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431 - 챕터 440

1147 챕터

제431화

“당시 난 목숨을 끊는 것으로도 부모님의 사이를 되돌릴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그 자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장소월은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울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곳, 아무도 닿을 수 없는 위치에 강림해 있는 그에게 장소월과 같은 망가진 가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두 사람은 그런 점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다. 불행해질수록 더더욱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었다.“하느님은 공평해. 너에게 재부를 줬으니 다른 것은 빼앗아간 거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과 비교하면 우린 운이 좋은 편이잖아.”장소월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자유와 선택권만 갖는 것으로 충분했다.강영수의 크고 두꺼운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이제... 나한텐 너밖에 없어. 넌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거야. 그렇지?”그 말에 장소월은 부담감에 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사실 그의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녀 한 명뿐만은 아니다.장소월은 당시 깊은 지하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강영수를 꺼내 그의 세상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김남주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해도, 그를 구원해준 일은 결코 쉬이 잊혀지는 게 아니다. 때문에 그녀는 강영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강영수에게 있어 김남주는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그들 사이의 감정은 아무나 대체할 수 없다.김남주가 떠나가고 강영수가 다시 어둠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순간, 장소월이 마침 그곳에 나타난 것뿐이다.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이제 김남주가 돌아왔으니 장소월은 본의 아니게 그들 세상의 제3자, 방해꾼이 되어버렸다.장소월은 강영수의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김남주 역시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세상은 두 사람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드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장소월은 자신을 빨아들일 듯한 소용돌이가 일렁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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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장해진이 화들짝 놀랐다.“걔가 어떻게 알아?”“소월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더군요.”장해진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강영수가 그녀의 불임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에 머물게 하는 걸 보니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김남주는? 지금 어디에 있어?”“병원입니다. 잠시 강영수의 사람들이 보호해주고 있어요.”장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아무도 모르게 김남주를 깔끔하게 처리해. 소월이가 강씨 집안에 시집간다면 너와 나 모두에게 이득이 될 거야. 가봐.”“네, 의부님.”전연우가 서재에서 나왔을 때, 문 앞에서 닭 육수로 만든 국수 요리를 들고 온 강만옥과 마주쳤다.“자기야, 얘기 잘 끝났어?”전연우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냉담한 표정으로 그녀의 옆을 지나쳤다.강만옥은 피식 웃고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장소월은 병원에서 한 주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강영수는 소규모로 사람들을 나누어 장소월의 병문안을 오게 했다. 이건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장소월의 뜻이기도 했다.강영수는 줄곧 병실을 서재로 삼고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항상 그녀의 시선 속에 머물렀고, 화장실에 갈 때까지도 그녀에게 보고했다.정말이지... 이렇게 할 필요까진 없다.장소월은 이제 걸을 수도 있고 퇴원해도 된다. 하지만 강영수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왜 그래? 심심해?”“지금까지 이곳에서 날 지켜줬으니까 이제 그만 김남주 씨한테 가봐.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사람이잖아.”강영수는 그녀의 허리에 올렸던 손을 거두었다.“넌 TV를 보고 있어. 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어.”그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장소월은 그가 왜 이토록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 책을 한 권 펼쳤다.그때 진봉이 들어왔다.“대표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진봉이 장소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따사로운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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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병원 건물 아래, 무성히 자라난 오동나무 가지에 참새 몇 마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모두 머리를 날개에 묻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바깥 온도는 강영수가 발산하는 분위기와 똑같이 차가웠다.“난 헤어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장소월이 팔짱을 끼고 시선을 거두었다.“내 말은 그 뜻이 아니야. 그저 시간을 갖자는 거야. 이번 일은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하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정말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생각해야 돼.”“감정이라는 것은 절대 제3자를 용납할 수 없어. 김남주 씨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넌 그 사람을 구하러 가는 걸 선택했어. 난... 네가 아직 김남주 씨와 함께했던 시간을 놓지 못했다는 거 알고 있어.”“나도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너와 똑같아. 상대방의 눈에 자신만 담겨 있기를 바라지.”장소월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먼저 남주 씨한테 가서 물어봐. 대화를 나누면 네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어질 수도 있잖아. 어떻게 되든 우린 처음처럼 지낼 수 있을 거야.”그의 시선은 장소월에게 머무른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소월 또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그녀의 말은 자신과 강영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직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지나간 일을 말끔히 해결하는 것이 좋을 테니 말이다.김남주가 그들 사이에 끼어있으면 매일매일 불편할 것이고 장소월의 입장 또한 곤란해질 것이다.그녀를 좋아하는 동시에 김남주도 놓지 못한다면 바람을 피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진봉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소월 아가씨, 그게 아닙니다. 대표님께선 지나간 일에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대표님을 믿으셔야 합니다.”“정말 그래요?”장소월의 그 한마디 말에 모든 것이 꿰똟어보일 듯한 맑은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전 다 알고 있어요. 설 연휴 급히 해외에 간 것, 깊은 밤에 김남주 씨를 찾아간 것, 이것들이 그분을 놓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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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장소월은 장씨 저택에 돌아가지 않고 곧장 셋방으로 향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풀냄새와 흙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었다.장소월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베란다에 심어두었던 식물엔 이미 꽃이 피어나 있었다.방안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하늘색 소파 위엔 그녀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교복이 놓여있었다.장소월이 강용을 떠올리며 교복을 들어 올렸다. 그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돌이켜보면 이곳엔 강용과의 기억이 가득했다. 그는 주방에서 요리를 했고 책상에서 공부를 했고, 피곤할 때면 소파에 누워 할아버지처럼 오후 첫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자곤 했다.눈 깜빡할 사이에 어느덧 한 주가 지났다.그동안 장소월은 핸드폰을 줄곧 꺼놓았다. 또한 집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채 지냈다.그녀는 자신을 이 작은 방 안에 가두고 그림을 그리며 신경을 마비시켰다. 어떤 날엔 밤새 쉬지 않고 그리기도 했다.피곤하면 자고, 배가 고프면 대충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공부에 관한 건 손조차 대지 않았다.유리병을 들어보니 물을 다 마셔 비어있었다. 그녀는 소파를 짚고 일어서며 며칠 감지 않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평소엔 보기 힘든 꾀죄죄한 모습이었다.뜨거운 물을 끓인 뒤에야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밥상 위엔 절반가량 먹은 우울증 약봉지가 놓여있었다. 대체 언제 이 병이 낫는 걸까...자신을 포기한 걸까? 장소월 그녀 또한 알 수 없었다.쾅쾅쾅.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가 약을 입에 넣지도 못한 채 걸어가 문을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약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장소월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약을 주운 뒤 물감이 가득 묻은 옷에 슥슥 닦고는 물과 함께 삼켰다.전연우가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커튼이 닫혀 있는 데다 조명도 켜지 않아 어두운 방 안은 어지럽기까지 했다. 주방 싱크대엔 설거짓거리도 가득 쌓여있었다.평소 깔끔한 것을 좋아하던 장소월도 이렇게 지저분할 때가 있다니.전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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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앞으로 내 일에 간섭하지 마. 이렇게 찾아오지도 말고.”전연우의 시선이 붓이 꽂혀있는 필통으로 향했다. 안엔 핸드폰이 물에 잠겨 있었다.남자가 일어서 창가로 가 커튼을 열자 햇살이 안으로 들어왔다. 연속 며칠 동안 햇볕을 보지 못했던 장소월은 눈이 부셔 손으로 빛을 막았다.“뭐 하는 거야! 얼른 닫아!”그녀가 벌컥 화를 냈다.“한 시간 줄 테니까 깨끗이 정리하고 날 따라와. 집에 가자.”“전연우,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거길 왜 가? 거기가 내 집이야? 너와 백윤서의 집이잖아. 내 생각이 맞다면 오 아주머니도 네 사람이지? 내가 먹는 우유에 아무도 모르게 약을 넣은 걸 보면 말이야.”그녀는 전연우만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떠올랐다. 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던져버리고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녀는 탁자 앞으로 걸어가 우울증약 몇 알을 삼키고는 새빨개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부탁할게. 다신 오지 마.”“난 널 증오해. 전연우! 증오한다고!”넌 내 모든 것을 망가뜨렸어. 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야.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전연우가 어두운 눈동자로 굳게 닫힌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의 마음속은 한데 엉켜버린 수만 갈래의 실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 숨어버렸다. 깊은 미로에라도 갇힌 듯 아무리 걸어도, 어떻게 걸어도 출구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예전엔 울다가 힘들어지면 잠을 청했다. 꿈에서 엄마를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리고 사진이 없어진 뒤엔 엄마는 한 번도 그녀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약 다섯 알을 삼켰다. 지금은 오로지 이런 방법을 사용해야만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오늘 그녀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희미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도 들었다.그녀는 하얀색 치마를 입고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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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소월은 가운데 처진 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옷 입고 나가.”전연우는 바닥에 놓은 시트를 주워 하반신을 감쌌다. 탄탄하고 완벽한 상체의 남자는 묵묵히 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오늘 왜 이렇게 말을 잘 듣지?’장소월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잠그고 옷장으로 가서 자신의 옷을 챙겨입었다.그녀가 수면제를 먹고 약효가 발작한 순간, 전연우가 어떻게 자신을 침대에 올렸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뭔가 떠올리더니 옷을 입은 후 거실로 가서 미완성 그림을 계속 그렸다.며칠 전, 그녀는 그림 대회 푸시 메시지를 보고 지원했다.오늘이 원고 마감일이었고, 저녁 7시에 주최 측에서 사람을 보내 그림을 가져갈 것이다.아직 1시간 30분이 남았다.전연우는 베란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고, 장소월은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녀는 옆에 있는 토스트를 먹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다행히 마지막 30분을 남겨 놓고 그녀의 그림은 완성되었다.창문 밖에서 연기가 날아들었다.전연우는 줄곧 그녀의 그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림을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녀의 그림이 햇빛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장소월은 주최 측 사람인 줄 알고 손으로 그림을 말린 후 조심스럽게 말았다.문을 열고 보니... 기성은이었다. 그는 손에 봉지를 들고 있었다.그녀를 본 기성은은 덤덤한 표정이었다.“아가씨, 안녕하세요.”“여긴 어쩐 일이세요?”“대표님 옷 가져다드리러 왔습니다.”“이리 주세요.”기성은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다. 두 사람의 사이가 언제 또 가까워졌는지 의아했다.하지만, 역시나... 장소월은 옷을 받아들고 3층에서 바로 던져버렸다.기성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장소월은 별말 없이 문 앞에 걸려 있는 열쇠를 들고 그림을 챙겨 그대로 떠났다.‘옷은 천천히 찾으라고 해.’마침 전연우가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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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학교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고,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가득한 쓰레기 거리를 보면서 장소월은 기분이 훨씬 밝아졌다. 휴대폰이 없으니 걱정거리가 사라진 느낌이었다.주변에 연락할 친구도 없고, 그녀의 세상은 아주 고요했다.어느덧 장소월은 익숙한 골목에 다다랐다. 저번에 강용이 그녀를 데리고 왔던 식당이었다.장소월도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몰랐다.몸을 돌려 떠나려는 데, 40~50대 아주머니가 손에 물 한 대야를 들고나와 단번에 장소월을 알아보았다.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아가씨 강용 친구죠?”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잘됐네요. 저번에 나에게 물건을 맡기면서 아가씨에게 주라고 했어요. 제가 바로 가서 가져오죠.”장소월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지난번 식사 때 사장님만 뵙고 사모님은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장소월을 알아봤을까?곧 그녀는 핑크 리본을 묶은 검은색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이건 강용이 떠나면서 아가씨에게 주라고 한 거예요. 계속 보이지 않아서 가지러 안 오는 줄 알았어요.”장소월은 말의 핵심을 알아챘다.“강용이 떠났다고요? 어디로요?”“어머니를 데리고 러시아에 가서 병을 고친다고 하던데, 아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모르고 계셨어요?”장소월은 확실히 몰랐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가게 손님이 소리쳤다.“사장님, 면 추가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장소월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근처 노인 공원에 가서 나무 벤치에 앉아 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열어보았다. 안에는 분홍색 털장갑이 있었다. 라벨이 없는 것을 보니 직접 짠 것인 듯했다.장소월은 분위기 있고 온화한 심유를 생각하며 그녀가 짠 것이라 예상했다.이것은 그녀가 두 생애 동안 받은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그녀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더니, 자신이 실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올림피아드 시험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고, 강용이 서울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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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아버지 장해진의 꾸지람을 들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강만옥이 임신했기 때문이다...임신한 지 두 달이 넘었고, 장해진은 자신의 아이라고 확신했다.장해진은 이미 강만옥을 데리고 싱가포르로 가서 휴식 중이었고, 이렇게 되면 앞으로 이 집에는 그녀 혼자만 남게 된다.아버지는 역시나 장소월의 생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원래 있었던 일말의 기대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익숙하지만 또 낯선 거실에 들어서자 오 아주머니가 눈물을 머금고 다가왔다.“아가씨, 그동안 밖에서 고생 많았어요.”장소월은 차갑게 오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정말 아끼고, 친자식처럼 여긴다면 어떻게 그녀의 우유에 약을 넣을 수 있을까?그런데 지금 또 그녀를 아끼는 척 관심하고 있다니!대체 무엇 때문일까?오 아주머니는 전연우의 사람이었다. 주위에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사람이 진짜 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 아주머니의 손을 피했다. 아주머니의 눈빛마저 낯선 사람처럼 느껴져 장소월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을 가족처럼 여기던 오 아주머니까지 배신했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전연우는 떠나기 전 은경애에게 장소월이 지금 심경이 불안정하니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그리고 전연우와 오 아주머니는 가든 아파트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배를 채울 간식들을 가득 안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누군가 들어올까 봐 침대 옆 탁자와 의자로 문을 단단히 막았다.장소월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행동을 자각했고, 이런 자신이 싫었다.이러다 미치광이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단지 이런 방식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싶었을 뿐이다.마음속 어두운 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지금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커튼을 닫고 방이 캄캄해지고 나서야 그녀는 안정감을 느꼈다.식사 시간이 되자 은경애는 음식을 들고 위층으로 올려와 몇 번이나 문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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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서철용이 전화 받는 틈을 타 배은란은 허리춤의 치마를 서둘러 잡아당기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밀어내고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서철용은 떠나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사무실 책상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애써 타오르는 화를 억눌렀다.“상황에 따라 달라.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가 있지만, 대부분은 환자 자신에게 달렸어. 본인이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약을 먹고, 아무리 큰 노력을 해도 소용없어.”“그래서... 맘이 약해졌어?”서철용은 조롱하듯 말하더니 상대방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자하게 웃었다.“너 이 자식 이 꼴 날 줄 알았어. 전연우... 너의 목적을 잊지 마! 이제 와서 그만두려고? 넌 장소월에게 12년 동안 약을 탔어. 그런데 이제 와서 잘해준다고 과연 널 용서해줄까? 그동안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내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지? 이제 와서 후회한다면 오히려 네 발등을 찍는 격이야.”전화를 끊은 전연우는 어느새 장소월의 방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소월아!”장소월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고 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칠흑 같은 벽면을 향해 멍하니 있었다.그녀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지저분한 방 안, 그림 종이에는 한 여자의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의 자태는 온화하고 고급스러웠다. 아쉽게도 여자는 이목구비가 없었다.이것은 장소월이 꿈에서 본 엄마의 모습이었다.“우리 소월이 힘들어?”어둠 속에서 장소월의 귓가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한 줄기 빛이라도 본 듯했다. 한 여자가 침대에 앉아있었고,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졌지만 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분명 그녀가 낸 것이다.장소월은 어둠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찾은 듯 무릎을 꿇고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젖히고 눈물을 흘렸다.“엄마, 드디어 소월이 보러 온 거예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엄마. 나도 데려가요, 네?”“엄마도 우리 소월이 보고 싶었어. 하지만 소월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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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엄마... 어디 갔어요? 소월이 버리고 가지 마...”전연우는 눈앞의 장소월이 이미 미쳐버린 것 같았다.남자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감싸더니 천천히 다가갔다.“바닥에서 뭐 해? 일어나.”“왜 왔어? 엄마가 놀라서 도망갔잖아.”장소월이 차갑게 말했다.전연우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잘 봐. 이 방에는 너랑 나 둘뿐이야.”“헛소리. 방금 엄마가 나랑 말도 했어. 정말 힘들면 날 데리고 여길 떠나겠다고 했단 말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엄마가 도망갔잖아! 왜 들어왔어!”전연우는 또 한 번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달았다.자신은 점점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만, 장소월은 미쳐가면서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감정은 있어서도 안 되고, 더더욱 선을 넘어 그녀에게 쉽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전연우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총상을 입은 채로,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몇 번이고 위험에 처했지만, 그는 당황하거나 두렵지 않았다.무엇을 하든 목적이 명확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그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많은 일을 하면서 그는 늘 여유로움이 넘쳤다.유독 그녀에게 한 일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그녀가 점점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 브레이크가 생겼다. 이것도 후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전연우는 그녀를 어깨에 메고 마음껏 울고 미쳐 날뛰게 했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모습보다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았다.“이거 놔. 엄마 찾으러 갈래. 이거 놓으라고!”장소월은 발이 묶여서 움직일 수 없었고, 남자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남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녀가 화를 분출하게 내버려 두었다.장소월은 있는 힘껏 깨물었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가득 찼지만 그녀는 죽어도 입을 떼지 않았다.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어깨에서 뜨거운 열기와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10분 후, 장소월이 조용해지자 전연우는 고개를 숙여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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