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로 돌아간 소은혜는 곧장 회의실로 가서 소리쳤다.“큰일 났어요! 유월영 씨가 갑자기 사라졌어요!”오늘 업무를 정리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쏠렸다.실험실 사고를 해결하고 돌아온 신연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는 여기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금 뭐라고 하셨나요?”소은혜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오늘 데이터 수집하러 연구기지를 돌고 호텔로 돌아오려는데 유월영 씨가 갑자기 화장실을 간다고 먼저 나갔거든요. 저랑 운전기사는 차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서 화장실에 찾아가 봤더니 아무도 없었어요.”“월영 씨 핸드폰에 전화했는데 전화기도 꺼져 있더라고요. 근처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못 찾아서 일단 먼저 돌아왔어요. 날도 늦었는데 다 같이 찾아봐요.”신연우가 물었다.“실종 지점이 어딘가요?”“송학로 연구기지요.”대답을 그는 가장 먼저 회의실을 뛰쳐나갔다.연재준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소은혜를 노려보고 있었다.서지욱이 말했다.“뭔가 이상해. 유 비서는 일할 때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이 아니야.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이 비서, 여긴 이 비서한테 맡길게.”연재준도 비서를 호출했다.“하 비서도 나가서 찾아봐.”사람을 찾는 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긴 두 사람은 호텔에서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소은혜도 피곤하다며 회의실에 남았다.하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도 수색을 나간 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조바심이 난 서지욱이 말했다.“우리 그냥 신고하자.”연재준은 턱을 괴고 앉아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다 큰 성인이 제 몸 하나 못 지킬까.”서지욱이 인상을 확 구겼다.“만약 납치라도 당했으면?”연재준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유월영을 납치해서 이득 볼 게 뭐가 있어?”서지욱은 약간 실망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봤다.아무리 회사를 나간 직원이라지만 그와 함께 한 정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무덤덤할 수
“내가 언제 그런 걸 시켰어?”연재준은 성큼성큼 비상계단을 나가며 핸드폰으로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은혜가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대표님이 몰라서 그렇지 이 방법 여자한테 정말 잘 통한다니까요?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렸다가 완전히 절망에 떨고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나면 알아서 대표님한테 안길 거라고요.”“호텔 입구에 차 대기시켜.”통화를 마친 연재준은 길을 막는 소은혜를 밀치고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넌 지금 주제넘은 짓을 했어. 내일 당장 네 부모님한테 돌아가.”소은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표님 도와준다고 한 일이잖아요!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요?”연재준은 더 이상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조급해진 소은혜가 소리쳤다.“정말 돕고 싶어서 그랬다고요!”연재준은 그녀를 무시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동쪽에 있는 수림으로 가자.”한편, 송학로 기지에 도착한 신연우는 주차장 CCTV를 조회하고 유월영이 차에 탄 것을 확인했다.이로써 그는 소은혜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그리고 하필 그와 같이 온 운전기사가 조금 전 유월영을 태웠던 운전기사였다.쾅!그는 운전기사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서 있는 힘껏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평소에 온화하고 인성이 좋다고 소문난 신 교수의 성난 모습에 당황한 운전기사가 고개를 저었다.“저… 저는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신연우는 안경을 벗어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구둣발로 운전기사의 가슴을 지그시 짓밟았다.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신연우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운전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유월영, 어디로 데려갔어?”“그게….”상대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신연우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운전기사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는 수가 있어.”그제야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챈 운전기사가 소리를 질렀다.“호
여 비서는 백미러를 통해 상사의 찌푸린 얼굴을 확인했다.무릎에 놓인 사내의 손에는 하얀색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순백의 라이터는 명품 브랜드도 아닌 아주 평범한 디자인의 구식 라이터였다.특별한 점이 있다면 밑부분에 붉은색 보석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는 점이었다.사내가 가지고 다니기엔 너무 저가 브랜드였는데 사내는 줄곧 이 라이터만 몸에 꼭 지니고 다녔다.마스크남은 주변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수림으로 질주했다.수림 입구는 무성한 초목으로 뒤덮여 있어 차량 진입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여 비서의 이름은 한세인, 검은색 가죽바지에 단화를 신고 단발머리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전형적인 일개미 스타일의 여자였다. 그녀는 마스크남과 함께 손전등을 챙기고 안으로 들어갔다.앞에서 걷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사내에게 말했다.“대표님, 저랑 지남이가 갈게요. 대표님은 차에서 기다리고 계세요.”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앞질러서 앞으로 걸어갔다.유월영 미행남이었던 지남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상사를 따라 수림 안으로 들어갔다.수림 속 길은 평탄하지 않아서 손전등으로 비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그럼에도 남자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었다. 나뭇가지가 그의 옷깃에 흠집을 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여자인 한세인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사내는 성큼성큼 걸으며 그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나 두고 가버리면 나도 오빠에 대한 마음 포기할 거야.”싸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추억에 잠긴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했다.유월영이 그곳에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초목이 우거진 수림 속은 달빛도 통과하지 못해 어둡고 음산하기 그지없었다.유월영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앞으로 정처 없이 걸었다.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문제는 추위였다.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챙기지 않아 얇은 니트 한 벌만
유월영은 벌떡 일어서서 나뭇가지로 주변을 휘적거렸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바람이 불면서 주변 초목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니 마치 사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오래 보고 있으니 여자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봤던 공포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두려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유월영은 나무를 끌어안으며 혹시 높이 올라가면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다.하지만 가지가 고공에서부터 뻗어 있어서 타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타기를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말았다.그녀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여기, 여기야!”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저편에서 플래시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이 시간에 사람이?’유월영은 기쁜 마음에 도움을 요청하러 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 밤중에 사람이 깊은 수림에는 무슨 일이지?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숨겼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들은 건지, 그쪽에서 플래시를 이쪽으로 비추었다.“거기 누구야?”유월영은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여기 여자가 있는데?”유월영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두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키 작고 몸집이 비대한 남자가 유월영을 깐깐히 훑어보더니 말했다.“진짜 여자네? 밤 중에 여기서 길을 잃었나 봐.”유월영은 온몸에 흙을 묻히고 있는 그들의 차림새를 자세히 살폈다. 설마 이 밤중에 땅이라도 팠나?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살인현장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만약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손에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희박했다.“젠장. 꽤 예쁘잖아?”키 작은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관찰하자 옆에 있던 사내가 욕설을 퍼부었다.“또 시작이야?”
그 순간 들려온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에 달리던 사내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유월영은 달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분명 주변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유월영!”또 다시 들려온 목소리, 그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걸음을 멈춘 유월영은 차량 두 대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차에서 강렬한 불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를 감쌌다.연재준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수림으로 들어오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수림으로 통하는 도로를 발견한 그는 곧장 차를 끌고 유월영과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두 사내는 누군가가 온 것을 보고 서로 눈치를 주고받고는 어둠으로 사라졌다.유월영은 그제야 자신이 도심으로 향하는 길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차에서 내린 연재준은 성큼성큼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앞머리가 흩날리며 찰랑거렸고 코트도 바람 따라 날리고 있었다.누군가 와주기를 기대했지만 맨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이 약간 믿기지 않았다.유월영은 멍하니 서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려움 때문에 엉망이 되었던 머릿속이 갑자기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연재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찬 기운이 느껴지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다친데는 없어?”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없어요.”다행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도착해 줘서 다행이었다.연재준은 속을 알 수 없는 담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운이 좋았네.”말을 마친 그는 차가 있는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유월영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연재준은 그녀를 안아올렸다.유월영은 남자의 청량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자 당황함에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조금만 숨을 고르면 혼자 걸을 수 있어요.”“움직이지 마.”두려움에, 추위에, 배고픔에 기가 다 빨렸던 유월영은 이 순간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달려오며 포위를 좁혀왔다.놀란 하정은이 소리쳤다.“오지 마! 더 다가오면 신고할 거야!”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빨리 저것들 잡아!”놀란 유월영이 품에서 내려오려고 했지만 연재준은 그녀를 꽉 안은 채로 맨 앞에서 달려오는 주민을 발로 걷어찼다.“대표님, 저 좀 내려줘요.”다급한 그녀의 요청에 연재준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널 여기서 못 데리고 나갈 것 같아?”말을 마친 그는 또 다시 달려오는 주민의 공격을 몸을 비틀어 피했다.하지만 압도적인 인원수 앞에 그들도 계속 방어만 할 수는 없었다.유월영은 차 문을 잡으며 그에게 소리쳤다.“빨리 차에 타요!”연재준은 달려오는 주민에게 발길을 날리고 유월영을 안은 채,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하정은도 운전석에 올랐다.연재준이 뒷좌석에 유월영을 내려놓는 사이 등 뒤에서 몽둥이를 든 마을 주민이 그에게 달려들었다.놀란 유월영이 비명을 질렀다.“대표님!”연재준은 결국 주민이 휘두른 방망이에 어깨를 맞고 신음을 흘렸다. 그의 눈에 순간 살기가 스치더니 몸을 돌려 그 주민에게 발길을 날리고 차에 올랐다.그가 차 문을 닫으려는 순간 주민들이 달려들어 문고리를 잡고 매달렸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공포 영화에 나오는 좀비 무리가 떠올랐다.유월영이 소리쳤다.“빨리 가요!”정신을 차린 하정은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고 반동에 문에 매달렸던 주민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 틈을 타서 연재준은 차 문을 힘껏 닫았다.그러자 주민들이 미친 사람처럼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그들은 아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놀란 주민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형사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지?”연재준은 그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라고 지시를 내렸다.하정은은 그의 지시대로 운전대를 좌측으로 꺾으며 비좁은 틈을 타서 도로를 빠져나갔다.수림에서 그들이 탈출한
그의 적나라한 도발에 유월영은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저는 의사가 아니에요. 상처를 확인해도 치료해 줄 수 없으니 차라리 의사를 따로 부르세요.”원했던 반응이 아니었기에 연재준은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불빛이 반사되어 차창에 그녀의 초라한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3년 전 비오던 밤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네.”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그의 속도 모르는 유월영이 덤덤하게 말했다.“소 팀장이 일부러 산속에 저를 버리고 갔어요.”“그래서? 내가 나서서 소 팀장을 처벌하기를 바라나?”연재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어찌 그런 걸 바라겠어요.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소은혜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아마 낯선 사람이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유월영은 단지 사실만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유월영이 물었다.“이번 일 혹시 대표님이랑 소 팀장이 짜고 일부러 저를 위험에 빠뜨린 건 아니죠?”합리적인 의심이었다.연재준이 정확히 그녀가 유기된 위치를 알고 찾아온 것도 아마 소은혜가 그에게 사실을 말했을 가능성이 컸다.연재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지금 뭐라고 했어?”유월영은 잠깐 스치는 생각이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고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가 굳이 이런 수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연재준이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왜? 내가 소 팀장 시켜서 널 일부러 산속에 유기하고 짠하고 나타나서 영웅행세를 한 것 같아?”소은혜의 의도는 그게 맞지만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만약 소은혜가 먼저 그에게 상의했더라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뭐 때문에 시간과 공을 들여서 이딴 일을 설계했다고 생각해? 너한테 고맙다는 인사 한번 받으려고? 유월영, 네가 뭔데? 내가 네 감동을 바라고 이런 황당한 짓을 꾸몄다고 생각해?”유월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깥으로 쏠린 가운데 소은혜가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그녀를 본 순간 유월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소은혜는 유월영에게 다가가 진솔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월영 씨, 미안해요. 오늘 내가 장난이 지나쳤던 거 같아요. 대표님한테 이미 한소리 들었어요. 그래도 월영 씨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유월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했나요?”무사했던 게 아니라 사고가 생기기 전에 연재준이 나타나 주었기에 안전하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유월영이 마을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해서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은혜가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그녀의 돌발 행동에 유월영도 놀라서 연재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소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혜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부어 올랐다.“정말 미안해요, 월영 씨. 내가 가끔 경솔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해 주실 건가요?”“사과는 받을게요. 하지만 용서는 별개의 문제예요.”유월영이 말했다.“변호사한테 자문을 구했고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생각도 없어요. 난 소은혜 씨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생각이에요.”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유월영의 처사가 과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소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잘못을 인정할게요. 그리고 사적으로 합의를 봤으면 해요. 손해배상을 원한다면 액수만 말해줘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할게요. 바쁜 사람들끼리 법적 싸움으로 시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월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유월영도 질질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합의서 써주는 조건으로 천만 원에 끝내요.”소은혜는 흔쾌히 동의했다.“알겠어요.”“이 일은 SK상부에 전달할 거예요. 앞으로 난 소은혜 씨와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으니 회사의 결정에 맡겨야죠. 이제 얘기 끝났으니 이만 나가보세요.”소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