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 경호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리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급하게 방문을 잠그고는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옷장과 책상으로 문을 막았다.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들고 신고하려고 했다.경호원이 밖에서 그녀를 경고했다.“아가씨, 저항하실수록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계속 안 나오시면 문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전연우의 부하들은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방문은 별로 견고하지 않은 평범한 나무문이었는데 그들이 억지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그녀로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전연우의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문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문을 부딪치면서 펑펑하는 소리가 났다. 장소월은 등으로 책상을 지탱하고 있었다.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밖이 조용해졌다.리사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소월, 경찰이 왔어. 경찰서에 가서 기록을 작성해야 한대.”장소월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진정되었다.그녀는 문을 막고 있던 물건들을 옮기고 밖으로 나갔다. 경찰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함께 경찰서에 갔다.장소월은 취조실에 앉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리사만 경호원들의 만행을 비난하며 하소연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지 여러 해가 되는데 전연우는 왜 그녀를 찾으려 하는 거지? 또 그녀의 입에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경호원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전연우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단 것이다...심문이 끝난 건 한 시간 후였다.아홉 시, 전연우는 금방 회의를 마쳤다.호텔로 돌아가려고 할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기성은은 전연우의 명령대로 방향을 돌려 경찰서로 갔다. 놀라웠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일을 벌이는 사람은 장소월밖에 없었다. 그녀 외에는 누구도
전연우는 그녀에게 검은색 금박 명함을 건네주었다. 리사는 과장되게 입을 가리고 거듭 ‘고맙습니다!’라고 했다.장소월은 명함 위에 눈에 띄게 ‘성세 그룹’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았다.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장소월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전연우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전연우가 성세 그룹 대표라고? 설마 정말 돌아온 거야?’그녀는 억지로 포가디에 올라탔다. 리사도 데리러 온 가족들과 함께 돌아갔다.차에 앉은 그녀는 이 차가 10억 정도 되는 차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거북이처럼 조용히 목을 움츠리고 앉아있었다.“신고할 줄도 알고, 담이 커졌네. 왜 어디 가든 계속 오빠를 속태우게 만드는 거야? 응?”전연우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겁먹은 듯 피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었다.“전연우, 당신 혹시 돌아온 거야?”전연우는 긴장해 하는 장소월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와인을 열어 한 잔 따르고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와인 한 모금 마시고는 호주머니에서 그녀가 끊어버린 목걸이를 꺼냈는데, 어느새 이미 수리되어 있었다.“이리 와. 내가 끼워줄게.”“필요 없어!”“내가 직접 다가가서 끼워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얌전히 말 들을래?”장소월은 혐오하는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날 강요하지마. 내가 싫다고 했잖아.”“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나 아파트로 돌아갈 거야.”“30평밖에 안 되는 곳이 뭐가 좋다고 돌아가?”전연우는 그녀를 끌어와 자신의 다리에 앉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다신 떼어내지 마.”장소월은 발버둥을 쳤다.“지금 걸어줘도 나중에 벗어던질 거야. 전연우... 난 도저히 모르겠어. 날 찾아서 대체 뭐하려는 거야? 날 이용할 만큼 이용했잖아. 난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이곳에서 잘살고 있는데 제발 날 내버려 두면 안돼?”“지금 잘살고 있잖아. 더는 내 인생에 끼어들 필요 없잖아!”전
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대하던 태도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가 강영수와 함께 있을 때였던지 혹은 그녀와 강영수가 곧 약혼하려던 때였는지...그는 지금처럼이 아니라 그녀를 증오해야 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백윤서를 목숨을 잃게 만들지 않고 백윤서가 살아있어서 전연우의 태도가 바뀐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이 함께 잤다고 해도 장소월은 이런 관계로 인해 전연우가 그녀에게 감정이 생겼다는 걸 믿지 않았다.사랑?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그는 누구에게도 그가 우습게 여기는 감정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었다.전연우 같은 사람에게는 진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그가 이렇게 하는 건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사 년 전 장가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도 그의 계획 중의 일부분이었다.그녀가 돌아가는 순간 사 년 전처럼 그가 만들어놓은 악몽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전연우는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뒤에서 그를 따갔다. 뒤에는 여섯 명의 경호원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화려한 라운지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88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어두운 복도에는 구름을 밟는 것처럼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있었다.전연우가 카드를 꺼내 방문을 열려고 할 때, 피곤한 장소월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발정 난 짐승으로 변하는 전연우를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나 당신이랑 같은 방 쓰기 싫어.”전연우가 명령을 내렸다.“기 비서, 가서 방 하나 더 내.”“네, 대표님.”장소월은 시름을 놓은 듯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연우는 방을 열고 들어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정장을 벗었다. 그가 불을 켜려고 할 때, 어두컴컴한 방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둘러안았다.“왜 오늘 데리러 안 왔어요?”‘이 목소리는...’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보면서 머리가
그녀는 전연우를 넘어 기세등등하게 장소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시비 거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오랜만이에요, 장소월 씨.”그녀는 무언갈 암시하듯이 손을 내밀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장소월은 가슴이 답답해나며 아파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부터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송시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황급히 도망치는 장소월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들었다.‘전생에 넌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 전에도 날 이기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넌 날 이길 수 없어!’‘전생에 서른한 살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번 생에는 몇 살까지 사는지 지켜볼게.’송시아라는 세 글자는 장소월에게 있어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같았다.전생에...그녀의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장소월은 아이를 보지도 못했다.기성은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건 유골함뿐이었다.장소월은 아이를 자신의 엄마와 함께 묻었다.그녀는 그 일로 반년 동안 병으로 누워있었고 여러 번 견디다 못해 죽을 것만 같았었다.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낫지 않아 전연우에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의 방에서는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는 모든 걸 목격했다.송시아는 머리를 풀고 남자 위에 올라타 있었다.“장소월이 못 낳아주는 아이를 내가 낳아줄게요...”“연우 씨, 이번에는 곧 우리 아이가 생길 거예요.”장소월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꽉 잡고 욕실에 있는 물건을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장소월이 이성을 잃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녀가 붕괴의 극점에 이른 상황을 제외하고는.그녀의 방은 전연우의 옆 방이었다.깨진 거울 조각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울 속에는 온통 고통스러워하는 장소월의 얼굴이었다.갑자기 코에 피가 흘러나왔는데 입안도 피 냄새로 가득했다. 가슴으로부터 메스꺼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피를 닦고 물을 트는 순간 갑
전연우는 바닥에서 겉옷을 주워 들어 의자에 걸쳐 놓았다.“또 왜 성질을 부리는 건데?”그는 빨개진 그녀의 눈시울을 바라보며 어두워진 눈빛으로 설명했다.“그 사람은 내 비서일 뿐이야. 너도 알 거 아니야?”묘한 말이었다. 어쩐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만 같았다.장소월은 몸이 굳었다. 전연우는 그녀를 꿰뚫어 볼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장소월은 냉소했다.“그 여자가 누구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오빠한테 꺼지라고 한 건 단순히 오빠가 더럽고 역겨워서야!”눈에 차는 여자라면 전연우는 절대 상대를 거절하지 않았다.그리고 장소월은 그런 그가 역겨웠다.“오빠가 안 가면 내가 갈게.”장소월은 다시 한번 그들의 앞에서 송시아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장소월이 가방을 들고 그를 지나쳐 갔지만 전연우는 그런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벨트를 풀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슬리퍼를 신고 욕실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경호원이 문을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장소월은 화를 내며 힘껏 문을 닫았다.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창문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해봤지만 이곳은 88층이었다.눈앞의 광경에 전연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는데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다. 거울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연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사람을 불러 깨끗이 청소하게 했다.호텔 직원은 욕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부랴부랴 떠났다.방 안에서는 숨 막힐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장대 앞에 앉아있었고 전연우는 흐려진 얼굴로 그녀의 뒤에 섰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또 자학하면서 제발 보내달라고 날 협박할 셈이야?”장소월이 대답했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전연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욕실 안의 피는 어떻게 된 거야?”장소월은 차갑게 대꾸했다.“코피 흘린 거야. 휴지 가지러 가려다가 실수로 거울을 깨뜨렸고.”“다 씻었으면 얼른 가. 여기 남아있지 말고. 나도 쉴 거야.”다음 순
하지만 장소월은 아니었다.“송시아 씨는 오빠 정부잖아.”장소월은 그 말을 할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전연우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장소월은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내가 자궁을 적출당했다고 해서 오빠 멋대로 몇 번이고 날 가지고 놀 수 있는 건 아니야.”“난 사람이야. 오빠 장난감이 아니라. 나도 아프다고.”“내가 실컷 시달리다가 죽으면 그제야 만족하겠어?”전연우는 확신하듯 말했다.“넌 그러지 않을 거야.”장소월이 말했다.“그렇게 될 거야.”“오빠도 알다시피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잖아.”“오늘 내게 손을 댄다면 내일... 오빠가 마주하게 되는 건 온전치 못한 시체일 거야.”“88층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도 안 아프겠지.”장소월의 우울증은 한 번도 완치된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유와 동경의 하늘이 그녀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만약 언젠가 날개가 뜯겨서 그에게 감금된다면 전생과 똑같아질 것이다.그러면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똑같이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장소월의 말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전연우는 문을 박차고 떠났다.그제야 불안이 해소됐다. 장소월은 자신이 목숨으로 그를 위협하면 전연우가 한발 물러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언젠가 전연우는 그녀에게 타협을 강요하며 그녀를 독점하려 할 것이다.옆방에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조용해졌다. 송시아는 복도 밖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운을 여미고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가 백허그했다. 그녀는 그의 등에 뺨을 붙이며 말했다.“그 여자 찾아가지 마요. 나 질투 난단 말이에요.”“연우 씨는 나만의 것이어야 해요.”“난 연우 씨가 원하는 건 뭐든 줄 수 있어요. 아이도 낳아줄 수 있어요.”전연우의 눈빛에서 한기가 감돌았다.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이가 아닌가?장소월은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몸을 돌린 전연우는 새까만 눈동자로 송시아를 지긋이 바라봤다.“내가 원하는 게 아이라는 걸 어떻
전연우가 또 무슨 미친 짓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방문이 열리자 문을 억지로 부순 사람은 톱을 들고 떠났다.장소월은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섹시한 쇄골 사이에 반달 모양의 아름다운 주얼리가 드리워졌다. 장소월은 무덤덤한 눈빛이었다.“또 뭘 하려는 거야?”전연우는 침대맡 서랍에 약병 하나가 놓인 걸 보았다. 그걸 들어서 보니 수면제였다. 그러니까 장소월이 지금까지 잔 이유는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전연우 씨, 이분 괜찮아 보이시는데...”전연우가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일단 나가 있어요.”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장소월은 전연우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멀쩡한 문을 부수다니.전연우가 커튼을 열자 눈 부신 빛이 안으로 들어왔고 장소월은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 눈을 감았다.“지금이 몇 신 줄 알아?”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이 장소월의 얼굴을 가렸다. 햇빛을 받은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하얘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오빠가 날 여기 가뒀는데 내가 자는 것 빼고 뭘 할 수 있겠어?”그녀에게서 생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장소월은 마치 당장이라도 시들 것 같은 장미꽃 같았고, 힘없이 축 처진 꽃잎은 언제라도 시들 것만 같았다.장소월은 다시 누웠다. 그러나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연우가 다시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옷 입어. 나랑 같이 내려가서 밥 먹자.”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영문 모를 분노가 불타올랐다.장소월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진짜 오빠라도 된 것처럼 아빠를 대신해 날 가르치려 들지 마.”장소월은 자기 손을 빼내면서 비아냥댔다.“내게 오빠는 영원히 한낱 강간범일 테니까.”전연우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문까지 박살 낸 걸 보면 어젯밤 했던 말이 효과가 있는 듯했다. 전연우는 그녀가 방 안에
“전연우 씨.”송시아는 세련된 숄과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큐빅이 가득 박힌 가방을 들고 있었다. 널따란 호텔 로비에서 그녀가 가장 눈에 띄었다.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전연우의 모습에 송시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전연우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송시아를 못 본 척 지나쳤다.호텔 측에서 곧 기사를 보내 두 사람을 병원으로 모셨다. 차 안에서 장소월은 갑자기 온몸이 추졌워다. 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가 얇은 담요를 가져와서 덮어준 뒤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추워.”전연우는 식은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괜찮아. 이제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문뜩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그건 평생 겪어본 적 없는 당황스러움이었다.병원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수액을 맞다가 눈을 떴다.징크스 의사가 말했다.“드디어 깼네요.”“소월 씨 남자 친구는 병원비 내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소월 씨, 소월 씨 남자 친구는 소월 씨 상태를 알고 있나요? 지금 상태가 너무 심각해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해요. 지금 의료 수준으로는 치료할 수 있어요.”징크스는 장소월의 주치의였다.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병원에 온 것이었는데 전연우가 자신을 이 병원으로 데리고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장소월은 힘없는 손으로 징크스의 가운을 붙잡았다.“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말아 줄래요? 부탁이에요.”징크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설득했다.“소월 씨, 소월 씨는 반드시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해요. 소월 씨는 제 환자잖아요. 전 소월 씨를 책임져야 한다고요.”장소월이 말했다.“그럴게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요. 조금만 더 시간을 줄래요?”“정말 못 말리네요. 소월 씨, 소월 씨 몸이니까 잘 보살펴야 해요.”“고마워요.”장소월은 손을 놓았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했다.전연우가 장소월의 상태를 물었을 때, 징크스는 그녀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숨기고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기혈이 부족하고
“아, 참, 그리고 그 아이도...” “전연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릴 거야.” “알겠습니다, 송 대표님. 지금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오늘 밤 반드시 일을 성공시킬 겁니다.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상대방은 팔을 걷어붙이고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전에 얘기했던 회사 주식은...” 송시아는 날카롭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하지 마. 회사 주식은 네가 원하는 만큼 줄게.” “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해가 지면 좋은 소식이 들리실 겁니다.” 남원 별장이 사라지고 아이도 죽으면... 그때쯤이면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겠지. 장소월... 그때까지도 네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까지 내팽개치고 언제까지 숨어있는지 두고 보겠어. 장소월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자기 아이가 아니더라도 다치는 건 외면하지 못한다. 네가 아무리 꼭꼭 숨어 있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찾아낼 방법은 수백 가지가 넘으니까. 러시아 국경 밖. 잠을 자던 장소월은 갑자기 가슴에서 전해져오는 강한 통증을 느꼈다. 꿈속에서 별이가 계속 엉엉 울면서 엄마를 부르짖고 있었다... 장소월로 하여금 단 한 순간도 걱정의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한 사람은 전연우 외에도 별이가 더 있었다. 그 아이... 장소월은 왜인지 모르게 줄곧 그 아이가 나오는 꿈을 꾸었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자라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의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에서 환자 차트를 보고 있던 서철용은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소월 씨,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장소월은 아픈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별이가 잘못되는 꿈을 꿨어요. 혹시 남원 별장에 가봐 줄 수 있어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래요.” 서철용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뱉어내며 말했다. “소
밤늦도록 격렬하게 몸을 섞은 후, 송시아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남자의 품에 안겨 침대에 내려놓아졌다. 몸에는 얇은 담요 한 장만 덮여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 지쳐버린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남자가 떠나고 나서야 텅 빈 반산 별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송시아가 깨어났을 땐 이미 점심 열두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잠들어있는 것처럼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의 잘생기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쓸어내렸다.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숨소리마저 희미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송시아는 자연스럽게 전생을 떠올렸다. 그때 관계를 맺은 뒤에도 송시아는 지금처럼 그의 잠든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전연우는 너무나도 예민했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깊게 잠들지 못하고 미세한 움직임만 있어도 바로 깨어났다. 때문에 지금처럼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연우는 출중한 능력 외에도 가장 큰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많은 여자를 홀리는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지금의 그이든, 50대 중년의 전연우이든, 그는 늘 성숙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배자의 풍모와 아우라를 지녔고, 그와 같은 사람은 서울 전체를 뒤져봐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송시아는 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꼬박 두 번의 삶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그에게 쏟았다. 그와 함께 다시 일어섰고, 그가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위치에 오르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 중 그 누가 전연우처럼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서울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국회의원들마저도 그의 눈치를 살핀다. 전연우가 가진 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때 도우미가 문을 두드렸다. “사모님,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송시아는 방 안에 어지럽게 흩어진
그녀는 장소월과 전연우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연우 씨, 남원 별장이 없어지고, 두 사람의 아이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마지막은 장소월 차례예요... 장소월까지 죽은 후, 난 영원히 이 별장에서 당신과 함께 살 거예요.” ... 신이랑의 이직 소식이 성세 그룹 전체에 퍼졌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소민아였다. 사무실, 소민아는 손에 회의 자료를 들고 신이랑 앞으로 걸어가 따지듯이 물었다. “왜 회사에서 나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안 믿었는데, 회의하러 잠깐 올라갔다가 와보니 정말 이직한다네요.” “신이랑 씨, 정말 송시아랑 손잡은 거예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내가 본가로 들어가는 건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어요. 민아 씨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내가 민아 씨한테 결혼을 강요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결국 민아 씨는 날 한 번도 믿지 않은 거네요!” 소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듯한 감정이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는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랑 씨,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미안해요. 제가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해서 헛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냥 이랑 씨가 왜 갑자기... 회사를 나가는 건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전에도 말했듯이, 난 구르미 시리즈에 줄곧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나한텐 다른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소민아가 말했다. “무슨... 무슨 일인데요? 왜... 지금까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신이랑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미 민아 씨한테 말했었어요. 다만 민아 씨가 내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뿐이죠.” “난 이만 갈게요. 나머지 업무는 이미 우림 씨에게 인계했어요. 우림 씨가 내 자리를 대신할 거예요.” 소민아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신뢰
“의사 선생님... 선생님...” 송시아는 가득 흥분한 채 의사를 불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달려와 전연우를 진찰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환자분 상처는 아주 잘 아물고 있습니다. 아까 정말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반응이 있었다면, 신경이 스스로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곧, 혹은 예정보다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송시아는 환희가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좋은 소식이었다. 송시아는 전연우의 침대에 앉아 연고를 꺼내 손가락에 조금 묻히고는 그의 옷을 걷고 이미 아문 상처에 발랐다. “연우 씨, 이 팔찌 장소월이 준 거 맞지? 서철용이 당신에게 한 말 전부 다 들은 거야?” “당신도 지금 당장이라도 깨어나서 장소월을 보고 싶겠지?” “당신들은 날 너무 얕잡아 봤어.” “당신의 흉터... 없어지지 않도록 몸에 남겨둬야겠어. 이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잊지 못하게 말이야.” 송시아가 그에게 쓰는 연고는 최고급이라 시중에서 개당 2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흉터 제거뿐 아니라 상처 회복도 빠르게 해준다. 그녀는 휴지를 꺼내 연고를 닦아냈다. 그때 송시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송 대표님, 그 팔찌는 비슷한 디자인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닷가 쪽에서 파는 팔찌는 거의 다 흡사한 유형이거든요. 완전히 똑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마지막 3초를 남기고 연결되었다. 송시아가 말했다. “전연우는 곧 깨어날 거예요. 이직 준비는 다 됐어요? 이랑 씨 마음만 굳건하다면, 내가 꼭 민아와 순조롭게 결혼할 수 있게 할게요. 마음이 변한다 해도 상관없어요. 신씨 집안은 나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니까.” 신이랑이 물었다. “성세 그룹 주식은 왜 팔았어요? 뭘 하려는 거죠?” 송시아는 한쪽 팔을 가
서철용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전 나중에 갈 거예요. 거긴 아주 안전한 곳이에요.” 도우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사모님을 모시러 가겠습니다.” 군병원 아래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흰색 장갑을 끼고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배은란은 딸을 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돼?” “민용 씨, 나 혼자 가는 거 무서워. 같이 가자, 응?” 서철용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이 끝나면 금방 너한테 갈게. 네가 가는 곳은 내 스승님과 사모님의 댁이야. 그분들은 평생을 의학에 헌신하셨고, 자녀가 없어서 날 친아들처럼 여기셨어. 너에게도 잘해주실 테니까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 그분들은 분명 너 좋아하실 거야.” 배은란은 그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거나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차에 올라탔다. “그럼 꼭 빨리 나한테 와야 해.” “그래.” 점차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서철용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배은란, 이건 내가 너한테 진 빚이야.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땐 진짜 서민용이 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완전한... 서민용을 너에게 돌려줄게!’ 그날 밤, 서민용은 분명히 죽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 서철용이 그를 지옥에서 구출해 냈다. 다만, 그의 상황은 아직도 좋지 않다. 여전히 스승님의 병원에 누워 연명 치료만 받고 있을 뿐이다. 전연우 외에, 지금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바로 서민용이다...배은란이 계속 그의 곁에 있으면, 서철용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녀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배은란은 정신과 약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기억도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반산 별장. 송시아는 바로 그 소식을 들었다. “쯧,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서 형수를 얻
전연우가 어떻게 성세 그룹 주식 매각을 허락할 수 있지? 혹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파도가 넘실거리며 해안에 부딪히고 있었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해초와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를 질근 묶고는 조개껍데기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손에 들고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장소월 앞으로 걸어와 유창한 러시아어를 말했다. 이곳은 외딴곳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예쁜 언니, 이 목걸이 선물로 줄게요.” 전설에 따르면, 예전 이곳은 황량한 사막이었는데, 신의 딸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아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물을 찾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고, 그 후 바다가 되어 이 해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에선 조개껍데기와 소라를 신의 은총을 받은 물건이라고 믿고 있다. 이걸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하면 상대방이 신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주는 것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외에 남녀가 서로에게 프러포즈 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휴대폰에 서철용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번에 보낸 팔찌, 전연우가 아주 좋아하네요. 수고했어요.] 장소월은 그의 상황을 묻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 메시지를 지웠다 썼다 반복했다. 시간이 꽤 오래 흘렀는데도 전연우에 대한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유일한 소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유튜브 계정에서 올린 결혼식 다음 날 그녀와 전연우가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영상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이곳에 머무른 이후로 그녀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편안하지 못했다. 산장 신혼 방에서 칼날을 전연우의 가슴에 꽂아 넣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시뻘건 피를 온몸에 뒤집어썼었다. 그날 밤 손바닥에 스며든 붉은 피는 아무리 씻어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었다. 장소월은 한참을 갈등하다가 휴대폰을 들어 한마디 물었다. [그 사람은 괜찮나요?] 어린 소녀가 말했다. “언니, 나랑 같이 놀러
기성은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했다면, 전연우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잔혹한 그의 출신이 늘 발목을 잡았다. 모든 사람의 출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은도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신만의 아픈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의 과거는 그저 과거라는 단어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소민아가 정말로 기성은과 함께하려 한다면, 그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그들 손으로 직접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소민아는 이 난관을 스스로 떨쳐내고 성장해야 한다. 그녀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면, 그녀와 기성은의 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소민아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전혀 몰랐다. 송시아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대표 사무실. 소민아는 결국 송시아와 직접 대면하여 분명히 따져 묻기로 했다. 송시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회사 경영이 좀 힘들어서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 문제 있어?”소민아가 말했다. “전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거예요. 지금 이 행동은 회사를 망치는 거예요.”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팔려고 내놓은 주식은 내가 갖고 있던 거야. 문제 있어?” “혹시 다른 일 없으면, 언니랑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까?” “당신을 보면, 입맛이 뚝 떨어져요.” 소민아는 곧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송시아가 한 말은 단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대체 왜 주식을 팔고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중, 마케팅팀 직원 몇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민아는 구석에 서 있었던지라 아무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 다음 주부터 연차 시작이에요. 외국에 다녀올 생각인데, 지유 씨는요? 연차 다 썼어요?” “아직이요.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너무 짜증 나요!” 그 순간 소민아의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은 하지 말고 내가 지시한 일이나 해요.”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송시아는 회사 대부분의 주식을 던져버렸다. 성세 그룹이 설립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호시탐탐 주식이 시장에 풀리기를 노렸다. 하지만 주식은 줄곧 전연우와 송시아의 수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었다. 다들 그들의 주식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절대 한 푼도 빼내 오기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지금 팔려나가는 10%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소민아도 이 소식을 듣고 서철용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성세 그룹이 주식을 처분한다는 소식은 30분도 안 되어 이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서철용은 발코니에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코웃음을 쳤다. “전연우, 송시아가 정말 네 성세 그룹을 완전히 거덜 내려고 하고 있어.”“너와 송시아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율은 똑같고, 인씨 가문이 3% 지분을 갖고 있어. 만약 인씨 가문이 그 3%를 양도한다면, 네 성세 그룹 대표 자리는 언제든지 빼앗길 수도 있겠어.” “송시아가 하는 꼴을 보니 너를 완전히 새장 속에 가둘 모양이야.” 서철용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연우, 다 자업자득이야. 배은란은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서철용 앞으로 걸어와 휴대폰을 건넸다. “민용 씨, 전화 왔어.” 서철용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일어서 배은란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익숙한 전화번호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안 끝났어요?”소민아는 미안한 듯 말했다. “서 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서 선생님이 제 전화번호를 차단해서 와이프분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서 연락드린 거예요. 뉴스 보셨죠? 송시아가 성세 그룹 주식을 매도하고 있어요. 서 선생님, 송시아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서철용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앞에 있는 여자를 보고는 애써 감정을
송시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목적을 달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경호원에게 말했다.“퇴원 준비해요.”경호원이 말했다.“송 대표님, 간호사가 대표님은 상처가 아물기 전엔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송시아는 아랫배를 만지며 빙그레 웃었다.“이 고비만 넘기면 나도 한동안 푹 쉬어야겠어요.”“알겠습니다.”저녁 12시 커다란 승합차 안, 송시아는 누워있는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어떤 곳에 도착했다. 핸드폰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천 명은 족히 담을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랗고, 쥐 죽은 듯 고요한 그곳 별장 안은 의료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 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 주치의 또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주위엔 높디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전연우를 가두기 위해 만든 새장 같았다.안방은 수영장 하나도 담을 수 있을 만큼 드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연우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의사는 그의 손등에 다시 링거 바늘을 꽂고 있었다.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탓에 송시아도 많이 피곤했던지라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옷을 벗고는 반신욕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우유를 마시며 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얼마 후,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남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다가왔다.송시아는 매끄러운 긴 다리를 뻗어 눈앞의 남자를 도발했다.“여기 찾지 못할 줄 알았어요.”“나한테 누군가를 찾는 건 아주 간단한 거라고 했잖아.”송시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내가 알아봐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요?”“그건 알려줄 수 없어. 너희들 사이 일엔 끼어들지 않을 거야. 난 그냥 네 뱃속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 내 대를 잇게만 하면 돼.”송시아는 씁쓸한 얼굴로 컵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