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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그를 장난 거리로 삼다

배인호의 말은 거의 상황의 마침표를 찍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이미 되돌릴 여지가 없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서울시에서 내로라하는 기업가들인데 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했으니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미선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평소에 귀티 나고 우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철들래”하는 표정으로 서란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회자가 작은 목소리로 서란에게 말했다.

“서란 씨, 그럼,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네...”

서란이 머리를 숙이고는 연설문을 테이블 위에 버린 채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 연설문을 한번 보더니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구겨서 던져버렸다. 서란이 아까 멈춘 부분에서 다시 연설을 이어갔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서란의 행동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긴장이 풀리니 사유도 원활해졌고 말하는 말투도 유쾌하면서 힘이 있었다.

내 연설은 약 10분간 지속되었고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내가 오늘 꽤 선전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란은 처지가 딱했다. 서란은 자리로 돌아가서부터 정상회의가 끝날 때까지 거의 고개를 들지 않았고 앞에 놓인 테이블만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허 사장님, 잠깐만요.”

행사장의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갔을 때 하미선이 나를 불러세웠다. 하미선은 서란을 내 앞으로 데려오더니 말했다.

“오늘 일은 라니가 잘못했네요. 그렇게 연설문을 가져가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나를 보는 서란의 눈빛에서 나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웃고는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자리를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신비한 전화번호를 조사하라고 시켰다. 누가 나한테 전화를 한 건지 알면 경찰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상대가 그 번호로 다시 전화하면 모를까 그다음은 그저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청담동으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배인호가 던진 그 반지가 떠올랐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누군가 주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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