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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작가: 고나름
유월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소 팀장님은 제 개인적인 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여요. 비행기에서도 그랬고 기회만 생기면 업무랑 상관없는 일로 계속 저를 떠보는 것 같아서요.”

“저는 친한 동료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소 팀장님은 개인적인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소은혜가 물었다.

“많이 신경 쓰이나 봐요? 나랑 연 대표님 관계가? 혹시 질투해요? 사실 아직도 연 대표님한테 마음이 있는 거죠? 3년 동안 항상 붙어 다녔잖아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모든 걸 끊어내겠어요.”

유월영은 그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했다.

“난 소 팀장님 사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자꾸 일과 무관한 일을 이야기할 거면 그냥 짐 싸고 돌아가세요. 이러시는 거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만약 저를 라이벌로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면 정말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

소은혜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솔직히 팀장님 이러는 거 정말 짜증나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잖아요. 난 오늘 일정을 위해 어젯밤 밤잠을 줄여가며 계획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일정을 순조롭게 끝내기 위해서요. 그런데 팀장님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얼굴로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잖아요.”

말문이 트인 유월영은 더 이상 소은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항상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혜의 얼굴이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

만약 소은혜가 적당히 선을 지켰더라면 유월영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연 대표님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둘이 무슨 사이든, 뭘 했든 전혀 관심 없다고요. 팀장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꼭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러니까 자중하시라고요.”

“자중이라….”

소은혜가 갑자기 싸늘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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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 후, 이영화는 ICU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의사들은 혈관 마비 증후군 등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지 자세히 관찰했고 이상이 없다고 판단된 후 일반 병실로 옮겼다.일반 병실에서 약 한 달간 신체 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를 받은 후 의사의 허가를 받아 퇴원했으며 유월영은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어머니를 보며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하지만 출산 예정일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월영은 출산 준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그녀는 이번 귀국의 목적이 출산 준비라는 것을 잠시 잊을 뻔했다.현재 신주시는 10월에 접어들어 선선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유월영은 마당의 나무를 흔드는 상쾌한 가을바람과 맑은 사각거리는 소리에 잠시 사색에 잠겼다. 이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그녀를 졸리게 만들었다.유월영은 과일을 먹으며 연재준이 출산 준비물을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재준 씨, 우리 중요한 걸 아직 논의 안 한 것 같아요.”“뭔데?”“아이 이름 말이에요.”연재준은 웃으며 말했다.“아직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잖아. 태어난 후에 정하자고 했잖아.”두 사람은 아이의 성별을 ‘뽑기'처럼 남겨두기로 했다. 해외에서 산전 검사를 받을 때도 의사에게 성별을 묻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아기의 성별은 알지 못한 채 기대를 품고 있었다.유월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하지만 아기의 성씨랑 애칭 정도는 미리 정할 수 있잖아요.”연재준이 그녀의 잠옷을 접어 여행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 더 고민스러워할 것 같은데.”“왜요?”“아이 성을 유씨로 할지 고씨로 할지 정해야 하잖아.”유월영이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연씨 가문의 성은 생각 안 해봤어요?”“우리 가문은 자격이 없어.” 연재준은 평소처럼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결혼 후 부인의 성을 따를 수 있었다면 나도 당신의 성을 따르고 싶어.”유월영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재준 씨, 이혁재 씨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세요. 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6화

    공항을 나서기도 전에 유월영은 연회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그녀의 목소리는 들뜬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월영아! 우리가 방금 어떤 좋은 소식을 들었는지 알아?”“무슨 소식인데 이렇게 신나셨나요?”유월영은 웃으며 물었다.“네 엄마의 심장이식 공여자가 나왔어! 적합 검사도 성공했어!”유월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정말이에요?”“정말이야! 공여 심장은 지금 국내에 있어. 나랑 네 엄마는 짐을 싸고 바로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어! 이제 네 엄마도 인공 심장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어!”유월영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정말 좋은 소식이에요. 너무 다행이에요.”옆에서 상황을 몰랐던 연재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유월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답했다.“엄마가 드디어 심장이식을 할 수 있다고 해요!”연재준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처음으로 적합 검사에 성공했던 심장은 백유진 아버지가 먼저 받아 갔고 그들은 무려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인공 심장은 보통 7~10년 정도 지속되지만 심장이식이 성공하면 이영화는 평생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번 공여자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도 같았다.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재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사실 그녀는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려 왔다. 연재준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수술 준비는 내가 다 맡을게. 걱정 마, 반드시 성공할 거야.”유월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월영의 어머니를 위해 연재준은 최고 수준의 의료팀을 초청해 모든 것을 직접 관리했다. 귀국 후 이영화는 정밀 검사를 받고 거부 반응 억제제를 복용하며 수치를 안정시켰다. 며칠 후, 수술이 진행되었다.수술 당일, 마취 직전 이영화는 의사를 통해 딸에게 전했다.“월영아, 집에 가서 쉬렴. 병원에서 기다리다가는 네 몸이 상할 거야. 네 배도 이렇게 불러왔는데 어떻게 견디겠니?”동생 유수영도 수화로 말했다.“언니, 집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5화

    유월영은 최근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에서 ‘빈정거리는 말투’를 배우게 되었다.“내가 뛰어가서 구해줄 줄 몰랐다고요?”유월영의 놀림에 연재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당신을 과소평가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유월영은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믿고 있었다. 예전에 그들이 함께 영안으로 출장 갔을 때, 강수영이 자신이 연재준의 사촌 여동생임을 숨긴 채 의도적으로 애매한 태도를 보여 그녀를 불편하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철근이 떨어질 뻔하자 강수영은 주저 없이 유월영을 밀어내 구해주었다.연재준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내가 정말 여대생을 좋아한다면 대학 때 왜 연애하지 않았겠어? 여보, 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해서 날 나쁘게 몰아가지 마.”이때 승무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갈비 한 조각을 집어 뼈를 발라내고 고기를 그녀의 그릇에 넣어주며 말했다.“내가 좋아하는 건 오직 당신뿐이야.”유월영은 미소를 지으며 갈비를 입에 가져갔다. 기내식은 의외로 맛이 좋았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창밖 구름을 보며 담소를 나누었다.그때 서정희가 다가왔다.“고민서 씨,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네요. 결혼하셨다고 들었어요. 신혼 축하드려요.”유월영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고맙습니다.”하지만 연재준은 서정희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유월영은 서정희가 자신을 ‘고민서’라고 부르는 걸 듣고 그녀가 자신의 소식을 계속 지켜봐 왔다는 걸 알아챘다.“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서정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예전에 제가 철이 없었어요. 이제야 깨달았는데 정말 많은 어리석은 짓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사과드리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인사드렸어요.”유월영은 어떤 사람들은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서정희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서정희를 마음에서 지운 지 오래였기에 담담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4화

    유월영은 임신 8개월 차에 연재준과 함께 마르세유에서 신주시로 돌아와 출산 준비를 하려 했다.두 사람은 아이가 국내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유월영의 몸 상태를 고려해 연재준은 전용기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항로 신청을 시도하는 도중 마르세유에서 항공 통제가 이뤄져 신청이 어려워졌다.다행히 유월영은 입덧도 심하지 않아 두 사람은 일반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그러던 중, 항공기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났다.바로 서정희였다.서정희가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와 만난 적도 그녀에 대한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유월영은 그녀를 거의 잊고 있었지만 그녀가 한때 유월영과 연재준의 애매한 관계를 부추겼던 기억은 있었다.두 사람은 기내에서 우연히 마주쳤다.서정희는 유월영의 배를 보고 잠시 멍해지더니 급히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마치 자신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유월영은 굳이 그녀와 인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그냥 못 본 척하며 연재준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연재준은 메뉴를 주문하고 있었고 유월영은 레몬수를 마시며 무언가를 떠올리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연재준은 젖은 물티슈로 그녀의 젓가락과 숟가락을 닦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월영아,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 무서워.”그는 지금 대부분의 신경을 유월영에게 집중하고 있었다.그녀의 기분을 잘 아는 연재준은 그녀가 보내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연재준은 부드럽게 말했다.“나랑 서정희 씨는 진짜 아무 관계도 없어.”유월영이 천천히 말했다.“내가 당신이 그 여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생각났어요. 그때 서정희 씨가 자작극으로 나를 납치하려다 사건을 일으켜서 사이버 폭력에 시달렸던 거요. 심지어 피 묻은 택배까지 받았었죠.”연재준은 잠시 멍해지더니 곧바로 부정하며 말했다.“그 택배, 과연 극성팬이 보낸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 내가 당신 품에 빨리 안기도록 만든 계략일까요?”연재준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3화

    유월영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내가 뭘 잘못했을까?’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며 생각에 빠져들었고 결국 정신적으로 지쳐 3일간 결석했다.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연재준은 현시우를 찾아갔다.연재준은 유월영이 현시우와의 관계에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이를테면, 부모님이 평범한 가정 출신인 그녀와의 관계를 반대해 둘을 억지로 떼어놓았을 것이라고 여겼다.하지만 현시우를 찾은 그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쇼핑하고 있었다.연재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현시우의 옷깃을 움켜잡았다.“너, 월영이한테 진심이 아니었다면서 왜 계속 나한테 그녀와 멀리하라고 경고한 거야?”현시우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월영이와 헤어지더라도 네가 그녀에게 손끝 하나라도 닿게 두지 않을 거야.”연재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도로 건너편 복싱장을 가리켰다.“그럼 한번 내기할래?”“뭐?”연재준이 그의 옷깃을 놓으며 말했다.“네가 지면 신주시를 떠나고 다시는 유월영 앞에 나타나지 마.”현시우는 그 말에 분노를 느꼈고,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할 기회를 찾은 듯했다.“좋아.”두 사람은 전력으로 싸웠고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현시우가 지고 말았다.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월영과 자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현시우가 출국하던 날, 유월영은 그의 차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백미러로 그 모습을 본 현시우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차 세워요!”연회 부인이 그의 손을 잡고 멈추려 했다.“시우야,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망치지 마. 네 외할머니가 마르세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정말 레온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고씨 가문에 복수할 희망이 생겨. 월영이는 우리가 성공한 후 다시 만나면 되잖아.”하지만 현시우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뛰쳐나갔다.유월영은 울며 물었다.“대체 어디 가는 거야? 정말 나를 버릴 셈이야?”현시우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유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2화

    현시우는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그럼 뭐야?”유월영이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현시우, 무슨 일이 있든 나한테 말해줘. 너도 그랬잖아 여자친구는 이런 순간에 필요한 존재라고.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들어줄 수는 있어. 고민은 혼자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말로 털어놓는 게 훨씬 나아.”“물론, 네가 정말 혼자 있고 싶다면 내가 시간을 줄게. 하지만 연락을 끊으면 안 돼. 그러면 나도 걱정이 되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말이야. 정말 힘들어.”그녀의 말에 현시우는 마치 심장에 바늘이 꽂힌 것 같았다.그 바늘은 그의 숨소리를 따라 점점 더 깊이 찔러 들어갔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월영아, 그냥 여기까지 하자. 내가 사람을 불러 너를 집에 데려다줄게.”유월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지금 나랑 헤어지자는 거야?”현시우의 목젖이 떨렸다.그는 “그래”라고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차마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그가 침묵하는 동안 유월영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 줄기의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유월영의 눈물에 현시우는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달래려 했다.하지만 유월영은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이내 뒤돌아 뛰어갔다.현시우가 본능적으로 뒤따라 가려 했지만 연회 부인이 제때 나타나 그를 막았다.“시우야! 지금은 내버려둬.”어머니의 충고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현씨 가문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고 유월영은 산길을 따라 뛰면서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계속 흘렀다.가을은 좋은 계절이 아니었다.가을은 모든 것이 시들어가는 계절이었다.유월영은 눈앞이 흐릿해졌고 너무 빨리 뛰다가 발이 엉켜 땅에 넘어졌다.흙투성이가 된 채로 집에 돌아온 그녀는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아래층의 부모님이 들을까 봐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손등에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1화

    유월영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연재준조차 알아차릴 수 있었다.쉬는 시간, 그는 일부러 유월영이 있는 반을 지나가며 텀블러에 물을 담고 있던 유월영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그녀는 마치 듣지 못한 듯 돌아보지 않았다.“...”연재준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생각했다.‘현시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봐야 하나? 설령 죽었다고 해도 최소한 죽었다는 소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그러나 현씨 가문의 입단속은 철저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더구나 현시우와 연회 부인의 대화는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다만 현시우는 최근 병원에 드나들고 시골로 내려가는 등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분주하다는 소문만 들렸다.연재준은 손에 동전을 굴리며 고민했다.‘이 틈을 타서 슬쩍 끼어들어 볼까?’보름이 지나도 현시우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결국 유월영은 참지 못하고 생애 가장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그녀는 직접 현씨 가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유월영은 경비원에게 자신이 현시우의 학교 친구이며 그가 너무 오래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러 왔다고 말했다.경비원은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겠다고 했다.10분 후, 유월영은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월영아.”그녀가 돌아보자, 나온 사람은 바로 현시우였다.처음에는 기뻤지만 이내 화가 치밀어 올라 유월영은 달려가며 따졌다.“너 요즘 왜 그래?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그녀는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휴대폰 부모님이 뺏어갔어? 아니면 벌이라도 받은 거야? 혹시 맞기라도 한 거야? 아픈 건 아니지? 얼굴빛이 안 좋아 보이는데 병원은 갔어?”“월영아.”현시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깊게 꺼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그의 모습은 지치고 초췌해 보였다.불과 보름 만에 그는 한층 더 야위었고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듯 보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0화

    현시우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어머니를 추궁했다.“단순히 유용우를 봤다는 이유로 유월영이 그의 친여동생이라고 단정 짓는 건 말이 안 돼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시는데요?”그가 아는 바로는 유월영의 집에는 세 자매가 있었다. 왜 꼭 유월영이어야 하는 걸까?“나이대가 맞지 않아서요?”그는 계속해서 반박했다.“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유월영의 집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에요. 자식을 여러 명 키우는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고씨 가문의 딸을 키우는 건 위험 부담도 크잖아요. 여동생이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나요?”이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연회 부인은 외출조차 하지 못했고, 유용우네 가까이 지내는 것도 두려워했다.그래서 유용우네 부부가 시내로 이사한 것도 몰랐고, 그들의 세부 사항도 알 수 없었다.현시우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연회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그러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해보렴.”“...”만약 그녀가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현시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핏줄은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연회 부인은 그가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아마 너는 처음부터 네 감정을 잘못 알았던 것 같아. 너의 마음속에서 유월영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어쩌면 혈연관계가 작용해서 너를 혼란스럽게 만든 걸지도 몰라.”“그렇지 않다면 너의 성격으로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네 주변에 훌륭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잖아? 그런데 너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잖아. 그런데 유월영을 알게 된 지 몇 달 만에 이렇게 깊이 좋아하게 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니?”“그래서 내 생각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운명이 장난을 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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