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가 또 무슨 미친 짓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방문이 열리자 문을 억지로 부순 사람은 톱을 들고 떠났다.장소월은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섹시한 쇄골 사이에 반달 모양의 아름다운 주얼리가 드리워졌다. 장소월은 무덤덤한 눈빛이었다.“또 뭘 하려는 거야?”전연우는 침대맡 서랍에 약병 하나가 놓인 걸 보았다. 그걸 들어서 보니 수면제였다. 그러니까 장소월이 지금까지 잔 이유는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전연우 씨, 이분 괜찮아 보이시는데...”전연우가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일단 나가 있어요.”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장소월은 전연우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멀쩡한 문을 부수다니.전연우가 커튼을 열자 눈 부신 빛이 안으로 들어왔고 장소월은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 눈을 감았다.“지금이 몇 신 줄 알아?”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이 장소월의 얼굴을 가렸다. 햇빛을 받은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하얘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오빠가 날 여기 가뒀는데 내가 자는 것 빼고 뭘 할 수 있겠어?”그녀에게서 생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장소월은 마치 당장이라도 시들 것 같은 장미꽃 같았고, 힘없이 축 처진 꽃잎은 언제라도 시들 것만 같았다.장소월은 다시 누웠다. 그러나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연우가 다시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옷 입어. 나랑 같이 내려가서 밥 먹자.”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영문 모를 분노가 불타올랐다.장소월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진짜 오빠라도 된 것처럼 아빠를 대신해 날 가르치려 들지 마.”장소월은 자기 손을 빼내면서 비아냥댔다.“내게 오빠는 영원히 한낱 강간범일 테니까.”전연우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문까지 박살 낸 걸 보면 어젯밤 했던 말이 효과가 있는 듯했다. 전연우는 그녀가 방 안에
“전연우 씨.”송시아는 세련된 숄과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큐빅이 가득 박힌 가방을 들고 있었다. 널따란 호텔 로비에서 그녀가 가장 눈에 띄었다.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전연우의 모습에 송시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전연우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송시아를 못 본 척 지나쳤다.호텔 측에서 곧 기사를 보내 두 사람을 병원으로 모셨다. 차 안에서 장소월은 갑자기 온몸이 추졌워다. 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가 얇은 담요를 가져와서 덮어준 뒤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추워.”전연우는 식은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괜찮아. 이제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문뜩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그건 평생 겪어본 적 없는 당황스러움이었다.병원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수액을 맞다가 눈을 떴다.징크스 의사가 말했다.“드디어 깼네요.”“소월 씨 남자 친구는 병원비 내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소월 씨, 소월 씨 남자 친구는 소월 씨 상태를 알고 있나요? 지금 상태가 너무 심각해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해요. 지금 의료 수준으로는 치료할 수 있어요.”징크스는 장소월의 주치의였다.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병원에 온 것이었는데 전연우가 자신을 이 병원으로 데리고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장소월은 힘없는 손으로 징크스의 가운을 붙잡았다.“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말아 줄래요? 부탁이에요.”징크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설득했다.“소월 씨, 소월 씨는 반드시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해요. 소월 씨는 제 환자잖아요. 전 소월 씨를 책임져야 한다고요.”장소월이 말했다.“그럴게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요. 조금만 더 시간을 줄래요?”“정말 못 말리네요. 소월 씨, 소월 씨 몸이니까 잘 보살펴야 해요.”“고마워요.”장소월은 손을 놓았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했다.전연우가 장소월의 상태를 물었을 때, 징크스는 그녀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숨기고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기혈이 부족하고
“...”전연우는 침묵했다. 인정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장소월은 뒤에 있던 베개를 그의 얼굴에 던졌다.“진짜 역겨운 변태 새끼. 짐승만도 못한 새끼.”장소월이 욕해도 전연우는 개의치 않는 얼굴로 바닥에서 베개를 주운 뒤 먼지를 털어서 그녀의 등 뒤에 놓아주었다.“의사 선생님이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대표님, 죽 사 왔습니다.”기성은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그리고...”“소월 씨, 오랜만이에요.”기성은의 뒤에 인시윤이 있었다. 그녀는 과일바구니를 들고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인시윤은 전연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걸 발견했다.“연우 씨가 소월 씨를 찾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프랑스까지 찾아와봤어요. 소월 씨가 무사한 걸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인시윤이 언제 왔는지, 조금 그들이 나눈 대화를 어디까지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곧바로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사실 은근히 거리를 두었다.사실 장소월은 인시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전연우가 좋은지 말이다.그러나 그녀는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었다.아이까지 있는데 안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너무 급하게 와서 가져온 게 없네요. 그래서 밑에서 과일 좀 샀는데 먹을래요? 내가 사과 깎아줄게요.”장소월은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미안해요, 미리 연락도 안 하고 와서. 조금 놀랐겠어요. 혹시 쉬는 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죠?”“아뇨.”장소월은 그녀가 병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굳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침대 옆에 앉아있는 전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인시윤은 전연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장소월이 기억하기로 인시윤은 아주 대범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인시윤에 대한 장소월의 기억은, 인시윤이 빨간 머리를 했을 때 멈춰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인시윤은 긴 머리를 잘라서 단발이었다. 홍콩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타일에 옷차림마저도 정숙한 것이 사람이 완전히 달
장소월은 확실히 배가 고팠다. 그가 나타나서부터 몇 번이나 끼니를 걸렀기 때문이다.그래서 지금 위가 아플 정도였다.장소월은 결국 억지로 죽 한 그릇을 비워야 했다. 지금은 속이 울렁거리면서 토하고 싶었다.전연우는 사과를 깎아서 먹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피가 이불 위로 떨어졌다.“움직이지 마.”장소월이 코피를 닦으려는데 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그는 장소월을 부축해 고개를 들어 올리게 한 뒤 휴지로 그녀의 가슴팍을 닦아줬다. 옷에도 피가 묻은 것이다.“... 또 뭘 먹은 거야? 왜 코피가 나?”장소월은 대답하지 않았다.전연우는 바삐 돌아쳤다. 그는 호출 벨을 눌러서 간호사를 부른 뒤 이불을 바꾸고 링거를 들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매번 코피를 흘릴 때마다 장소월은 온몸에 힘이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이 사람이 정말 전연우일까?예전의 그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전연우가 이번에 그녀와 잘해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그들은 이제 불가능했다.장소월은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또 잠이 쏟아졌다.저항할 수도 없었고 또 피곤했다.전연우는 그녀를 세면대 위에 앉힌 뒤 깨끗한 타올에 물을 묻혀 그녀의 몸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줬다.그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하는 모습은 마치...모든 일을 끝냈을 때, 간호사도 침대 정리를 마쳤다. 장소월은 조용히 침대 위에 누웠다. 그녀는 이미 잠든 상태였다.전연우는 침대 옆에 서서 휴지로 손을 닦은 뒤 쓰레기통에 버렸다.“깨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요.”간병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오후에는 회의가 있어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성세 그룹 해외 지사.기성은이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변에 사람들이 없자 기성은은 곧바로 잘못을 인정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인시윤 씨가 제게 연락해서 대표님 스케줄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전연우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면서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이번 달
“송 비서님, 대표님이 의사 선생님 제외하고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송시아는 병실 문 앞에서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혔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책임을 다하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너무 융통성 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건 안 좋아요. 뒤늦게 내 탓 하지는 말아요. 난 전연우 씨 곁의 사람이니까. 날 봤으면 대표님을 본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야 할 거예요. 오늘 전연우 씨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고 해도 난 꼭 들어가려고 했을 거예요.”문 앞의 두 경호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 떠나시기 전 특별히 당부했었습니다. 절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요. 이건 저희 직책이니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송 비서님.”“정말 충직한 개네요.”송시아가 비아냥댔다.그녀는 팔짱을 두르고 도도하게 턱을 들며 말했다.“그러면 안에 들어가서 전해요.”“송시아가 만나려 한다고.”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경호원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약을 먹고 있던 장소월은 갑자기 들리는 발소리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 약을 숨겼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전연우가 아닌 걸 확인한 그녀는 안도했다.“무슨 일이죠?”경호원이 말했다.“아가씨, 송 비서님께서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그 이름은 장소월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장소월이 대답했다.“아무도 안 만날 거니까 돌아가라고 하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송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 씨, 우리 그래도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왜 아직도 이렇게 날 무서워하는 거죠?”경호원이 말했다.“송 비서님,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장소월은 이불을 꽉 쥐었다. 심장이 떨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경호원을 보고 말했다.“괜찮아요. 일단 나가 있어요.”“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송시아는 마치 승자처럼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일부러 걱정하는 척하면서 이불을 끌어 올려 줬다.“지금은 우리 둘뿐이니까 시치미 뗄 필요 없어요. 그냥 터놓고 얘기하죠. 장소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신가요?”장소월이 부르르 떨며 손톱으로 손바닥을 눌렀다.“나가세요!”“얼굴이...”“나가라고 했어요!”전연우는 회의가 끝난 뒤, 호텔로 바로 향하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에 갔다.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종업원이 붉은색 장미를 들고 와 두 사람 앞에 놓아주었다.전연우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오늘 병원에 갔었어?”송시아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고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장소월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요?”그녀가 빨간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방긋 웃었다.“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저에겐 원칙이 있다는 걸요. 누가 먼저 절 건드리지 않으면 저도 나서지 않아요. 이번엔 장소월이 무례한 말을 했기 때문에 작은 벌을 내렸을 뿐이에요.”“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기껏해야... 연우 씨가 며칠 더 달래줘야 하겠죠.”전연우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때렸어?’“뭐. 그렇죠.”송시아는 부인하지 않았다.“물론 사심도 담겨 있었어요. 그러니까 누가 전생에서 우리 부부 사이를 갈라놓으래요? 그 정도도 많이 봐준 거예요.”전연우가 손을 들자 옆쪽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를 멈추었다. 이어 그는 정장 호주머니에서 팁 몇 장을 던져주고는 지갑을 다시 넣었다.“너한테 너만의 규칙이 있듯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분명히 말했었잖아. 일이 똑똑히 밝혀지기 전엔 혼자 찾아가지 말라고.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우 씨, 우리 두 사람이야말로 한편이에요. 어찌 됐든 장소월은 외부인일 뿐이고요.”“그것 또한 네가 장소월을 때린 이유가 되기엔 충분하지 않아.”전연우가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번이 마지막이야.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장소월을 때린 복수 내가 해줄 거야.”송시아는 멀어져가는 사람을 보며 손을 짚고 일어섰다.“지금 당신이 가진 건 모두 내가 준 거잖아요. 거기 서요!”전연우는 고개도 돌리지
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내가 너한테 해야 할 질문이야. 너랑 송시아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날 이곳에 가두고 기생 취급하면서 농락하면 만족감이라도 들어? 응?”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장소월이 냉랭하게 시선을 피했다.“송시아는 네 사람이야. 난 송시아를 당해낼 능력이 없어. 앞으론 네 사람을 잘 간수하길 바라. 다시는 미친 듯이 사람을 물고 늘어지게 하지 마.”전연우가 말했다.“내가 송시아한테 너에게 사과하라고 할게.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풀릴지 얘기해봐. 뭐든 다 동의할 수 있어.”전연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장소월은 힘껏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 난 네가 역겨워.”“날 놔달라고 하면 허락해줄 거야? 아니면 더는 할 얘기 없으니까 나가. 나 잘 거야.”장소월은 이불 속으로 들어간 뒤 얼굴까지 덮어썼다. 더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전연우와 송시아가 한 침대에서 뒹구는 화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이 시간 전연우에게 구속까지 당하니, 장소월은 자신 또한 흙탕물에 몸을 흥건히 적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장소월은 이제 도망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통은 없을 테니 말이다.“푹 쉬어. 내일 다시 올게.”전연우는 자리에서 일어서 방을 나서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병원에서 며칠 치료를 받고 나니 장소월의 몸은 거의 모두 회복되었다.그날 일이 있고 난 이후, 송시아는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장소월은 입원 병동 로비에 앉아 햇볕 쪼임을 하고 있었다. 인시윤이 어느새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오늘 날씨 참 좋아. 그렇지?”장소월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꾹꾹 담아왔던 그 질문을 꺼냈다.“그 사람은 잘 지내?”인시윤은 장소월이
“서현이한테 들었는데 요즘 작업실에 안 나간다면서?”장소월은 등 뒤에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함부로 손을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였다.“죄송해요. 선생님. 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선배님한테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어요.”“어디가 아픈데?”“그냥 열이 조금 났어요. 내일이면 퇴원할 거예요.”“요즘 비가 자주 내리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 건강이 제일 중요하잖아.”“네. 선생님. 알겠습니다.”장소월은 허태현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를 밀어내고 싶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병실엔 다른 사람들도 있어.”“안 볼 거야.”“나 너무 불편해. 놔 줘.”전연우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고 약간의 자국이 남아있는 것 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4년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백옥같이 투명하고 하얀 피부가 반짝이고 있었다.그의 거친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옷 속 피부를 어루만졌다. 장소월이 이마를 찌푸린 채 그를 쏘아보았다.“선 넘지 마.”전연우는 그녀의 감정 따위 무시해버리고 손을 잡고 밥상 앞으로 걸어가고는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그 옆에 앉았다.“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먹어봐.”“언제 서울로 돌아갈 거야? 다른 할 일 없어?”장소월은 입맛이 없어 밥알 몇 개를 깨작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시간을 내어 너랑 함께 있어 주려고 왔잖아.”“필요 없어.”장소월은 곧바로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하지만 난 그러고 싶어.”장소월은 그와 계속 같은 파리 하늘 아래 머물 걸 생각하면 짜증이 몰려왔다.“심심하면 다른 일이나 알아봐.”장소월은 반 그릇 정도 먹고 난 뒤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소파에 가 복잡한 얼굴로 책을 읽었다.머릿속에 이상했던 인시윤의 말이 맴돌았다. 왜 서울에 와 보라고 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