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는 이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왜 아직도 장소월을 찾으려 한단 말인가.지금의 전연우는 장씨 가문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장소월의 존재가 없다 하여 전혀 문제 될 게 없다.설사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전연우는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그저 전연우가 자신을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장소월의 귀국은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8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친 뒤 전용 비행기가 7성급 소피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측에선 VIP 대우로 깍듯이 그들을 대접했다. 전연우는 이곳 호텔의 최대 주주였기 때문이다.방에 들어가자 호텔 지배인이 입장권 한 장을 가져왔다.“대표님께서 원하셨던 전시회 입장권입니다. 시간은 점심 12시, 아직 3시간이 남아있네요. 저희가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대표님, 이쪽으로...”기성은은 옆에서 일을 보고했다.“파티를 마친 뒤 이곳에서 2주 정도 머무를 겁니다. IT기업 몇 군데에서 저희와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연락을 취해와 모레 시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선 경매 파티도 있습니다.”전연우는 컵 안 물을 마시고 말했다.“일정을 반년으로 연장해.”기성은은 화들짝 놀랐다.“반년이라고 하셨습니까? 시간이 너무 깁니다. 국내 회사 일도...”“내 말대로 해.”기성은이 고개를 숙였다.“네.”장소월 한 명 때문에 돌연 일정을 모두 바꾼다고?기성은이 이마를 찌푸렸다.“에취!”액자를 닦고 있던 장소월이 연속 몇 번 재채기를 했다.눈꺼풀이 점점 더 빨리 떨려왔고 심장박동도 점점 더 거세졌다.박원근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힘들면 집에 돌아가요 나, 서현이 시윤이 세 명이면 충분하니까.”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점심, 전시회가 시작되었다.장소월은 손님 접대 임무를 맡았다. 유창한 언어로 각계 유명 인사들에게 그림을 소개했다.쉬는 시간, 주시윤이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진짜 이해가 안 돼. 허 교수님은 왜 장소월만 수제자로
허태현과 전시회관 관장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들 옆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허태현이 그에게 장소월을 소개하자, 루이스 관장이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장소월 씨, 허 교수님한테 말 많이 들었어요. 아주 천재적인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내 명함이에요. 앞으로 화실을 차리는 데에 자금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요.”루이스가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장소월은 허 교수님을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루이스의 명함을 받았다.장소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과찬이십니다. 전 천재가 아닙니다. 그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더 노력할 뿐입니다.”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장소월 씨 정말 겸손하네요. 난 이미 소월 씨의 작품을 봤어요. 수준이 대단하던데요.”“감사합니다...”허 교수는 전시회장을 완전히 그녀에게 맡겼다. 인터뷰가 잡혀 있어 가봐야 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 장소월은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이제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장소월은 2층 전시회장으로 올라갔다. 2층엔 유럽풍 작품들이 걸려있었는데 모두 서현 등 세 사람의 작품이었다. 반면 장소월의 입상했던 작품은 모두 1층에 자리했다.2층은 아주 조용했다. 장소월은 커피 세 잔을 들고 걸어가던 중 세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한 명도 올라오지 않는데 우리 그냥 돌아가자. 아래층 VIP들은 소월이 한 명으로 충분할 거야. 소월이는 이뻐서 참 좋겠어. 운이 좋으면 돈 많은 남자를 잡아 사모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교수님은 우리가 못생겨서 창피하신 거야. 호텔에 돌아가 게임이나 할까?”“주시윤, 너 양심 있어? 방금 그 말 소월이가 들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허 교수님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4년을 준비했어. 세계 각지 절경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무릅썼는지 몰라? 소월이는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한 번도 우리한테 불평불만을 쏟은 적이 없어. 사막에서 죽을 뻔했
복도에 나타난 그림자를 본 주시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양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서 장소월에게 다가가 커피잔을 받고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을 왜 네가 해. 교수님이 아래층에서 손님을 접대하라고 했는데 왜 올라왔어?”장소월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선생님은 인터뷰가 있어서 가셨어요. 선배님들이 저 대신 아래로 내려가 보실래요? 업계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저 잠시 후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해요. 이곳은 선배님들에게 부탁드릴게요.”주시윤이 말했다.“또 아르바이트하러 가려고? 너 올해 상 많이 받아서 상금도 꽤 받았잖아. 왜 아직도 그런 일을 하는 거야?”장소월이 받은 상금은 확실히 프랑스에서 몇 년 지내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주시윤의 예상을 빗나간 대답이 장소월의 입에서 나왔다.“그 돈은 모두 기부했어요.”세 사람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 미쳤어?”장소월은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고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갈 준비해야 해야 하니까 얼른 내려가세요. 아래층엔 아직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남아 계세요. 선배님들, 이런 기회 놓치지 마세요.”서현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불편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좋은 사람인 척 위선 떨지 마. 지금 우리한테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유세라도 부리는 거야? 누가 알아? 네가 무슨 더러운 방법으로 교수님의 마음을 샀는지!”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직된 분위기가 2층을 뒤덮었다.그때, 전시회관 아래층에서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은 힘든 마음에 관여하지 않고 곧바로 휴게실로 향했다.박원근이 멀어져가는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직 주시윤이 했던 장소월을 좋아하냐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가 서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서현아, 너 말이 심했어.”말을 마친 뒤 그는 주시윤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전시회장에 어떤 대단한 인물이 등장했는지, 사람들은 그림도 보지 않고 그 사
“선생님, 제가 소개해드릴게요.”서현이 용기 내 걸어와 진지한 얼굴로 전연우에게 말했다.“이 그림을 보세요. 교수님께선 이 그림에 ‘생기’라는 이름을 지으셨어요. 이건 저희가 열대우림 깊숙한 곳에서 담은 경치예요. 여기에 그려져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하나... 모두 당시 보았던 생생한 모습 그대로예요.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숲속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죠. 하지만 사실... 당시 저희가 머물렀던 이곳은 정말 위험했어요...”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숨을 죽인 채 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직접 겪어온 경험을 이야기하니 마치 판타지 모험 속을 거닐고 있는 듯했다.“우린 총알개미도 만났어요. 처음엔 잘 알지 못했으나 알고 보니 독성이 가장 큰 10대 동물 중 하나더라고요. 개미의 일종인데 멀리서 보면 벌 같았어요. 하지만 단단하고 힘 있는 머리와 날카롭고 독을 지닌 꼬리를 갖고 있었죠.”이어 서현은 그들이 우림에서 마주했던 모든 일들을 상세히 얘기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들과 혼비백산해 정신을 잃을 뻔했던 일들까지 모두 말이다.기성은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장소월의 행적을 찾지 못한 이유가 바로 허 교수님 팀과 함께 다녔기 때문이었다.서현은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과 좌절을 겪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전연우는 그렇게 서현으로부터 장소월이 지난 4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되었다.그 경험은 일반인에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전연우는 예전에 주방에서 칼조차 잡지 못했던 아가씨가 그런 고생을 하고도 안전히 돌아왔다는 걸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전연우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약간 조롱 같기도 했다.잔뜩 부풀린 이야기거나 황당하게 지어낸 소설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전연우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제가 알기론 허 교수님에겐 학생이 4명 있어요.”주시윤이 곧바로 말했다.“저희들의 후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소월이요.”기성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정말
장소월은 확실히 직원 통로로 빠져나갔다. 그녀 역시 단 한걸음 차이로 위험을 빗겨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마이바흐 세단이 전시회장을 떠나던 그때, 장소월은 마침 코너를 돌아 달리는 차와 등졌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했다.전연우는 파리에 도착한 뒤 쉬지도 못하고 밥만 대충 먹은 채 달려왔다. 그럼에도 간발의 차이로 늦었을 줄이야.전연우가 눈을 질근 감았다.“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어?”기성은이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제가 보낸 사람들이 아파트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가씨가 돌아가시면 곧바로 연락할 겁니다.”“그래.”전연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4년이라는 시간도 견뎌왔건만, 짧은 이 몇 분을 기다리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는 미친 듯이 장소월이 보고 싶었다.조용했던 차 안에 전연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 돌려. 아파트로 가자.”“하지만 저흰 약속이...”“취소해.”“네.”기성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30분 뒤, 전연우는 장소월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보잘것없이 낡아 있었는데 적어도 지은 지 4, 50년은 되어 보였고 치안도 좋지 않았다.기성은이 문을 두드렸으나 답이 없었다.“아가씨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조금 기다리시죠.”전연우는 고개를 숙여 발아래 붉은색 매트를 쳐다보았다. 고급스러운 검은 구두로 매트를 밟아보니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기성은이 곧바로 허리를 숙여 매트를 옮겼다.“열쇠입니다! 대표님, 어떻게 아셨어요?”전연우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문 열어.”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의 습관을 알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덜렁이여서 학생증, 은행카드 등을 잃어버리기가 일쑤라 몇 번이나 다시 만들었는지 모른다.이후 전연우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카드로 만들어 열쇠고리에 걸어주었다.하지만 그녀가 집 열쇠마저 잃어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우미가 집에 없었던 그 날, 그녀는 또 수업 땡땡이를
창밖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미 독촉 전화를 세 개나 받고 들어온 기성은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대표님, 파티가 시작된 지 30분이나 지났습니다. 이제... 정말 가야 합니다.”전연우는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까지 보고 난 뒤 고개를 들었다. 시계를 보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있었다.4년 동안의 경험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남자는 그중 한 페이지를 찢어 기성은에게 건넸다.“이걸 서울 강씨 집안에 보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거대한 크루즈 위에서 성대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대 위엔 유혹적인 옷을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세계적인 유명 연예인이거나 톱모델들이었다. 남자들은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장소월은 주방에서 디저트를 만들었다. 처음 그녀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기에 면접을 볼 자격도 갖추지 못했었다. 만약 그녀가 출중한 요리 실력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지 않았다면 결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대부분 주방일을 맡았다. 가끔씩 시간을 내 조금씩 프랑스어를 익혔고 이젠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이곳 주방장인 후크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소월 씨는 정말 나의 행운의 여신이에요. 소월 씨가 아니었다면 너무 바빠 미쳐버렸을 거예요. 정말 다행이에요.”장소월이 배시시 웃으며 접시를 받았다.“이런 두둑한 일당을 받을 기회는 저에게도 흔치 않은 거예요.”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장소월이 매달 남은 돈 모두를 보육원에 기부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가면을 쓴 리사가 디저트 존을 채울 디저트를 가지러 들어왔다.“오늘 사람이 진짜 많아. 다들 네가 만든 디저트가 맛있다더라. 내가 나가기만 하면 가져다 달라고 성화야. 소월아, 나 이제 진짜 나가기 싫어.”주방 유니폼이 없으니 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검은색 종업
장소월은 손을 씻은 뒤 물을 털어냈다.“전 잠깐 쉬고 올게요. 멀미가 좀 나서요.”“그래요.”그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후크도 강요하지는 않았다.후크가 종업원과 함께 나갔다.앨리스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론 포크를 전연우의 앞에 내밀었다.“맛보세요. 이건 그쪽 한국 음식이니까 먹어본 적 있을 거예요.”전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절한 뒤 하얀색 요리사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주방장님 오셨어요. 앨리스 씨.”그를 본 앨리스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한국인인 줄 알았어요.”후크가 말했다.“확실히 한국에서 온 미녀분이 만든 거예요.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쉬러 가는 바람에 제가 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연우 씨, 어디 가요?”장소월은 속이 메슥거렸다. 처음엔 괜찮았으나 멀리 나갈수록 파도가 거세져 울렁이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화장실에서 속에 있는 걸 모두 토해낸 뒤 세수를 하고 밖에 나갔다.조명이 망가졌는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복도에서, 장소월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머리에서 모자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모자를 주운 뒤 그녀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녀가 허리를 펴고 보니 여자가 남자 한 명을 끌고 어두운 구석으로 가고 있었다.여자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정말 크죠. 갖고 싶지 않아요? 연우 씨?”장소월이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심장을 짓누르기라도 한 듯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연우?오랫동안 보지 못해 희미해졌던 그 사람의 모습이 순간 선명해졌다.아니... 전연우일 리가 없다!서울에 있는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나겠는가!장소월은 애써 자신을 안심시켰다.“앨리스 씨, 이거 선 넘는 거예요.”남자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찰나, 장소월은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모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였다.장소월은 그 순간 머리가 백지장같이 새하얘졌다.누군가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와서야 장소월은 간신
“나 먼저 갈게.”리사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후크 주방장님이 손님에게서 팁을 받았어. 이건 네 몫이야.”장소월은 그녀의 말이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저 ‘도망’ 두 글자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고마워. 매니저님한테 얘기해줘.”리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소월아,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조금 전부터 비가 크게 내리고 파도가 거세진 바람에 크루즈에 문제가 생겼대. 그래서 우리 내일은 돼야 나갈 수 있어.”장소월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어떻게... 이럴 수가.”리사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전 파티가 끝났어. 손님들과 종업원 모두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해.”장소월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그녀는 전연우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장소월과 리사는 협소한 직원 전용 객실로 안내되었다.유리창 너머로 파도가 끊임없이 기승을 부렸고 무시무시한 번개와 소나기도 계속되었다.한 번 우레가 울 때마다 귀가 찢기는 것 같았다,그들 방바닥은 환경이 좋지 않아 물기가 약간 있어 축축했지만 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탓에 리사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반면 장소월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용돌이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꽤 긴 시간이 지났건만 장소월은 윙윙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리사는 밤새 몇 번이나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한 번은 나갈 때 문을 닫지 않아 바닷바람이 객실에 몰려왔다.리사는 오늘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배탈이 난 듯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경호원 한 명이 그녀를 막아섰다.“당신 누구예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경호원은 그녀의 입을 막고 다른 방으로 끌고 가버렸다.복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문이 채 닫히지 않은 객실로 가까워지고 있었다.남자가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엔 보라색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어둠을 비추었다. 그로 인해 남자의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