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깥으로 쏠린 가운데 소은혜가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그녀를 본 순간 유월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소은혜는 유월영에게 다가가 진솔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월영 씨, 미안해요. 오늘 내가 장난이 지나쳤던 거 같아요. 대표님한테 이미 한소리 들었어요. 그래도 월영 씨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유월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했나요?”무사했던 게 아니라 사고가 생기기 전에 연재준이 나타나 주었기에 안전하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유월영이 마을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해서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은혜가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그녀의 돌발 행동에 유월영도 놀라서 연재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소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혜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부어 올랐다.“정말 미안해요, 월영 씨. 내가 가끔 경솔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해 주실 건가요?”“사과는 받을게요. 하지만 용서는 별개의 문제예요.”유월영이 말했다.“변호사한테 자문을 구했고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생각도 없어요. 난 소은혜 씨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생각이에요.”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유월영의 처사가 과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소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잘못을 인정할게요. 그리고 사적으로 합의를 봤으면 해요. 손해배상을 원한다면 액수만 말해줘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할게요. 바쁜 사람들끼리 법적 싸움으로 시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월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유월영도 질질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합의서 써주는 조건으로 천만 원에 끝내요.”소은혜는 흔쾌히 동의했다.“알겠어요.”“이 일은 SK상부에 전달할 거예요. 앞으로 난 소은혜 씨와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으니 회사의 결정에 맡겨야죠. 이제 얘기 끝났으니 이만 나가보세요.”소은혜
그 말에 서지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마침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도착하여 문이 열렸다.서지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그런데 1층은 왜 오자고 한 거야?”연재준은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담담히 대꾸했다.“카운터에 뭐 좀 가지러 가는 길이야.”서지욱은 곧 돌아올 줄 알고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연재준의 손에는 의약품 박스가 들려 있었다.“너 다쳤어?”연재준은 말없이 17층 버튼을 꾹 눌렀다. 서지욱이 웃으며 물었다.“유 비서가 다친 거야? 그래서 상처 소독해 주려고?”연재준은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서지욱이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유 비서 방에는 신연우 씨가 있잖아. 아마 네가 가면 안 반겨줄 것 같은데?”“그러니까 네가 걔 좀 다른데로 유인해 봐.”서지욱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17층에 도착하자 서지욱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충고했다.“사람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으면 네 태도부터 바꿔야 해.”연재준이 담담히 대꾸했다.“난 너처럼 한 여자랑 일편단심 평생 함께할 인내심이 없어.”서지욱은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그러고 보면 연재준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처음에는 백유진에게 진심인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연재준은 백유진을 총애하지만 뭔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오히려 총애라면 과거 유월영을 데려왔을 때 더 애정을 쏟았던 것 같았다.유월영이 밥 한 그릇을 다 비운 뒤에야 신연우는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소은혜 씨한테 형사책임을 묻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아무리 그래도 SK의 경영사업팀 팀장이에요.”이 일이 밖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얘기였다.신연우는 그녀에게 티슈를 챙겨주며 말했다.“그건 월영 씨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나도 그런 걸 따지고 싶지 않고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죠.”유월영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이미 사과도 받았고 스스로
연재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고는 소독약을 솜에 묻혀 손바닥에 발라주었다.알싸한 느낌에 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연재준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고는 연고를 발라주었다.아까 나무를 타다가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였다.심하지 않은 찰과상이라 그녀 본인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건 또 언제 본 걸까?신연우도 방에 오래 머물렀지만 전혀 그녀가 다친 것을 모르고 있었다.“다쳤으면 밴드라도 붙였어야지.”“심각하지도 않고 그냥 둬도 나을 상처예요.”연재준은 연고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싸늘하게 대꾸했다.“그러다 파상풍 걸려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하겠지.”저주에 가까운 말에 유월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한쪽 손을 마무리한 그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유월영은 소독약을 솜에 묻히며 담담히 말했다.“이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연재준도 덤덤히 손을 닦으며 말했다.“얌전히 구조를 기다렸으면 얼마나 좋아.”“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고까운 소리에 유월영이 인상을 찌푸렸다.“굳이 누구한테 기대지 않아도 되니까요.”그 말에 연재준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유월영은 약을 바르는데 집중하느라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상처 소독을 마친 그녀는 바로 축객령을 내렸다.“신경 써 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제 괜찮으니 이만 돌아가 보세요.”연재준이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넌 치료 끝났는데 난 아직 안 끝났어.”그녀는 싸늘한 얼굴로 거절했다.“아까 차 안에서 병원에 가자고 했을 때 거절한 건 대표님이세요. 이제 와서 이런 일을 저한테 시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차라리 서 대표님이나 신 교수님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하세요.”연재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서지욱이나 신 교수 구하다가 다쳤어?”“정확히 말하면 저 때문에 다쳤다고 할 수는 없죠.”유월영이 싸늘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저를 겨냥하고 몽둥이 휘두른 것도 아니고 대표님이 제때 피하지 못해서 맞은 거잖아요. 제가 그때
유월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사건이 있은지 고작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기억에 문제가 생겼을 리는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바로 그는 그녀를 SK에 넘기는 조건으로 이번 사업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이제 와서 왜 아니라고 하는 걸까?‘아니야! 끌려 다니지 말자.’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약품 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간단한 정리를 마친 뒤, 그녀는 이 비서가 챙겨준 가습기에 물을 채워 넣은 뒤, 침대에 누었다.소은혜의 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2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흔쾌히 내놓은 걸 봐서 그는 주변의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했다.유독 자신만 그의 옆에서 온갖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유월영은 시간을 확인하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평소라면 이 시간에 전화를 받았을 언니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받자마자 끊어버렸다.유월영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 시각, 신주병원.조용했던 병실에 바이탈 기계의 급박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의료진들이 병실로 달려왔다.이영화의 상태를 확인한 진 박사가 다급히 전기 충격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간호사가 무거운 기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비켜주세요!”유은영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옆으로 비켜섰다.간호사는 전기 충격기에 전원을 연결하고 의사가 그것을 받아들고 이영화의 가슴 부위에 충격을 가했다.이영화의 야윈 몸이 위로 갑자기 솟구쳤다가 다시 원래대로 주저앉기를 반복했지만 바이탈 기계의 수치는 올라갈 줄을 몰랐다.“다시!”의사가 다급히 소리쳤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영화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고 그때에야 비로소 바이탈 기계에 파장이 돌아왔다.의료진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진 박사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유은영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지금은 고비를 넘겼지만 수술을 더 이상 지체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인공심장 이식에 대해 고민은 해보셨나요?”유은영은 정신 없이 고개만 저었다.
아로마오일을 함유한 가습기가 돌아가고 있어서 방 안에서는 상쾌한 라벤더향이 풍겼다.여자는 이미 침대에 잠들어 있었는데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모습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현시우는 침대로 다가가서 그녀의 얼굴을 가린 이불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그는 마치 이 방의 주인인 것처럼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그는 이불을 걷고 그녀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대왕 밴드가 붙여진 그녀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한참이 지난 뒤, 그는 손을 내려놓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월영아.”현시우는 그녀의 방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않고 10분 정도 더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연재준과 현시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다음 날, 유월영은 간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가습기 전원을 끈 그녀는 나중에 이 비서한테 어디서 샀는지 알아봐야겠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벌써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계좌에는 어제 연재준이 약속했던 2천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소은혜에게 처벌 대신 돈을 요구했던 건 달리 처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가장 실질적인 배상을 요구한 건데 연재준은 그것에 돈을 더 얹어서 소은혜 대신 지불했다.물론 그가 원해서 한 일이니 굳이 따질 생각은 없었다.신연우에게서 아침 아홉 시쯤에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소은혜 팀장은 몸이 안 좋다고 먼저 돌아갔어요. 회사 측에서 아마 소 팀장의 작업을 대신할 사람을 올려 보낼 것 같아요.]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그냥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굳이 이 일을 크게 벌려봐야 그녀에게 득이 돌 것도 없었다.서지욱은 그녀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지만 유월영은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해서 신연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 어디예요?][강북로 기지에 있어요. 이쪽으로 오려고요?][지금 가면 점심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겠네요. 일도 안 하고 밥을 얻어먹는
뭔가 일을 칠 것 같은 눈빛이었다.“대표님.”연재준은 싸늘하게 그녀를 지나쳐 나가버렸고 하필이면 이때 배달기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배달 시키신 분?”유월영은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서 음식을 받았다.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침까지 상쾌하던 기분이 완전히 사라졌다.연재준이 현시우에게 굉장한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때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둘의 사이가 왜 이렇게 최악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선박 파티에서 연재준은 현 회장에게 굉장히 우호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연 회장보다 현 회장과 사이가 더 좋아보였는데 왜 하필 그 아들인 현시우를 이토록 고깝게 생각하는 걸까?물론 유월영은 자신 때문에 연재준이 한때 친구였던 현시우를 적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비중이 차지하는 바는 아주 적다고 생각했다.간단히 식사를 마친 그녀는 북강로 기지로 가서 신연우와 합류했다.오늘은 그들이 영안에 출장 온지 7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필요한 데이터는 다 수집하였고 이 속도대로라면 3일 정도만 더 진행하면 돌아갈 수 있었다.유월영은 온 오후 뛰어다니다 보니 더워서 목도리를 벗었다.신연우가 다가와서 그녀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넸다. 그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려던 순간, 갑자기 두 명의 제복을 입은 형사들이 다가왔다.“유월영 씨 맞죠?”유월영은 형사들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영안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유월영 씨한테 알아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신연우가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형사가 물었다.“유월영 씨와는 무슨 관계죠?”“상사입니다.”형사는 유월영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유월영 씨, 어젯밤에 동부로에 있는 수림에 가셨죠?”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신연우에게 말했다.“형사님들이랑 얘기 좀 나누고 올게요.”하지만 신연우는 무조건 동행하겠다고
그녀는 어제 차에서 연재준과 하정은이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설 의원은 이미 사고가 난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어쩌면 어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연재준은 피해자가 죽임을 당했을 것을 염두에 두고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었다.신연우의 표정도 어둡게 가라앉았다.“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유월영은 다시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담담히 말했다.“실질적인 피해도 없었어요. 놈들이 저한테 달려들기 전에 제가 도망쳤거든요.”신연우가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소은혜를 용서한다고요?”만약 단순한 장난이었으면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 장난 때문에 유월영은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유월영 본인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했더라도 신연우는 그럴 수 없었다.유월영은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합의금도 이미 받았어요.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해요.”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매화 마을은 어떤 곳인가요?”“우리가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 마지막 포인트가 있는 곳이에요. 매화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매화 마을이라고 불리는데 마을 주민들이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해요. 재개발 들어갈 거라고 거액의 보상금을 약속했는데도 절대 마을을 안 떠난다고 버티고 있어요.”말을 마친 신연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이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알아요.”그날 저녁 회의 때, 연재준과 서지욱은 비서만 따로 보내고 나타나지 않았다. 유월영은 그들이 매화 마을 사건을 해결하러 갔다고 생각했다.SK에서 소은혜 대타로 보낸 인원도 오후에 도착했다. 경영사업팀 부장이었다.그리고 부장과 함께 온 인물이 신연아였다.해운을 떠난 뒤로 다시는 신연아를 만나지 못했는데 그 사이 신연아는 SK로 돌아가서 경험을 쌓고 있다고 했다. 오늘 신연아는 부장의 비서로 같이 출장에 동행했다.하지만 일에 집중하기는커녕 연재준에게만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회의가 끝난 뒤, 신연우는 신연
유월영은 순간 당황했고 신연우도 인상을 찌푸렸다.“신연아.”신연아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했다.“왜? 술상에서 이런 질문 지극히 정상적인 거잖아? 형식적인 질문만 하면 그게 무슨 재미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고 놀아.”유월영은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내가 게임 룰을 몰라서 그랬네요. 그럼 벌칙을 선택하면 뭘 하면 되나요?”신연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벌칙은 오른편에 앉은 남성분이랑 10초 동안 키스하는 거예요.”유월영의 오른편에는 오늘 같이 기지에 갔던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그는 현지인이었는데 오늘 이 술집을 추천한 장본인이기도 했다.문제는 신연우도 유월영의 왼쪽에 앉아 있는데 신연아가 굳이 친하지도 않은 연구원을 지목했다는 것이었다.고의성이 다분한 도발이었다.신연우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이게 무슨 짓이야? 너 공부하라고 대학까지 보냈더니 어디서 이런 못된 짓만 배워왔어?”신연아는 피식 냉소를 지었다. 어제 출장을 와서 유월영을 봤을 때부터 그녀를 어떻게 엿 먹일지 계획했던 그녀였다.“내가 뭐 어쨌다고? 저 여자 회사에서 비서로 일할 때도 상사랑 붙어먹었던 여자야. 대학교 조교로 들어간 뒤로는 담당 교수랑 붙어먹고. 저런 헤픈 여자를 내가 왜 존중해 줘야 하는데?”신연우는 동생의 무례한 발언에 화가 치밀었다.“넌 우리 SK가문의 얼굴이야. 난 내 동생이 이렇게 기본적인 소양도 못 갖춘 사람인 줄은 몰랐어.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당장 안 일어나?”신연아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언성을 높여 말했다.“내가 뭐 틀린 말했어? 전부 사실이잖아! CCTV영상에서 저 여자가 재준 오빠랑 같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단 말이야! 저 여자가 재준 오빠 앞에서 꼬리친 거라고!”“그러면서도 그때 내가 해운에 있을 때는 나랑 재준 오빠 사이를 잘되게 도와준다고 하던 가증스러운 여자야. 날 아주 멍청이로 알고 온갖 거짓말을 했다고. 난 저런 여자를 절대 새언니로 인정할 수 없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