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Chapter 1071 - Chapter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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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1화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이준혁이 물었다.“아가씨, 이제 정신이 좀 드나? 꿈 깼어?”윤혜인이 넋을 잃고 이준혁을 바라봤다.이준혁의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입가에는 조롱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더 말해보지 그래? 들어나 보게.”이준혁은 여전히 잘생겼지만 얼음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지자 무서운 위압감만 남았다.윤혜인이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결국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심장에 큰 구멍을 뚫어놓고 바람구멍에 내놓은 것처럼 너무 시리고 아팠다.‘이래도 안 되는 걸까?’강한 의지를 보여주던 윤혜인의 손이 힘없이 차가운 차로 미끄러졌다.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 것처럼 너무 추웠다.이준혁은 창백해진 윤혜인의 입술과 초췌한 얼굴을 보며 순간 언어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두 다리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말을 듣지 않았다.머리를 누군가 침으로 마구 찌르는 것처럼 깨질 듯이 아팠다.이준혁은 발버둥 치는 걸 포기하고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내가 그쪽 스킬이 좋았나 보네. 네가 이렇게 목매다는 거 보면.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나 보지?”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준혁 씨, 나를 모욕하면 기분이 좀 좋아져요?”이준혁은 까만 차 한 대가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전혀 티 내지 않고 차갑게 웃었다.“이것도 모욕인가?”이준혁이 손가락이 아름다운 윤혜인의 목을 따라 쇄골까지 내려갔다.쫙.그렇게 윤혜인의 얇은 스웨터가 찢어지고 말았다.갑자기 스며드는 한기에 윤혜인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난감하면서도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찢어진 옷을 정리하려 했지만 이준혁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이준혁의 목소리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했다. 마치 독약을 잔뜩 바른 사탕 같았다.“윤혜인. 기억해. 이게 모욕이야.”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더니 가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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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2화

“미안해.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너를 달래줄 수는 없어. 하지만...”이준혁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비아냥댔다.“네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줄 수는 있어. 아는 것도 많고 스킬도 좋은 모델들 말이야...”윤혜인이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이준혁의 따귀를 내리쳤다.찰싹.주변은 정적이 흘렀다.이준혁의 표정은 곧 세계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음침했다. 입가에 피가 새어 나왔지만 여전히 조롱은 멈추지 않았다.“네가 체면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지.”이 말은 윤혜인의 인격을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윤혜인의 안색이 또 한 번 변했다. 손을 들려는데 이준혁이 이를 막았다.“부부였던 적이 있으니까 아까 그 따귀는 문제 삼지 않을게. 근데...”이준혁이 윤혜인의 손목을 부러트릴 것처럼 손에 힘을 주며 경고했다.“작업실이 서울에서 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이 손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러더니 윤혜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손으로 차 문을 짚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모욕에 경고도 모자라 이젠 협박까지 하고 있다.이게 오늘 밤 그녀가 얻는 전부였다.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수확이었다.윤혜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던 데로부터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차분해졌다.밤은 쌀쌀했고 달빛은 우울했다.윤혜인의 얼굴을 적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창백한 입술로 억지웃음을 짓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축하해요. 원하던 걸 이뤘네요.”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윤혜인은 모든 용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전에는 굳게 믿었던 것들이 화살처럼 그녀에게로 날아와 가슴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보름 동안 우스갯거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이준혁은 좀비 같은 윤혜인의 모습에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혜인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준혁 씨...”윤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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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3화

이준혁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다. 이마에 맺혀있는 땀을 보니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았다.주훈은 지켜보는 눈을 피해 차 문을 여는 척하며 힘껏 이준혁의 팔을 부축했다.이준혁은 그제야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뻗어 차에 올랐다.하지만 차에 오르자마자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화들짝 놀란 주훈이 혹시나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 황급히 문을 닫았다.운전석에 탄 주훈은 이준혁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손을 보태려는데 이준혁이 호통쳤다.“운전해.”주훈이 멈칫하더니 이를 악물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풉.뒷좌석에 앉은 이준혁이 억지로 일어나려다 피를 토하고 말았다.“대표님.”주훈이 자기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우려 했다.“멈... 멈추지 마.”이준혁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더니 힘겹게 말했다.“운전해... 스카이로 가.”이준혁은 다시 스카이 별장으로 들어갔다.주훈은 이준혁의 허락 없이 차를 세울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준혁이 너무 걱정되어 눈시울이 붉혀졌다.“대표님, 일단 병원으로 가요. 제발 부탁이에요...”“아니, 그럴 필요 없어.”이준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병원에 가도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작 진통제만 놓아주고 말 것이다.이준혁 체내에 있는 독은 으뜸이라고 소문난 병원에서도 무슨 독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해독은 어림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준혁은 휠체어를 타야 하는 지경이 될 것이다.몸이 하루하루 무너져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고 절망스럽게 했다.이준혁은 이런 고통은 혼자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 안전하게 여생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스카이 별장.주훈이 이준혁을 대문까지 데려다주자 이준혁이 이렇게 말했다.“인제 그만 들어가 봐.”주훈은 문틀을 잡고 간신히 서 있는 이준혁을 보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몸에 문제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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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4화

그러다 이준혁도 한 줌의 재가 될 수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준혁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넓은 침대로 향했다.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쪼그리고 누웠다.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그 말만 재생되었다.‘혜인은 이미 포기했어.’그 말이 재생될 때마다 이준혁은 심장이 더 크게 찢어지는 것 같아 너무 아팠다.“이준혁 씨.”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이준혁은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서호 별장.곽경천은 정장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딘가 나가려는 것 같았다.늦은 시간인데 윤혜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어 마중 나갈 생각이었다.하지만 문을 나서자마자 돌아오는 윤혜인과 마주쳤다.“왔어?”곽경천은 윤혜인을 힐끔 쳐다봤다. 차에서 내릴 때 정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곽경천은 단번에 윤혜인의 옷이 찢어진 걸 발견했다. 그리고 턱에 약간의 멍이 들어있었다. 손자국 같았다.순간 곽경천은 흥분하기 시작했다.“누가 이런 거야?”곽경천이 앞으로 다가가 윤혜인의 손을 잡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얼른 손에 들었던 정장을 윤혜인에게 걸쳐주고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지금 윤혜인에게 제일 필요한 게 뭔지 곽경천도 잘 알고 있었다.윤혜인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바로 추궁할 생각이었다.감히 곽경천의 동생을 건드렸으니 무슨 수를 쓰든 죽여버릴 생각이었다.곽경천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윤혜인에게 물었다.“어디 아픈 데는 없어?”윤혜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생기를 완전히 잃었다.“오빠. 나를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나를 버리는 걸까...”곽경천이 마른침을 삼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이준혁이 멍청해서 그래...”윤혜인은 가슴이 정말 너무 아팠다.그냥 내려놓았을 뿐이지 잊은 건 아니었다. 교양과 자존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더는 이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내려놓은 것뿐이었다.“오빠...”윤혜인은 머리를 곽경천의 어깨에 기대더니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전에 나만 바라보고 나만 잘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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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5화

“뭔데?”윤혜인이 멈칫하더니 아랫배에 손을 올려놓으며 느긋하게 말했다.“이 아이 낳을 생각이야. 다섯 달 후에 외국으로 나가서 순산할 수 있게 몸조리할 거야.”윤혜인은 생각을 마친 상태였다. 작업실 업무를 바짝 끝내고 뒤에는 이쪽 책임자에게 다 넘겨줄 계획이었다.윤혜은은 원래도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가 추워진 덕분에 옷도 여름보다 많이 두꺼워졌다.5개월을 넘겨도 옷으로 살짝 가려주면 임신한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외국 가서 몸조리하겠다고 한 건 아이를 낳기도 전에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의 능력과 집안으로 아이에게 좋은 생활 환경을 마련해줄 자신이 있었다.그러니 이런 쪽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아이를 남기고 싶은 이유를 묻는다면 첫째는 곽아름을 위해서였고 둘째는 어머니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생명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윤혜인도 이 아이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곽경천이 동의했다.“네가 낳고 싶으면 낳는 거지. 우리 가문에서 아이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기를 수 있어.”곽경천은 동생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윤혜인이 내린 결정은 두손 두발 다 들고 찬성했다.게다가 곽경천도 윤혜인이 중절 수술하는 건 별로였다. 중절 수술하면 몸이 상할뿐더러 음기에 영향 줄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엔 아이를 낳아 북적거리면서 지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곽경천이 윤혜인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했다.“네가 너무 수고할까 봐 걱정이야.”윤혜인이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당부했다.“아빠가 몸이 좋지 않으니 이 일은 일단 비밀로 할 생각이야. 두 달 뒤에 내가 건너가면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할게.”곽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곽경천은 윤혜인이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며칠 쉬고 다시 작업실 나가. 구지윤에게 잘 지키라고 할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이만 간다.”윤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불러세웠다.“오빠.”곽경천이 걸음을 멈추더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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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6화

그녀는 씻고 나서 홍 아줌마와 함께 아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오늘은 아름이가 유치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반나절이라 스스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지난번 사건 이후 윤혜인은 마음이 편치 않아 아름이를 일찍 해외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라 체력이 부족한 데다가 스튜디오 일까지 처리해야 해서 자칫 방심하면 아름이의 생명에 위협이 닥칠까 두려웠다.그래서 그녀는 홍 아줌마와 함께 아름이를 외할아버지에게 먼저 보내기로 했고 어차피 두 달 후면 자신도 해외에 가서 태교를 할 예정이었기에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름이는 눈이 빨개져서 윤혜인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했다.윤혜인의 마음도 쓰라렸다. 가능하다면 단 1초도 아름이를 자신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러나 스튜디오의 여러 일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해 그 일을 다 마무리한 후에나 갈 수 있었다.그녀는 아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아름이를 안으며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름아, 착하게 지내고 먼저 외할아버지랑 함께 있어 줘. 외할아버지도 항상 아름이가 보고 싶다고 하시잖아.”아름이도 서울에 온 지 한동안 되어서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눈을 한껏 붉힌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엄마도 몸 잘 챙겨야 해요. 밥도 제때 먹고 잠도 제때 자고... 네?”이별의 순간, 윤혜인은 깊은 아쉬움에 아름이를 한 번 더 꼭 안았다.“착하게 지내고 가는 길에 홍 할머니랑 여은 이모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그러자 아름이는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깡충깡충 뛰면서 홍 아줌마를 따라갔다.윤혜인은 다시 여은에게 당부했다.“여은 씨, 그럼 아름이랑 홍 아줌마 잘 부탁할게요. 아빠가 보낸 경호원이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으니까 아름이를 별장에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와요.”“걱정 마세요. 아름이를 무사히 별장까지 데려다주고 올테니까요.”곧 여은은 걱정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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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7화

주훈은 네 개의 큰 박스를 이준혁의 사무실로 옮겼다. 그의 의아한 시선을 마주하자 주훈은 머뭇거리며 말했다.“혜인 씨 쪽에 두고 가신 물건들이에요. 오늘 퀵 서비스로 보내셨습니다.”“응. 안에 넣어 둬.”이준혁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하루의 업무가 끝나고 도시의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밤하늘이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변했다. 회사 사람들은 거의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이준혁은 조용히 휴게실로 들어가 박스를 하나하나 열었다.그 안에는 생활용품, 옷, 신발 등이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잘 정돈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만지자 그 위에 아직도 윤혜인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준혁은 그녀가 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예전처럼, 그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다음 날 입을 다림질된 옷이 방에 걸려 있던 것이 떠올랐다.갑작스레 마음이 아파오자 이준혁은 긴 손가락으로 깔끔하게 다려진 옷을 단단히 움켜잡았다.결국 그는 옷에 주름을 남기고 말았다.그러자 이준혁은 얇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소리 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쓰라렸지만 어지러워진 옷은 오히려 눈에 더 익숙해졌다.이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이었다. 결코 평탄할 리 없는....윤혜인의 일상은 다시 자리를 잡았고 매일 바쁘게 보내며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더욱 충실하게 지냈다.점심시간에 그녀는 구지윤에게 고객 관련 사항을 물어보러 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구지윤이 집중해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원지민 씨, 최근에 자주 이선 그룹에 출입하시던데 혹시 이준혁 대표님과의 좋은 소식이 곧 있을까요?”화면을 본 윤혜인의 눈에는 베이지색 코트에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배가 상당히 부른 원지민의 모습이 들어왔다.구지윤은 윤혜인이 들어오자 당황한 나머지 급히 웹페이지를 닫으려고 했지만 실수로 화면을 전체로 키워버렸다.화면 속 원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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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8화

윤혜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괜찮아.”말을 짧게 끝내고는 자료를 펼치며 물었다.“여기, 고객한테 연락해서 이렇게 수정해도 되는지 확인해 줄래?”일 얘기를 한참 했지만 윤혜인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구지윤은 찌푸렸던 미간을 조금이나마 풀었다.윤혜인이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은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감정 문제는 타인의 위로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법,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윤혜인은 사무실로 돌아와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사실 이준혁과 관련된 일은 아직까지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곧 윤혜인은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초록 식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그러나 이미 흔들린 마음이 쉽게 진정될 리 없었다....이선 그룹 대표 사무실.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주훈의 눈에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준혁이 보였다.“곽경천 씨가 찾아오셨는데 만나시겠습니까?”이준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곽경천이?”“네. 대표님이 계신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주훈은 들어올 때부터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한 곽경천을 보고 이대로 두었다간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또 둘의 현재 관계와 이준혁의 상태를 봐서라도 맞서 싸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하지만 이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접견실로 안내해. 곧 갈테니까.”주훈은 말리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이윽고 이준혁은 접견실에 들어갔다. 곽경천은 이선 그룹의 기업 연감을 들고 훤칠한 기럭지를 뽐내며 창가에 서 있었다.“형님.”입을 열자 이준혁은 자연스레 예전에 불렀던 호칭이 나왔다. 그러자 곽경천은 고개를 돌리며 멋진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띤 채 말했다.“대표님, 호칭을 잘못 부른 것 아닌가요? 이제 우리 사이가 그런 관계는 아니잖아요.”이준혁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곽경천은 냉소적으로 말했다.“앞으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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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9화

이준혁은 아무 말 없이 곽경천의 말을 듣고 있었고 곽경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된 것도 나쁘진 않네요. 차라리 빨리 끝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곽경천은 속으로 윤혜인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자신의 여동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던 남자가, 돌아오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놓아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래서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죠?”이준혁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아닙니다.”곽경천은 이준혁이 그런 식으로 답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다.곧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혜인이를 너무 약하게 본 것 같습니다. 혜인이는 딱히 누군가가 보호해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지금 대표님이 선택한 방법은 혜인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입니다. 축하합니다. 이제 혜인이를 완전히 잃어버리셨네요. 영원히 혜인이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곽경천은 이 말을 끝으로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나갔다.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이준혁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곧이어 거대한 와르르 소리가 나더니 문이 또다시 벌컥 열렸다.급히 안으로 들어온 주훈의 눈에는 난장판이 된 사방이 보였다.전시대에 놓여 있던 모든 상장과 트로피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주훈은 방금 들린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이준혁에게 다가가며 상처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외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주훈은 혹시 옷 안에 숨겨진 상처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하지만 이내 이준혁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공지를 내.”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주훈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공지요?”“응. 9월 20일로 확정 지어.”“그건...” 주훈은 말문이 막혔으나 이준혁의 냉랭한 눈빛에 얼른 말을 바꿨다.“알겠습니다.”“국내외 언론사들도 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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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0화

하지만 손가락이 떨려 세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노트북을 끌 수 없었다.결국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노트북을 닫아버렸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다 퇴근한 상태였다. 그때 구지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혜인아, 집에 가? 내가 데려다줄게.”말을 하는 사이 구지윤의 핸드폰이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꺼버렸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그 모습에 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할 일 봐. 나는 아래에 운전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어.”집에 돌아온 후, 윤혜인은 욕조에 몸을 담갔지만 따뜻한 물이 식어버린 그녀의 마음을 전혀 데워주지 못했다.그 후 며칠 동안 윤혜인은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이준혁과 원지민의 열애 기사를 계속 보게 되었다.[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가구 쇼핑...][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야식 먹으며 데이트...][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미용실 방문...]언론은 이준혁을 신세대 모범 남성으로 만들어냈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를 부러워하며 뉴스 아래에 자기 남자친구를 태그했다.[아무리 바빠도 약혼녀랑 쇼핑 가주는데... 넌 뭐야?][분 단위로 수십억을 벌어도 약혼녀랑 야식 먹을 시간이 있으시다는데... 넌 왜 안 돼?]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뎌졌다.결국 윤혜인도 언론이 말하는 대로 이준혁이 원지민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어찌 됐든 그가 지금 원지민과 함께 하는 일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으니 말이다.이제 이준혁에 대한 윤혜인의 인식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그녀가 알던 사람은 목숨을 걸고 바다로 차를 몰아넣었던 이준혁인지 아니면 지금 사랑을 위해 변한 이준혁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그날 퇴근 후, 구지윤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혜인아, 우리 같이 가서 샤브샤브 먹을래?”구지윤은 윤혜인이 요즘 내내 우울한 모습을 보였기에 기분 전환을 위해 샤브샤브를 먹자고 제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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