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601 - 챕터 610

1133 챕터

제601화

“떠난다고 해도 넌 강씨 가문 예비 며느리 신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지켜야 할 건 우리의 약혼이 아니라, 남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이야. 우린 정말 안 맞는구나.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장소월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약혼반지 잃어버렸어. 돈은 내가 천천히 갚을게.”“미안... 나 이제 가야겠어.”“안돼. 소월아!”강영수는 한 발 내디딘 순간, 두 다리에서 저릿하게 전해져오는 고통 때문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도련님...”“영수야.”쓰러진 강영수의 모습을 목격한 김남주도 걸어 나왔다.“아빠!”모든 사람들이 놀라 강영수의 주위를 에워쌌지만 장소월만은 단호히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뗐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장소월의 영원한 안녕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하지만 이제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장소월은 안중에도 없었다.장소월은 곧바로 파리행 길에 올랐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한편 교통사고를 당했던 백윤서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다만 다리에 경미한 골절이 생겨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아침 아홉 시, 전연우가 장소월이 남원별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검은색 아우디 차량이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전연우는 한 번, 또 한 번 연이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수신 거부였다가 마지막엔 핸드폰 전원이 꺼져있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전연우가 직원에게 물었다.“파리로 가는 제일 빠른 비행기가 몇 시죠?”“2분 전 비행기 한 대가 이미 떠났기 때문에 오전 비행기는 이제 없습니다. 가장 빠른 비행기는 오후 한 시 반에 출발합니다.”만약 강영수와 함께 하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녀와 전연우의 사이를 개변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해보면 된다.장소월의 출국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무도 그녀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방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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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호숫가 조각상 아래, 곧 졸업할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소월아, 너 이 그림 콩쿠르에 나가면 분명 1등 할 거야.”가을바람이 어깨 위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렸고 눈 부신 햇살이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백조처럼 매끈히 뻗은 목에 걸려있는 은색 목걸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장소월이 붓을 들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고마워.”4년이 지나 22살이 된 장소월은 18세 소녀의 앳됨을 벗고 어느덧 성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번 미소를 지을 때마다 여자의 향기가 듬뿍 새어 나왔다.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나 올해 졸업 작품 완성 못 할 것 같아. 나한테 실망감까지 들어. 허 교수님은 너 같은 학생이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 나와는 달리 이렇게나 많은 상을 땄으니...”장소월이 풀이 죽어있는 그녀를 북돋아 주었다.“새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할 수 있을 거야.”오후 학교에 돌아온 뒤, 장소월은 졸업 작품으로 제출할 가장 만족스러운 다섯 장의 그림을 꺼냈다. 좋은 작품은 상을 받게 된다.1등은 두둑한 상금뿐만 아니라 괜찮은 직장까지 얻는다고 한다.졸업식이 끝나고 난 뒤, 급히 직장을 찾는 건보단 커피숍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했다.앞치마를 입고 있을 때, 함께 일하던 리사가 신문을 들고 흥분한 얼굴로 장소월을 향해 달려왔다. 손님으로부터 많은 팁을 받았을 때에만 보이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소월아, 이 남자 봐. 파리 글로벌 잡지에 처음 이름을 올린 한국 남자야.”장소월은 리사가 소문난 얼빠라는 걸 잘 알고 있다.대체 얼마나 잘 생겼길래 저토록 흥분해있는 걸까?장소월은 오랫동안 국내 소식을 찾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식은 모두 다른 사람의 입에서 전해 들었었다.“그래? 축하한다고 전해줘.”“소월아, 너 너무 냉정해. 얼굴 한 번만 보면 너도 반할 거야.”“리사야, 남자한테 기대선 안 돼. 이제 그만 보고 일해.”장소월이 머리를 묶으며 쟁반을 들었다. 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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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세계 무수한 기업들이 파산하자, 전연우는 대량의 해외 회사를 매입했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그 행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각종 신문과 TV에 보도되었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전연우는 세상의 관심을 받는 인물로 떠올랐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장소월은 그 모든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전연우가 매입한 곧 파산할 기업들은 향후 5년 내 전 세계 500위 안에 들어갈 회사들이다.전연우의 행동은 처음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연우가 부자 랭킹 순위권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그가 그리 간단한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의 이름은 악마의 주문과도 같이 장소월의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고 줄곧 맴돌았다.아무리 먼 곳으로 도망쳐도 그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몇 년간 그의 변화에 대해 장소월은 이런 추측을 했었다.전생의 전연우가..혹시 그도 돌아온 게 아닐까.만약 정말 그렇다면...가을바람이 바짓자락을 스치자 그녀는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기를 간절히 바랐다.오후 직원 교육 시간, 카페 매니저가 말했다.“다음 주 저녁 8시, 크리스탈호 크루즈에서 큰 파티가 열려요. 본사에 일손이 부족해 소월, 리사... 5명이 가서 도와야겠어요. 일당은 평소의 3배, 그리고 만족할만한 포상금도 챙겨줄게요. 운이 좋으면 손님이 준 팁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장소월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한데 저 다음 주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여는 전시회에 가봐야 해서요.”매니저는 장소월의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저명한 화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팬이기도 했기에 장소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나자 리사가 조금 실망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너 없으면 나 분명 외로울 거야.”장소월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전시회가 끝나고 시간 되면 나도 곧바로 가서 도울게.”허 교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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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12시엔 인시윤 아가씨와의 점심 식사가 예약되어 있습니다.”“저녁 6시, 자선 파티에 참석하셔야 합니다.”“5일 뒤엔 중요한 파티에 참석하러 파리에 가셔야 합니다. 초청장은 이미 대표님의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습니다.”99층에 도착하자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기성은은 옆쪽 비서 사무실로 들어갔고 송시아는 전연우와 함께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4년 동안 송시아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 남자를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반면 강씨 집안은 천천히 쇠퇴했고 이제 전연우가 서울의 지배자가 되었다.송시아는 커피를 내린 뒤 책상을 돌아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책상 아래 버튼을 누르자 대표 사무실 문이 닫혔다.송시아는 곧바로 남자의 다리에 앉았다.“대표님이 원하시는 거 제가 모두 이루어 드렸어요. 이제 몇 년이 지났으니 저한테 약속했던 거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송시아의 손이 그의 건실한 가슴팍을 훑어내렸다.그에 반해 전연우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요즘 일이 덜 바쁜가 보네.”음산한 눈빛에 못마땅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기분을 선명히 드러내진 않았다. 또한 그녀를 밀어내지도 않았다.“성세 그룹은 이제 안정적인 상승 단계에 들어섰어요. 제가 말한 대로만 실행하면 대표님이 얻게 되는 건 훨씬 더 많을 거예요.”“4년이 지났는데, 설마 아직도 절 못 믿는 거예요? 오직 저만이... 대표님과 어울릴만한 사람이에요.”그 점만큼은 전연우도 부인할 수 없었다.그가 현재 이 위치에 오른 데엔 송시아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녀는 처음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그녀는 마치 미리 완벽한 계획을 짜놓은 것처럼 전연우가 원하는 것을 전부 실현해 주었다.“송 비서가 출중한 능력으로 날 이곳까지 올려준 게 고작 내 와이프 자리가 탐나서였어? 너한테 다른 속셈이 없다는 거 내가 믿을 것 같아?”전연우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 빨간 입술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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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남자의 눈동자는 뚜렷하지도 않은 영상 속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전연우는 십여 초 뒤에야 시선을 거두고 아이패드를 넘겨주며 말했다.“블레어 씨한테 얘기해. 파리 파티에 제시간에 도착할 거라고.”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기성은이 나가자 전연우는 송시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왜? 장소월을 데려오는 게 싫어?”“대표님은 아직도 장소월을 놓지 못하네요!”송시아가 씩씩거리며 두 손을 가슴에 교차했다.“제가 했던 말 잊었어요? 저번생에서 장소월은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았어요. 당시 우리 사이엔 아이도 있었다고요! 장소월만 없었다면 우린 절대 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전연우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동자를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송시아가 전생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반신반의하곤 했다.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고, 심지어 전생의 기억까지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이다.하지만 송시아가 해온 모든 일들은 전연우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했던 모든 말들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전연우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네가 다시 태어난 게 사실이라면 말해봐. 나 전생에서 어떻게 죽었어?”그 질문에 송시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어 슬픔이 담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창가로 걸어갔다.“독 때문이에요. 대표님은 55세까지 살았어요. 우리가 결혼한 뒤, 장소월은 대표님에게 독을 먹였고, 몇 년 후 당신은 떠났어요. 그 후 저 혼자 아이를 키웠죠.”“아마 하느님께서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절 가엾이 여겨 다시 대표님 곁으로 돌려 보내준 걸 거예요.”“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죽을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사람이 바로 대표님이었잖아요.”“연우 씨, 아직 전생의 기억이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옆에서 천천히 기억을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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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이제 전연우도 답을 찾았다.하지만 송시아가 말한 것과, 4년 전 장소월이 말했던 내용이 다르다.장소월의 입에서 송시아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조사하지 않았을 것이다.장소월은 전생에서 송시아와 아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아이는?그 아이는... 그와 장소월의 아이다!전연우는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그는 송시아보다 장소월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성세 그룹은 이미 서울의 상업계 절반을 차지했다. 지난 몇 년 사이 회사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처음의 수백 배로 성장해 각 분야에 수많은 자회사를 만들었다.증권, 금융,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의료 등...점심 12시 약속에 맞춰 전연우는 인시윤을 데리러 갔다. 오늘은 평소 잘 타지 않는 4년 전에 사용했던 아우디를 탔다.차 안 후시경엔 은색 손목시계가 걸려있었다. 손목시계엔 장소월이 고등학교 시절 검은색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사진이 해져있는 걸 보니 오랫동안 이곳에 보관해둔 것 같았다.신호등 앞에 차를 세운 뒤, 남자는 깊은 눈동자로 사진 속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어루만졌다.4년...장소월, 이제 돌아올 때가 됐어!...쿵.장소월이 조심하지 않아 화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어 그녀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다시 주웠다.허태현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무슨 일이야? 요즘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장소월이 조심스레 화판 위 얼룩을 지우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선생님. 어젯밤 잘 자지 못해 정신이 흐릿한 겁니다.”“그럼 얼른 돌아가서 쉬어. 남은 일은 네 선배님들이 완성하면 돼.”“괜찮습니다. 사부님... 아니, 선생님. 저 할 수 있어요.”작은 실수였음에도 많이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에 허태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그녀를 엄격하게 대하지도 않는데 말이다.“괜찮으니까 가서 쉬라면 쉬어. 이런 작은 일도 제대로 못 하는데 내일 전시회 일을 어떻게 너한테 맡기겠어.”장소월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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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장소월은 내일 전시회에 가기 위해 짐을 싸러 20평짜리 2인실 숙소에 들어갔다. 경제 상황을 고려해 친구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리사는 내일 파티 준비로 바빠 늦은 시간에야 돌아온다.점심을 대충 해결한 뒤 집 안 청소를 시작해 저녁 6시까지 바삐 돌아쳤다. 그녀는 힘든 일이 생기면 몸을 혹사시켜 잡생각을 떨쳐버리는 습관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 거실이 차근차근 말끔히 정리되었다.6시, 장소월은 슈퍼에 가 저녁 식사 재료를 준비했다.그녀는 반찬 몇 개를 만들어 먹은 뒤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리사가 그녀가 만든 요리를 좋아하고 장소월도 야식을 먹는 걸 즐기니 리사가 돌아온 뒤 같이 먹으면 좋을 것이다.어느덧 하루가 지나가고 창밖에 어둠이 내려앉았다.그녀는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뒤 수면제 두 알을 삼키고 잠에 들었다.그때, 개인 전용 비행기 안.기성은은 프랑스에서 전해온 소식을 받자 곧바로 전연우에게 보고했다.“프랑스 쪽에 의뢰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사한 결과 영상 속 사람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날 확실히 예술 아카데미 사람들이 룩셈부르크 공원에 왔었다고 합니다. 이건 파리 예술 아카데미에서 보내온 올해 졸업생 명단입니다. 그중 아가씨의 이름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아가씨는 4년 동안의 학비를 모두 장학금으로 해결하셨다고 합니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요.”“이건 아가씨의 파리 주소와 연락처예요.”전연우는 기성은에게서 장소월과 관련된 자료를 받았다. 모두 그녀가 최근 몇 년간 해왔던 학교와 일상생활 자료였다. 성적란엔 크고 작은 많은 수상 내역이 적혀 있었다.나머지는 파파라치가 찍은 장소월의 사진이었다. 한 장은 화실에서 하얀색 목폴라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내리뜨리고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창밖 햇살이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니 시간이 멈춘듯한 평온한 느낌이 깃들었다.다른 한 장은 그녀가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인행도 양쪽엔 오동나무가 무성하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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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전연우는 이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왜 아직도 장소월을 찾으려 한단 말인가.지금의 전연우는 장씨 가문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장소월의 존재가 없다 하여 전혀 문제 될 게 없다.설사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전연우는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그저 전연우가 자신을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장소월의 귀국은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8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친 뒤 전용 비행기가 7성급 소피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측에선 VIP 대우로 깍듯이 그들을 대접했다. 전연우는 이곳 호텔의 최대 주주였기 때문이다.방에 들어가자 호텔 지배인이 입장권 한 장을 가져왔다.“대표님께서 원하셨던 전시회 입장권입니다. 시간은 점심 12시, 아직 3시간이 남아있네요. 저희가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대표님, 이쪽으로...”기성은은 옆에서 일을 보고했다.“파티를 마친 뒤 이곳에서 2주 정도 머무를 겁니다. IT기업 몇 군데에서 저희와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연락을 취해와 모레 시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선 경매 파티도 있습니다.”전연우는 컵 안 물을 마시고 말했다.“일정을 반년으로 연장해.”기성은은 화들짝 놀랐다.“반년이라고 하셨습니까? 시간이 너무 깁니다. 국내 회사 일도...”“내 말대로 해.”기성은이 고개를 숙였다.“네.”장소월 한 명 때문에 돌연 일정을 모두 바꾼다고?기성은이 이마를 찌푸렸다.“에취!”액자를 닦고 있던 장소월이 연속 몇 번 재채기를 했다.눈꺼풀이 점점 더 빨리 떨려왔고 심장박동도 점점 더 거세졌다.박원근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힘들면 집에 돌아가요 나, 서현이 시윤이 세 명이면 충분하니까.”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점심, 전시회가 시작되었다.장소월은 손님 접대 임무를 맡았다. 유창한 언어로 각계 유명 인사들에게 그림을 소개했다.쉬는 시간, 주시윤이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진짜 이해가 안 돼. 허 교수님은 왜 장소월만 수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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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허태현과 전시회관 관장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들 옆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허태현이 그에게 장소월을 소개하자, 루이스 관장이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장소월 씨, 허 교수님한테 말 많이 들었어요. 아주 천재적인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내 명함이에요. 앞으로 화실을 차리는 데에 자금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요.”루이스가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장소월은 허 교수님을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루이스의 명함을 받았다.장소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과찬이십니다. 전 천재가 아닙니다. 그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더 노력할 뿐입니다.”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장소월 씨 정말 겸손하네요. 난 이미 소월 씨의 작품을 봤어요. 수준이 대단하던데요.”“감사합니다...”허 교수는 전시회장을 완전히 그녀에게 맡겼다. 인터뷰가 잡혀 있어 가봐야 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 장소월은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이제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장소월은 2층 전시회장으로 올라갔다. 2층엔 유럽풍 작품들이 걸려있었는데 모두 서현 등 세 사람의 작품이었다. 반면 장소월의 입상했던 작품은 모두 1층에 자리했다.2층은 아주 조용했다. 장소월은 커피 세 잔을 들고 걸어가던 중 세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한 명도 올라오지 않는데 우리 그냥 돌아가자. 아래층 VIP들은 소월이 한 명으로 충분할 거야. 소월이는 이뻐서 참 좋겠어. 운이 좋으면 돈 많은 남자를 잡아 사모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교수님은 우리가 못생겨서 창피하신 거야. 호텔에 돌아가 게임이나 할까?”“주시윤, 너 양심 있어? 방금 그 말 소월이가 들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허 교수님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4년을 준비했어. 세계 각지 절경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무릅썼는지 몰라? 소월이는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한 번도 우리한테 불평불만을 쏟은 적이 없어. 사막에서 죽을 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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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복도에 나타난 그림자를 본 주시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양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서 장소월에게 다가가 커피잔을 받고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을 왜 네가 해. 교수님이 아래층에서 손님을 접대하라고 했는데 왜 올라왔어?”장소월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선생님은 인터뷰가 있어서 가셨어요. 선배님들이 저 대신 아래로 내려가 보실래요? 업계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저 잠시 후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해요. 이곳은 선배님들에게 부탁드릴게요.”주시윤이 말했다.“또 아르바이트하러 가려고? 너 올해 상 많이 받아서 상금도 꽤 받았잖아. 왜 아직도 그런 일을 하는 거야?”장소월이 받은 상금은 확실히 프랑스에서 몇 년 지내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주시윤의 예상을 빗나간 대답이 장소월의 입에서 나왔다.“그 돈은 모두 기부했어요.”세 사람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 미쳤어?”장소월은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고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갈 준비해야 해야 하니까 얼른 내려가세요. 아래층엔 아직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남아 계세요. 선배님들, 이런 기회 놓치지 마세요.”서현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불편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좋은 사람인 척 위선 떨지 마. 지금 우리한테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유세라도 부리는 거야? 누가 알아? 네가 무슨 더러운 방법으로 교수님의 마음을 샀는지!”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직된 분위기가 2층을 뒤덮었다.그때, 전시회관 아래층에서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은 힘든 마음에 관여하지 않고 곧바로 휴게실로 향했다.박원근이 멀어져가는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직 주시윤이 했던 장소월을 좋아하냐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가 서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서현아, 너 말이 심했어.”말을 마친 뒤 그는 주시윤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전시회장에 어떤 대단한 인물이 등장했는지, 사람들은 그림도 보지 않고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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