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가 허리를 굽혀 조금 전 장소월의 책에서 떨어져나온 사진을 주웠다.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이어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송시아에게로 향했다.“내 허락 없이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말했잖아.”전연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늘한 기운이 또다시 병실에 감돌았다.송시아는 전연우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장소월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렇게 걱정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장소월 한 명 따위는 내가 관심을 쏟을 가치도 없으니까요. 지금 제가 찾아온 건 장소월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나랑 했던 약속 잊으면 안 돼요!”“나야말로 연우 씨 미래의 조강지처란 말이에요! 이대로 놔두다간 당신이 영혼까지 잃어버리게 될까 봐 온 거예요.”전연우가 말했다.“내 일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연우 씨! 오늘 저 여자를 따라 나간다면 난 회사 주식을 거두어들일 거예요. 지금 손에 쥔 모든 것이 누가 가져다준 건지 잊었어요?”송시아가 그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또다시 그녀를 무시해버린 채 자리를 떴다.송시아는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린 이번 생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윤서도 죽지 않았고, 장소월도 전연우와 결혼하지 않았다. 이런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 역시 그런 걸로 전연우를 협박하고 싶지 않았다.전연우는 아무런 협박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를 협박하는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고 만다.하지만 그런 건 무섭지 않았다. 송시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건 그녀의 전연우가 이젠 저번 생에서 사랑했던 그 전연우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지금의 전연우는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낯설었다.전생에서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조금의 친절함도, 조금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저번 생에서의 일이 똑같이 이번 생에서도 반복되어야만, 그는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걸까?백윤서는 죽어야 마땅하다!인시윤도 그녀의 앞에 나타나서는
장소월은 입술이 따끔거림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그의 흔적을 씻어냈다. 전연우는 일부러 이러는 걸까...장소월은 일을 시작하기 전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비춰보니 입술에 상처가 생겨 있었다.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통증에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개도 아니고...목에 남아있는 키스 마크는 이미 파운데이션으로 가렸다.그때,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서현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냉담한 얼굴로 장소월을 힐끗 쳐다본 뒤 손을 씻고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장소월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장소월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현에게 자신을 향한 적의가 있음을 감지했다. 두 사람은 같은 작업실에 있었지만, 서현은 별로 그녀와 접촉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 빼고는 종래로 먼저 그녀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장소월도 얼른 정리하고 작업실로 돌아갔다.문을 열어보니 자료를 잔뜩 안고 있는 박원근과 마주쳤다.“소월아, 너 병원에 있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네. 괜찮아져서 예정보다 빨리 퇴원했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괜찮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옆에서 복사를 마친 주시윤이 장소월의 상처를 보고는 말했다.“너 입 왜 그래? 어제 약혼자와 뜨거운 밤이라도 보냈어?”장소월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저 4년 전에 이미 파혼했어요. 이젠 약혼자 없어요.”“뭐라고?”누군가 깜짝 놀라며 지른 소리 때문에 작업실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장소월에게로 향했다.장소월이 그 말을 꺼내기 전 다들 화창한 오늘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장소월은 그들에게 더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오해 때문에 소문이 일파만파 커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작업실이 몇 초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주시연이 얼른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제가 먼저 파혼하자고 한 거예요. 우린 별다른 일 없이 합의하고 헤어졌어요.”설명을 마친 장소월이
장소월은 초안을 모두 그린 뒤 사진을 찍어 의뢰인의 메일에 보냈다.잠깐 쉬는 시간, 장소월은 어깨를 두드리며 정수기 앞으로 가 물 한 컵을 받았다.핸드폰을 켜고 시간을 보니 저녁 7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이어 문자를 보내왔다.장소월은 대충 훑어보고는 전원을 꺼버렸다.30분 뒤, 상대 회사로부터 별문제가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장소월은 초안에 색을 입힐 준비를 시작했다.그녀가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어깨에 무언가 부딪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서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길 똑바로 보고 다녀.”장소월은 곧바로 사과했다.8시 30분이 되자 작업실 사람들이 속속 퇴근했고 그녀 혼자만 남게 되었다.10시 반, 피곤해진 장소월은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돌연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남자의 날카로운 턱선을 본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내가 오지 않으면 여기에서 자려고 했어?”전연우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아직 안 끝났어.”“내일 계속해도 되잖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나 가방 정리해야 하니까 기다려.”전연우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장소월은 물건을 가지러 작업실로 돌아갔다. 의외로 서현도 아직 퇴근 전이었다.그녀가 쭈뼛거리자 전연우가 말했다.“얼마나 더 가져가야 해?”장소월은 아직 절반 정도 작업이 남았기에 집에 돌아가 계속 그리려는 생각이었다.그녀는 전연우의 뒤를 따라 밖에 나가 차에 올라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의도를 알아챈 장소월은 다급히 거절했다.“나 혼자 할 수 있어.”장소월이 안전벨트를 맸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호텔에 도착하자 장소월은 그와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전연우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거 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장소월은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센서등이 번쩍이고 있는 긴급 계단 통로.장소월이 벽에 기댄 채 거대한 그림자에 깔려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코끝을 맞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계단에서 해볼까?”희미하게 빛나는 센서등이 전연우의 서늘한 얼굴을 비추었다. 그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장소월은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노기 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전연우, 이러지 마. 사람이 올 거야.”전연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아가, 딱 한 번만, 응?”장소월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를 보니 가슴이 꽉 막혀왔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날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잖아.”전연우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고개를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을 마비시킬 듯한 전류가 찌릿찌릿 전해졌다. 야릇한 분위기가 복도에 만연했다.이곳에서 하겠다고?미친놈.장소월은 오늘 치마를 입었다. 어쩌면 모두 다 그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머물게 된 이후부터 그녀의 옷장엔 온통 각양각색의 롱 원피스거나 스커트로 채워졌는데 모두 종아리 절반 정도까지 오는 기장이라 다리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시간, 그는 짐승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그의 강력한 힘에 눌려 장소월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막고 있으니 손바닥으로 뜨거운 온도가 전해졌다. 그의 체온은 끊임없이 올라갔고 그의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그럼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문지르기만 할게.”“싫어! 악!”장소월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시선 아래, 그의 허리 위에 치마를 헤치고 나온 장소월의 두 다리가 올려졌다. 그 위험한 자세에 장소월은 넘어질까 봐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목을 잡았다.“나쁜 놈! 뭐 하는 거야! 빨리 내려와!”엘리베이터에 가까운 곳이라 혹여 누가 들을까 두려워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전연우
장소월은 척추가 마비되는 것 같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85층에 갓 도착한 그때, 돌연 비상계단 문이 벌컥 열렸다.“선생님, 아가씨,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시면 됩니다.”장소월은 이마를 찌푸렸다. 정말 사람이 올 줄이야.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전연우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이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해서요.”그는 장소월의 치마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이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그가 살짝 몸에 힘을 주며 움직였다.장소월은 깜짝 놀라며 괴로운 얼굴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 바람에 전연우는 아랫도리에서 통증을 느꼈다.장소월은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의 어깨에 완전히 기댔다.그 행동은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지게 했다. 필경 그녀가 주동적으로 가까이 다가온 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그녀는 그의 허리에 올렸던 다리에 힘을 풀었다.“이제 똑똑해졌네?”전연우는 그녀의 엉덩이를 톡 두드렸다.장소월은 그 틈을 타 그의 몸에서 뛰어내리고는 얼른 도망쳤다.전연우는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바지를 정리한 뒤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장소월은 방키를 찾으려 호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에겐 방키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느긋하게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에 장소월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고개를 휙 돌리고 옷을 정리했다.그때 옆방 문이 열리더니 기성은과 송시아가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상의하고 있는 듯했다.기성은이 말했다.“대표님.”전연우가 대답했다.“응.”송시아는 차가운 눈으로 장소월을 쳐다보았지만, 장소월은 못 본 척 시선을 피했다. 못마땅한 듯한 송시아의 얼굴을 보니 복수를 한 것 같은 쾌감이 느껴졌다.저번 생 장소월이 전연우의 아내였을 때, 송시아는 그녀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서 전연우와의 친밀감을 과시했다.이제 입
프랑스의 야경은 국내의 야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88층에서 내려다보니 수많은 조명이 저마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반면 남자의 눈빛은 저 하늘에 걸려있는 달보다도 더 차가웠다.전연우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자욱한 연기를 내뿜었다. 송시아가 다가와 분노에 씩씩거리며 남자에게 따져 물었다.“이건 내가 두 번째로 당신에게 고개 숙이는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연우 씨,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잖아요.”송시아는 다시 태어나 그를 성세 그룹 대표 자리에 올려놓은 뒤 그보다 0.1퍼센트 더 많은 주식을 쥐고 있으면 그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모든 일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했다.전연우는 장소월에게 매달리고 있는 반면, 송시아는 매일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녀는 전연우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는 사다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전연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얼굴은 백윤서와 비슷했지만, 윤서에게선 송시아와 같은 사람을 짓누르는 포스는 없다. 하지만 송시아의 일 처리 방식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일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없다면 송시아는 그에게 있어 분명 꽤 괜찮은 선택이다.전연우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간섭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여자가 자신의 앞에 나서 억압하고 옥죄는 건 더더욱 못 견뎌 한다.“우린 일 이야기만 할 수 있어. 개인적인 일은... 네가 무슨 자격으로?”“난 연우 씨 미래의 와이프예요. 이래도 자격이 부족해요?”송시아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부부가 모순이 생겨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자욱한 연기가 그의 어두운 눈동자를 감쌌다. 그는 손가락으로 툭툭 재를 떨어뜨리고는 말했다.“내가 너와 결혼할 거라는 거 어떻게 확신해?”“연우 씨, 지금 가진 부와 명예 누가 줬는지 잊었어요? 예전 나
“1년 8000만 원의 학비에 생활비까지... 너한텐 천문학적인 숫자 아니야? 설사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비만으로도 넌 숨쉬기조차 힘들 거야.”“네가 서울에 오면 장애인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때문에 너한테 선택지라곤 고향에 있는 지방대 하나밖에 없었어. 내 말이 틀려?”송시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전연우가 입꼬리를 슥 올리더니 말을 이어갔다.“서울에 왔다는 건 네 어머니가 장애인이 되고 3년 뒤 돌아가셨다는 걸 설명해. 그래야 서울에 올라오는 길을 선택할 수 있거든.”“네 학력은 그저 지극히 평범한 지방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서울엔 종래로 인재가 부족해 본 적이 없어. 거기다 넌 능력도 별로 출중하지 않으니 당시 남원 그룹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가 만나게 된 이유는 네가 남원 그룹의 직원이 되었기 때문일 거야.”전연우는 그녀를 훤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당황스러움이 엄습했다.왜냐하면... 그의 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송시아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남자는 단번에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지했다.전연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몇 년간 지켜본 결과, 확실히 여러 가지 습관이 나랑 비슷해.”“그래서 너한테 끌려 침대에까지 올랐겠지.”“구체적으로 무슨 습관인지는 너만 알 거야.”“송시아, 네 주제를 똑똑히 알아둬. 설마 정말 네가 없었다면 성세 그룹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전연우가 송시아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잠옷에 잡힌 주름을 펴주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너 송시아가 없었어도 난 분명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을 거야.”송시아의 행동은 전연우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완전히 분출하지 않은 건 그 역시 저번 생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송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이 빠진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전연우는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의 늘씬한 그림자가 천
그는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켜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장과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있는 장소월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장소월은 하얀색 얇은 잠옷을 입고 아랫배엔 작은 담요를 덮고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선이 저도 모르게 치마 아래로 향했다. 그녀의 몸을 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전연우는 문을 닫은 뒤 피곤한 얼굴로 옷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는 욕실에 들어갔다.장소월은 꿈속에서 물소리를 들은 것 같아 잠시 깨어 몸을 뒤척였지만 이내 다시 잠들었다.전연우는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장소월의 옆에 누웠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전연우는 그녀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긴 뒤 함께 이불을 덮었다.그는 하얀색 치마를 헤집고 들어가 거친 손을 그녀의 허리에 올렸다.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손에 전해져오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장소월은 위험이 닥쳤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폭풍 같은 키스가 퍼부어진 뒤로 단 한 겹 입고 있던 옷 거지마저 찢겨버렸다. 약물의 작용 때문인지 장소월은 뇌가 마비된 듯했다.이어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숨이 턱턱 막혀오는 답답함이 전해졌다.장소월이 몽롱한 정신으로 간신히 눈을 떴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한 솜사탕과도 같이 나른했다.“전연우?”전연우의 하반신이 천천히 움직였다.그녀가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하~”전연우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이어 입술...두 사람 모두 땀에 흠뻑 젖어서야 도저히 끝낼 것 같지 않던 전연우가 멈추었다. 장소월은 그제야 그의 품에서 해방되었다.그의 품에 안겨 욕실에서 나오니 바깥은 이미 날이 밝아있었다. 그녀는 전연우의 품 안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전연우는 장소월이 설정한 8시 알람을 취소해 버렸다. 하여 그녀가 깨어났을 땐 어느덧 오후 1시가 되어있었다.장소월이 눈을 뜨니 이미 깨어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는 남자와 정연하게 정리된 그의 넥타이가 보였다. 그 광경은 그녀가 예전 계속 보아왔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