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간 후에 내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자신을 놓아준 전연우를 보면서 장소월은 약간 놀랐다.그가 이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가 언제 그녀의 말을 이렇게 잘 들었는가?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그를 욕했다.‘짐승 같은 놈!’장소월은 땅을 밟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전연우는 가운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헐렁한 옷깃 탓에 단단한 가슴근육이 다 드러났다. 그는 여유롭게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흰 연기를 뿜어내며 느긋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빠가 도와줄까?”장소월은 그를 무시한 채 고통을 참고 침대를 짚고 땅에서 일어나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거울에 비친 그녀의 피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치마는 그 흔적들을 가릴 수가 없었다.그녀는 순간 무력감을 느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능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초췌하고 창백했다.모든 일이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시간을 계산해보면 백윤서는 이미 졸업했을 테고 전연우는 오래전에 그녀와 결혼했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 제도에서 남천 그룹을 물려받고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장소월은 욕실에서 삼십 분 동안 어물어물하다가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있는 가방을 열어 확인했는데 중요한 물건들은 다 그대로 있었다.전연우는 느릿느릿하게 정장을 입고는 고개 숙여 소매에 있는 단추를 잠그고 떠나려는 장소월에게 말했다.“학교에 연락해 물어봤는데 어제 금방 예술 전시회를 열어서 오늘 휴식일이라던데. 학교로 돌아가는 건...”전연우는 옷을 입고 그녀 앞에 다가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이미 졸업했잖아. 소월아, 떠나고 싶다 거든... 다음엔 더 좋은 이유를 찾도록 해.”장소월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비켜!”
웨이터가 마지막 메뉴를 올렸다.“입맛에 맞아?”전연우는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를 보았다.장소월의 가방이 옆에 있는 의자에 놓여있었는데 그녀는 가방을 들고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경호원들이 있는 탓에 달아난다고 해도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나 여기 있기 싫어. 나도 할 일이 있어.”“무슨 일? 말해 봐.”장소월은 젓가락을 꽉 쥐고 말했다.“다음 주에 북사구 오색만에 가야 하는데 아직 준비 못 한 일이 많아서 이곳에 날 계속 남겨두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전연우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다 듣고 그녀에게 세 글자만 말했다.“가지 마.”장소월은 그녀가 무언갈 하려고 할 때마다 전연우가 왜 자꾸 참견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더는 학생이 아닌데 말이다.“이건 내 일이야. 당신이 뭔데 내 결정을 간섭하려고 해? 지금 우리 둘 관계로 말한다고 해도... 당신...”전연우가 그녀의 말을 끊고 손에 있던 젓가락을 놓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물었다.“그럼 한번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전연우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의 부정당한 관계를 승인하라고 물어보는 건가?그녀는 그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고.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꽉 쥐고 억지로 말했다.“당신은... 영원히 나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오빠야.”전연우는 사악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는 티슈로 입을 닦은 후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장소월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연우가 그녀의 뒤에 서서 손가락을 튕기자 기성은이 검은색 벨벳 액세서리 상자를 가지고 왔다. 열어보니 안에는 정교한 심플한 쇄골 체인이 들어있었다. 장소월은 은색 쪼각달 모양의 펜던트를 보자마자 온몸이 굳었다.전연우는 몸을 약간 숙이고 그녀의 목에 은색 체인을 걸어줬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매혹
장소월은 프랑스 패션의 도시로 알려진 오스만 상업 도로에 있는 한 쇼핑몰에 갔다. 그녀는 전에 이곳에서 며칠 동안 카운터 판매원으로 일했었다.장소월은 호텔에서 보내준 픽업 차에 앉아 쇼핑몰로 갔다.쇼핑몰에 들어간 후, 장소월은 옷을 고르는 척했다. 그녀는 경호원이 전연우에게 자신의 행방을 보고하는 듯 사진을 찍는 걸 보았다.장소월은 옷을 고른 후 여성 속옷 가게에 가서 많은 물건을 샀다.차에 앉은 남자는 폰의 진동을 느끼고 꺼내 보니 카드 결제 메시지였다. 그는 폰을 끄고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에 일억 정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기성은이 보고했다.“저녁 아홉 시 반쯤 송 비서가 공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전연우는 담담하게 답했다.“응.”“그럼... 모레 연회에도 평소처럼 송 비서를 데리고 가시나요?”전연우는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다.“드레스는 준비됐어?”“사이즈를 정해야 하는데 브랜드 쪽에서 고른 후 호텔로 보내줄 겁니다.”“응.”전연우는 간단히 답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전연우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해외 지사였는데 임원이 위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었고 회의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회의실 밖에 있는 기성은은 경호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이미 예상하였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테이블 센터에 앉아있는 전연우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장소월이 쇼핑몰에서 경호원을 따돌렸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녀가 달아나는 게 확실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멋대로 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쇼핑몰에서 도망쳐 나온 장소월은 택시에 앉아 돌아가는 길에 전연우가 그녀에게 준 목걸이가 행여나 문제라도 있을까 봐 떼어내려고 했는데 떼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값비싼 목걸이를 끊어버리고 밖으로 던졌다.경호원은 추적한 위치를 따라 쫓아가 봤는데 한 노숙자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장소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리사는 아파트로 돌아온 장소월을 보며
한 무리 경호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리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급하게 방문을 잠그고는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옷장과 책상으로 문을 막았다.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들고 신고하려고 했다.경호원이 밖에서 그녀를 경고했다.“아가씨, 저항하실수록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계속 안 나오시면 문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전연우의 부하들은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방문은 별로 견고하지 않은 평범한 나무문이었는데 그들이 억지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그녀로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전연우의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문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문을 부딪치면서 펑펑하는 소리가 났다. 장소월은 등으로 책상을 지탱하고 있었다.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밖이 조용해졌다.리사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소월, 경찰이 왔어. 경찰서에 가서 기록을 작성해야 한대.”장소월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진정되었다.그녀는 문을 막고 있던 물건들을 옮기고 밖으로 나갔다. 경찰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함께 경찰서에 갔다.장소월은 취조실에 앉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리사만 경호원들의 만행을 비난하며 하소연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지 여러 해가 되는데 전연우는 왜 그녀를 찾으려 하는 거지? 또 그녀의 입에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경호원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전연우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단 것이다...심문이 끝난 건 한 시간 후였다.아홉 시, 전연우는 금방 회의를 마쳤다.호텔로 돌아가려고 할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기성은은 전연우의 명령대로 방향을 돌려 경찰서로 갔다. 놀라웠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일을 벌이는 사람은 장소월밖에 없었다. 그녀 외에는 누구도
전연우는 그녀에게 검은색 금박 명함을 건네주었다. 리사는 과장되게 입을 가리고 거듭 ‘고맙습니다!’라고 했다.장소월은 명함 위에 눈에 띄게 ‘성세 그룹’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았다.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장소월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전연우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전연우가 성세 그룹 대표라고? 설마 정말 돌아온 거야?’그녀는 억지로 포가디에 올라탔다. 리사도 데리러 온 가족들과 함께 돌아갔다.차에 앉은 그녀는 이 차가 10억 정도 되는 차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거북이처럼 조용히 목을 움츠리고 앉아있었다.“신고할 줄도 알고, 담이 커졌네. 왜 어디 가든 계속 오빠를 속태우게 만드는 거야? 응?”전연우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겁먹은 듯 피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었다.“전연우, 당신 혹시 돌아온 거야?”전연우는 긴장해 하는 장소월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와인을 열어 한 잔 따르고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와인 한 모금 마시고는 호주머니에서 그녀가 끊어버린 목걸이를 꺼냈는데, 어느새 이미 수리되어 있었다.“이리 와. 내가 끼워줄게.”“필요 없어!”“내가 직접 다가가서 끼워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얌전히 말 들을래?”장소월은 혐오하는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날 강요하지마. 내가 싫다고 했잖아.”“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나 아파트로 돌아갈 거야.”“30평밖에 안 되는 곳이 뭐가 좋다고 돌아가?”전연우는 그녀를 끌어와 자신의 다리에 앉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다신 떼어내지 마.”장소월은 발버둥을 쳤다.“지금 걸어줘도 나중에 벗어던질 거야. 전연우... 난 도저히 모르겠어. 날 찾아서 대체 뭐하려는 거야? 날 이용할 만큼 이용했잖아. 난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이곳에서 잘살고 있는데 제발 날 내버려 두면 안돼?”“지금 잘살고 있잖아. 더는 내 인생에 끼어들 필요 없잖아!”전
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대하던 태도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가 강영수와 함께 있을 때였던지 혹은 그녀와 강영수가 곧 약혼하려던 때였는지...그는 지금처럼이 아니라 그녀를 증오해야 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백윤서를 목숨을 잃게 만들지 않고 백윤서가 살아있어서 전연우의 태도가 바뀐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이 함께 잤다고 해도 장소월은 이런 관계로 인해 전연우가 그녀에게 감정이 생겼다는 걸 믿지 않았다.사랑?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그는 누구에게도 그가 우습게 여기는 감정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었다.전연우 같은 사람에게는 진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그가 이렇게 하는 건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사 년 전 장가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도 그의 계획 중의 일부분이었다.그녀가 돌아가는 순간 사 년 전처럼 그가 만들어놓은 악몽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전연우는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뒤에서 그를 따갔다. 뒤에는 여섯 명의 경호원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화려한 라운지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88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어두운 복도에는 구름을 밟는 것처럼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있었다.전연우가 카드를 꺼내 방문을 열려고 할 때, 피곤한 장소월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발정 난 짐승으로 변하는 전연우를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나 당신이랑 같은 방 쓰기 싫어.”전연우가 명령을 내렸다.“기 비서, 가서 방 하나 더 내.”“네, 대표님.”장소월은 시름을 놓은 듯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연우는 방을 열고 들어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정장을 벗었다. 그가 불을 켜려고 할 때, 어두컴컴한 방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둘러안았다.“왜 오늘 데리러 안 왔어요?”‘이 목소리는...’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보면서 머리가
그녀는 전연우를 넘어 기세등등하게 장소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시비 거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오랜만이에요, 장소월 씨.”그녀는 무언갈 암시하듯이 손을 내밀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장소월은 가슴이 답답해나며 아파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부터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송시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황급히 도망치는 장소월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들었다.‘전생에 넌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 전에도 날 이기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넌 날 이길 수 없어!’‘전생에 서른한 살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번 생에는 몇 살까지 사는지 지켜볼게.’송시아라는 세 글자는 장소월에게 있어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같았다.전생에...그녀의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장소월은 아이를 보지도 못했다.기성은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건 유골함뿐이었다.장소월은 아이를 자신의 엄마와 함께 묻었다.그녀는 그 일로 반년 동안 병으로 누워있었고 여러 번 견디다 못해 죽을 것만 같았었다.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낫지 않아 전연우에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의 방에서는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는 모든 걸 목격했다.송시아는 머리를 풀고 남자 위에 올라타 있었다.“장소월이 못 낳아주는 아이를 내가 낳아줄게요...”“연우 씨, 이번에는 곧 우리 아이가 생길 거예요.”장소월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꽉 잡고 욕실에 있는 물건을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장소월이 이성을 잃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녀가 붕괴의 극점에 이른 상황을 제외하고는.그녀의 방은 전연우의 옆 방이었다.깨진 거울 조각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울 속에는 온통 고통스러워하는 장소월의 얼굴이었다.갑자기 코에 피가 흘러나왔는데 입안도 피 냄새로 가득했다. 가슴으로부터 메스꺼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피를 닦고 물을 트는 순간 갑
전연우는 바닥에서 겉옷을 주워 들어 의자에 걸쳐 놓았다.“또 왜 성질을 부리는 건데?”그는 빨개진 그녀의 눈시울을 바라보며 어두워진 눈빛으로 설명했다.“그 사람은 내 비서일 뿐이야. 너도 알 거 아니야?”묘한 말이었다. 어쩐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만 같았다.장소월은 몸이 굳었다. 전연우는 그녀를 꿰뚫어 볼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장소월은 냉소했다.“그 여자가 누구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오빠한테 꺼지라고 한 건 단순히 오빠가 더럽고 역겨워서야!”눈에 차는 여자라면 전연우는 절대 상대를 거절하지 않았다.그리고 장소월은 그런 그가 역겨웠다.“오빠가 안 가면 내가 갈게.”장소월은 다시 한번 그들의 앞에서 송시아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장소월이 가방을 들고 그를 지나쳐 갔지만 전연우는 그런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벨트를 풀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슬리퍼를 신고 욕실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경호원이 문을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장소월은 화를 내며 힘껏 문을 닫았다.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창문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해봤지만 이곳은 88층이었다.눈앞의 광경에 전연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는데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다. 거울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연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사람을 불러 깨끗이 청소하게 했다.호텔 직원은 욕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부랴부랴 떠났다.방 안에서는 숨 막힐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장대 앞에 앉아있었고 전연우는 흐려진 얼굴로 그녀의 뒤에 섰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또 자학하면서 제발 보내달라고 날 협박할 셈이야?”장소월이 대답했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전연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욕실 안의 피는 어떻게 된 거야?”장소월은 차갑게 대꾸했다.“코피 흘린 거야. 휴지 가지러 가려다가 실수로 거울을 깨뜨렸고.”“다 씻었으면 얼른 가. 여기 남아있지 말고. 나도 쉴 거야.”다음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