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신가요?”장소월이 부르르 떨며 손톱으로 손바닥을 눌렀다.“나가세요!”“얼굴이...”“나가라고 했어요!”전연우는 회의가 끝난 뒤, 호텔로 바로 향하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에 갔다.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종업원이 붉은색 장미를 들고 와 두 사람 앞에 놓아주었다.전연우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오늘 병원에 갔었어?”송시아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고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장소월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요?”그녀가 빨간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방긋 웃었다.“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저에겐 원칙이 있다는 걸요. 누가 먼저 절 건드리지 않으면 저도 나서지 않아요. 이번엔 장소월이 무례한 말을 했기 때문에 작은 벌을 내렸을 뿐이에요.”“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기껏해야... 연우 씨가 며칠 더 달래줘야 하겠죠.”전연우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때렸어?’“뭐. 그렇죠.”송시아는 부인하지 않았다.“물론 사심도 담겨 있었어요. 그러니까 누가 전생에서 우리 부부 사이를 갈라놓으래요? 그 정도도 많이 봐준 거예요.”전연우가 손을 들자 옆쪽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를 멈추었다. 이어 그는 정장 호주머니에서 팁 몇 장을 던져주고는 지갑을 다시 넣었다.“너한테 너만의 규칙이 있듯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분명히 말했었잖아. 일이 똑똑히 밝혀지기 전엔 혼자 찾아가지 말라고.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우 씨, 우리 두 사람이야말로 한편이에요. 어찌 됐든 장소월은 외부인일 뿐이고요.”“그것 또한 네가 장소월을 때린 이유가 되기엔 충분하지 않아.”전연우가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번이 마지막이야.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장소월을 때린 복수 내가 해줄 거야.”송시아는 멀어져가는 사람을 보며 손을 짚고 일어섰다.“지금 당신이 가진 건 모두 내가 준 거잖아요. 거기 서요!”전연우는 고개도 돌리지
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내가 너한테 해야 할 질문이야. 너랑 송시아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날 이곳에 가두고 기생 취급하면서 농락하면 만족감이라도 들어? 응?”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장소월이 냉랭하게 시선을 피했다.“송시아는 네 사람이야. 난 송시아를 당해낼 능력이 없어. 앞으론 네 사람을 잘 간수하길 바라. 다시는 미친 듯이 사람을 물고 늘어지게 하지 마.”전연우가 말했다.“내가 송시아한테 너에게 사과하라고 할게.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풀릴지 얘기해봐. 뭐든 다 동의할 수 있어.”전연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장소월은 힘껏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 난 네가 역겨워.”“날 놔달라고 하면 허락해줄 거야? 아니면 더는 할 얘기 없으니까 나가. 나 잘 거야.”장소월은 이불 속으로 들어간 뒤 얼굴까지 덮어썼다. 더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전연우와 송시아가 한 침대에서 뒹구는 화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이 시간 전연우에게 구속까지 당하니, 장소월은 자신 또한 흙탕물에 몸을 흥건히 적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장소월은 이제 도망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통은 없을 테니 말이다.“푹 쉬어. 내일 다시 올게.”전연우는 자리에서 일어서 방을 나서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병원에서 며칠 치료를 받고 나니 장소월의 몸은 거의 모두 회복되었다.그날 일이 있고 난 이후, 송시아는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장소월은 입원 병동 로비에 앉아 햇볕 쪼임을 하고 있었다. 인시윤이 어느새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오늘 날씨 참 좋아. 그렇지?”장소월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꾹꾹 담아왔던 그 질문을 꺼냈다.“그 사람은 잘 지내?”인시윤은 장소월이
“서현이한테 들었는데 요즘 작업실에 안 나간다면서?”장소월은 등 뒤에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함부로 손을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였다.“죄송해요. 선생님. 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선배님한테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어요.”“어디가 아픈데?”“그냥 열이 조금 났어요. 내일이면 퇴원할 거예요.”“요즘 비가 자주 내리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 건강이 제일 중요하잖아.”“네. 선생님. 알겠습니다.”장소월은 허태현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를 밀어내고 싶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병실엔 다른 사람들도 있어.”“안 볼 거야.”“나 너무 불편해. 놔 줘.”전연우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고 약간의 자국이 남아있는 것 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4년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백옥같이 투명하고 하얀 피부가 반짝이고 있었다.그의 거친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옷 속 피부를 어루만졌다. 장소월이 이마를 찌푸린 채 그를 쏘아보았다.“선 넘지 마.”전연우는 그녀의 감정 따위 무시해버리고 손을 잡고 밥상 앞으로 걸어가고는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그 옆에 앉았다.“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먹어봐.”“언제 서울로 돌아갈 거야? 다른 할 일 없어?”장소월은 입맛이 없어 밥알 몇 개를 깨작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시간을 내어 너랑 함께 있어 주려고 왔잖아.”“필요 없어.”장소월은 곧바로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하지만 난 그러고 싶어.”장소월은 그와 계속 같은 파리 하늘 아래 머물 걸 생각하면 짜증이 몰려왔다.“심심하면 다른 일이나 알아봐.”장소월은 반 그릇 정도 먹고 난 뒤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소파에 가 복잡한 얼굴로 책을 읽었다.머릿속에 이상했던 인시윤의 말이 맴돌았다. 왜 서울에 와 보라고 한 걸
전연우가 허리를 굽혀 조금 전 장소월의 책에서 떨어져나온 사진을 주웠다.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이어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송시아에게로 향했다.“내 허락 없이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말했잖아.”전연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늘한 기운이 또다시 병실에 감돌았다.송시아는 전연우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장소월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렇게 걱정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장소월 한 명 따위는 내가 관심을 쏟을 가치도 없으니까요. 지금 제가 찾아온 건 장소월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나랑 했던 약속 잊으면 안 돼요!”“나야말로 연우 씨 미래의 조강지처란 말이에요! 이대로 놔두다간 당신이 영혼까지 잃어버리게 될까 봐 온 거예요.”전연우가 말했다.“내 일에 간섭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연우 씨! 오늘 저 여자를 따라 나간다면 난 회사 주식을 거두어들일 거예요. 지금 손에 쥔 모든 것이 누가 가져다준 건지 잊었어요?”송시아가 그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또다시 그녀를 무시해버린 채 자리를 떴다.송시아는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린 이번 생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윤서도 죽지 않았고, 장소월도 전연우와 결혼하지 않았다. 이런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 역시 그런 걸로 전연우를 협박하고 싶지 않았다.전연우는 아무런 협박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를 협박하는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고 만다.하지만 그런 건 무섭지 않았다. 송시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건 그녀의 전연우가 이젠 저번 생에서 사랑했던 그 전연우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지금의 전연우는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낯설었다.전생에서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조금의 친절함도, 조금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저번 생에서의 일이 똑같이 이번 생에서도 반복되어야만, 그는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걸까?백윤서는 죽어야 마땅하다!인시윤도 그녀의 앞에 나타나서는
장소월은 입술이 따끔거림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그의 흔적을 씻어냈다. 전연우는 일부러 이러는 걸까...장소월은 일을 시작하기 전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비춰보니 입술에 상처가 생겨 있었다.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통증에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개도 아니고...목에 남아있는 키스 마크는 이미 파운데이션으로 가렸다.그때,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서현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냉담한 얼굴로 장소월을 힐끗 쳐다본 뒤 손을 씻고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장소월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장소월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현에게 자신을 향한 적의가 있음을 감지했다. 두 사람은 같은 작업실에 있었지만, 서현은 별로 그녀와 접촉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 빼고는 종래로 먼저 그녀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장소월도 얼른 정리하고 작업실로 돌아갔다.문을 열어보니 자료를 잔뜩 안고 있는 박원근과 마주쳤다.“소월아, 너 병원에 있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네. 괜찮아져서 예정보다 빨리 퇴원했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괜찮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옆에서 복사를 마친 주시윤이 장소월의 상처를 보고는 말했다.“너 입 왜 그래? 어제 약혼자와 뜨거운 밤이라도 보냈어?”장소월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실 저 4년 전에 이미 파혼했어요. 이젠 약혼자 없어요.”“뭐라고?”누군가 깜짝 놀라며 지른 소리 때문에 작업실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장소월에게로 향했다.장소월이 그 말을 꺼내기 전 다들 화창한 오늘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장소월은 그들에게 더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오해 때문에 소문이 일파만파 커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작업실이 몇 초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주시연이 얼른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제가 먼저 파혼하자고 한 거예요. 우린 별다른 일 없이 합의하고 헤어졌어요.”설명을 마친 장소월이
장소월은 초안을 모두 그린 뒤 사진을 찍어 의뢰인의 메일에 보냈다.잠깐 쉬는 시간, 장소월은 어깨를 두드리며 정수기 앞으로 가 물 한 컵을 받았다.핸드폰을 켜고 시간을 보니 저녁 7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이어 문자를 보내왔다.장소월은 대충 훑어보고는 전원을 꺼버렸다.30분 뒤, 상대 회사로부터 별문제가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장소월은 초안에 색을 입힐 준비를 시작했다.그녀가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어깨에 무언가 부딪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서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길 똑바로 보고 다녀.”장소월은 곧바로 사과했다.8시 30분이 되자 작업실 사람들이 속속 퇴근했고 그녀 혼자만 남게 되었다.10시 반, 피곤해진 장소월은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돌연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 남자의 날카로운 턱선을 본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내가 오지 않으면 여기에서 자려고 했어?”전연우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아직 안 끝났어.”“내일 계속해도 되잖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나 가방 정리해야 하니까 기다려.”전연우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장소월은 물건을 가지러 작업실로 돌아갔다. 의외로 서현도 아직 퇴근 전이었다.그녀가 쭈뼛거리자 전연우가 말했다.“얼마나 더 가져가야 해?”장소월은 아직 절반 정도 작업이 남았기에 집에 돌아가 계속 그리려는 생각이었다.그녀는 전연우의 뒤를 따라 밖에 나가 차에 올라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의도를 알아챈 장소월은 다급히 거절했다.“나 혼자 할 수 있어.”장소월이 안전벨트를 맸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호텔에 도착하자 장소월은 그와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전연우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거 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장소월은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센서등이 번쩍이고 있는 긴급 계단 통로.장소월이 벽에 기댄 채 거대한 그림자에 깔려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코끝을 맞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계단에서 해볼까?”희미하게 빛나는 센서등이 전연우의 서늘한 얼굴을 비추었다. 그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장소월은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노기 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전연우, 이러지 마. 사람이 올 거야.”전연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아가, 딱 한 번만, 응?”장소월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를 보니 가슴이 꽉 막혀왔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날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잖아.”전연우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고개를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을 마비시킬 듯한 전류가 찌릿찌릿 전해졌다. 야릇한 분위기가 복도에 만연했다.이곳에서 하겠다고?미친놈.장소월은 오늘 치마를 입었다. 어쩌면 모두 다 그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머물게 된 이후부터 그녀의 옷장엔 온통 각양각색의 롱 원피스거나 스커트로 채워졌는데 모두 종아리 절반 정도까지 오는 기장이라 다리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시간, 그는 짐승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그의 강력한 힘에 눌려 장소월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막고 있으니 손바닥으로 뜨거운 온도가 전해졌다. 그의 체온은 끊임없이 올라갔고 그의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그럼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문지르기만 할게.”“싫어! 악!”장소월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시선 아래, 그의 허리 위에 치마를 헤치고 나온 장소월의 두 다리가 올려졌다. 그 위험한 자세에 장소월은 넘어질까 봐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목을 잡았다.“나쁜 놈! 뭐 하는 거야! 빨리 내려와!”엘리베이터에 가까운 곳이라 혹여 누가 들을까 두려워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전연우
장소월은 척추가 마비되는 것 같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85층에 갓 도착한 그때, 돌연 비상계단 문이 벌컥 열렸다.“선생님, 아가씨,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시면 됩니다.”장소월은 이마를 찌푸렸다. 정말 사람이 올 줄이야.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전연우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이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해서요.”그는 장소월의 치마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이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그가 살짝 몸에 힘을 주며 움직였다.장소월은 깜짝 놀라며 괴로운 얼굴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 바람에 전연우는 아랫도리에서 통증을 느꼈다.장소월은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의 어깨에 완전히 기댔다.그 행동은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지게 했다. 필경 그녀가 주동적으로 가까이 다가온 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그녀는 그의 허리에 올렸던 다리에 힘을 풀었다.“이제 똑똑해졌네?”전연우는 그녀의 엉덩이를 톡 두드렸다.장소월은 그 틈을 타 그의 몸에서 뛰어내리고는 얼른 도망쳤다.전연우는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바지를 정리한 뒤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장소월은 방키를 찾으려 호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에겐 방키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느긋하게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에 장소월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고개를 휙 돌리고 옷을 정리했다.그때 옆방 문이 열리더니 기성은과 송시아가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상의하고 있는 듯했다.기성은이 말했다.“대표님.”전연우가 대답했다.“응.”송시아는 차가운 눈으로 장소월을 쳐다보았지만, 장소월은 못 본 척 시선을 피했다. 못마땅한 듯한 송시아의 얼굴을 보니 복수를 한 것 같은 쾌감이 느껴졌다.저번 생 장소월이 전연우의 아내였을 때, 송시아는 그녀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서 전연우와의 친밀감을 과시했다.이제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