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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당신만 나한테서 멀어지면 돼요

배인호가 아무 표정 없이 꽃다발을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냄새를 킁킁 맡았다.

나는 멈칫하다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꽃 든 거 본 게 우리 결혼할 때였는데, 그때 표정이 완전히 썩어 있었잖아요.”

그날 씁쓸했던 내 기분은 나만 알고 있었다.

배인호는 온몸으로 나에 대한 거부감과 역겨움을 티 냈다. 부케를 나에게 건네줄 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부케가 아니라 칼을 넘기는 것 같았다.

그때 다른 사람은 다 나의 결혼을 기뻐했다. 정아와 내 부모님도 내가 짝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소원대로 배인호와 결혼할 수 있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내 마음도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갔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

꽃을 든 배인호의 몸이 몇 초간 굳는 것 같았다.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왜 이렇게 오래된 일을 꺼내는 거야?”

배인호가 물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가끔 기억 속의 화면들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나도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배인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말을 돌렸다.

“그 꽃 민설아 씨가 보낸 거예요.”

민설아라는 이름을 들은 배인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눈빛에 언짢음이 묻어났다. 그도 당연히 민설아가 나를 찾아오는 걸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됐든 말이다.

배인호는 이내 그 꽃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이 광경에 나도 깜짝 놀랐다.

“싫으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왜 여기 놓아두고 그래.”

꽃을 던진 배인호는 손을 털며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 꽃을 준 사람이 자기 현 여자 친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했다.

그 현 여자 친구는 핍박을 못 이겨 헤어진 첫사랑이기도 했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삐죽 튀어나온 꽃을 보고는 순간 배인호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랐다. 민설아가 조금만 늦게 갔으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속상해했을 것이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요? 꽃 버리러 온 거예요?”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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