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Chapter 281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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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큰 망신을 당하다

서란의 반한 듯한 눈빛에 거짓이 없었다.솔직히 말하면 나도 배인호가 생긴 건 흠 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배인호가 나타나자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유명인들이었지만 상위 클래스도 등급은 나뉜다.나는 시선을 거두고 가져온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정상회의 개막을 알리는 연설은 내가 맡았다. 주요하게는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었다. 진작부터 준비를 해두었고 연설문도 여러 번 수정했다.회사를 관리한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겁나진 않았다. 오히려 도전하고 싶었고 정상회의에서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협력 파트너도 따라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배인호는 나와 좀 떨어진 자리 잡고 있었기에 나도 마음 놓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가끔 나에게 머무른다는 걸 나 자신도 느꼈다.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와 배인호를 번갈아 보며 입이 근질근질해 보였다.이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배인호가 보낸 메시지였다.「어제 회사에서 야근하고 회사에서 잤어. 그래서 집에 안 들어간 거야.」나는 눈길을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앉은 배인호를 쳐다봤다. 그는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오만함이 느껴졌고 누가 봐도 태생이 리더 같았다.나는 답장하지 않았고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척했다.일 분이나 지났을까, 배인호의 눈빛이 다시 느껴졌다. 약간 언짢은 듯한 눈빛이었다.서란도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내 핸드폰을 보다가 머리를 돌려 배인호를 봤다.나는 배인호의 시선을 피해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기선우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어. 4,000만 원 주면 증거 넘겨주지.”이상한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나는 깜짝 놀라 바로 되물었다.“너 지금 어디야?”“어딘지는 묻지 마. 옆에 사람 많지? 너무 시끄럽네? 다음에 전화하지.”상대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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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그를 장난 거리로 삼다

배인호의 말은 거의 상황의 마침표를 찍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이미 되돌릴 여지가 없었다.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서울시에서 내로라하는 기업가들인데 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했으니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미선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평소에 귀티 나고 우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철들래”하는 표정으로 서란을 쳐다보고 있었다.사회자가 작은 목소리로 서란에게 말했다.“서란 씨, 그럼,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네...”서란이 머리를 숙이고는 연설문을 테이블 위에 버린 채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왔다.나는 그 연설문을 한번 보더니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구겨서 던져버렸다. 서란이 아까 멈춘 부분에서 다시 연설을 이어갔다.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서란의 행동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긴장이 풀리니 사유도 원활해졌고 말하는 말투도 유쾌하면서 힘이 있었다.내 연설은 약 10분간 지속되었고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나는 내가 오늘 꽤 선전했음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서란은 처지가 딱했다. 서란은 자리로 돌아가서부터 정상회의가 끝날 때까지 거의 고개를 들지 않았고 앞에 놓인 테이블만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허 사장님, 잠깐만요.”행사장의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갔을 때 하미선이 나를 불러세웠다. 하미선은 서란을 내 앞으로 데려오더니 말했다.“오늘 일은 라니가 잘못했네요. 그렇게 연설문을 가져가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나를 보는 서란의 눈빛에서 나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나는 차갑게 웃고는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자리를 떠났다.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신비한 전화번호를 조사하라고 시켰다. 누가 나한테 전화를 한 건지 알면 경찰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상대가 그 번호로 다시 전화하면 모를까 그다음은 그저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청담동으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배인호가 던진 그 반지가 떠올랐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누군가 주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혼자 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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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밤에 시끄럽게

내가 강아지를 너무 챙기자, 배인호의 말에서 질투가 새어 나왔다.“너는 나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강아지는 인류의 좋은 친구라고 했어요.”나는 머리도 들지 않고 강아지에게 물었다.“맞지? 호니야?”티베탄 마스티프가 내 품에서 호응이라도 하듯 짖어댔다. 마치 새로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말이다.배인호의 표정은 계속 어두웠다. 티베탄 마스티프는 그를 보면 목을 움츠리며 무서워했다. 역시 이런 저승사자 같은 사람은 작고 귀여운 동물들도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사장님, 아가씨, 저녁 식사 준비됐습니다.”“호니야, 밥 먹자.”나는 호니를 데리고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원래는 데리고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그래도 사람이랑은 다른지라 우유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호니를 옆 의자에 놓아두었다. 그 자리는 배인호가 평소에 앉던 자리였다.자신의 자리를 뺏긴 걸 발견한 배인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호니는 그를 향해 착해 보이게 두 번 짖었지만,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끼고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나는 밥을 먹으면서 반려견에 대한 지식을 검색했다. 아이를 낳을 가망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강아지가 생기자 이렇게 작고 귀여운 생명을 자식처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자료를 검색하는데 배인호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우지훈이 걸어온 전화 같았다.두 사람의 대화를 대충 들어보니 우지훈이 배 씨 그룹에 낮지 않은 직급으로 입사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나는 정아와 토론했던 그 음모론이 떠올라 우지훈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지훈을 조금 의심하고 있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그럼, 새해 지나고 내년에 절차 밟아.”배인호는 우지훈과 토론을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대뜸 나에게 물었다.“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우지훈이 당신 회사로 출근하기로 했어요?”나는 머리를 숙이고 밥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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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언행 불일치

나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 자신이 약간은 변태 같아 보였다.이때 배인호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어제 핸드폰을 화장대에 그대로 던져놓았기에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힐끔 보니 트러블메이커라고 적혀 있었다.냥이가 걸어온 전화니 나는 더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못 들은 척했다.냥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문자를 보내왔다.「왜 전화 안 받아요? 돼지처럼 늦잠 자는 건가?」알림창에 알림만 떴을 뿐인데 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나는 조금 켕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예 핸드폰을 뒤집어 놓으려고 했다.냥이가 문자를 한 통 더 보내왔다.「어제는 고마웠어요. 아니면 아빠가 나 죽게 욕했을 텐데. 요즘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이것저것 단속하려고 하네요.」어젯밤 배인호가 잠깐 나갔다 온 게 냥이때문이었다. 평소에 냥이를 귀찮아하는 것 같아도 행동은 성실했다. 진짜로 냥이를 무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나는 핸드폰을 화장대에 엎어놓은 채 더 이상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내가 집을 나설 때까지 배인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나도 그를 부르진 않았다. 이 기사님을 불러 민정이네로 태워다 달라고 했다.내가 도착했을 땐 정아와 애들은 이미 와 있었다. 노성민과 박준도 보였다.나를 보자 노성민이 목을 움츠리고 얌전하게 세희 뒤에 숨어 있었다. 며칠 전 배인호한테 일러바친 것도 아직 따지지 않았다.“지영아, 왔어? 와서 디저트 좀 먹어.”민정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장유성도 박준, 이모건과 대화하다가 나를 보더니 온화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는 정아와 민정, 세희와 같이 앉아 수다를 떨었다.나는 내가 청담동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셋 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아가 물었다.“진짜 배인호랑 다시 시작해 보려고?”“서로 필요한 것만 갖는 거지.”나는 디저트를 한 조각 들어 베어 물고는 태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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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사람을 쫓아내다

기선혜는 금방 기차역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기선우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였다. 집에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이번에 같이 오지는 않았다고 한다.민정이네 집에서 역까지 반 시간 넘게 걸렸다. 기선혜를 본 나는 멈칫했다. 기선우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지만, 거기에 여자의 부드러운 여성미가 더해졌다.기선혜는 기선우보다 나이가 꽤 많았다. 나보다도 연상이었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었고 눈시울이 부어 있었다. 아마도 오는 내내 운 것 같았다.“선혜 언니, 허지영이라고 합니다. 선우랑은 친구예요.”나는 이 기사님더러 기선혜 손에 들린 몇 안 되는 짐을 들어주라고 하고는 자기소개를 했다.“지영 씨,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번거롭겠지만 잘 부탁해요.”기선혜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네, 선우한테 누나면 저한테도 언니예요.”내 기분도 슬프기 그지없었다. 죄책감까지 들었다. 나는 간접적으로 기선우를 해친 거나 다름없었다.기선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 선우한테 이런 친구가 있었다니, 이것도 선우 복이라면 복이죠.”나는 들을수록 마음이 아파졌고 죄책감도 점점 더 거세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갑시다. 먼저 제 쪽으로 가요. 먼저 제 쪽에서 지내다가 선우 보러 가요.”기선혜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고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그래요.”이 기사님은 나와 기선혜를 청담동으로 데려다줬다. 원래는 기선혜를 내가 살던 아파트로 데려다주려 했지만 나한테 물어볼 것도 있어 보였고 말할 사람도 필요할 것 같아서 아예 청담동으로 데려왔다.하지만 오늘 배인호도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기선혜를 데리고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구야?”“선우 누나예요. 여기서 며칠 지낼 거예요.”나는 슬리퍼를 꺼내 기선혜에게 건네주었다. 기선혜는 난감한 눈빛으로 배인호를 힐끔 쳐다보더니 미안한 듯한 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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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올라와 앉아

“선혜 언니 기선우 누나예요. 이미 결혼해서 애도 있어요. 그냥 친척이라고 생각해요.”나는 도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말은 쉽게 하네.”배인호가 콧방귀를 끼더니 말했다.“이렇게 많은 집을 놔두고 왜 하필 여기로 데려온 거야?”나는 배인호를 흘겨봤다.“챙겨주기 편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무슨 문제 있어요?”배인호가 무표정으로 말했다.“있어. 이미 결혼한 여자인데 챙겨줄 게 뭐가 있다고, 진짜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야.”“인호 씨, 동정심 좀 가지면 안 돼요?”내가 언성을 높였다.“다른 데로 배정하라는 게 동정심 없는 거야?”배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진짜 나 나쁜 사람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이 일은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한 건 맞았다. 나는 기선혜만 잘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지 배인호가 불편한 건 아닐지는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도저가 이때 울기 시작했다. 배인호는 도저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울지마.”나는 배인호의 손을 찰싹 쳐냈다.“동물 학대하는 거예요?”배인호: “...”동물의 귀를 살짝 당겼다고 동물 학대라니, 어이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틈이 보이지 않자, 배인호는 얼굴을 굳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배인호가 서재로 간다면 그 기회를 봐서 비밀번호를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안면인식으로 들어간다면 따라 들어가서 내부 상황을 살펴볼 심산이었다.하여튼 지금 배인호 앞에서 부끄러울 건 없었다. 이미 서로 간의 거래로 토론이 된 상황이었다.“왜 따라와?”서재에 도착하자 배인호가 나를 돌아봤다.“서재에 책 있어요?”내가 물었다.“...”배인호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허지영, 전에 내 서재 들어가 본 적 없어?”당연히 들어가 본 적은 있지만 회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 신경은 온통 배인호에게로 향했고 서재에 뭐가 있었는지 잘 보지 못했다.내가 멈칫하는데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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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그냥 친구야

나는 배인호의 비틀거리며 배인호의 다리에 앉았다. 머릿속은 아까 본 내용과 지금 이 순간 배인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복잡했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나무처럼 굳어 있었다.배인호는 숨이 거칠어졌고 익숙하게 손을 내 옷 안으로 집어넣고는 이곳저곳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가슴을 여기저기 만지는 배인호의 손을 잡았다. 옷을 사이에 두고서도 나는 그 손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인호 씨, 나 먼저 샤워할게요.”나는 시간을 끌고 싶었다. 시간을 끌면 이 일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하고 나서 씻어도 돼.”배인호는 손이 나에게 잡혔지만 무언가 모를 힘으로 나를 뿌리치고 있었다. 그냥 너무 큰 힘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이미 너무 노골적이었다. 몸을 바칠 때 어떤 각오였는지 때로는 선명하다가 때로는 흐릿해졌다. 어떤 때는 자기도 모르게 배인호를 밀어내려고 했다.별장 안은 너무나도 따듯했다. 하여 매번 돌아오면 나는 외투를 벗고 얇은 옷만 하나 걸치고 있었다. 이는 오히려 배인호가 위아래로 휩쓸 수 있게 도움이 되었다.“안, 안 돼요. 여기서는 좀 그래요...”내가 배인호를 밀어냈다.“여기가 뭐가 어때서? 넌 그냥 날 거절할 이유를 찾는 것뿐이야.”배인호가 나를 놓아주더니 목소리도 차가워졌다.“근데 소용없어. 내 옆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면 더 이상 네 마음대로는 안돼.”말이 끝나기 바쁘게 배인호는 나를 안아 책상 위에 앉혔다. 아까 미처 정리하지 못한 그 자료도 지금은 내 밑에 깔려있다.서재의 불은 밝았고 나와 배인호가 안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었다.방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유혹적으로 다가왔다.내가 다시 서재에서 나올 때는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만약 어느 날 내가 배인호 위에 군림하게 된다면 나는 그를 에로영화를 잘 찍는 이웃 섬나라에 보내 그 특기를 잘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이다.그전에 나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었다.“아가씨, 괜찮은 거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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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두려워하다

뉴스를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배인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자지 않았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바디워시 냄새가 풍겨왔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었다.나는 핸드폰을 베개 아래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잠 잘 오라고 자기 전에 보는 거예요. 아까는 잠이 잘 안 왔거든요.”배인호가 다른 쪽으로 침대에 올라와 눕더니 나를 껴안았다.“무슨 생각하는데 잠이 안 와?”이우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배인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아빠랑 기선우 생각도 하고 엄마는 언제 깨어날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나는 그럴싸한 일을 두 가지 둘러대며 배인호의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다 좋아질 거야.”배인호는 그래도 아직 양심은 남아 있는지 내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네.”내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나는 배인호 품에서 서서히 잠에 들었다.기선혜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이튿날 아침부터 나는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떴다. 나를 안은 배인호의 품은 여전히 뜨거웠다. 내가 깬 걸 느끼고 그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 빨리 깼어?”“선혜 언니 아래층으로 내려간 거 같아서요.”내가 대답했다.그러자 배인호가 대뜸 화를 내며 말했다.“내가 내보내라고 했지. 이제 불편한 거 알겠지?”“오늘 회사 가는 거 아니에요? 나도 마침 빨리 일어나서 출근하려고 했어요.”나는 배인호를 밀치며 그의 품에서 나와 옷을 입었다.배인호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빨리 회사 가서 뭐 하게?”너무나도 뻔한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옷을 입고는 간단하게 씻고 화장했다. 화장하는데 배인호가 침대에서 일어나 벌거벗은 채로 드레스룸으로 향했고 옷을 입고는 다시 나왔다. 섹시한 나체에서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도련님으로 탈바꿈했다.나는 배인호보다 먼저 일어났지만, 그는 나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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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미친 거 아니에요?

“선혜 언니, 됐어요. 이제 가요. 밖에 추워요.”나는 그런 기선혜를 보며 입을 열었다.하미선과 서란이 아무리 못살게 굴면서 협력하자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기선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차에 올랐다. 나는 하미선과 서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나는 차에서 물었다.“선혜 언니, 선우 서란이랑 사귈 때 몇 번이나 만나봤어요?”“몇 번 돼요.”기선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서란이 선우를 따라서 우리 집에 온 적 있어요.”‘그랬구나. 그때는 서로 사이가 좋긴 좋았나 보네. 여자가 남자 집에 인사하러 갈 정도까지 간 거 보면.’이때 기선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서란을 제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그때 선우가... 아이고, 됐네요.”기선혜가 말하다가 말자 나는 오히려 구미가 당겼다.‘선혜 언니가 서란을 싫어했다고? 의외인데?’그때의 서란은 청순하고 얌전한 성격에 명문대 재학생이기에 기선우와 비교해도 나무랄 데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기선혜는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고 나도 더 캐묻지 않았다.집에 도착해 보니 배인호는 아직 돌아오기 전이었다. 나는 도우미한테 먼저 저녁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나는 기선혜와 거실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녀는 긴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소매 길이가 맞춤했다. 하지만 팔을 내밀 때면 손목 부분이 드러났다. 찻잔을 가지러 손을 내밀 때마다 손목 조금 위쪽에 자리 잡은 멍이 보였다.‘이상하네, 이렇게 세게 넘어졌다고?’차를 마시던 기선혜가 갑자기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아가씨, 혹시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서...”“선혜 언니, 말해 봐요.”나는 기선혜가 나에게 속에 담았던 말을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때 배인호가 돌아왔고 들어오자마자 훌쩍거리는 기선혜를 보고는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더니 물을 따라 마셨다.기선혜는 집으로 돌아온 배인호를 보자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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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그를 설득하다

나는 졸리면서도 짜증이 났지만, 몸이 둥둥 뜨는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귀찮다는 듯 배인호를 살짝 밀칠 뿐이었다.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결국 또 잠을 설쳤다. 겨우 눈을 떠보니 창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잤다. 배인호도 오늘 회사로 가지 않았고 나와 늦잠을 잤다.“내일 우범이 약혼하는 데 갈 거야?”배인호가 실눈을 뜨고는 자는 듯 마는 듯 나른한 말투로 물었다.“몰라요.”나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사실은 가지 않을 것이다. 도시아가 문자까지 보내온 이상 가서 기분 망칠 필요는 없었다.배인호는 손가락을 내 머리카락에 끼워 넣고는 쓰다듬었다.“가지 마. 갔는데 갑자기 널 보고 파혼하고 싶어지면 어떡해.”나는 눈을 제대로 뜨고 바깥 날씨를 살폈다. 오늘 날씨는 괜찮아 보였다.배인호는 내가 대답하지 않자 언짢은 듯 손을 내밀어 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이런 유치한 행동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 “가든 말든 뭔 상관이에요? 그러는 당신은 안 갈 거예요?”배인호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나는 가야지. 나는 너랑 달라.”배인호와 이우범은 오래된 친구다. 비록 지금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약혼과도 같은 중요한 행사는 예의를 차려야 했다. 나와 배인호가 결혼할 당시에 이우범도 왔으니 말이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축의금을 같이 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람은 가지 않아도 축의금은 받을 수 있게 말이다.생각에 잠겨 있는데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허지영 씨, 전에 했던 말 취소할게요. 내일 약혼식 와요. 이제 가망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도시아도 참 재밌는 여자였다. 이랬다저랬다 망설이며 도통 결정을 잘 못 내렸다.나: 「시간되면 갈게요.」도시아는 답장하지 않았다. 배인호는 내가 보낸 답장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시간 되면 간다니, 안돼!”“우범 씨 약혼하는데 내가 불참해 봐요. 그럼 아직도 포기 못 했다고 오해할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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