 만들었다.그러던 어느 날, 신연의 야망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고 태송백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함정을 파기 시작했다. 직감상 신연을 남겨두면 화를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그러나 신연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교활했다. 신연은 되레 태송백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게 했고 심지어 그를 함정에 빠뜨렸다.지금 신연은 태씨 가문 회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태송백은 숨어 지내야 했다. 심지어 태성민이 생사를 오가는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상황에도 신연이 그를 찾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정당당하게 병문안을 갈 수 없었다.태송백은 전에 신연에게 당했을 때 파일 하나를 복사해 가져왔다. 그 파일에는 신연이 평생 감옥에서 썩을 만큼 충분한 증거가 담겨 있었다. 다만 전혜린은 아직 태씨 가문에 신연이 필요하다고 했기에 섣불리 그 파일을 공개할 수 없었다.저번에 태송백이 몰래 병원에 갔을 때, 전혜린은 계속해서 태지연을 속이는 게 너무 지나친 일이라며 이제는 나병현을 시켜 원래 준비했던 증거들을 모두 회수해 버렸다. 덕분에 신연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허.신연이 정말 좋은 사람이기나 할까? 아니,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독한 사람이다. 그리고 태송백은 그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것뿐이다. 기만? 신연이 태지연을 속인 적이 아마 그 누구보다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신연은 태씨 가문을 위협의 수단으로 삼으며 태지연과 결혼했다.태송백의 마음에는 항상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주먹을 더욱 세게 움켜쥐며 더 확고하게 결심했다....태지연은 병원에서 나올 때 시간이 꽤 이른 편이었다. 평소라면 다섯 시나 여섯 시, 신연이 그녀를 데리러 올 때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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