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손을 씻은 뒤 물을 털어냈다.“전 잠깐 쉬고 올게요. 멀미가 좀 나서요.”“그래요.”그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후크도 강요하지는 않았다.후크가 종업원과 함께 나갔다.앨리스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론 포크를 전연우의 앞에 내밀었다.“맛보세요. 이건 그쪽 한국 음식이니까 먹어본 적 있을 거예요.”전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절한 뒤 하얀색 요리사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주방장님 오셨어요. 앨리스 씨.”그를 본 앨리스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한국인인 줄 알았어요.”후크가 말했다.“확실히 한국에서 온 미녀분이 만든 거예요.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쉬러 가는 바람에 제가 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연우 씨, 어디 가요?”장소월은 속이 메슥거렸다. 처음엔 괜찮았으나 멀리 나갈수록 파도가 거세져 울렁이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화장실에서 속에 있는 걸 모두 토해낸 뒤 세수를 하고 밖에 나갔다.조명이 망가졌는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복도에서, 장소월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머리에서 모자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모자를 주운 뒤 그녀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녀가 허리를 펴고 보니 여자가 남자 한 명을 끌고 어두운 구석으로 가고 있었다.여자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정말 크죠. 갖고 싶지 않아요? 연우 씨?”장소월이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심장을 짓누르기라도 한 듯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연우?오랫동안 보지 못해 희미해졌던 그 사람의 모습이 순간 선명해졌다.아니... 전연우일 리가 없다!서울에 있는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나겠는가!장소월은 애써 자신을 안심시켰다.“앨리스 씨, 이거 선 넘는 거예요.”남자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찰나, 장소월은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모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였다.장소월은 그 순간 머리가 백지장같이 새하얘졌다.누군가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와서야 장소월은 간신
“나 먼저 갈게.”리사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후크 주방장님이 손님에게서 팁을 받았어. 이건 네 몫이야.”장소월은 그녀의 말이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저 ‘도망’ 두 글자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고마워. 매니저님한테 얘기해줘.”리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소월아,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조금 전부터 비가 크게 내리고 파도가 거세진 바람에 크루즈에 문제가 생겼대. 그래서 우리 내일은 돼야 나갈 수 있어.”장소월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어떻게... 이럴 수가.”리사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전 파티가 끝났어. 손님들과 종업원 모두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해.”장소월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그녀는 전연우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장소월과 리사는 협소한 직원 전용 객실로 안내되었다.유리창 너머로 파도가 끊임없이 기승을 부렸고 무시무시한 번개와 소나기도 계속되었다.한 번 우레가 울 때마다 귀가 찢기는 것 같았다,그들 방바닥은 환경이 좋지 않아 물기가 약간 있어 축축했지만 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탓에 리사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반면 장소월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용돌이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꽤 긴 시간이 지났건만 장소월은 윙윙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리사는 밤새 몇 번이나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한 번은 나갈 때 문을 닫지 않아 바닷바람이 객실에 몰려왔다.리사는 오늘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배탈이 난 듯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경호원 한 명이 그녀를 막아섰다.“당신 누구예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경호원은 그녀의 입을 막고 다른 방으로 끌고 가버렸다.복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문이 채 닫히지 않은 객실로 가까워지고 있었다.남자가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엔 보라색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어둠을 비추었다. 그로 인해 남자의 눈에
야한 분위기가 점점 더 깊이 퍼져갔다. 불어오는 바닷바람마저도 야릇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장소월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오고 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전연우한테 얼마나 시달림받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고 통증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깨고 기절하고를 계속 반복했다.밖에 해가 뜨기 시작했을 때, 장소월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새벽 다섯 시 반, 전연우는 갓 씻은 장소월을 안고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 수증기 안개 속에서 나온 그녀의 하얀 피부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전연우는 그녀를 가볍게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침대 머리맡 서랍 안에 있는 연고를 찾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발라주었다.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약간의 출혈도 있었다. 찢어진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눈 감고 있는 장소월이 앓는 소리를 내며 아픈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는 더 살살 약을 발라주었다.또 한 시간이 지났다. 전연우는 눈을 붙일 시간도 없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기성은이 보고했다.“대표님,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출발하셔도 됩니다.”“가서 새 옷 한 벌 준비해와.”기성은이 멈칫하고는 답했다.“네.”기성은 이내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돌아왔다. 사이즈가 장소월에게 딱 맞았다.전연우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고 옷을 입히고는 그녀를 안고 크루즈에서 내렸다.커다란 부가티 안에서 장소월은 전연우의 다리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장소월은 호텔에 돌아간 후에야 편이 잠을 잘 수 있었다.해가 또 저물었다.피에 물든 듯한 저녁노을이 보였다.방의 두꺼운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춰 들어왔다.장소월은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녀는 차에 깔린 것처럼 온몸이 시큰해났다. 옆에서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장소월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고 ‘오빠’라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렀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짐승이었다.장소월은 불쾌해하
“반 시간 후에 내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자신을 놓아준 전연우를 보면서 장소월은 약간 놀랐다.그가 이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가 언제 그녀의 말을 이렇게 잘 들었는가?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그를 욕했다.‘짐승 같은 놈!’장소월은 땅을 밟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전연우는 가운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헐렁한 옷깃 탓에 단단한 가슴근육이 다 드러났다. 그는 여유롭게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흰 연기를 뿜어내며 느긋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빠가 도와줄까?”장소월은 그를 무시한 채 고통을 참고 침대를 짚고 땅에서 일어나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거울에 비친 그녀의 피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치마는 그 흔적들을 가릴 수가 없었다.그녀는 순간 무력감을 느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능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초췌하고 창백했다.모든 일이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시간을 계산해보면 백윤서는 이미 졸업했을 테고 전연우는 오래전에 그녀와 결혼했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 제도에서 남천 그룹을 물려받고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장소월은 욕실에서 삼십 분 동안 어물어물하다가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있는 가방을 열어 확인했는데 중요한 물건들은 다 그대로 있었다.전연우는 느릿느릿하게 정장을 입고는 고개 숙여 소매에 있는 단추를 잠그고 떠나려는 장소월에게 말했다.“학교에 연락해 물어봤는데 어제 금방 예술 전시회를 열어서 오늘 휴식일이라던데. 학교로 돌아가는 건...”전연우는 옷을 입고 그녀 앞에 다가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이미 졸업했잖아. 소월아, 떠나고 싶다 거든... 다음엔 더 좋은 이유를 찾도록 해.”장소월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비켜!”
웨이터가 마지막 메뉴를 올렸다.“입맛에 맞아?”전연우는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를 보았다.장소월의 가방이 옆에 있는 의자에 놓여있었는데 그녀는 가방을 들고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경호원들이 있는 탓에 달아난다고 해도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나 여기 있기 싫어. 나도 할 일이 있어.”“무슨 일? 말해 봐.”장소월은 젓가락을 꽉 쥐고 말했다.“다음 주에 북사구 오색만에 가야 하는데 아직 준비 못 한 일이 많아서 이곳에 날 계속 남겨두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전연우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다 듣고 그녀에게 세 글자만 말했다.“가지 마.”장소월은 그녀가 무언갈 하려고 할 때마다 전연우가 왜 자꾸 참견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더는 학생이 아닌데 말이다.“이건 내 일이야. 당신이 뭔데 내 결정을 간섭하려고 해? 지금 우리 둘 관계로 말한다고 해도... 당신...”전연우가 그녀의 말을 끊고 손에 있던 젓가락을 놓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물었다.“그럼 한번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전연우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의 부정당한 관계를 승인하라고 물어보는 건가?그녀는 그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고.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꽉 쥐고 억지로 말했다.“당신은... 영원히 나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오빠야.”전연우는 사악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는 티슈로 입을 닦은 후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장소월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연우가 그녀의 뒤에 서서 손가락을 튕기자 기성은이 검은색 벨벳 액세서리 상자를 가지고 왔다. 열어보니 안에는 정교한 심플한 쇄골 체인이 들어있었다. 장소월은 은색 쪼각달 모양의 펜던트를 보자마자 온몸이 굳었다.전연우는 몸을 약간 숙이고 그녀의 목에 은색 체인을 걸어줬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매혹
장소월은 프랑스 패션의 도시로 알려진 오스만 상업 도로에 있는 한 쇼핑몰에 갔다. 그녀는 전에 이곳에서 며칠 동안 카운터 판매원으로 일했었다.장소월은 호텔에서 보내준 픽업 차에 앉아 쇼핑몰로 갔다.쇼핑몰에 들어간 후, 장소월은 옷을 고르는 척했다. 그녀는 경호원이 전연우에게 자신의 행방을 보고하는 듯 사진을 찍는 걸 보았다.장소월은 옷을 고른 후 여성 속옷 가게에 가서 많은 물건을 샀다.차에 앉은 남자는 폰의 진동을 느끼고 꺼내 보니 카드 결제 메시지였다. 그는 폰을 끄고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에 일억 정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기성은이 보고했다.“저녁 아홉 시 반쯤 송 비서가 공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전연우는 담담하게 답했다.“응.”“그럼... 모레 연회에도 평소처럼 송 비서를 데리고 가시나요?”전연우는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다.“드레스는 준비됐어?”“사이즈를 정해야 하는데 브랜드 쪽에서 고른 후 호텔로 보내줄 겁니다.”“응.”전연우는 간단히 답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전연우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해외 지사였는데 임원이 위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었고 회의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회의실 밖에 있는 기성은은 경호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이미 예상하였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테이블 센터에 앉아있는 전연우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장소월이 쇼핑몰에서 경호원을 따돌렸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녀가 달아나는 게 확실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멋대로 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쇼핑몰에서 도망쳐 나온 장소월은 택시에 앉아 돌아가는 길에 전연우가 그녀에게 준 목걸이가 행여나 문제라도 있을까 봐 떼어내려고 했는데 떼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값비싼 목걸이를 끊어버리고 밖으로 던졌다.경호원은 추적한 위치를 따라 쫓아가 봤는데 한 노숙자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장소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리사는 아파트로 돌아온 장소월을 보며
한 무리 경호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리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급하게 방문을 잠그고는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옷장과 책상으로 문을 막았다.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들고 신고하려고 했다.경호원이 밖에서 그녀를 경고했다.“아가씨, 저항하실수록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계속 안 나오시면 문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전연우의 부하들은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방문은 별로 견고하지 않은 평범한 나무문이었는데 그들이 억지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그녀로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전연우의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문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문을 부딪치면서 펑펑하는 소리가 났다. 장소월은 등으로 책상을 지탱하고 있었다.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밖이 조용해졌다.리사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소월, 경찰이 왔어. 경찰서에 가서 기록을 작성해야 한대.”장소월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진정되었다.그녀는 문을 막고 있던 물건들을 옮기고 밖으로 나갔다. 경찰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함께 경찰서에 갔다.장소월은 취조실에 앉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리사만 경호원들의 만행을 비난하며 하소연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지 여러 해가 되는데 전연우는 왜 그녀를 찾으려 하는 거지? 또 그녀의 입에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경호원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전연우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단 것이다...심문이 끝난 건 한 시간 후였다.아홉 시, 전연우는 금방 회의를 마쳤다.호텔로 돌아가려고 할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기성은은 전연우의 명령대로 방향을 돌려 경찰서로 갔다. 놀라웠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일을 벌이는 사람은 장소월밖에 없었다. 그녀 외에는 누구도
전연우는 그녀에게 검은색 금박 명함을 건네주었다. 리사는 과장되게 입을 가리고 거듭 ‘고맙습니다!’라고 했다.장소월은 명함 위에 눈에 띄게 ‘성세 그룹’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았다.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장소월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전연우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전연우가 성세 그룹 대표라고? 설마 정말 돌아온 거야?’그녀는 억지로 포가디에 올라탔다. 리사도 데리러 온 가족들과 함께 돌아갔다.차에 앉은 그녀는 이 차가 10억 정도 되는 차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거북이처럼 조용히 목을 움츠리고 앉아있었다.“신고할 줄도 알고, 담이 커졌네. 왜 어디 가든 계속 오빠를 속태우게 만드는 거야? 응?”전연우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겁먹은 듯 피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었다.“전연우, 당신 혹시 돌아온 거야?”전연우는 긴장해 하는 장소월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와인을 열어 한 잔 따르고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와인 한 모금 마시고는 호주머니에서 그녀가 끊어버린 목걸이를 꺼냈는데, 어느새 이미 수리되어 있었다.“이리 와. 내가 끼워줄게.”“필요 없어!”“내가 직접 다가가서 끼워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얌전히 말 들을래?”장소월은 혐오하는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날 강요하지마. 내가 싫다고 했잖아.”“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나 아파트로 돌아갈 거야.”“30평밖에 안 되는 곳이 뭐가 좋다고 돌아가?”전연우는 그녀를 끌어와 자신의 다리에 앉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다신 떼어내지 마.”장소월은 발버둥을 쳤다.“지금 걸어줘도 나중에 벗어던질 거야. 전연우... 난 도저히 모르겠어. 날 찾아서 대체 뭐하려는 거야? 날 이용할 만큼 이용했잖아. 난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이곳에서 잘살고 있는데 제발 날 내버려 두면 안돼?”“지금 잘살고 있잖아. 더는 내 인생에 끼어들 필요 없잖아!”전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