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461 - 챕터 470

693 챕터

제461화 나를 잊지 못하다

나는 한시름 놓았다. 로아와 승현이만 떼를 쓰지 않으면 된다. 같이 떼를 쓰면 달래기 힘들었다.한참 대화하다가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우범도 마침 병실로 돌아왔다.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에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맑고 정교한 눈만 보였고 여전히 쌀쌀했다. 어젯밤 우지훈을 대하던 그 험악한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이우범과 배인호는 다 완벽한 겉모습을 가졌다. 있는 집 도련님의 아우라란 타고난 것이다. 평소에 아무 일 없을 때는 그 누구도 그들이 화났을 때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요즘 너무 바빠서 몸이 이렇게 약해질 때까지 챙겨주지 못했네.”이우범이 내 침대 옆에 앉더니 자책했다.“이건 우범 씨 책임이 아니에요. 몸이 원래 약해서 그래요. 전에 지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희선 언니와 둘이 보살피느라 좀 피곤했나 봐요. 좀 휴식하면 돼요.”나는 오히려 이우범을 위로해 줘야 했다.“인호 말이 맞아요. 지금 주변 사람들 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면 남자로서 잘 챙겨주고 보호해 줘야 해요. 앞으로 그럴 수 있게 온 힘을 다할게요.”안경 너머로 이우범의 두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매혹적이었다.나는 조금 난처했다. 이우범과 진짜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것뿐인데 이런 허황한 명분 때문에 나를 보살펴주겠다고 하니 말이다.아무리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이우범이 더 많이 해줄수록 나는 점점 더 마음이 불편해졌다.하지만 나도 이우범 보고 지금 당장 포기하라고 할 수가 없었다.“우범 씨, 저기...”나는 잠깐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인호 씨와 자꾸 맞서지 마요. 특히 주먹다짐은 더 안 돼요.”이우범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입가가 어떤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무조건 상처가 나 있을 것이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질투가 섞인 말투로 물었다.“인호가 먼저 손찌검한 거예요. 지영 씨는 아직도 인호를 더 챙기는 거죠?”배인호를 더 챙기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이
더 보기

제462화 나는 배인호의 역린이다

내 말은 민설아의 아픈 점을 찌른 거나 마찬가지였다.사실 연인 사이에 그렇게 오래 헤어졌는데 감정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이까지 없다면 두 사람은 아마 이렇게 빨리 재결합하지 못했을 것이다.다른 걸 떠나서 배인호는 이런 부분에서는 책임감 넘쳤다.“아이는 그냥 하나의 중요한 이유일 뿐이에요. 나와 인호 씨 사이의 감정, 당신은 모를 거라고요.”민설아의 얼굴이 한층 창백해졌지만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지영 씨는 그때 인호 씨와 내가 몇 달밖에 안 만났고 시간도 길지 않은데 감정이 깊으면 얼마나 깊겠냐고 생각하겠죠. 근데 감정의 깊이는 시간이 아니라 느낌이에요. 이건 지영 씨가 더 잘 알 거 아니에요.”민설아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입가에 번진 웃음은 거의 넘쳐날 지경이었다.배인호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결국 나는 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만약 환생하지 않았다면 그냥 전생의 그 결말을 유지했을 것이다.그래서 나도 감정은 시간으로 좌우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내가 잘 알고 모르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민 선생님 본인이 둘 사이가 변하지 않았다고 믿으면 되는 거예요.”내 마음은 지금 고요한 물처럼 아무런 기복이 없었다. 나는 민설아가 한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었다.“네, 내가 인호 씨는 제일 잘 알죠.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되게 일편단심인 사람이에요.”민설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배인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털어놓았다.“그리고 인호 씨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마음이 여린 사람인 걸요. 지영 씨를 놓고 봐도 그때 엄청 미안해했어요.”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민설아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내뱉는 단어는 다 아는 단어였지만 조합하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민설아는 어리둥절해하는
더 보기

제463화 빈이의 생일 파티

민설아가 오늘 온 목적은 나와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그녀는 가방에서 정교하고 귀여운 작은 선물함을 꺼냈다. 위에는 하늘색 곰과 7살 생일을 축하한다는 영문 그림도 있었다.“다음 주 빈이 7살 생일이에요. 인호 씨와 같이 빈이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주려고 하는데 지영 씨도 와요.”이 말을 하는 민설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7살, 배인호와 결혼하고 5년, 이혼하고 또 2, 3년을 엎치락뒤치락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이미 7살이 되었다.“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참석은 됐어요. 선물함은 도로 가져가요.”나는 전혀 흥미가 나지 않았다.“그건 지영 씨가 알아서 하면 돼요.”민설아도 억지를 부리진 않았다. 머리를 정리하더니 가기 전에 몇 마디 더했다.“허지영 씨, 이미 당신을 아껴주는 남자가 있으면 다른 남자는 멀리해요. 앞으로 될수록 엮이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그럼 정말 고마울 텐데.”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직도 나를 연적으로 생각하고 큰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서란과 민설아가 이 정도로 견제하는지 모르겠다. 배인호와 결혼한 5년간 내가 생과부처럼 지낸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민설아가 가고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가슴이 답답한 것 같았다.지금 창밖은 해가 쨍쨍했다. 점심때라 하루 중 햇빛이 제일 강한 때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가 창밖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고는 배달을 불러 굶주린 배를 채우려 했다. 이우범은 점심에 로아와 승현이를 보러 간다고 했으니 내 점심까지 챙길 리가 없다.“형수님!”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얗고 포동포동한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이 선생님이 밥 가져다주라고 부탁하셨어요. 우리 병원 관계자 식당에서 사 온 건데 깨끗하고 건강해요. 조금 드셔보세요.”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배인호가 동료에게 부탁해서 나에게 밥을 가져다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더 보기

제464화 당신만 나한테서 멀어지면 돼요

배인호가 아무 표정 없이 꽃다발을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냄새를 킁킁 맡았다.나는 멈칫하다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렇게 꽃 든 거 본 게 우리 결혼할 때였는데, 그때 표정이 완전히 썩어 있었잖아요.”그날 씁쓸했던 내 기분은 나만 알고 있었다.배인호는 온몸으로 나에 대한 거부감과 역겨움을 티 냈다. 부케를 나에게 건네줄 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부케가 아니라 칼을 넘기는 것 같았다.그때 다른 사람은 다 나의 결혼을 기뻐했다. 정아와 내 부모님도 내가 짝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소원대로 배인호와 결혼할 수 있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내 마음도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갔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꽃을 든 배인호의 몸이 몇 초간 굳는 것 같았다.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는지 모르겠다.“갑자기 왜 이렇게 오래된 일을 꺼내는 거야?”배인호가 물었다.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가끔 기억 속의 화면들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나도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나는 배인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말을 돌렸다.“그 꽃 민설아 씨가 보낸 거예요.”민설아라는 이름을 들은 배인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눈빛에 언짢음이 묻어났다. 그도 당연히 민설아가 나를 찾아오는 걸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됐든 말이다.배인호는 이내 그 꽃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이 광경에 나도 깜짝 놀랐다.“싫으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왜 여기 놓아두고 그래.”꽃을 던진 배인호는 손을 털며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 꽃을 준 사람이 자기 현 여자 친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했다.그 현 여자 친구는 핍박을 못 이겨 헤어진 첫사랑이기도 했다.나는 쓰레기통에서 삐죽 튀어나온 꽃을 보고는 순간 배인호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랐다. 민설아가 조금만 늦게 갔으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속상해했을 것이다.“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요? 꽃 버리러 온 거예요?”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더 보기

제465화 이우범의 처벌

나는 말문이 막혔다.일 때문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를 떠나라고 하기도 그랬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이익이 걸려 있다.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노성민과도 관련되어 있다.“그럼 나는 어떡해요? 우지훈 씨가 퇴원해서 우리 가족의 일상생활까지 위협하면 어떡하냐고요?”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문제를 배인호에게 던져줬다.배인호의 대답은 오히려 매우 쉬워 보였다.“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면 되지.”나는 이 말이 너무 우스웠다.“미쳐서 빈이한테 손댈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빈이를 꺼내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배인호의 태도가 변했다. 말투도 날카로워졌다.“그러면 진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그럼, 나는요? 나도 애가 있는데!”내가 매섭게 쏘아붙였다.“넌 우범이 있잖아.”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제주를 떠날 생각도, 나를 멀리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내 안전은 이우범이 책임질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지금 내 기분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한 것만은 확실했다.배인호가 민설아와 빈이의 안전을 더 걱정하는 건 당연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배인호 때문에 나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너무 짜증이 났다.“인호 씨, 당신이랑 있으면 너무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거 같아요. 제발 좀 나한테서 멀어져요.”나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배인호를 내쫓았다.“이제 나가요.”배인호는 가지 않았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낮잠을 잘 생각에 침대로 가서 이불을 덮고 누웠다.하지만 나는 그림자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배인호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힌 채 몸을 숙이고는 두 손을 내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나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코앞까지 다가온 눈동자를 쳐다봤다.“인호 씨,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죠?”“지훈이 혹시 어디 만지지는 않았지?”배인호가 눈을 찡그렸다. 내겐 익숙한 표정이었다. 위험
더 보기

제466화 떠보다

“미안해요, 나는...”이우범은 멘붕한 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앉아서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내가 바로 그 손을 쳐냈다.전에 나와 이우범 다 누군가 약을 타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스킨십을 한 것 외에 우리 사이는 늘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이우범이 이런 행동을 보이면 배인호가 그러는 것보다 더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 내 마음속으로 이우범은 배인호보다 인성이 더 좋다고 여겼기에 이런 부분은 더 젠틀할 거로 생각한 것 같았다.배인호는 이미 짐승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터치하지 마요. 지금 당장 퇴원 수속 해줘요. 여기 있기 싫어요. 돌아갈래요.”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짜증스럽게 이우범에게 명령했다.“퇴원은 내일 해요. 오늘은 안돼.”이우범은 내 요구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내가 병원에서 며칠 더 몸조리하면서 영양제도 맞길 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필요 없었다. 나는 지금 마음의 타격이 건강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고 싶어요.”내가 거절했다.하지만 이우범은 오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막무가내로 말했다.“꿈 깨요. 내일 오후가 되기 전까지 여기서 잘 쉬어요. 간호사한테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할 거니까.”“미쳤어요?”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이우범인지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난 그냥 지영 씨 몸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예요. 전에 이미 잘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했고요. 말 좀 들어요.”이우범은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듣는 나는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우범은 이미 몸을 돌려 나갔다.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평소처럼 침착해 보이진 않았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그도 지금 나보다 만만치 않게 짜증이 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참아야 했다. 만약 둘이 더 입씨름하다간 점점 더 크게 싸울 것이다.나를 피하는 거라도 좋았다. 마침 나도
더 보기

제467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다

빈이는 나와 민설아의 관계가 좋지 않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말을 믿지 않아야 맞았다.근데 왠지 모르게 그는 멍한 표정이었다.“진짜예요? 마미가 미안하다고 했어요?”나는 멈칫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확신에 차서 머리를 끄덕였다.“그래. 너희 엄마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 너한테 직접 말하긴 힘들어하더라고. 알잖아. 너희 엄마랑 나 사이 별로 안 좋은 거. 그래서 내 앞에서는 숨기는 거 없이 바로 알려주더라고. 그러니까 아줌마한테 숨길 필요 없어.”빈이는 뭔가 사랑이 부족한 아이 같았다.그럴 리가, 사랑이 부족해도 아빠인 배인호의 사랑이 부족해야 맞았다. 민설아가 지금까지 혼자 업어 키웠는데 못 해줬을 리가 없다.빈이는 민설아가 미안하다고 했다는 말에 게임도 제쳐두고 기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더 있어요? 마미가 뭐라고 안 해요?”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민설아가 빈이에게 할 법한 말을 지어냈다. 당연히 전부 다 좋은 말이었다. 민설아가 뒤에서 아들에게 별로 잘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빈이는 민설아와 배인호의 아이였다. 지금 배씨 집안으로 돌아갔으니 배씨 집안의 유일한 작은 도련님이 되었다. 배씨 집안 미래 후계자이자 민설아가 배씨 집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티켓인데 왜 이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날 엄마가 너한테 혼자 아빠 쫓아가라고 했을 때 무서웠어?”그럴싸한 타이밍에 나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왔다.빈이도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고 머리를 끄덕였다.“무서웠어요.”내가 또 질문을 던졌다.“너희 엄마는 빈이가 노성민 아저씨에게 문자 보냈다고 하던데, 엄마 원망하지 않아? 아빠가 알게 되면 널 굉장히 싫어할 텐데?”나는 차근차근 대답을 유도했다.빈이는 민설아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배인호가 자기를 미워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마미 원망하지 않아요. 대디가 빈이를 그렇게 좋아하
더 보기

제468화 우울증

감정은 이 세상에서 제일 컨트롤하기 힘들다. 말하지 않아도 눈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이런 느낌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이우범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하지만 나도 그 힘든 과정을 다 견뎌왔고 지금 이런 감정 소모를 완전히 이겨낸 것 같다.한참 뒤 나는 이우범의 눈시울이 붉어진 게 보였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억울해 보였고 이해를 받지 못했다는 처절함도 느껴졌다. 눈물로 적셔진 속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나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이우범은 처음인 것 같았다.“우범 씨, 괜...찮은 거죠?”나는 얼른 티슈를 한 장 빼서 이우범의 눈가를 닦아주려 했지만 그가 나를 피했다.“괜찮아요. 계속 그런 마음인 것도 알고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도 포기하기 싫었어요. 지영 씨 빼고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됐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도시아가 되는 거겠죠.”이우범의 말은 앞부분은 괜찮았지만 뒷부분은 소름이 끼쳤다.나를 보는 이우범의 눈빛은 이미 안정을 되찾았고 차갑기까지 했다.나는 이우범이 나를 협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아는 이미 죽었다. 직접 선택한 건 맞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생명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우범에게 정말 진심으로 푹 빠져 있었다.이우범은 종래로 도시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하지 않았던 걸까?그렇다면 이우범은 정말 너무 극단적인 사람이다.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기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굴 것이다.“무슨 뜻이에요? 우범 씨, 너무 극단적으로 나오지 마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나도 흥분하기 시작했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고 있었잖아요. 내가 했던 일들도 거의 알고 있고, 아니에요?”이우범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근데 어떤 일은 내가 직접 경쟁하지 않는 이상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그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더 보기

제469화 다른 아이를 좋아하다

“왔어요?”노성민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했다.빈이는 나와 많이 친해졌다. 빈이는 먼저 “아줌마”라고 부르며 인사했다.하지만 빈이는 몰랐다. 나 때문에 민설아의 질책을 받을 거라는 걸 말이다.나는 빈이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엄마랑 아빠는?”“안에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이요.”빈이가 적극적으로 문을 열면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오늘은 빈이의 생일이라 방안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도우미들이 분주하게 돌아쳤고 배인호는 거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배건호는 옆에서 장난감 로봇을 만지작거렸는데 빈이에게 주려는 선물 같았다.나를 발견한 배건호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지영이 왔어?”이어 배건호는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유모차에서 로아를 안아 올렸다.“로아 공주도 같이 왔네? 진짜 볼 때마다 예뻐지는 거 같네?”저번에는 꽤 부자연스러웠는데 이번에는 꽤 자연스럽게 안았다. 말투에서 로아에 대한 아낌이 느껴졌다.내가 승현이가 아닌 로아를 데려온 것도 승현이가 점점 배인호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건호와 김미애가 또 너무 많은 걸 생각하는 게 싫었다.“어머, 지영이 왔구나.”김미애가 이층에서 나타나더니 다급하게 걸어 내려왔다. 안색은 정상이었다.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약간은 부어오른 눈시울이 울었음을 말해주었다.“아주머니.”나는 얌전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민설아는 어디 갔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중요한 날에 민설아가 자리에 없는 게 이상했다.배인호가 내 시선을 발견했지만,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병원에 일이 좀 있어서 갔어. 곧 올 거야.”내가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민설아였다. 김미애의 상황만 아니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왔으니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 나는 유모차 아래에 놓인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내 빈이에게 건네줬다.“빈아, 생일 축하해.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뜯어봐.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네?”빈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게임을 하는
더 보기

제470화 김미애의 아픔

빈이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분위기가 순간 미묘해졌다.배건호와 김미애는 서로 로아를 안으려고 했다. 마치 로아를 더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도 그저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다는 걸 말이다.“빈이야, 무슨 소리야?”민설아가 몸을 반쯤 수그린 채 두 손으로 빈이의 어깨를 잡고는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는 당연히 너를 더 좋아하지. 유일한 손주인데 어떻게 다른 애를 더 좋아하겠어. 아저씨, 아주머니, 맞죠?”민설아는 문제를 배건호와 김미애에게 던져줬다.손님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들 강 건너 불구경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쉽게 티 내지는 못했다.배건호와 김미애는 로아와 빈이를 번갈아 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집 아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 그랬다. 게다가 다른 집 아이를 더 좋아할 리가 없었다. 좋아한다 해도 그냥 똑같게 좋아할 뿐이다. 빈이가 첫 손주인데 아끼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 빈아. 할아버지 할머니는 당연히 너를 제일 좋아하지.”김미애는 아쉬운 표정으로 로아를 나에게 돌려줬다. 배건호도 더 안기 민망한 상황이었다.그러더니 김미애는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배건호와 빈이를 달래주러 갔다.빈이는 입을 삐쭉 내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건호와 김미애가 자기를 달래는 걸 지켜봤다. 이 부분에서 그들이 얼마나 빈이를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손님 중 그 누구도 배건호와 김미애 앞에서 성질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인내심 있게 달랠 수 있는 사람은 빈이 밖에 없었다.로아는 까맣고 맑은 눈동자를 뜬 채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직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작은 손으로 내 옷깃을 잡더니 억울한 듯 옹알댔다. 입을 오물거리는 걸 봐서는 배고픈 것 같았다.지금 모든 사람의 시선은 빈이에게로 쏠려 있었다. 나는 로아를 옆에 눕혀두고 분유를 타기 시작했다.이때 노성민이 소리도 내지 않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복
더 보기
이전
1
...
4546474849
...
70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