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윤혜인을 마주한 이준혁의 우수 깊은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고 윤혜인은 그 순간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을 내뱉을 뻔했다.원지민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정말 이준혁의 아이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이 질문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그 질문의 대답은 이준혁에 대한 윤혜인의 모든 인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준혁은 그저 무심하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마치 윤혜인이 그저 지나가는 낯선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곧 이준혁은 긴 다리를 뻗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그런 모습에 윤혜인은 손이 조금 굳어져 서비스 직원이 부를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손님?”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혜인은 서둘러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앞서 걷는 이준혁의 방향이 그녀와 같은 쪽이었다.샤브샤브 집은 독특하게 꾸며져 있어 각 방 사이의 거리가 꽤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곧게 뻗은 등을 바라보며 그의 몸에 꼭 맞는 정장이 만들어내는 섹시한 곡선을 눈으로 좇았다.예전보다도 살이 훨씬 더 빠진 것 같았다. 원래도 차갑고 고독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윤혜인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내가 이걸 신경 써서 뭐해... 보아하니 준혁 씨는 나랑 인사조차 나누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그럼 나도 굳이 물을 필요 없잖아. 이렇게 서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준혁아.”그때, 한 여자의 가는 팔이 이준혁의 팔을 붙잡았다.“음식 다 준비됐어. 이제 같이 먹자.”주변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고 윤혜인도 발걸음을 멈췄다.‘준혁 씨는 원래 샤브샤브를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은 원지민 씨랑 함께 와 있구나... 아마 내일이면 또 두 사람이 애정을 과시한다는 기사가 도배되겠지.’원지민은 옆에 있는 이준혁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그녀는 이준혁이 윤혜인의 앞에서 자신을 떼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했다.
원지민은 속으로 배 속의 아이를 원망했다.‘이 못생긴 괴물이 내 아름다움을 빼앗았어.'그리고 앞에 서 있는 윤혜인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윤혜인의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부드러웠지만 원지민은 그것이 일부러 남자를 유혹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윤혜인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원지민을 떼어놓지 않고 그녀와 함께 서 있는 이준혁의 모습을 보니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곽경천은 얼마 전 아름이와 홍 아줌마의 납치 사건을 조사하던 중, 관련된 인물과 접촉했지만 변호사가 끼어들어 조사를 방해했다고 전해왔다.그 뒤로 관련 인물은 사라졌고 더 이상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곽경천이 말하길, 그 변호사는 이선 그룹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는데 사실 윤혜인은 이미 마음속으로 원지민이 그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문현미가 어떻게 납치범의 위치를 알았는지도 원지민과의 거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문현미는 보이지 않았고 납치범의 흔적도 끊겼다.눈앞에 서 있는 이 악당이 아무 일 없이 이렇게 버젓이 서 있는 것은 오로지 옆에 있는 이준혁 덕분이었다.이준혁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가 보호하는 사람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었다.불쾌감이 점차 쌓이며 윤혜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곧 자리를 뜨려 했지만 원지민이 그녀를 가로막았다.“혜인 씨, 지난번에 제가 주문한 드레스, 오늘 낮에 디자인 시안 확인했어요. 혜인 씨도 받았나요?”윤혜인은 원지민이 갑자기 이 일을 꺼낼 줄은 몰랐다.당시 원지민은 더 많은 돈을 내며 의도적으로 윤혜인을 모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 연락도 없었기에 윤혜인은 이 일이 흐지부지된 줄 알았다.하지만 모욕하던 것이 이제는 사실이 된 이상, 원지민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그녀는 일부러 말했다.“결혼식 드레스는 이미 작년에 맞췄어요. 그래서 혜인 씨에게는 신혼여행 때 입을 두 벌의 평상복과 저희 남편에게 입힐 양복 두 벌을 부탁하고 싶어요. 괜찮나요?
이준혁은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지만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말이다.원지민이 의아해하는 순간 이준혁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져 갔다. 마치 그녀의 뼈를 부술 듯 말이다.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며 원지민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준혁아!”하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전혀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그의 손은 여전히 강철처럼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고 곧 원지민의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떨어졌고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준혁아...”원지민은 울먹이면서 간신히 말했다.“너무 아파... 제발 놔줘.”이준혁은 그제서야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카메라가 찍고 있어.”그러나 여전히 강하게 원지민의 손을 붙잡은 채 이준혁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원지민은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지만 손이 너무 아파서 거의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섯 손가락이 마치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결국 그들은 방 안에 도착했고 문이 닫히자마자 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단번에 놓았다.휘청거리며 의자를 잡은 원지민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손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는 이준혁의 위로 조명이 비췄다. 여전히 그 얼굴은 한없이 잘생겼지만 원지민에게는 그가 마치 죽음의 사자처럼 느껴졌다.그의 차가운 시선에 원지민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았다.이준혁은 고개를 숙이고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원지민, 그딴 식으로 하면 내가 모를 것 같아?”원지민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불안해졌지만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난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이준혁은 그녀가 시치미를 떼는 것을 보고 더욱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내가 혜인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원지민의 속에는 억울함이 쌓여갔다.“난...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그냥 기자들이 있어서 너
원지민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눈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가득했다.이 거래에서 승자는 자신이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이준혁이 돌아온 후, 그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그래서 원지민은 곧바로 그에게 접근해 조건을 제시했다.이준혁은 당연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명이 걸린 문제였으니 말이다.그 주사에는 해독제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완전히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원진우가 그 연구자를 찾아내어 해독제가 무엇인지 알아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준혁은 거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했다.바로 윤혜인을 찰스 가문의 추적 명단에서 제거하라는 것이었다.이준혁은 원지민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찰스 가문의 이름을 바로 언급했다.원진우가 찰스 가문의 수장과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알아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애초에 찰스 가문의 추적 명단에 윤혜인의 이름을 올린 것도 자신이 계략을 써서 이루어낸 일이었으니 말이다.이준혁에게 사랑을 얻을 수 없다면 이제는 사랑 따위 필요 없었다.그 대신 도덕적인 굴레로 그를 묶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원지민은 언젠가 자신도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원지민, 네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이준혁은 원지민을 바라보며 마치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거래라는 것은 거래의 기준을 벗어나면 그 이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야. 네 주권을 지키겠다고?”이준혁은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런 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원지민의 심장은 쿵 하고 세차게 울렸다.곧 이준혁은 원지민의 턱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말하는 주권이 뭐지? 너한테 무슨 주권이 있다는 거야?”이준혁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 앞에서 조금 전까지 자신감 넘쳤던 원지민의 모습은 산산조각이 났다.그녀는 몸을 떨며 간신히 말을 뱉었
너무 불안한 탓에 원지민은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나, 나 별로 입맛이 없어.”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 있으면 난 먼저 가볼게.”“앉아.”차갑고 단호한 두 마디를 무심하게 뱉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준혁의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순간 다리가 굳어버린 원지민은 그대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아주 먹고 싶어 했다며?”이준혁은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 번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다 먹고 나가.”그의 눈빛에 드러난 어두운 기운을 보고 원지민은 손바닥에 맺힌 땀마저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처음으로 그녀는 이준혁에게 단순한 집착뿐만 아니라 두려움까지 느끼기 시작했다.오늘 샤브샤브를 먹지 않고서는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알겠어. 먹을게.”원지민은 손가락을 떨며 젓가락을 꽉 쥐고 국물에 잠긴 채소와 고기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머릿속에는 오직 빨리 먹고 자리를 떠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남자가 주는 압박감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음식을 절반쯤 먹었을 때, 이준혁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드레스는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이미 준비해 놨어.”“컥, 컥!”원지민은 그의 말을 듣고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국물이 입가에 흐르며 땀에 젖은 화장은 엉망이 되어 있었기에 원지민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이 순간, 드레스나 결혼식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원지민은 그저 결혼식 전에만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리고 윤혜인은 결혼식이 끝나면 천천히 처리할 생각이었다.한 사람을 없애는 데에 있어 추적 명단에 올리거나 말거나는 큰 차이가 없었다.그 명단은 해외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 서울에서 실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원지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윤혜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응. 알았어.”원지민은 마침내 굴복했다.한편, 윤혜인과 구지윤은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아까 있었던 일 때문인지 윤혜인은 식욕이 없어 간
곽경천은 사건을 마무리하며 그날 저녁 식당에서 목격자를 찾아내 고객이 술에 약을 탔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그리고 오후에 경찰서에 증거를 제출해 그 고객을 구치소에 보내버렸다.윤혜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지윤아, 이런 큰일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 말도 안 했어?”그녀는 구지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다행히도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윤혜인은 말했다.“그 나쁜 자식이 널 괴롭혔다고?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내가 변호사 불러서 그 자식 끝장내줄 거야!”이러한 윤혜인의 반응에 구지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괜찮아.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도 못했어. 도련님께서 다 해결해주셨거든.” 윤혜인도 최근 여러 일로 심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구지윤은 그녀에게 이런 골치 아픈 일을 말하지 않고 숨겼던 것이다.곽경천이 나서서 해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윤혜인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오빠가 널 찾는 게 그 이유 때문이 맞겠다. 얼른 가서 전화해봐. 나는 남준 오빠가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고.”구지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곽경천이 전화하라는 이유는 단순히 그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메시지로 그녀에게 빨리 집에 오라는 말까지 보냈다.모든 이익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또 이런 태도로 나오는 곽경천이 구지윤은 어이가 없었다.정말 그는 자기만 고귀한 몸이라 여기는 모양인 것 같았다.구지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차라리 작업실에 가서 일을 조금 더 하고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곽경천도 기다리다 포기할 테니 말이다.그녀가 막 차 문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문손잡이를 누르며 구지윤의 손을 막았다.어젯밤의 불쾌한 경험 때문에 구지윤은 즉각 반응하며 본능적으로 전에 배운 방어술을 사용해 팔꿈치를 들어 뒤에 있는 사람의 턱을 치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방은 구지윤의 동작을 예상한 듯 쉽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제압했다.
구지윤은 상황을 정리하며 술에 취한 남자의 친구가 계속해서 사과하는 걸 들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정말 실수했어요. 형님과 여자친구분께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제 친구 좀 봐주세요.”‘여자친구'라는 말을 듣고 곽경천은 의외로 표정을 풀었다. 이내 차가운 얼굴에서 조금은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친구가 술에 취했으면 그냥 집에 데려가서 쉬게 하세요.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이 말에 상대방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친구를 급히 끌고 갔다.곽경천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코트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구지윤의 손을 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듯했다. 구지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손을 놓고 머뭇거리며 말했다.“여기까지 와서 뭐 하시는 거예요?”“너 집에 데려다주려고.”곽경천은 간결하게 말하며 구지윤의 손에서 차 키를 가져가더니 자연스럽게 차 앞으로 걸어갔다.“하지만...”그러나 구지윤이 거절할 틈도 없이 곽경천이 이미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구지윤은 차에 타면서 물었다.“그럼 도련님 차는요?”“운전기사가 가져갔어.”구지윤은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말했다.“정말로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 저 아직 회사에 가야 할 일이 있어요.”“늦었잖아. 할 일 있으면 내일 해.”구지윤은 곽경천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게 불편했는지라 서둘러 변명을 생각해냈다.“안 돼요. 아직 마무리 못 한 서류가 있어요...”그때 곽경천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윤혜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예요!”놀란 구지윤은 다급하게 몸을 기울여 그의 핸드폰을 끄려 했다.그러자 곽경천은 전화를 끊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혜인이한테 물어보려고. 정말로 네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기라도 하는지.”“절대 물어보지 마요!”목청을 높이며 구지윤은 절박하게 말했다.예전에 구지윤은 곽경천 앞에서
윤혜인은 배남준이 미간을 찌푸린 것도 모른 채 그의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맞아요, 바로 이 사람! 이 눈 기억해요. 그 사람은 이색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그녀가 이토록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구조대가 도착하기 직전 그 사람이 윤혜인을 차와 함께 다리 아래로 밀어버렸기 때문이다.당시 그 남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빛의 굴절로 인해 눈동자가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그리고 이 사진 속 인물은 그때 그 남자와 똑같은 이색안이었다.윤혜인은 그 남자의 눈을 보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 눈은 마치 독을 품은 방울뱀의 눈처럼 악의에 찬 기운이 느껴졌고 한 번 마주친 사람은 평생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윤혜인은 떨리는 손으로 배남준의 팔을 잡았다.“남준 오빠,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배남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이 사람은 찰스 가문 소속이야. 최근에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는 정보는 있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어. 내가 이 사진을 배씨 가문의 사무 그룹에 올려서 주시하도록 할게. 이 사람이 북안도로 돌아오는 순간 바로 잡으면 그때의 일을 물을 수 있을 거야.”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전일 뿐만 아니라 최근의 폭발 사건도 이 사람이 관련이 있어요.”그녀는 그 남자의 변조된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 목소리는 다리에서 윤혜인을 밀어버렸던 남자의 말투와 너무나도 비슷했다.따라서 윤혜인은 다리 추락 사건과 최근 임세희의 납치 사건에서 그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배남준도 임세희 납치 사건에 대해 곽경천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다.당시 차량 시스템에 해커가 침입해 위성을 통해 신호를 추적한 후, 그 신호를 해커를 통해 분석한 결과 신호가 서울에서 발송된 것이었다.이색안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자 배남준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그러나 그는 윤혜인이 더 걱정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말했다.“알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람들을 시
택시의 이동 동선만 봐도 육경한은 소원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챘다.그는 소원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앞차와의 거리를 넓혔다.역시나 택시는 소원의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 앞에 멈췄고 소원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자주 온 덕분에 간병인들은 소원을 알아봤다.“소원 씨, 오셨어요?”소원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요즘 달라진 건 없죠?”이건 소원이 매번 묻는 말인데, 그녀는 자신이 오지 않은 2, 3일 동안 엄마한테 일어난 일들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하지만 다른 일을 전부 다 제쳐두고 요양원에서 매일 엄마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참 답답했다.엄마를 집으로 모셔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육경한이 절대 동의할 리가 없다. 게다가 요양원은 의료기기가 잘 갖춰져 있어 치료에 굉장히 도움이 됐기에 집에 이런 걸 놓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간병인이 입을 열었다.“전이랑 비슷해요. 달라진 건 없어요.”매번 똑같은 답이 돌아왔지만 소원은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변화가 없다는 게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차라리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는 게 행복일 수도 있다. 만약 깨어난다면 무너져가는 이 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가능하다면 그녀는 혼자서 이 고통을 감당하고 싶었다.소원은 간병인에게 물었다.“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당연하죠. 전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벨 눌러요.”“알겠습니다.”간병인이 나간 후 소원은 침대에 앉아 창틀에 놓인 꽃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엄마를 보고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엄마...”전미영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눈을 깜빡이며 꽃들을 바라봤다.소원은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아 전미영을 껴안았다.“엄마...”하고 싶은 말이 수천 개가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이곳에서 모든 감정과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게 소원에게는 일종의 해방이었다.“엄마... 엄마...”소원은 결국
육경한은 소원이라는 독에 중독되어 이미 구제 불능의 상태였다.게다가 무곡산의 일은 소원이 그에게 아무 사랑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생사가 달린 일이라도 다시 육경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소원의 눈빛은 이미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줬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알려줬다.육경한은 처음으로 삶에 대한 절망감을 처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소원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싶었는데 하느님은 장난이라도 치는 듯 아이를 선물해 줬다.육경한은 소원의 변호사에게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알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진실을 알게 된 순간 죽어있던 심장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고 어쩌면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기쁨 뒤에는 늘 그렇듯 두려움이 찾아온다.육경한은 아이를 놓칠까 봐 두려웠고 그 아이가 유진과 같은 고통을 겪을까 봐 무서웠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두려워했다.손에 넣기도 전에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를 고통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소원이 죽었다고 생각하던 그때의 경험한 두려움이 다시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육경한은 간절히 기도했다.‘소원아, 제발 잔인한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한테 기회를 줘. 나한테도...’저녁.퇴근한 육경한은 소원이네 집 아래에 머물며 위층에 켜져 있는 불빛을 오랫동안 바라봤다.밤새 잠을 못 잤고 낮에 눈을 붙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3일 연속으로 육경한은 감시를 붙여놓은 사람을 찾아와 교대했다. 지금껏 보고받은 행적을 보면 지난 3일 동안 소원은 유난히 조용했고 누굴 만나기는커녕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아무도 모르겠지만 지난 3일간의 육경한의 삶은 그저 고문이었다. 마치 칼이 머리 위에 걸려있는 듯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몰랐고 매 순간 목숨을 걸고 답을 기다리고 있
생각할 것도 없다. 소원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으니까..하지만 육경한이 제안한 조건은 너무 유혹적이었다.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진을 만날 수도 있고 아이와 함께 살 수도 있다.거절하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조건을 생각해 보면 삼킬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어길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만 있다면 임신 중에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아. 내가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인 건 알지?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지만...”육경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아이를 지우겠다고 고집한다면 우리에게 협상의 여지는 없어. 너도 알다시피 소송을 진행하면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이 줄어들 거야.”소원은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육경한은 그의 스타일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고 의외는 아니었다.“육경한, 아이를 꼭 낳으라고 하는 이유는 뭐야?”육경한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랑 나 사이의 아이니까.”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육경한이 이번에는 명확하게 의견을 표현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그는 임신한 소원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이러면 예전에 유진을 임신했을 때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달래질 것만 같았다.그러니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꼭 이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자리에서 일어난 소원은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생각해 보고 연락할게.”그 말에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황 비서가 데려다 줄거야.”육경한은 소원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아무리 걱정되어도 직접 배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었다.물론 거절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지금 이 순간 소원은 혼자 있고 싶었다.“괜찮아. 혼자 가면 돼.”육경한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뜻을 따랐다.“그래.”소원이 문에 다다르자 육경한도 그녀를
“육경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잘 들어, 난 반드시 아이를 지울 거야.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24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날 감시할 수 있어? 내가 화장실에 갈 때는 어떻게 할 건데? 난 아이를 지울 방법이 백 가지나 있어. 아이로 날 통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소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제발 현실을 직시해. 아이를 낳으라고? 네가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육경한은 얼굴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있었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매우 차분했다.“소원아, 네가 내 곁을 떠나고 싶은 건 알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혼하지 않을 거야. 이혼하고 나서도 유진을 보고 싶으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낳으면 돼.”차분한 표정과 달리 육경한의 마음속에는 이미 거센 파도가 일었다.원래는 정말 놓아주려고 했다. 이준혁의 말대로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는 여자를 억지로 묶어두는 건 두 사람에게 모두 상처가 되니까.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런 충동적인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하지만... 소원이 아이를 임신한 이상 절대 지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육경한은 알고 있다. 이 아이가 그들의 관계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소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꿈 깨라고.”다만 절대로 이 아이를 낳지 않을 거란 확신은 변함없었다.육경한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비서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일단 이것 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소원은 위에 적힌 조항을 주의 깊게 읽어봤다.아이를 낳으면 두 사람은 혼인 관계를 끊을 수 있다. 그 후에도 양측 모두 아이를 만날 수 있으며 누구랑 함께 살지는 아이의 결정에 맡긴다고 되어 있었다.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조건이다. 육경한은 강제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닌 함께 키우는 것을 택했다.그러나 상대는 교활함이 몸에 배인 육경한이니 소원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거지? 협박하려고 이러는
이건 소원에 대한 시험이다. 육경한은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아이를 볼 수 있게 허락한 것도 이미 큰 양보를 한 거나 다름없다.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만약 소원이 결혼할 계획이 있다면 아이를 못 보게 할 생각이었다.그는 절대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그리고...육경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소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에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렇게 할게.”어차피 처음부터 재혼할 생각이 없었다. 육경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결혼에 대한 마음은 진작에 접었다.육경한은 흔쾌히 승낙하는 소원을 보고선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이때 소원이 물었다.“또 있어?”“응.”육경한은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청천벽력 같은 그의 말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는데 그녀의 눈빛은 초점이 약간 흐려져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육경한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소원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아이를 낳으라고.”“나... 임신 안 했어.”누군가가 가슴을 움켜쥐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던 소원은 힘겹게 답했다.유진은 처음부터 우연이었다. 아이를 지킬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는데 기적처럼 꿋꿋하게 살아남았다.하지만 그 뒤로 육경한과 얽혔고 그들의 관계는 소원을 극도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이가 그녀의 약점이라는 걸 육경한은 분명히 알고 있다.그러므로 소원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육경한은 진료 기록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선 소원에게 다가가 두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소원아, 난 아무런 조사 없이 막연한 추측으로 단정 짓는 사람이 아니야.”그 위에는 소원의 검사 기록과 약 처방 기록이 명확하게 쓰여있었다.육경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아이를 지우는 건 절대 안 돼.”그는 진료 기록을 받
아이가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지 모르겠지만 소원의 임신 증상은 유독 선명했다.그녀는 최대한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화장실에서 여러 번 심호흡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추슬렀다.마침내 심장 박동이 진정되자 입을 헹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뜻밖에도 문을 열자마자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육경한은 180cm는 넘는 키에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어 존재만으로도 상당한 압박감을 조성한다.그는 소원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소원은 가까스로 당황함을 감추며 침착하게 말했다.“아침에 따뜻한 죽을 먹자마자 차가운 걸 마셨거든. 그래서 그런지 속이 안 좋네.”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친 후에도 육경한은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에 소원은 불안함이 밀려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내가 원래 위가 안 좋잖아.”육경한은 또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많이 아프면 병원 가봐.”그의 말투는 무덤덤했다.소원은 그의 말을 관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석훈의 설득이 효과가 된 건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있으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예의를 지키는 건 당연했다.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그녀는 말을 이었다.“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아이를 만나도 돼.”육경한은 빙빙 돌리는 게 아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소원은 너무도 기뻤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곧바로 걱정이 밀려왔다.“원하는 게 뭐야?”그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육경한은 갑자기 아이를 만나게 해줄 만큼 친절한 사람이 아니기에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어제 주석훈이 육경한을 설득하겠다고 말한 건 말지만 육경한은 결코 말이 쉽게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그러니 단 한 번의 대화만으로 육경한의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육경한은 경계에 찬 소원의 눈빛을 보고선 피식 웃었다.“맞아. 조건이 있어.”소원은 육경한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비록 유진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지만,
“하여튼 잔머리는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윤혜인은 응석 부리며 말했다.기분이 좋아진 이준혁은 그녀를 꼭 껴안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키스했다.윤혜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만해요... 아기가 자고 있잖아요.”이준혁은 매력적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답했다.“알아. 그냥 안고 싶어서.”이제 딸도 컸으니 두 사람은 애정 행각을 벌일 때마다 아이가 없는 곳으로 피했다.아이가 잠든 방에서 관계를 갖는 건 불가능했으니 가끔 지금처럼 같이 자고 싶어 하면 이준혁은 욕구를 참아야만 한다.따뜻한 포옹에 안정감을 느낀 윤혜인은 긴장을 풀고 그의 팔을 베며 자연스럽게 안겼다.졸음이 밀려온 듯한 윤혜인의 모습에 이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맞췄고 애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혜인아, 난 너무 행복해. 너랑 아이가 곁에 있으니까...”운혜인은 이미 졸음에 취했다.“우린 영원히 함께 할 거예요.”“응. 영원히.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할 거야.”이준혁은 애틋했다.“고마워. 여보.”...다음날.소원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을 멍하니 바라봤다.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육경한과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상 불가피한 접촉은 분명히 발생할 것이고 소성 전 조정 기간까지 더하면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두 사람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비록 마음이 심란했지만 소원은 약을 꺼내 삼키려고 했다.그런데 갑자기 울린 핸드폰 진동 소리가 그녀를 방해했다.처음 보는 낯선 번호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차를 마시려던 찰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잘못건 전화라면 다시 걸어오는 경우가 극히 적었으니 소원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육경한의 비서였다.“소원 씨 맞으시죠?”소원은 그렇다고 답했다.“저는 육 대표님의 비서인 황진수라고 합니다. 대표님께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데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소원은 어리둥절해하
육경한이 듣고 행동할지 안 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친구로서 조언을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이 말을 이었다.“내가 서현재에게 투자할 의향이 있는 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신념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만약 서현재가 이번 일로 인해 감옥에 간다면 소원 씨가 평생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신중하게 생각해 봐. 적어도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이준혁은 의리와 우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친한 친구가 늪에 빠지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손을 뻗었다.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당사자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건져내고 싶었다.파티가 끝난 후 저마다 걸음을 옮겼다. 김성훈은 계속 술집에 머물렀고 이준혁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고 몸에 남아있던 술 냄새를 깨끗하게 씻었다.곧이어 아기방으로 향한 그는 잠든 아기를 보며 깊은 행복감을 느꼈고 두 아기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안방으로 들어가자 윤혜인은 이미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옆에는 새끼 고양이 같은 아이가 자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아름이가 엄마, 아빠랑 함께 자겠다고 고집을 부린듯하다.침대는 아이와 아내의 향기로 가득했다.조심스럽게 누웠지만 가벼운 동작에도 불구하고 윤혜인은 눈을 떴다.그녀는 비몽사몽한 채로 나지막이 물었다.“왔어요?”“응. 깨워서 미안해.”이준혁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윤혜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괜찮아요. 낮에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깊게 잠들지는 못했어요.”윤혜인이 말을 이었다.“오늘 밤에 경한 씨랑 같이 있었던 거예요?”“응. 맞아.”술집에 가기 전, 이준혁은 윤혜인에게 누굴 만나는지 알려줬다.이내 윤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괜찮아졌어요?”“최대한 설득했는데 그래도 똑같으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이준혁이 답했다.“정말 못된 사람이에요.”윤혜인은 불평을 늘어놓았다.“소원이가
이준혁은 육경한이 뭐라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소원 씨가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넌 지금 뭐 하는데?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게 소원 씨에게 얼마나 큰 상처일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네 아이도 그럴 거야. 아이한테 엄마를 만나고 싶은지 직접 물어본 적은 있어?”이준혁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육경한의 마음에 와닿았다.유진이는 비록 겉으로 아빠에게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매일 집에서 침울한 모습으로 조용히 지낼 뿐이었다.유진이는 그를 두려워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많았기에 이를 지켜보는 집사들조차 걱정할 정도였다.이준혁은 그의 표정만 봐도 자신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감정은 그도 아버지가 된 후에야 깨닫게 된 것들이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었다.“경한아, 후회할 일 만들지 마.”그는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친구로서 육경한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걸 막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원망을 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그뿐이었다.이준혁은 지금 너무도 행복했다. 그래서 그는 이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얻기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고 절친인 육경한 또한 행복하길 바랐다.옆에서 듣고 있던 김성훈이 분위기를 풀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준혁아, 고민 상담 왜 이렇게 잘해?”이준혁은 김성훈의 농담을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셨다.‘결혼도 안 한 사람이 이 행복을 어떻게 이해하겠어...’김성훈은 웃으면서 육경한의 어깨를 두드렸다.“난 네게 특별히 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