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훈은 네 개의 큰 박스를 이준혁의 사무실로 옮겼다. 그의 의아한 시선을 마주하자 주훈은 머뭇거리며 말했다.“혜인 씨 쪽에 두고 가신 물건들이에요. 오늘 퀵 서비스로 보내셨습니다.”“응. 안에 넣어 둬.”이준혁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하루의 업무가 끝나고 도시의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밤하늘이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변했다. 회사 사람들은 거의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이준혁은 조용히 휴게실로 들어가 박스를 하나하나 열었다.그 안에는 생활용품, 옷, 신발 등이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잘 정돈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만지자 그 위에 아직도 윤혜인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준혁은 그녀가 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예전처럼, 그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다음 날 입을 다림질된 옷이 방에 걸려 있던 것이 떠올랐다.갑작스레 마음이 아파오자 이준혁은 긴 손가락으로 깔끔하게 다려진 옷을 단단히 움켜잡았다.결국 그는 옷에 주름을 남기고 말았다.그러자 이준혁은 얇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소리 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쓰라렸지만 어지러워진 옷은 오히려 눈에 더 익숙해졌다.이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이었다. 결코 평탄할 리 없는....윤혜인의 일상은 다시 자리를 잡았고 매일 바쁘게 보내며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더욱 충실하게 지냈다.점심시간에 그녀는 구지윤에게 고객 관련 사항을 물어보러 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구지윤이 집중해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원지민 씨, 최근에 자주 이선 그룹에 출입하시던데 혹시 이준혁 대표님과의 좋은 소식이 곧 있을까요?”화면을 본 윤혜인의 눈에는 베이지색 코트에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배가 상당히 부른 원지민의 모습이 들어왔다.구지윤은 윤혜인이 들어오자 당황한 나머지 급히 웹페이지를 닫으려고 했지만 실수로 화면을 전체로 키워버렸다.화면 속 원지민
윤혜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괜찮아.”말을 짧게 끝내고는 자료를 펼치며 물었다.“여기, 고객한테 연락해서 이렇게 수정해도 되는지 확인해 줄래?”일 얘기를 한참 했지만 윤혜인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구지윤은 찌푸렸던 미간을 조금이나마 풀었다.윤혜인이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은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감정 문제는 타인의 위로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법,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윤혜인은 사무실로 돌아와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사실 이준혁과 관련된 일은 아직까지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곧 윤혜인은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초록 식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그러나 이미 흔들린 마음이 쉽게 진정될 리 없었다....이선 그룹 대표 사무실.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주훈의 눈에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준혁이 보였다.“곽경천 씨가 찾아오셨는데 만나시겠습니까?”이준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곽경천이?”“네. 대표님이 계신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주훈은 들어올 때부터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한 곽경천을 보고 이대로 두었다간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또 둘의 현재 관계와 이준혁의 상태를 봐서라도 맞서 싸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하지만 이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접견실로 안내해. 곧 갈테니까.”주훈은 말리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이윽고 이준혁은 접견실에 들어갔다. 곽경천은 이선 그룹의 기업 연감을 들고 훤칠한 기럭지를 뽐내며 창가에 서 있었다.“형님.”입을 열자 이준혁은 자연스레 예전에 불렀던 호칭이 나왔다. 그러자 곽경천은 고개를 돌리며 멋진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띤 채 말했다.“대표님, 호칭을 잘못 부른 것 아닌가요? 이제 우리 사이가 그런 관계는 아니잖아요.”이준혁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곽경천은 냉소적으로 말했다.“앞으로 형
이준혁은 아무 말 없이 곽경천의 말을 듣고 있었고 곽경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된 것도 나쁘진 않네요. 차라리 빨리 끝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곽경천은 속으로 윤혜인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자신의 여동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던 남자가, 돌아오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놓아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래서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죠?”이준혁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아닙니다.”곽경천은 이준혁이 그런 식으로 답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다.곧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혜인이를 너무 약하게 본 것 같습니다. 혜인이는 딱히 누군가가 보호해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지금 대표님이 선택한 방법은 혜인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입니다. 축하합니다. 이제 혜인이를 완전히 잃어버리셨네요. 영원히 혜인이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곽경천은 이 말을 끝으로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나갔다.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이준혁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곧이어 거대한 와르르 소리가 나더니 문이 또다시 벌컥 열렸다.급히 안으로 들어온 주훈의 눈에는 난장판이 된 사방이 보였다.전시대에 놓여 있던 모든 상장과 트로피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주훈은 방금 들린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이준혁에게 다가가며 상처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외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주훈은 혹시 옷 안에 숨겨진 상처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하지만 이내 이준혁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공지를 내.”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주훈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공지요?”“응. 9월 20일로 확정 지어.”“그건...” 주훈은 말문이 막혔으나 이준혁의 냉랭한 눈빛에 얼른 말을 바꿨다.“알겠습니다.”“국내외 언론사들도 더 많
하지만 손가락이 떨려 세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노트북을 끌 수 없었다.결국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노트북을 닫아버렸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다 퇴근한 상태였다. 그때 구지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혜인아, 집에 가? 내가 데려다줄게.”말을 하는 사이 구지윤의 핸드폰이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고 꺼버렸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그 모습에 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할 일 봐. 나는 아래에 운전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어.”집에 돌아온 후, 윤혜인은 욕조에 몸을 담갔지만 따뜻한 물이 식어버린 그녀의 마음을 전혀 데워주지 못했다.그 후 며칠 동안 윤혜인은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이준혁과 원지민의 열애 기사를 계속 보게 되었다.[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가구 쇼핑...][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야식 먹으며 데이트...][이선 그룹 대표, 약혼녀와 함께 미용실 방문...]언론은 이준혁을 신세대 모범 남성으로 만들어냈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를 부러워하며 뉴스 아래에 자기 남자친구를 태그했다.[아무리 바빠도 약혼녀랑 쇼핑 가주는데... 넌 뭐야?][분 단위로 수십억을 벌어도 약혼녀랑 야식 먹을 시간이 있으시다는데... 넌 왜 안 돼?]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뎌졌다.결국 윤혜인도 언론이 말하는 대로 이준혁이 원지민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어찌 됐든 그가 지금 원지민과 함께 하는 일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으니 말이다.이제 이준혁에 대한 윤혜인의 인식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그녀가 알던 사람은 목숨을 걸고 바다로 차를 몰아넣었던 이준혁인지 아니면 지금 사랑을 위해 변한 이준혁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그날 퇴근 후, 구지윤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혜인아, 우리 같이 가서 샤브샤브 먹을래?”구지윤은 윤혜인이 요즘 내내 우울한 모습을 보였기에 기분 전환을 위해 샤브샤브를 먹자고 제안한
윤혜인은 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구지윤의 표정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더욱 세게 들었다.‘지윤이랑 오빠가? 언제부터였지? 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하지만 일단 의심이 들자 작은 단서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부분들이 윤혜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오빠의 성격과 우리 아빠의 태도는... 지윤이가 많이 힘들어질 텐데.’윤혜인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원을 떠올렸다.‘왜 우리 셋의 연애는 모두 이렇게나 복잡한 거야.’윤혜인은 구지윤과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당연히 자신은 전력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한편 차 안.곽경천이 자신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구지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되레 참으려고 애쓰며 말했다.“설마 저희 집 자물쇠 따고 들어갔어요?”그러자 곽경천은 소파에 다리를 길게 뻗은 채,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굳이 자물쇠까지 따야 하나?”“그럼 어떻게 들어갔는데요?”“어젯밤 취한 사람이 비밀번호를 알려줬거든.”구지윤의 얼굴이 빨개졌다.그가 말한 ‘취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구지윤은 술에 취해 비밀번호까지 알려준 자신을 자책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집에 돌아가면 비밀번호부터 당장 바꿔야겠다 다짐도 하고 말이다.마음을 가다듬은 뒤, 구지윤은 이렇게 말했다.“그렇다고 저희 집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죠.”하지만 곽경천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옷 가지러 왔다니까.”구지윤은 그의 당당함에 어이가 없었다.“옷이 그렇게 모자라요?”“응.”구지윤은 할 말을 잃었고 곽경천은 장난스럽게 물었다.“구지윤, 왜 요즘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아?”그 말을 듣자마자 구지윤은 어젯밤 일이 떠올라 얼굴부터 목까지 전부 빨개졌다.“어젯밤 침대에서 너는 나를 58번이나 도련님이라고 불렀잖아. 처음엔 목소리가 컸고 나중엔 울면서 불렀지. 특
똑같이 윤혜인을 마주한 이준혁의 우수 깊은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고 윤혜인은 그 순간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을 내뱉을 뻔했다.원지민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정말 이준혁의 아이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이 질문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그 질문의 대답은 이준혁에 대한 윤혜인의 모든 인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준혁은 그저 무심하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마치 윤혜인이 그저 지나가는 낯선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곧 이준혁은 긴 다리를 뻗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그런 모습에 윤혜인은 손이 조금 굳어져 서비스 직원이 부를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손님?”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혜인은 서둘러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앞서 걷는 이준혁의 방향이 그녀와 같은 쪽이었다.샤브샤브 집은 독특하게 꾸며져 있어 각 방 사이의 거리가 꽤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곧게 뻗은 등을 바라보며 그의 몸에 꼭 맞는 정장이 만들어내는 섹시한 곡선을 눈으로 좇았다.예전보다도 살이 훨씬 더 빠진 것 같았다. 원래도 차갑고 고독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윤혜인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내가 이걸 신경 써서 뭐해... 보아하니 준혁 씨는 나랑 인사조차 나누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그럼 나도 굳이 물을 필요 없잖아. 이렇게 서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준혁아.”그때, 한 여자의 가는 팔이 이준혁의 팔을 붙잡았다.“음식 다 준비됐어. 이제 같이 먹자.”주변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고 윤혜인도 발걸음을 멈췄다.‘준혁 씨는 원래 샤브샤브를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은 원지민 씨랑 함께 와 있구나... 아마 내일이면 또 두 사람이 애정을 과시한다는 기사가 도배되겠지.’원지민은 옆에 있는 이준혁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그녀는 이준혁이 윤혜인의 앞에서 자신을 떼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했다.
원지민은 속으로 배 속의 아이를 원망했다.‘이 못생긴 괴물이 내 아름다움을 빼앗았어.'그리고 앞에 서 있는 윤혜인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윤혜인의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부드러웠지만 원지민은 그것이 일부러 남자를 유혹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윤혜인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원지민을 떼어놓지 않고 그녀와 함께 서 있는 이준혁의 모습을 보니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곽경천은 얼마 전 아름이와 홍 아줌마의 납치 사건을 조사하던 중, 관련된 인물과 접촉했지만 변호사가 끼어들어 조사를 방해했다고 전해왔다.그 뒤로 관련 인물은 사라졌고 더 이상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곽경천이 말하길, 그 변호사는 이선 그룹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는데 사실 윤혜인은 이미 마음속으로 원지민이 그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문현미가 어떻게 납치범의 위치를 알았는지도 원지민과의 거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문현미는 보이지 않았고 납치범의 흔적도 끊겼다.눈앞에 서 있는 이 악당이 아무 일 없이 이렇게 버젓이 서 있는 것은 오로지 옆에 있는 이준혁 덕분이었다.이준혁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가 보호하는 사람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었다.불쾌감이 점차 쌓이며 윤혜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곧 자리를 뜨려 했지만 원지민이 그녀를 가로막았다.“혜인 씨, 지난번에 제가 주문한 드레스, 오늘 낮에 디자인 시안 확인했어요. 혜인 씨도 받았나요?”윤혜인은 원지민이 갑자기 이 일을 꺼낼 줄은 몰랐다.당시 원지민은 더 많은 돈을 내며 의도적으로 윤혜인을 모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 연락도 없었기에 윤혜인은 이 일이 흐지부지된 줄 알았다.하지만 모욕하던 것이 이제는 사실이 된 이상, 원지민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그녀는 일부러 말했다.“결혼식 드레스는 이미 작년에 맞췄어요. 그래서 혜인 씨에게는 신혼여행 때 입을 두 벌의 평상복과 저희 남편에게 입힐 양복 두 벌을 부탁하고 싶어요. 괜찮나요?
이준혁은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지만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말이다.원지민이 의아해하는 순간 이준혁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져 갔다. 마치 그녀의 뼈를 부술 듯 말이다.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며 원지민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준혁아!”하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전혀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그의 손은 여전히 강철처럼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고 곧 원지민의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떨어졌고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준혁아...”원지민은 울먹이면서 간신히 말했다.“너무 아파... 제발 놔줘.”이준혁은 그제서야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카메라가 찍고 있어.”그러나 여전히 강하게 원지민의 손을 붙잡은 채 이준혁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원지민은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지만 손이 너무 아파서 거의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섯 손가락이 마치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결국 그들은 방 안에 도착했고 문이 닫히자마자 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단번에 놓았다.휘청거리며 의자를 잡은 원지민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손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는 이준혁의 위로 조명이 비췄다. 여전히 그 얼굴은 한없이 잘생겼지만 원지민에게는 그가 마치 죽음의 사자처럼 느껴졌다.그의 차가운 시선에 원지민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았다.이준혁은 고개를 숙이고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원지민, 그딴 식으로 하면 내가 모를 것 같아?”원지민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불안해졌지만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난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이준혁은 그녀가 시치미를 떼는 것을 보고 더욱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내가 혜인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원지민의 속에는 억울함이 쌓여갔다.“난...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그냥 기자들이 있어서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