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6화

Author: 고나름
유월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소 팀장님은 제 개인적인 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보여요. 비행기에서도 그랬고 기회만 생기면 업무랑 상관없는 일로 계속 저를 떠보는 것 같아서요.”

“저는 친한 동료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소 팀장님은 개인적인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소은혜가 물었다.

“많이 신경 쓰이나 봐요? 나랑 연 대표님 관계가? 혹시 질투해요? 사실 아직도 연 대표님한테 마음이 있는 거죠? 3년 동안 항상 붙어 다녔잖아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모든 걸 끊어내겠어요.”

유월영은 그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했다.

“난 소 팀장님 사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자꾸 일과 무관한 일을 이야기할 거면 그냥 짐 싸고 돌아가세요. 이러시는 거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만약 저를 라이벌로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면 정말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

소은혜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솔직히 팀장님 이러는 거 정말 짜증나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잖아요. 난 오늘 일정을 위해 어젯밤 밤잠을 줄여가며 계획표를 만들었어요. 오늘 일정을 순조롭게 끝내기 위해서요. 그런데 팀장님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나까지 얼굴로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잖아요.”

말문이 트인 유월영은 더 이상 소은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항상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소은혜의 얼굴이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

만약 소은혜가 적당히 선을 지켰더라면 유월영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연 대표님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둘이 무슨 사이든, 뭘 했든 전혀 관심 없다고요. 팀장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꼭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러니까 자중하시라고요.”

“자중이라….”

소은혜가 갑자기 싸늘한 웃음을 터뜨렸다.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77화

    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연재준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유월영을 빤히 노려보며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나중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을 때 다시 연락해.”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더니 갑자기 유월영에게 짜증을 부렸다.“안 탈 거면 거기 버튼 계속 누르고 있지 말아줄래?”이번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에 유월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엘리베이터에 탔다.공간이 좁아서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져 서 있는데도 그녀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둘은 아무런 말이 없이 엘리베이터 전광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중에 연재준의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렸지만 그는 울리는 족족 끊어버렸다.유월영은 그의 뒤쪽에 서 있었기에 보고 싶지 않아도 핸드폰 화면이 그대로 보였다.백유진이었다.조금 전까지 백유진과 통화하고 있었던 걸까?아니나 다를까, 한참 말이 없던 연재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렇게 돼서 이제 만족해?”“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그런 말을 하는 사이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6층에 도착했다.연재준은 엘리베이터를 나서려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문을 닫았다.유월영은 짜증을 참으며 차갑게 경고했다.“또 왜 이러시는 거예요? 여기 CCTV 있어요.”“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연재준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CCTV 있는 곳에서 일을 치르는 악취미는 없어.”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연재준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가상 번호로 나한테 그딴 것을 보내면 내가 출처를 못 찾을 것 같았어? 백유진 키스하는 사진, 그거 네가 나한테 보낸 거지? 나랑 백유진 사이를 이간질하려고?”유월영은 이번에는 부인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둔갑시켜서 모함하는 걸 두고 이간질이라고 해요. 그게 사실이면 단순한 고발에 불과하죠.”연재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그 사진 어디서 났어?”당연히 불법적인 경로로 취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78화

    유월영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그래서요? 한정판도 아니고 대학병원에 다 있는 건데요.”“브랜드와 집도의가 다르면 효과도 다르지. 아마 네 엄마 주치의는 감염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라고 했을 거야. 내가 소개한 의사가 집도하면 감염률을 10퍼센트로 낮출 수 있어.”연재준이 여유만만한 얼굴로 답했다.유월영은 순간 숨이 막혔다.엄마를 담당하는 주치의도 신주시에서는 꽤 알아주는 흉부외과 박사였다. 그런 인물조차 감염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 된다고 말했다.그런데 연재준은 10퍼센트로 낮출 수 있다니! 엄마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절반 이상 늘어난 격이었다.“유 비서, 이번에는 협박 아니야. 오히려 너한테 더 좋은 길을 제시한 거지.”연재준은 그녀를 놓아주고 밖으로 나갔다.“선택은 네가 해.”엘리베이터에 홀로 남은 유월영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쥐었다.선택지를 준 것 같지만 사실 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연재준의 이런 거래 방식이 너무도 역겨웠다.백유진과 냉전 중이면서 소은혜를 방으로 불러 밤새 불태운 주제에 장난치듯이 그녀에게 회사로 돌아오라고 말했다.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거절할 수 없는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엘리베이터가 아래 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녀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유월영은 먼저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아무 일 없고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답장이 오자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자 그녀는 다시 회의실이 있는 6층을 눌렀다.그리고 신연우에게 보낼 문자를 입력했다.[교수님, 신주의대는 국내 의학계에서도 인정받는 대학이잖아요. 둘째 형님은 유명한 한의사이기도 하니 혹시 추천할만한 흉부외과 선생님이 있나요?]그녀는 자신보다 인맥이 넓은 신연우가 어쩌면 진 박사보다 더 괜찮은 의사를 추천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하지만 결국 발송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그녀는 일단 일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엘리베이터를 나선 유월영은 표정을 수습하고 회의실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79화

    호텔로 돌아간 소은혜는 곧장 회의실로 가서 소리쳤다.“큰일 났어요! 유월영 씨가 갑자기 사라졌어요!”오늘 업무를 정리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쏠렸다.실험실 사고를 해결하고 돌아온 신연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는 여기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금 뭐라고 하셨나요?”소은혜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오늘 데이터 수집하러 연구기지를 돌고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유월영 씨가 갑자기 화장실을 간다고 먼저 나갔거든요. 저랑 운전기사는 차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서 화장실에 찾아가 봤더니 아무도 없었어요.”“월영 씨 핸드폰에 전화했는데 전화기도 꺼져 있더라고요. 근처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못 찾아서 일단 먼저 돌아왔어요. 날도 늦었는데 다 같이 찾아봐요.”신연우가 물었다.“실종 지점이 어딘가요?”“송학로 연구기지요.”대답을 그는 가장 먼저 회의실을 뛰쳐나갔다.연재준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소은혜를 노려보고 있었다.서지욱이 말했다.“뭔가 이상해. 유 비서는 일할 때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이 아니야.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이 비서, 여긴 이 비서한테 맡길게.”연재준도 비서를 호출했다.“하 비서도 나가서 찾아봐.”사람을 찾는 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긴 두 사람은 호텔에서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소은혜도 피곤하다며 회의실에 남았다.하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도 수색을 나간 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서지욱이 말했다.“우리 그냥 신고하자.”연재준은 턱을 괴고 앉아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다 큰 성인이 제 몸 하나 못 지킬까.”서지욱이 인상을 확 구겼다.“만약 납치라도 당했으면?”연재준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유월영을 납치해서 이득 볼 게 뭐가 있어?”서지욱은 약간 실망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봤다.아무리 회사를 나간 직원이라지만 그와 함께 한 정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무덤덤할 수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80화

    “내가 언제 그런 걸 시켰어?”연재준은 성큼성큼 비상계단을 나가며 핸드폰으로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은혜가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대표님이 몰라서 그렇지 이 방법 여자한테 정말 잘 통한다니까요?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렸다가 완전히 절망에 떨고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나면 알아서 대표님한테 안길 거라고요.”“호텔 입구에 차 대기시켜.”통화를 마친 연재준은 길을 막는 소은혜를 밀치고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넌 지금 주제넘은 짓을 했어. 내일 당장 네 부모님한테 돌아가.”소은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표님 도와준다고 한 일이잖아요!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요?”연재준은 더 이상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조급해진 소은혜가 소리쳤다.“정말 돕고 싶어서 그랬다고요!”연재준은 그녀를 무시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동쪽에 있는 수림으로 가자.”한편, 송학로 기지에 도착한 신연우는 주차장 CCTV를 조회하고 유월영이 차에 탄 것을 확인했다.이로써 그는 소은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그리고 하필 그와 같이 온 운전기사가 조금 전 유월영을 태웠던 운전기사였다.쾅!그는 운전기사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서 있는 힘껏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평소에 온화하고 인성이 좋다고 소문난 신 교수의 성난 모습에 당황한 운전기사가 고개를 저었다.“저… 저는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신연우는 안경을 벗어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구둣발로 운전기사의 가슴을 지그시 짓밟았다.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신연우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운전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그게….”상대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신연우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운전기사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는 수가 있어.”그제야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운전기사가 소리를 질렀다.“호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81화

    여 비서는 백미러를 통해 상사의 찌푸린 얼굴을 확인했다.무릎에 놓인 사내의 손에는 하얀색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순백의 라이터는 명품 브랜드도 아닌 아주 평범한 디자인의 구식 라이터였다.특별한 점이 있다면 밑부분에 붉은색 보석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는 점이었다.사내가 가지고 다니기엔 너무 저가 브랜드였는데 사내는 줄곧 이 라이터만 몸에 꼭 지니고 다녔다.마스크남은 주변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수림으로 질주했다.수림 입구는 무성한 초목으로 뒤덮여 있어 차량 진입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여 비서의 이름은 한세인, 검은색 가죽바지에 단화를 신고 단발머리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전형적인 일개미 스타일의 여자였다. 그녀는 마스크남과 함께 손전등을 챙기고 안으로 들어갔다.앞에서 걷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사내에게 말했다.“대표님, 저랑 지남이가 갈게요. 대표님은 차에서 기다리고 계세요.”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앞질러서 앞으로 걸어갔다.유월영 미행남이었던 지남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상사를 따라 수림 안으로 들어갔다.수림 속 길은 평탄하지 않아서 손전등으로 비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그럼에도 남자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었다. 나뭇가지가 그의 옷깃에 흠집을 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여자인 한세인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사내는 성큼성큼 걸으며 그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나 두고 가버리면 나도 오빠에 대한 마음 포기할 거야.”싸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추억에 잠긴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했다.유월영이 그곳에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초목이 우거진 수림 속은 달빛도 통과하지 못해 어둡고 음산하기 그지없었다.유월영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앞으로 정처 없이 걸었다.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문제는 추위였다.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챙기지 않아 얇은 니트 한 벌만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82화

    유월영은 벌떡 일어서서 나뭇가지로 주변을 휘적거렸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바람이 불면서 주변 초목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니 마치 사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오래 보고 있으니 여자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봤던 공포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두려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유월영은 나무를 끌어안으며 혹시 높이 올라가면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다.하지만 가지가 고공에서부터 뻗어 있어서 타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타기를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말았다.그녀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여기, 여기야!”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저편에서 플래시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이 시간에 사람이?’유월영은 기쁜 마음에 도움을 요청하러 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 밤중에 사람이 깊은 수림에는 무슨 일이지?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숨겼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들은 건지, 그쪽에서 플래시를 이쪽으로 비추었다.“거기 누구야?”유월영은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여기 여자가 있는데?”유월영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두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키 작고 몸집이 비대한 남자가 유월영을 깐깐히 훑어보더니 말했다.“진짜 여자네? 밤 중에 여기서 길을 잃었나 봐.”유월영은 온몸에 흙을 묻히고 있는 그들의 차림새를 자세히 살폈다. 설마 이 밤중에 땅이라도 팠나?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살인현장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만약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손에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희박했다.“젠장. 꽤 예쁘잖아?”키 작은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관찰하자 옆에 있던 사내가 욕설을 퍼부었다.“또 시작이야?”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83화

    그 순간 들려온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에 달리던 사내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유월영은 달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분명 주변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유월영!”또 다시 들려온 목소리, 그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걸음을 멈춘 유월영은 차량 두 대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차에서 강렬한 불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를 감쌌다.연재준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수림으로 들어오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수림으로 통하는 도로를 발견한 그는 곧장 차를 끌고 유월영과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두 사내는 누군가가 온 것을 보고 서로 눈치를 주고받고는 어둠으로 사라졌다.유월영은 그제야 자신이 도심으로 향하는 길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차에서 내린 연재준은 성큼성큼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앞머리가 흩날리며 찰랑거렸고 코트도 바람 따라 날리고 있었다.누군가 와주기를 기대했지만 맨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이 약간 믿기지 않았다.유월영은 멍하니 서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려움 때문에 엉망이 되었던 머릿속이 갑자기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연재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찬 기운이 느껴지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다친데는 없어?”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없어요.”다행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도착해 줘서 다행이었다.연재준은 속을 알 수 없는 담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운이 좋았네.”말을 마친 그는 차가 있는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유월영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연재준은 그녀를 안아올렸다.유월영은 남자의 청량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자 당황함에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조금만 숨을 고르면 혼자 걸을 수 있어요.”“움직이지 마.”두려움에, 추위에, 배고픔에 기가 다 빨렸던 유월영은 이 순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84화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달려오며 포위를 좁혀왔다.놀란 하정은이 소리쳤다.“오지 마! 더 다가오면 신고할 거야!”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빨리 저것들 잡아!”놀란 유월영이 품에서 내려오려고 했지만 연재준은 그녀를 꽉 안은 채로 맨 앞에서 달려오는 주민을 발로 걷어찼다.“대표님, 저 좀 내려줘요.”다급한 그녀의 요청에 연재준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널 여기서 못 데리고 나갈 것 같아?”말을 마친 그는 또 다시 달려오는 주민의 공격을 몸을 비틀어 피했다.하지만 압도적인 인원수 앞에 그들도 계속 방어만 할 수는 없었다.유월영은 차 문을 잡으며 그에게 소리쳤다.“빨리 차에 타요!”연재준은 달려오는 주민에게 발길을 날리고 유월영을 안은 채,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하정은도 운전석에 올랐다.연재준이 뒷좌석에 유월영을 내려놓는 사이 등 뒤에서 몽둥이를 든 마을 주민이 그에게 달려들었다.놀란 유월영이 비명을 질렀다.“대표님!”연재준은 결국 주민이 휘두른 방망이에 어깨를 맞고 신음을 흘렸다. 그의 눈에 순간 살기가 스치더니 몸을 돌려 그 주민에게 발길을 날리고 차에 올랐다.그가 차 문을 닫으려는 순간 주민들이 달려들어 문고리를 잡고 매달렸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공포 영화에 나오는 좀비 무리가 떠올랐다.유월영이 소리쳤다.“빨리 가요!”정신을 차린 하정은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고 반동에 문에 매달렸던 주민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 틈을 타서 연재준은 차 문을 힘껏 닫았다.그러자 주민들이 미친 사람처럼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그들은 아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놀란 주민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형사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지?”연재준은 그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라고 지시를 내렸다.하정은은 그의 지시대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꺾으며 비좁은 틈을 타서 도로를 빠져나갔다.수림에서 그들이 탈출한

Latest chapter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6화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연이가 원하는 거라면 아빠는 꼭 해낼 거야.”윤영훈은 목이 메어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주월향은 딸에게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빠가 누군지 알려주며 7년 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딸이 그를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해줬다.‘이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그러나 윤영훈은 주월향의 이런 행동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뜻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집안에 들어서자 연이가 활기차게 떠들었다.“엄마!”주월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이야, 배고프지? 어제 배추전 먹고 싶다고 했잖아? 방금 만들어서 아직 따뜻해. 간식이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알았지?”아이가 환호하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주월향은 윤영훈을 힐끗 보며 말했다.“당신도 먹어볼래요?”윤영훈은 그녀 쪽으로 다가가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월향아, 미안해...”“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주월향이 그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딸을 한 번 보더니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윤영훈도 그녀를 따라 나갔다.주월향은 식물에 물을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7년 전, 영훈 씨가 감옥에 가기 전에 우리 모녀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줬어요. 돈, 집, 차까지 모두 마련해줬죠. 게다가 내가 당신을 한 번 배신하기도 했으니 당신에게 상처 준 대가로 다 갚았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는 7년 전에 이미 정리됐어요. 그러니 서로에게 빚진 건 없어요.”윤영훈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주월향이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이 7년 동안 내가 감옥 면회를 가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오늘 출소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죠. 당신이 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냥 이대로 끝났을 거예요.”“하지만 영훈 씨는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남을 건가요?”“...내가 여기 남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5화

    “됐어요, 사촌 오빠, 얼른 가세요.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이모와 이모부께는 제가 잘 지낸다고 전해주세요. 여기서 부족한 것 하나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사촌 오빠?’남자는 주월향의 남편이 아니라 사촌 오빠였다.거의 죽어가던 윤영훈의 마음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그는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뻔했다.그러나 그 사촌 오빠가 집을 나서자 윤영훈은 재빨리 수박 덩굴 아래로 몸을 숨겼다.물론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고 해서 주월향에게 남편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하지만 이 반전만으로도 그는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그때 머리 위의 수박잎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젖혀졌다.윤영훈은 순간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청아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리 벼부터 거두는 걸 도와줘요. 비 맞으면 이번 농사는 다 망해요.”윤영훈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주월향의 말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마치 그가 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 외출했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들렸다.천천히 돌아선 윤영훈을 주월향은 담담하게 바라보며 갈퀴를 건넸다.“모두 한데 모아주세요. 내가 자루를 가져올게요.”윤영훈은 멍하니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그는 감옥에서도 농사일을 해봤기에 이런 일이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일을 하다가도 자꾸 주월향의 눈치를 살폈고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려 애썼다.주월향이 입을 열었다.“지금 나는 온라인에서 요리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어요. 팔로워가 몇백만 명은 되죠. 영상 편집이 아직 안 끝났으니 벼를 다 거두고 나면 이 앞에 초등학교에 가서 연이를 좀 데려와 주세요.”“지안 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죠? 몰라도 괜찮아요. 핸드폰 내비게이션 켜고 찾아가면 돼요.”윤영훈이 여전히 멍하니 있자 주월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 말 들었어요?”“들었어...”주월향은 거둔 벼를 집 안으로 가져가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4화

    윤영훈은 10년 형을 선고받았다.모범수로 인정받아 감형된 덕분에 실제 복역 기간은 7년 10개월이었다.출소하는 날,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감옥 문 앞에 서서 바라본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그의 모습도 더 이상 과거의 의기양양하고 자유분방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윤영훈은 감옥 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출소를 반년 앞두고 그는 출소 후의 삶을 계획하려 애썼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윤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지 오래였다.2년 전, 그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도관들의 배려로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그곳에서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친척들을 보았다.가문의 보호막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윤영훈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의 사촌 서정희는 출소 후 찾아오라 했지만 그녀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윤영훈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주월향이었다.그녀와 딸 연이를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등장이 그녀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웠다.게다가 그녀는 이미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재판을 받던 날에도 주월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그녀는 분명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녀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남자가 없더라도 모녀는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윤영훈은 감옥에 가기 전 그녀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겼고 그녀가 이를 잘 활용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등장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비열하다고 느꼈다.주월향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멀리서 그녀를 한 번 보기만 해도 만족하겠다고 다짐한 윤영훈은 감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기차표를 사서 그녀의 고향으로 향했다.그곳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이었다.기차역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버스로 2시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3화

    “그래도 돼?”강수영은 신현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녀의 애인이 되었고 강수영은 반년 넘게 그와 몰래 관계를 이어갔다.강수영은 일부러 자신이 이미 남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매주 몰래 찾아오는 신현우를 지켜보며 즐거워했다.가끔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바로 떠났다.그럴 때마다 신현우는 알림도 받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 했다.친구들은 강수영이 신현우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현재 신현우의 눈에는 질투와 시기가 가득 차 있었고 늘 당당하던 그의 얼굴에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강수영은 자신이 그의 곁에서 겪었던 모든 억울함과 상처를 이렇게 풀고 싶었다.이번 주, 강수영은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신현우는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강수영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그는 거실에서 홀로 술병을 비우고 있었다.엉망이 된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초라해 보였고 강수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그녀는 오랜 시간 방치해둔 녹음기를 꺼냈다. 그건 예전에 신연우가 건넨, 신현우의 음성이 담긴 파일이었다.그녀는 당시 결혼 생활에 전념하고 싶어 듣지 않았던 녹음을 재생했다.녹음기에서는 술에 취한 신현우의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것은 강수영의 결혼식 날, 신현우가 취한 상태에서 남긴 말들이었다.신연우가 그를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수영이가 내 앞을 그렇게 지나갔어. 남편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어.”“내가 정말로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아니야, 난 수영이를 좋아했어. 다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뿐이야.”“나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었잖아. 너무 어리석었어. 나는 그런 가치를 줄 만한 사람이 아닌데...”“다 내 잘못이야. 처음부터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수영이가 이렇게 집착하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2화

    두 사람은 서쪽으로 스위스 알프스를 찾아가 산맥의 낭만을 만끽하며 자연 보호구역에서 아름다운 야생동물들을 만났다.북쪽으로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와 캐나다의 퀘벡으로 향해 겨울 축제와 북유럽의 신비로운 매력을 경험하고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오로라의 장관을 즐겼다.그러던 중, 한 여행지에서 강수영은 신연우를 우연히 마주쳤다.오래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식사 후, 신연우는 그녀에게 녹음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이 안에는 우리 형의 음성이 들어 있어. 들을지 말지는 네가 결정해. 하지만 듣는다면 네 결혼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그는 이어 덧붙였다.“형이 요 몇 달 동안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 큰 병을 앓아 체중이 많이 빠졌고, 회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 최근에서야 조금 회복됐지.”강수영은 특별히 반응하지 않고 녹음 파일을 받았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신혼여행을 마치고 부부는 지성으로 돌아와 결혼 후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이혼 절차를 밟게 되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강수영의 남편은 여전히 훌륭한 사람이었고 이혼의 원인은 문화적 차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였다.한 사람은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자라며 서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그들은 평화롭게 헤어졌고 이혼 후에도 좋은 친구로 남았다.부모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합의한 후 강수영은 다시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그러다 각 나라, 각 도시에서 신현우를 계속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세 번째 만남에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수영이 그를 조롱했다.“신 대표님, 이렇게 한가하신 줄 몰랐네요. 왜 자꾸 저를 따라다니시는 거죠?”“따라다닌 게 아니야. 우연일 뿐이야.”“우연이 이렇게 자주 겹칠 리가 있나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차가운 미소를 띤 강수영에게 신현우는 화제를 돌렸다.“넌 왜 여기저기 여행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1화

    ‘소은혜’에서 다시 ‘강수영’으로 돌아온 후, 강수영은 그 차가운 남자와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한눈에 반했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망쳤고 다시는 그 남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파혼하고 집을 떠나 이름까지 바꾼 채 명분 없이 그의 곁을 지켰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라며 손가락질했다.그러는 동안 그는 가문 배경이 잘 맞는 귀한 집 아가씨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스스로를 명문가의 딸에서 천한 첩으로 전락시켰지만 그에게선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다. 그녀가 바친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온기 한 줌 나눠주지 않았다.강수영은 결국 깨달았다. 그 감정을 고집한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그녀는 강씨 집안의 딸로 돌아왔고 그는 여전히 신씨 가문의 장남으로 남아 있었다.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맞선을 주선했고 두 가문 모두에게 이로운 자리였다.강수영은 더 이상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맞선에 응했다.맞선 상대는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배경도 잘 맞았다.며칠간 그와 시간을 보내본 그녀는 그가 괜찮다고 느꼈다. 특히, 그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을 때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고된 일이었기에 이번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3개월간 교제했고 큰 문제 없이 잘 맞았다. 비록 심장이 크게 뛰는 설렘은 없었지만 세상 대부분의 결혼이 ‘적당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 기준에서 본다면 그와의 결혼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결국 두 사람은 약혼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그러나 결혼식 당일,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나타났다. 바로 신현우였다.그의 등장에 강수영은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미소를 띠며 신랑과 함께 술잔을 들었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0화

    방금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이승연은 고양이가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되어 이혁재에게 맡기기로 했다.“경험 있는 네가 좀 맡아줘.”이혁재는 황당했다.“내가 무슨 경험이 있다고 그래!”이승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처지가 비슷하잖아.”화가 난 이혁재는 이승연을 들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곱게 바른 립스틱을 번지게 했다.“전혀 비슷하지 않거든!”이혁재의 사무실.이혁재와 연재준은 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두 아이는 옆에서 놀고 있었다.그때 이혁재가 무심코 고양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호두야, 누나를 잘 돌봐야 해.”기어다니기 시작한 윤아는 갑자기 호두의 꼬리를 잡았다.호두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했지만 꼬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이혁재의 말 때문인지 꼬리를 잡힌 채로 억울한 듯 야옹 소리만 냈다.윤아는 깔깔 웃으며 꼬리 끝을 입에 넣으려 했고 그제야 호두는 꼬리를 빼내더니 아기에게 돌아서서 야옹 소리를 내며 경고했다.마치 “입에 넣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윤아는 호두를 향해 돌진하며 그를 덮쳤다.두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을 때 윤아는 카펫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호두는 듬직한 몸을 베개 삼아 윤아를 받치고 있었다.그 동화 같은 장면에 연재준과 이혁재는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고양이가 어린이를 알아본다더니 진짜인가 봐.”퇴근 시간이 되어 이혁재는 호두를 데리고 이승연의 사무실로 향했다.이승연은 호두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입을 맞췄고 이어 호두가 이혁재에게도 뽀뽀하도록 했다.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이혁재는 고양이 털을 한가득 삼키고 서둘러 뱉어냈다.“퉤퉤퉤.”그 순간, 호두도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토해냈다.이혁재는 어이가 없어 발끈했고 이승연은 웃음을 참지 못해 의자에 쓰러지듯 폭소했다.사실 고양이는 털을 핥으며 스스로를 청소하는 습성 때문에 위에 털 뭉치가 생겨 종종 토하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9화

    작은 고양이는 케이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치료로 인해 털이 대부분 깎인 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이혁재가 싫은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이승연을 알아본 듯 비틀거리며 케이지 가장자리로 다가와 그녀를 향해 야옹 울었다.이승연은 손가락을 내밀어 고양이를 살짝 만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를 지켜보던 이혁재가 말했다.“여보, 얘 다 낫고 나면 집에 데려가 키우자. 이렇게 작고 못생긴 애가 혼자 힘으로 먹을 걸 찾기도 힘들고, 다른 고양이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얘 어떻게 살겠어.”이승연도 같은 생각이었다.두 달 후,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했다.이혁재는 직접 고양이를 씻기고 구충한 뒤 집으로 데려갔다.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털이 윤기 나게 자랐고 살이 올라 뼈만 앙상했던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결국, 고양이는 기름지고 윤기 나는 털을 자랑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이혁재의 몸 위로 덮치는 대형 고양이가 되었다.“이런 젠장!”이혁재는 고양이의 기습에 또 당했고 숨이 턱 막힐 뻔했다.고양이가 도망치려 하자 그는 재빨리 붙잡아 들어 올리며 따졌다.“너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전혀 모르는 거야? 아니면 정말 날 깔아뭉개려고 작정한 거야?”고양이는 억울하다는 듯 야옹거리며 반응했다. 그러나 고양이가 이승연에게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이혁재는 고양이가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고양이는 이승연이 일할 때 그녀의 발등 위에 앉아 체온으로 발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그녀가 서류를 검토할 때는 네 발을 모아 단정한 자세로 그녀 곁에 앉아 ‘독서’에 동참했다.때로는 앞발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이혁재는 고양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양이를 뒤집어 배를 위로 한 채 들어 올려 얼굴을 고양이 배에 묻고 한 번 흡입했다.고양이는 저항하며 네 발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8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한 후, 이혁재는 정관 절제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피임 수술’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이혁재는 이 일을 이승연에게 알리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철저히 조사한 뒤, 직접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수술은 간단했고 외래 진료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수술을 마친 그는 바로 퇴원했고 그날 오후에는 몇 시간 동안 회의를 열기도 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그 불편함조차 완전히 사라졌다.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이혁재는 가벼운 농담처럼 이 일을 이승연에게 털어놓았다.이승연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재빠른 두뇌 회전과 날카로운 눈치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혁재는 그녀가 ‘수술’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혹시 일이 심각하다고 오해했을까 봐 그녀를 안고 달래며 자세히 설명했다.“여보, 내가 요즘 아이를 갖는 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랐지? 피임을 해도 혹시 실수라도 생길까 봐 계속 걱정했어. 만약 사고가 생기면 낳든 낙태하든 둘 다 누나 몸에 무리가 갈 거잖아. 그래서 아예 근본적으로 위험을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이승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이 수술 알아. 우리 아빠가 받았거든.”그녀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그 시절에는 보통 여자가 피임 수술을 받곤 했는데 우리 아빠는 알아보니 여자가 받는 수술이 훨씬 위험하고 몸에 무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됐대. 그래서 엄마가 고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이 받았지.”“아빠는 우리 동네에서 피임 수술을 받은 유일한 남자였고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남자라고 칭찬했어. 엄마도 복 받은 거라고 하셨고.”이혁재는 그녀가 아버지를 칭찬하며 은근히 자신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날 밤, 소파와 카펫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