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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병원에서 소은혜와 얘기를 나누던 연재준은 짤막하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끊어버렸다.소은혜는 발신자가 백은혜인 것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오빠는 정말 나쁜 남자인 것 같아요.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를 보내 유월영 씨 상태를 살피고 백유진 씨랑 문자를 하다니요.”연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혼자 병원에 있든가.”소은혜는 다급히 그의 옷깃을 잡았다.“난 나쁜 남자가 더 좋아요. 매력적이잖아요.”연재준이 짜증스럽게 말했다.“별것도 아닌 일로 왜 굳이 병실에서 밍기적거리는 거야?”소은혜는 조용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기다리는 전화가 여태 조용하잖아요. 여기 있다가 그 사람이 전화오면 오빠도 나 도와줘야 한단 말이에요.”연재준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참 가지가지 하네.”“사랑에 빠진 여자는 다 그래요. 다치거나 아플 때 사랑하는 남자한테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거죠.”연재준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유산하고 홀로 병원에서 3일이나 입원해 있었을 유월영을 떠올렸다.그때 그녀는 그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에게 애정이 있었더라면 왜 그 일을 비밀로 했을까? 그때 그의 신변에는 백유진이 나타나기 전이었고 둘 사이가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수도 없었다.소은혜가 한술 더 떠서 이야기했다.“여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떠나기로 했을 때예요.”연재준이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갈게.”어제 사고 직후로 소은혜가 병원에 실려온지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쪽에서 소식을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 연락이 없다는 건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소은혜는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퇴원할래요. 그러니까 오빠가 안아줘요.”오늘은 일이 없었기에 유월영은 여가를 즐기기로 했다. 서지욱의 비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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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유월영은 우울한 기분을 안고 호텔 로비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때, 격정적인 피아노소리가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로비 중앙에 비치된 피아노 앞에서 누군가가 격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소리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연주자의 주변을 에워싸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그가 연주하는 곡은 인셉션 OST 중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유월영도 무척 좋아하는 곡이었다.중학교 때 어느 날 현시우를 보러 그의 학교에 찾아갔다가 음악교실을 지나며 우연히 들은 곡이었다.그때는 현시우한테 정신이 팔려서 연주자가 누군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음악교실을 지나쳤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 그 곡을 다시 들으니 연주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피아노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연주 중인 사람은 다름 아닌 연재준이었다.그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들이 다 보는 공간에서 혼신의 힘을 담아 연주하고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건반을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하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본 유월영은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연주자가 그라면 아무리 좋은 멜로디라도 감상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를 발견한 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이리 와, 유월영.”유월영은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연재준이 말했다.“일 때문에 불렀어.”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자리였기에 유월영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네, 대표님.”유월영은 연주를 멈추고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구경하던 사람들도 연주가 멈추자 뿔뿔이 흩어졌다.연재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설 의원이 그제 신주로 가자마자 신 회장이 식사 요청을 보냈다더라고? 둘이 식사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SK의 지분이 갑자기 20%에서 35%로 늘어서 지금은 해운이랑 동등한 위치에 있게 됐어.”유월영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그랬군요.”“설 의원의 일정은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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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잠시 뜸을 들이던 유월영이 물었다.“예를 들자면요?”그는 여전히 건반을 두드리며 느긋하게 말했다.“수석비서 자리, 여전히 네 거야.”유월영이 다시 물었다.“또 있나요?”연재준이 답했다.“연봉도 올려줄 거고 연말 보너스도 두둑하게 나갈 거야.”“그리고요?”연재준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가 기억하는 유월영은 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아니었다.그는 건반을 두드리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아직 자차 없지? 출퇴근하기 불편했을 거야.”유월영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의 사람으로 일해온 3년, 집이나 차는 고사하고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선물한 적 없던 그였다.그녀가 계속해서 물었다.“그리고 또요?”“네 엄마 수술비, 그거 내가 책임질게.”연재준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부드럽게 말했다.“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엄마의 수술비는 그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는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유월영이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술을 마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죠? 그 전에 대표님이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왜 제가 그곳에 돌아갈 거라고 자신하나요?”연재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선박 파티 때, 저를 팔아서 프로젝트를 입찰한 것도 대표님이죠? 제가 새 직장을 찾는 걸 방해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저를 비참하게 만드셨어요. 그런데 돌아오라는 한 마디에 제가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가야 하나요? 대표님은 대체 저를 뭐로 생각하나요?”처음에는 담담히 응대하고 싶었다.하지만 산책하다가 현시우를 만난 탓인지, 2개월 사이에 쌓은 감정이 한 순간에 폭발해 버렸다.유월영은 냉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대표님은 저를 집에 키우는 애완견 정도로 생각하셨죠. 한 번도 저를 인간 취급을 안 해주셨는데 제가 왜 거기로 돌아가야 하나요?”한참이나 그녀를 노려보던 연재준은 결국 피아노 건반으로 시선을 돌리고 연주를 마무리했다.“그냥 해본 말이야. 오기 싫으면 어쩔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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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전화를 끊은 소은혜는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옆방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연재준은 소파에 앉아 독한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설마 술친구나 해달라고 저 부른 거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화장 안 하고 오는 건데. 에이, 아깝게. 로맨틱한 데이트 기대하고 열심히 화장했더니 이게 다 뭐예요.”연재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잔에 술을 따랐다.소은혜와 그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조금 복잡했다.그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며 그에게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요? 유 비서가 또 대표님 화나게 했어요? 안 그래도 뭐 좀 사러 내려갔다가 둘이 하는 대화를 들었어요.”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러자 소은혜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태연하게 말했다.“유 비서는 아니겠죠. 그 여자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대표님 기분에 영향을 주겠어요? 백유진 씨랑 뭔가 문제가 생겼나요?”술 기운 때문인지, 연재준은 차갑게 비웃음을 터뜨렸다.“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백유진이지.”소은혜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예전에 그가 백유진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하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항상 연애가 처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백유진이 남자랑 키스하는 사진을 봐서 자존심이 상한 게 분명했다.연락처를 차단하고 출장을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소은혜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느긋하게 말했다.“하지만 지금 백유진 씨랑 헤어지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연 회장님이겠군요. 어쩌면 이게 기회다 싶어서 대표님과 유 비서의 재결합을 추진하실지도 몰라요.”연재준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물론 소은혜는 유월영이 다시 그에게 돌아올 리 없다고 확신했다.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대표님도 저한테 큰 도움을 주셨으니까 보답할 겸, 제가 도와드릴게요.”말을 마친 그는 호텔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다.“여기 1901호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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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유월영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일정은 어떡한대요? 나 혼자 가요? 아니면 여기서 계속 기다려요?”이 비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알아서 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월영은 또 소은혜에게 전화를 걸며 이번에도 안 받으면 혼자 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그런데 그때, 뒤에서 소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 씨, 미안해요. 내가 많이 늦었죠?”그녀는 유월영의 앞에 다가가더니 웃으며 말했다.“며칠 병원에 있다 보니 약간 절제가 안 됐나 봐요.”유월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출발해요. 오늘 할 일이 많아요.”업무량이 많고 소은혜가 30분이나 지각하면서 시간이 급박했기에 유월영은 차에 오르자마자 노트북을 펼쳤다.소은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허리를 기대고는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소 팀장님, 제가 설명드린 거 다 들으셨죠?”“그럼요.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귀는 열려 있다고요.”소은혜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찢어지는 것보다는 같이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하나씩 공략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네요.”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담당자와 소통하는 건 전부 유월영의 몫이 되었다.소은혜는 방관자처럼 편히 앉아서 대화에 끼지도 않고 듣기만 했다.‘하, 어젯밤 무리했으니 피곤해서 정신이 없겠지.’유월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차라리 혼자 오는 게 나았겠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한참 농땡이나 부리던 소은혜가 담당자에게 갑자기 물었다.“근처에 약국 있어요? 근육통이 심해서 파스 좀 사야겠네요.”유월영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담당자도 난감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다가 약국이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소은혜는 그대로 업무를 유월영에게 맡긴 채, 가버렸다.담당자가 유월영에게 물었다.“저분 진짜 경영사업팀 팀장 맞아요?”유월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네.”담당자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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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유월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소 팀장님은 제 개인적인 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여요. 비행기에서도 그랬고 기회만 생기면 업무랑 상관없는 일로 계속 저를 떠보는 것 같아서요.”“저는 친한 동료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소 팀장님은 개인적인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소은혜가 물었다.“많이 신경 쓰이나 봐요? 나랑 연 대표님 관계가? 혹시 질투해요? 사실 아직도 연 대표님한테 마음이 있는 거죠? 3년 동안 항상 붙어 다녔잖아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모든 걸 끊어내겠어요.”유월영은 그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했다.“난 소 팀장님 사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자꾸 일과 무관한 일을 이야기할 거면 그냥 짐 싸고 돌아가세요. 이러시는 거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거든요.”“만약 저를 라이벌로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면 정말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소은혜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솔직히 팀장님 이러는 거 정말 짜증나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잖아요. 난 오늘 일정을 위해 어젯밤 밤잠을 줄여가며 계획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일정을 순조롭게 끝내기 위해서요. 그런데 팀장님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얼굴로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잖아요.”말문이 트인 유월영은 더 이상 소은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항상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혜의 얼굴이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만약 소은혜가 적당히 선을 지켰더라면 유월영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말했다.“난 연 대표님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둘이 무슨 사이든, 뭘 했든 전혀 관심 없다고요. 팀장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꼭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러니까 자중하시라고요.”“자중이라….”소은혜가 갑자기 싸늘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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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연재준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유월영을 빤히 노려보며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나중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을 때 다시 연락해.”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더니 갑자기 유월영에게 짜증을 부렸다.“안 탈 거면 거기 버튼 계속 누르고 있지 말아줄래?”이번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에 유월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엘리베이터에 탔다.공간이 좁아서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져 서 있는데도 그녀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둘은 아무런 말이 없이 엘리베이터 전광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중에 연재준의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렸지만 그는 울리는 족족 끊어버렸다.유월영은 그의 뒤쪽에 서 있었기에 보고 싶지 않아도 핸드폰 화면이 그대로 보였다.백유진이었다.조금 전까지 백유진과 통화하고 있었던 걸까?아니나 다를까, 한참 말이 없던 연재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렇게 돼서 이제 만족해?”“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그런 말을 하는 사이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6층에 도착했다.연재준은 엘리베이터를 나서려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문을 닫았다.유월영은 짜증을 참으며 차갑게 경고했다.“또 왜 이러시는 거예요? 여기 CCTV 있어요.”“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연재준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CCTV 있는 곳에서 일을 치르는 악취미는 없어.”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연재준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가상 번호로 나한테 그딴 것을 보내면 내가 출처를 못 찾을 것 같았어? 백유진 키스하는 사진, 그거 네가 나한테 보낸 거지? 나랑 백유진 사이를 이간질하려고?”유월영은 이번에는 부인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둔갑시켜서 모함하는 걸 두고 이간질이라고 해요. 그게 사실이면 단순한 고발에 불과하죠.”연재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그 사진 어디서 났어?”당연히 불법적인 경로로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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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유월영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그래서요? 한정판도 아니고 대학병원에 다 있는 건데요.”“브랜드와 집도의가 다르면 효과도 다르지. 아마 네 엄마 주치의는 감염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라고 했을 거야. 내가 소개한 의사가 집도하면 감염률을 10퍼센트로 낮출 수 있어.”연재준이 여유만만한 얼굴로 답했다.유월영은 순간 숨이 막혔다.엄마를 담당하는 주치의도 신주시에서는 꽤 알아주는 흉부외과 박사였다. 그런 인물조차 감염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 된다고 말했다.그런데 연재준은 10퍼센트로 낮출 수 있다니! 엄마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절반 이상 늘어난 격이었다.“유 비서, 이번에는 협박 아니야. 오히려 너한테 더 좋은 길을 제시한 거지.”연재준은 그녀를 놓아주고 밖으로 나갔다.“선택은 네가 해.”엘리베이터에 홀로 남은 유월영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쥐었다.선택지를 준 것 같지만 사실 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연재준의 이런 거래 방식이 너무도 역겨웠다.백유진과 냉전 중이면서 소은혜를 방으로 불러 밤새 불태운 주제에 장난치듯이 그녀에게 회사로 돌아오라고 말했다.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거절할 수 없는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엘리베이터가 아래 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녀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유월영은 먼저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아무 일 없고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답장이 오자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자 그녀는 다시 회의실이 있는 6층을 눌렀다.그리고 신연우에게 보낼 문자를 입력했다.[교수님, 신주의대는 국내 의학계에서도 인정받는 대학이잖아요. 둘째 형님은 유명한 한의사이기도 하니 혹시 추천할만한 흉부외과 선생님이 있나요?]그녀는 자신보다 인맥이 넓은 신연우가 어쩌면 진 박사보다 더 괜찮은 의사를 추천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하지만 결국 발송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그녀는 일단 일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엘리베이터를 나선 유월영은 표정을 수습하고 회의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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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호텔로 돌아간 소은혜는 곧장 회의실로 가서 소리쳤다.“큰일 났어요! 유월영 씨가 갑자기 사라졌어요!”오늘 업무를 정리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쏠렸다.실험실 사고를 해결하고 돌아온 신연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는 여기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금 뭐라고 하셨나요?”소은혜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오늘 데이터 수집하러 연구기지를 돌고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유월영 씨가 갑자기 화장실을 간다고 먼저 나갔거든요. 저랑 운전기사는 차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서 화장실에 찾아가 봤더니 아무도 없었어요.”“월영 씨 핸드폰에 전화했는데 전화기도 꺼져 있더라고요. 근처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못 찾아서 일단 먼저 돌아왔어요. 날도 늦었는데 다 같이 찾아봐요.”신연우가 물었다.“실종 지점이 어딘가요?”“송학로 연구기지요.”대답을 그는 가장 먼저 회의실을 뛰쳐나갔다.연재준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소은혜를 노려보고 있었다.서지욱이 말했다.“뭔가 이상해. 유 비서는 일할 때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이 아니야.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이 비서, 여긴 이 비서한테 맡길게.”연재준도 비서를 호출했다.“하 비서도 나가서 찾아봐.”사람을 찾는 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긴 두 사람은 호텔에서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소은혜도 피곤하다며 회의실에 남았다.하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도 수색을 나간 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서지욱이 말했다.“우리 그냥 신고하자.”연재준은 턱을 괴고 앉아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다 큰 성인이 제 몸 하나 못 지킬까.”서지욱이 인상을 확 구겼다.“만약 납치라도 당했으면?”연재준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유월영을 납치해서 이득 볼 게 뭐가 있어?”서지욱은 약간 실망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봤다.아무리 회사를 나간 직원이라지만 그와 함께 한 정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무덤덤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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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내가 언제 그런 걸 시켰어?”연재준은 성큼성큼 비상계단을 나가며 핸드폰으로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은혜가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대표님이 몰라서 그렇지 이 방법 여자한테 정말 잘 통한다니까요?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렸다가 완전히 절망에 떨고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나면 알아서 대표님한테 안길 거라고요.”“호텔 입구에 차 대기시켜.”통화를 마친 연재준은 길을 막는 소은혜를 밀치고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넌 지금 주제넘은 짓을 했어. 내일 당장 네 부모님한테 돌아가.”소은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표님 도와준다고 한 일이잖아요!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요?”연재준은 더 이상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조급해진 소은혜가 소리쳤다.“정말 돕고 싶어서 그랬다고요!”연재준은 그녀를 무시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동쪽에 있는 수림으로 가자.”한편, 송학로 기지에 도착한 신연우는 주차장 CCTV를 조회하고 유월영이 차에 탄 것을 확인했다.이로써 그는 소은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그리고 하필 그와 같이 온 운전기사가 조금 전 유월영을 태웠던 운전기사였다.쾅!그는 운전기사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서 있는 힘껏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평소에 온화하고 인성이 좋다고 소문난 신 교수의 성난 모습에 당황한 운전기사가 고개를 저었다.“저… 저는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신연우는 안경을 벗어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구둣발로 운전기사의 가슴을 지그시 짓밟았다.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신연우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운전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그게….”상대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신연우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운전기사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는 수가 있어.”그제야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운전기사가 소리를 질렀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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