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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이런 상황이 얼마나 되셨죠?” “전엔 그냥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최근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속이 메스꺼운 느낌도 들고 심할 땐 환각도 보여요.” 태지연은 상담실에 앉아 의사의 질문에 답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신연이 눈치채게 되면 그녀를 강제로 끌고 올 것만 같았다. 태지연은 왜인지 신연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의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 어떻게 된 건가요?” “검사 결과를 보면 우울증과 불안 증상이 있습니다. 지연 씨는 최근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우선은 지연 씨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상태를 조절하는 것이 좋겠어요.” 태지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울증이라고요?” “네, 중등 우울증입니다. 가능하다면 지연 씨는 현재 생활 방식이나 주위를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나 사물과 접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이나 사물? 태지연은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심리상담실은 외래 건물에 있었고 태성민과 전혜린은 입원 병동에 있었다. 어제 전혜린은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태지연은 이미 병원에 있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진단서와 약물 처방전은 대충 가방에 넣은 채 입원 병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혜린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집안이 이미 엉망인데 아빠와 엄마한테 더 이상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성인으로서 이런 것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의사도 스스로 잘 조절하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최근 일들이 너무 겹치다 보니 그녀를 숨 막히게 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지연은 곧바로 집에 불이 난 사건을 떠올렸다. 경찰은 태씨 가문의 화재와 신연이 관련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그녀는 엄마에게 어떻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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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태지연은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태송백과 전혜린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며 표정도 점차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전해오는 통증을 참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혼잣말인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잘못이야... 내가 우리 가문을 망쳤어...”전혜린은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보고는 깜짝 놀라 태송백의 팔을 힘껏 밀었다.“태송백, 당장 지연이한테 사과해!”그녀는 말투마저 엄숙해졌다.“동생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모든 책임을 지연이한테 떠넘기지 마!”태송백은 지금 화가 치솟아 있었다. 신연 때문에 여기저기 숨어 다니며 명예를 잃은 지경이었다. 그는 전혜린과 태성민의 말에 따라 지방에서 태씨 가문의 옛 인맥을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사업가들 사이에서 어떤 일은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에 태씨 가문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조차 냉랭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 태송백은 어디를 가나 외면당했다. 한때 도련님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그가 하룻밤 사이에 추락하였다. 이제는 사람들이 피하는 전염병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오늘 병원에 오면서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신경 쓰다 보니 마음속에 쌓였던 원망과 억울함이 결국 분노로 터져 나왔고 태지연에게로 향했다.“울기만 할 줄 아냐? 우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어머니, 아버지께서 곱다 곱다하면서 키웠더니 애가 이렇게 된 거야!”“미안해, 오빠...” 태지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된 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태송백을 붙잡으려 했다.“오빠가 무고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태송백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태지연은 요즘 많이 야위었는데 그의 힘이 세다 보니 그만 뿌리쳐졌다. 그녀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벽에 부딪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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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성한빈은 이사를 고려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후로 협박 편지가 그의 집 앞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사무실, 아내의 회사, 심지어 아들의 유치원에도 나타났다...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소름이 끼쳤다. 이게 바로 신연의 수단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가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표도 아내와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태송백을 배신하고 가장 중요한 계획과 방안을 신연에게 넘겼다. 성한빈은 흠칫하더니 그만 정신을 차렸다.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신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승진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신연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 네 소감을 물어본 것뿐이야. 결국 태송백은 네 전 상사였으니 다른 생각이 들까 걱정이네.”“그럴 일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신 대표님과 함께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성한빈은 끊임없이 신연에게 보장했지만 신연은 그저 무표정으로 위아래 훑어봤다. 성한빈은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굳어버릴 때쯤 신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태송백 쪽은 네가 직접 지켜보는 게 좋겠어. 어차피 네가 접촉한 시간이 길다 보니 그의 습관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성한빈은 잠깐 멍해졌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신연은 그제야 만족한 듯 보였다. 성한빈이 사무실을 나설 때 그의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신연과 함께한 날은 길지 않았지만 신연은 감정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혼자서 태씨 그룹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태 회장님의 친아들인 태송백을 끌어내릴 수 없었다. 성한빈은 문 앞에서 두려움 때문인지 몸을 가늘게 떨더니 고개를 숙이고 재빠르게 걸어 나갔다. 사무실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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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태지연은 핸드폰을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신연이 대답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신연에게 있어서 태지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태지연은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결과는 몰라?”“집에 돌아왔어?”“아니, 지금 강변 광장에 있어. 수영이랑 같이 쇼핑하려고.”“그래, 데리러 갈게.”태지연은 아무런 감정 없이 전화를 끊었다. 곁에 있던 장수영은 망설이며 물었다. “신연이야?”“응, 조금 있다가 데리러 온대.”장수영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병원에서 검사받았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어디 아파? 요즘 진짜 많이 야윈 것 같은데.”태지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장수영에게 우울증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말해봤자 괜히 걱정만 시킬 테니까. 태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며칠 전에 비 맞았더니 몸살 걸린 걸 장염인 줄 알고 검사받았어.”“다행이네. 그래도 어디 아프면 꼭 병원 가야 해. 우진 오빠처럼 고열로 병원 갈 때까지 버티지 말고.”태지연은 걸음을 멈추고 장수영에게 물었다. “뭐라고? 우진 오빠가 고열로 병원 갔다고?”장수영은 순간 말실수한 걸 깨닫고 눈을 피하며 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태지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응시하자 장수영은 할 수 없이 말했다. “그래, 고열로 입원했어. 며칠 전에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봤는데 오빠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네가 걱정할까 봐.”태지연은 중얼거렸다. “나 몰랐어.”장수영은 말했다. “몰랐던 것도 당연하지. 너희 집에 요즘 일이 많았잖아. 그래도 다행히 아버님 수술이 성공적이었으니까, 이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태지연은 짧게 대답했다.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연우진이 고열로 입원했다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더 이상 쇼핑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연우진은 태송백의 친구였다. 태지연도 그 덕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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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비행기가 성남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이었다. 그러나 신연은 태지연을 바로 전에 머물던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서준혁과 신유리 이미 자두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두는 전보다 키가 더 컸다. 흰색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신연과 태지연을 보는 순간 자두는 흥분한 나머지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신연 앞에서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졸랐다.신연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그대로 피해버렸다. 자두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스러워했지만 끝까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신유리는 자두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태지연에게 말했다. “먼 길 오느라고 수고 많았어요.”태지연은 신연을 쳐다봤다. 그는 입을 열었다. “유리 씨와 서 대표님께서 결혼 준비 한대.”태지연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에요? 유리 언니, 축하드려요!”“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결혼 준비할 게 많아서 혼자 하기는 벅차네요. 그래서 지연 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중에 친구들도 같이 소개할게요.”“유리 언니를 도와드릴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하지만 제가 잘 몰라서 어떡하죠.”태지연은 신연과 비록 혼인 신고는 했지만 그동안의 일로 인해 결혼식을 올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신연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태지연은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말에 신연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이 식사는 신유리가 일부러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준비한 듯 보였다. 하지만 식사 내내 대화를 나눈 사람은 거의 태지연과 신유리뿐이었고, 간간이 자두의 목소리도 들렸다. 서준혁과 신연은 거의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다 대화에 참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지연은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신유리와 함께 있을 때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나중에 장수영과 연우진으로부터 신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심지어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는 직접 일어나 신유리에게 국을 떠 주기까지 했다.서준혁은 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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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태지연은 신연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저택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고 아주 깨끗했는데 누군가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온 것이 틀림없다.미소는 해당 나무 아래에서 휴식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바로 일어나서 문밖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문밖에 있는 태지연과 신연을 보자 미소는 경계심을 늦추고 혀를 내뱉은 채 헐떡이며 그들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미소는 극히 흥분된 채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며 태지연 품속을 파고들려고 애를 썼다.태지연은 미소의 애정 공격을 피하려고 머리를 뒤로 꺾었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는 부드러운 웃음기가 어려있었다.예전에 성남시에 있을 때 태지연이 미소를 돌봐줬었고 그녀 역시 동물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미소의 애정행각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태지연은 허리를 살짝 굽힌 채 미소의 머리를 어루만져줬다.미소는 더욱 흥분하여 태지연에게 매달렸다.“조심해.”신연은 뒤로부터 태지연의 허리를 감싸 안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미소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신연이 말을 할 때 내뱉은 열기가 태지연의 귀가를 스치고 지나가며 피부에 경련을 일으켰다.태지연은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신연의 품을 떠나 입을 열었다.“미소 데리고 좀 놀다 올게.”떠나가는 태지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연은 어제 오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진료 차트가 생각났다.그는 손가락을 움츠리고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태지연을 찾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때 그의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신연은 핸드폰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표정이 굳어진 채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신연이 나가자마자 미소와 함께 놀고 있던 태지연 얼굴의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태지연은 마당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다리 주변에 엎드려 만져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미소를 바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그녀는 신연이 그녀를 데리고 성남시에 돌아올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신유리와 자두 그리고 이곳에 있는 미소까지 모두 신연이 특별히 준비한 만남이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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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신연의 덤덤한 말투에 신기철은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물었다.“너 그 말 장난 아니지? 진심이지?”신연은 여전히 감정을 나타내지 않은 채 태연하게 대답했다.“2억이 필요하시다면서요? 제가4억 드리고 일까지 해결해 드릴게요. 어때요?”신기철은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는 것 같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 후회하기 없기다. 넌 지금 태씨 그룹 대표가 됐으니까 이 정도 일이야 식은 죽 먹기겠지?”신기철의 태도는 처음의 오만방자함으로부터 아첨하기로 180도 바뀌었다. 신연은 그의 태도를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물었다.“그쪽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제가 더 경고하지 않아도 되겠죠?”신기철이 가슴을 치며 담보했다.“당연하지. 밖에서 그 일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 할 테니까 근심하지마. 그리고 지연 아가씨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밖에서는 예전처럼 너를 모르는체할 테니까.”신연이 대답했다.“그러세요. 저는 비서를 보내 일을 처리하도록 할게요.”말을 마친 신연은 차가운 태도로 전화를 끊었다.신기철은 정말 우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신연은 핸드폰을 들고 잠깐 고민하더니 태연자약하게 비서에게 전화를 걸고 간결하게 말했다.“전에 그 계좌로 2억 더 넣어줘. 하지만 단번에 주지 말고 여러 번 나눠서 입금해줘. 한 번에 많이 주지도 말고 마지막은 보름으로 나누어 줘. 그리고 이체기록 모두 남겨서 나한테 보내.”신기철은 신연의 꼬투리를 잡으면 마음대로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참 한심한 생각이었다.통화를 마친 신연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택으로 돌아갔다.한편 부산에 있는 신기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탁한 숨을 내쉬고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웃는 얼굴로 방 안에 들어갔다.“황 사장님, 근심하지 마세요. 돈은 제가 이미 마련해놓을 방법을 찾았으니까 꼭 이른 시일 안에 돌려드릴게요.”황 사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뚱뚱한 뱃살을 펴고 업신여기는 눈길로 신기철을 흘겨보며 말했다.“신 사장, 한번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하는 거 잘 알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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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갑자기 이신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침묵을 지켰다.신유리와 이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임아중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임아중은 두 사람이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사람의 결말은 예상을 많이 빗나갔다.그때 서준혁이 신유리를 구하려다 다치기까지 했고 이신 어머니께 문제가 생기는 등 많은 일이 발생했었다. 그래서 임아중도 두 사람은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임아중은 고개를 들고 신유리를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내가 정신을 좀 놨나 봐. 괜히 말했네. 신경 쓰지 마.”신유리가 물었다.“이신은 요즘 어때? 이신 어머니는 잘 계셔?”신유리는 이신과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지 오래 되였다. 어떤 일들은 그녀가 물어볼 입장이 없었지만 임아중은 이신과 절친이었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임아중은 신유리의 물음을 듣고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었다.“정말 알고 싶어?”“응, 이신도 내 친구잖아.”신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그렇다면 내가 사실대로 말해줄게. 사실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야. 이신 어머니께서 정신이 돌아오셨다가 또 흐리멍덩해지기를 자꾸 반복하시고 계셔. 정신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정신이 드시면 얘들 묶어놓기 싫다며 자살 시도 하셔. 이현 언니가 도와주고 있지만, 언니도 남편 가문에 일이 생겨서 힘들어하고 있어. 이씨 가문에서 이정 그 나쁜 놈은 아저씨께 자꾸 이상한 소문을 말해드리고 있고.”임아중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너도 알다시피 이신 걔 겉모습은 누구보다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고집이 세고 마음이 약하잖아. 이신은 지금 혼자서 병원과 직장을 오가면서 바삐 움직이고 있어.”신유리는 그 소식을 듣고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왜 이제야 말해주는데?”“이신이 말하지 말래. 이건 이씨 가문 내부사정이라서 네가 알아도 소용없다고 하더라.”비록 맞는 말이었지만 신유리는 서운하게 느껴졌다.신유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이신은 조금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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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태지연과 신연 사이의 혼인 관계는 원래부터 다채로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태지연이 모르는 상황에서 진행된 일이었다.신연도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마치 결혼식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하지만 태지연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잡지에 오른 웨딩드레스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신연과 약속했었다. 미래에 태평양에 있는 섬에서 제일 로맨틱한 결혼식을 치를 거라고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그 생각을 마친 뒤로부터 태지연은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신유리와 임아중의 기분까지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신난 척 했다.그들은 쇼핑몰에서 늦은 저녁까지 돌아다녔다. 저녁 9시가 될 무렵 신연이 태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준비 해야 할 물건을 모두 구매한 상황이라 세 사람은 함께 쇼핑몰을 나섰다.그리고 매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신연은 물건을 들고나오는 태지연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뭐 샀어?”태지연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다 유리 언니 꺼야.”“너는 맘에 드는 거 없어?”“응, 없어.”신연은 매너있게 태지연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받아가며 말했다.“괜찮아? 많이 힘들면 우리 먼저 집에 갈까?”신유리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신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이리 주세요. 지연 씨 오늘 고생이 많았어요.”신유리는 자기를 향한 신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신연을 바라보았다. 신연은 웃는 얼굴로 쇼핑백을 신유리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결혼 축하해요.”신유리가 물건을 받아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감사해요.”신연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태지연을 데리고 떠났다.이때 서준혁이 그들과 스쳐 지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신유리 손에 들린 물건들을 몽땅 받아갔다.“어떻게 왔어?”오늘은 휴일이 아니었고 화인 그룹은 지금 프로젝트에 박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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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태지연은 텅 빈 눈빛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오후에 그 나비 모양 팔찌를 봤을 때 그녀에게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신연이 선물해줬던 팔찌였다.태지연은 예전에 신연을 오랫동안 쫓아다니며 고백했다. 십 대 소녀들은 모두 영웅에게 마음이 뺏기기 마련이였다. 태지연은 신연이 그녀 운명 속의 백마 왕자라고 착각했다.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신연만을 바라보며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미래를 환상하며 깊은 꿈에 빠져들어 갔다.태지연은 정말로 신연이 선물한 모든 물건을 애지중지하며 액세서리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그중 다수가 태지연이 신연을 졸라서 받아낸 선물이었기에 나비 모양의 팔찌야말로 신연이 태지연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그 팔찌는 발렌타인데이에 신연이 태지연에게 선물한 것이기때문에 더욱 귀중했다.태지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멍때리다가 신연이 한 말이 생각나서 작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대답했다.“괜찮아. 그 팔찌 안 좋아해.”신연은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을 꽉 쥐며 말했다.“이제 시간 나면 내가 함께 쇼핑해줄게. 오늘 많이 힘들었어?”“아니, 유리 언니랑 같이 있는 시간은 기쁘기만 했어.”태지연은 신연만 곁에 없다면 무슨 일을 하든 신나게 느껴졌다.저택에 도착하자 시간은 이미 열 시를 훌쩍 넘어버렸다. 태지연은 신유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기에 입맛이 없어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신연에게 일이 생겼는지 오랫동안 방에 돌아오지 않자 태지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서랍을 열고 약통을 꺼내 보았다. 약통 속에는 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태지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약통을 원상복구 했다.그 비타민 약통에 들어있는 약은 피임약이었는데 거의 바닥이 나 태지연은 시간을 내어 약을 사 와야만 했다.최근 신연이 피임조치를 하고 있지만 매번 쓰는 것도 아녀서 태지연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태지연은 안색이 굳어진 채 약통을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태지연은 발신자 표시를 보고 눈이 휘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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