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지만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말이다.원지민이 의아해하는 순간 이준혁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져 갔다. 마치 그녀의 뼈를 부술 듯 말이다.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며 원지민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준혁아!”하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전혀 들은 것 같지 않았다.그의 손은 여전히 강철처럼 원지민의 손을 쥐고 있었고 곧 원지민의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떨어졌고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준혁아...”원지민은 울먹이면서 간신히 말했다.“너무 아파... 제발 놔줘.”이준혁은 그제서야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카메라가 찍고 있어.”그러나 여전히 강하게 원지민의 손을 붙잡은 채 이준혁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원지민은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지만 손이 너무 아파서 거의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섯 손가락이 마치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결국 그들은 방 안에 도착했고 문이 닫히자마자 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단번에 놓았다.휘청거리며 의자를 잡은 원지민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손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는 이준혁의 위로 조명이 비췄다. 여전히 그 얼굴은 한없이 잘생겼지만 원지민에게는 그가 마치 죽음의 사자처럼 느껴졌다.그의 차가운 시선에 원지민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았다.이준혁은 고개를 숙이고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원지민, 그딴 식으로 하면 내가 모를 것 같아?”원지민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불안해졌지만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난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이준혁은 그녀가 시치미를 떼는 것을 보고 더욱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내가 혜인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원지민의 속에는 억울함이 쌓여갔다.“난...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어. 그냥 기자들이 있어서 너
원지민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눈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가득했다.이 거래에서 승자는 자신이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이준혁이 돌아온 후, 그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그래서 원지민은 곧바로 그에게 접근해 조건을 제시했다.이준혁은 당연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명이 걸린 문제였으니 말이다.그 주사에는 해독제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완전히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원진우가 그 연구자를 찾아내어 해독제가 무엇인지 알아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준혁은 거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했다.바로 윤혜인을 찰스 가문의 추적 명단에서 제거하라는 것이었다.이준혁은 원지민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찰스 가문의 이름을 바로 언급했다.원진우가 찰스 가문의 수장과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알아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애초에 찰스 가문의 추적 명단에 윤혜인의 이름을 올린 것도 자신이 계략을 써서 이루어낸 일이었으니 말이다.이준혁에게 사랑을 얻을 수 없다면 이제는 사랑 따위 필요 없었다.그 대신 도덕적인 굴레로 그를 묶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원지민은 언젠가 자신도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원지민, 네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이준혁은 원지민을 바라보며 마치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거래라는 것은 거래의 기준을 벗어나면 그 이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야. 네 주권을 지키겠다고?”이준혁은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런 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원지민의 심장은 쿵 하고 세차게 울렸다.곧 이준혁은 원지민의 턱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말하는 주권이 뭐지? 너한테 무슨 주권이 있다는 거야?”이준혁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 앞에서 조금 전까지 자신감 넘쳤던 원지민의 모습은 산산조각이 났다.그녀는 몸을 떨며 간신히 말을 뱉었
너무 불안한 탓에 원지민은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나, 나 별로 입맛이 없어.”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 있으면 난 먼저 가볼게.”“앉아.”차갑고 단호한 두 마디를 무심하게 뱉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준혁의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순간 다리가 굳어버린 원지민은 그대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아주 먹고 싶어 했다며?”이준혁은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 번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다 먹고 나가.”그의 눈빛에 드러난 어두운 기운을 보고 원지민은 손바닥에 맺힌 땀마저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처음으로 그녀는 이준혁에게 단순한 집착뿐만 아니라 두려움까지 느끼기 시작했다.오늘 샤브샤브를 먹지 않고서는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알겠어. 먹을게.”원지민은 손가락을 떨며 젓가락을 꽉 쥐고 국물에 잠긴 채소와 고기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머릿속에는 오직 빨리 먹고 자리를 떠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남자가 주는 압박감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음식을 절반쯤 먹었을 때, 이준혁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드레스는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이미 준비해 놨어.”“컥, 컥!”원지민은 그의 말을 듣고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국물이 입가에 흐르며 땀에 젖은 화장은 엉망이 되어 있었기에 원지민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이 순간, 드레스나 결혼식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원지민은 그저 결혼식 전에만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리고 윤혜인은 결혼식이 끝나면 천천히 처리할 생각이었다.한 사람을 없애는 데에 있어 추적 명단에 올리거나 말거나는 큰 차이가 없었다.그 명단은 해외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 서울에서 실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원지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윤혜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응. 알았어.”원지민은 마침내 굴복했다.한편, 윤혜인과 구지윤은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아까 있었던 일 때문인지 윤혜인은 식욕이 없어 간
곽경천은 사건을 마무리하며 그날 저녁 식당에서 목격자를 찾아내 고객이 술에 약을 탔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그리고 오후에 경찰서에 증거를 제출해 그 고객을 구치소에 보내버렸다.윤혜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지윤아, 이런 큰일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 말도 안 했어?”그녀는 구지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다행히도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윤혜인은 말했다.“그 나쁜 자식이 널 괴롭혔다고?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내가 변호사 불러서 그 자식 끝장내줄 거야!”이러한 윤혜인의 반응에 구지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괜찮아.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도 못했어. 도련님께서 다 해결해주셨거든.” 윤혜인도 최근 여러 일로 심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구지윤은 그녀에게 이런 골치 아픈 일을 말하지 않고 숨겼던 것이다.곽경천이 나서서 해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윤혜인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오빠가 널 찾는 게 그 이유 때문이 맞겠다. 얼른 가서 전화해봐. 나는 남준 오빠가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고.”구지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곽경천이 전화하라는 이유는 단순히 그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메시지로 그녀에게 빨리 집에 오라는 말까지 보냈다.모든 이익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또 이런 태도로 나오는 곽경천이 구지윤은 어이가 없었다.정말 그는 자기만 고귀한 몸이라 여기는 모양인 것 같았다.구지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차라리 작업실에 가서 일을 조금 더 하고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곽경천도 기다리다 포기할 테니 말이다.그녀가 막 차 문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문손잡이를 누르며 구지윤의 손을 막았다.어젯밤의 불쾌한 경험 때문에 구지윤은 즉각 반응하며 본능적으로 전에 배운 방어술을 사용해 팔꿈치를 들어 뒤에 있는 사람의 턱을 치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방은 구지윤의 동작을 예상한 듯 쉽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제압했다.
구지윤은 상황을 정리하며 술에 취한 남자의 친구가 계속해서 사과하는 걸 들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정말 실수했어요. 형님과 여자친구분께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제 친구 좀 봐주세요.”‘여자친구'라는 말을 듣고 곽경천은 의외로 표정을 풀었다. 이내 차가운 얼굴에서 조금은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친구가 술에 취했으면 그냥 집에 데려가서 쉬게 하세요.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이 말에 상대방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친구를 급히 끌고 갔다.곽경천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코트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구지윤의 손을 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듯했다. 구지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손을 놓고 머뭇거리며 말했다.“여기까지 와서 뭐 하시는 거예요?”“너 집에 데려다주려고.”곽경천은 간결하게 말하며 구지윤의 손에서 차 키를 가져가더니 자연스럽게 차 앞으로 걸어갔다.“하지만...”그러나 구지윤이 거절할 틈도 없이 곽경천이 이미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구지윤은 차에 타면서 물었다.“그럼 도련님 차는요?”“운전기사가 가져갔어.”구지윤은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말했다.“정말로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 저 아직 회사에 가야 할 일이 있어요.”“늦었잖아. 할 일 있으면 내일 해.”구지윤은 곽경천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게 불편했는지라 서둘러 변명을 생각해냈다.“안 돼요. 아직 마무리 못 한 서류가 있어요...”그때 곽경천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윤혜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예요!”놀란 구지윤은 다급하게 몸을 기울여 그의 핸드폰을 끄려 했다.그러자 곽경천은 전화를 끊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혜인이한테 물어보려고. 정말로 네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기라도 하는지.”“절대 물어보지 마요!”목청을 높이며 구지윤은 절박하게 말했다.예전에 구지윤은 곽경천 앞에서
윤혜인은 배남준이 미간을 찌푸린 것도 모른 채 그의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맞아요, 바로 이 사람! 이 눈 기억해요. 그 사람은 이색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그녀가 이토록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 구조대가 도착하기 직전 그 사람이 윤혜인을 차와 함께 다리 아래로 밀어버렸기 때문이다.당시 그 남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빛의 굴절로 인해 눈동자가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그리고 이 사진 속 인물은 그때 그 남자와 똑같은 이색안이었다.윤혜인은 그 남자의 눈을 보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 눈은 마치 독을 품은 방울뱀의 눈처럼 악의에 찬 기운이 느껴졌고 한 번 마주친 사람은 평생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윤혜인은 떨리는 손으로 배남준의 팔을 잡았다.“남준 오빠,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배남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이 사람은 찰스 가문 소속이야. 최근에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는 정보는 있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어. 내가 이 사진을 배씨 가문의 사무 그룹에 올려서 주시하도록 할게. 이 사람이 북안도로 돌아오는 순간 바로 잡으면 그때의 일을 물을 수 있을 거야.”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전일 뿐만 아니라 최근의 폭발 사건도 이 사람이 관련이 있어요.”그녀는 그 남자의 변조된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 목소리는 다리에서 윤혜인을 밀어버렸던 남자의 말투와 너무나도 비슷했다.따라서 윤혜인은 다리 추락 사건과 최근 임세희의 납치 사건에서 그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배남준도 임세희 납치 사건에 대해 곽경천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다.당시 차량 시스템에 해커가 침입해 위성을 통해 신호를 추적한 후, 그 신호를 해커를 통해 분석한 결과 신호가 서울에서 발송된 것이었다.이색안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자 배남준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그러나 그는 윤혜인이 더 걱정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말했다.“알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람들을 시
윤혜인이 본 남자가 에단 찰스라면 그 말은 90%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에단은 그의 어머니 북안도의 유명한 ‘미친 미녀’ 스테파니 브룩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스테파니는 원래 찰스 가문의 운송업에 종사하는 인부의 딸이었는데 아버지를 찾으러 찰스 가문을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서 가문의 수장에게 눈에 띄어 그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결국 그녀는 찰스 가문의 열 번째 아내가 되었다.북안도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합법이었기에 스테파니는 찰스 가문 수장의 큰 사랑을 받았다.하지만 그녀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늘 이상한 행동을 일삼았고 정신이 불안정했다.스테파니는 한밤중에 하녀의 머리를 밀고 옷을 벗긴 뒤, 영하 40도의 혹한 속으로 내보내 그녀가 서서히 얼어 죽는 모습을 즐겼다.때문에 그녀를 모시던 하녀들은 대부분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았고 죽은 이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기괴하고 비참했다. 그러나 스테파니를 너무 아끼던 찰스는 이 모든 사건을 은폐하고 그녀를 계속 보호했다.하지만 스테파니는 점점 더 미쳐갔고 결국 아이를 낳은 후 어느 날 밤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자살했다.찰스는 스테파니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그녀를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평생의 사랑’이라고 적었다.그리고 에단은 스테파니의 아들로 가문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하지만 그는 6살 때부터 폭력적이고 잔인한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음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요리사의 머리를 뜨거운 철판에 눌러대며 지글지글 타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고통을 즐겼다고 한다.하지만 에단은 스테파니와 달리 사람을 즉시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는 사람을 서서히 고문하며 괴롭히는 것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는 성향을 가졌다.에단에게 한 번 찍힌 사람은 절대로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현재로서는 서울이 윤혜인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에단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서울에서는 법을 어기며 대놓고 행동하지 않았다.더구나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에단
돌아오는 길에 주훈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그분들 서로 만났습니다.”그러자 이준혁이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연결해.”주훈은 곧바로 라디오로 보이는 검은색의 소형 금속 상자를 꺼냈고 이준혁의 블루투스 이어폰에서는 여자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왜 날 찾아온 거예요?” 원씨 가문 저택.원지민은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창문을 넘어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난 그쪽이랑 할 말 없으니까 이만 가요. 신고는 안 할 테니까.”말을 마치고 원지민은 문을 열어 남자를 내보내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가지 않고 쿠션 소파에 느긋하게 앉으며 말했다.“뭐가 그리 급해요.”“한구운 씨!”그가 자리를 잡고 앉아 원지민은 안색이 변하며 분노를 터뜨렸다.“나 곧 준혁이랑 결혼할 거예요. 당당하게 이선 그룹 대표의 부인이 될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한밤중에 미래 형수님 방에 들어오는 게 맞는 행동이라 생각해요?” “하...”한구운은 입을 열어 조롱이 섞인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정말 이선 그룹 대표 부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해요?”“당연하죠.”원지민은 단호하게 말했다.이준혁에겐 지금 자신이 필요했기에 원지민은 반드시 이선 그룹 사모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쪽 아버지가 계속 혼수상태라는 소식 들었죠?”한구운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자 순간 마음이 흔들린 원지민의 두 눈이 커졌다.“무슨 뜻이에요?”한구운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엄지로 가볍게 박자를 맞추며 말했다.“원지민 씨는 똑똑하니까... 내가 더 말할 필요 없지 않겠어요?’한구운의 냉랭한 눈빛에 원지민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굳건히 말했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원정호의 상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혼수상태라는 사실이 대외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구운이 알아내는 건 놀랍지 않았다.하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 원지민은 한구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