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 일에 간섭하지 마. 이렇게 찾아오지도 말고.”전연우의 시선이 붓이 꽂혀있는 필통으로 향했다. 안엔 핸드폰이 물에 잠겨 있었다.남자가 일어서 창가로 가 커튼을 열자 햇살이 안으로 들어왔다. 연속 며칠 동안 햇볕을 보지 못했던 장소월은 눈이 부셔 손으로 빛을 막았다.“뭐 하는 거야! 얼른 닫아!”그녀가 벌컥 화를 냈다.“한 시간 줄 테니까 깨끗이 정리하고 날 따라와. 집에 가자.”“전연우,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거길 왜 가? 거기가 내 집이야? 너와 백윤서의 집이잖아. 내 생각이 맞다면 오 아주머니도 네 사람이지? 내가 먹는 우유에 아무도 모르게 약을 넣은 걸 보면 말이야.”그녀는 전연우만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떠올랐다. 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던져버리고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녀는 탁자 앞으로 걸어가 우울증약 몇 알을 삼키고는 새빨개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부탁할게. 다신 오지 마.”“난 널 증오해. 전연우! 증오한다고!”넌 내 모든 것을 망가뜨렸어. 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야.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전연우가 어두운 눈동자로 굳게 닫힌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의 마음속은 한데 엉켜버린 수만 갈래의 실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 숨어버렸다. 깊은 미로에라도 갇힌 듯 아무리 걸어도, 어떻게 걸어도 출구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예전엔 울다가 힘들어지면 잠을 청했다. 꿈에서 엄마를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리고 사진이 없어진 뒤엔 엄마는 한 번도 그녀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약 다섯 알을 삼켰다. 지금은 오로지 이런 방법을 사용해야만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오늘 그녀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희미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도 들었다.그녀는 하얀색 치마를 입고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소월은 가운데 처진 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옷 입고 나가.”전연우는 바닥에 놓은 시트를 주워 하반신을 감쌌다. 탄탄하고 완벽한 상체의 남자는 묵묵히 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오늘 왜 이렇게 말을 잘 듣지?’장소월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잠그고 옷장으로 가서 자신의 옷을 챙겨입었다.그녀가 수면제를 먹고 약효가 발작한 순간, 전연우가 어떻게 자신을 침대에 올렸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뭔가 떠올리더니 옷을 입은 후 거실로 가서 미완성 그림을 계속 그렸다.며칠 전, 그녀는 그림 대회 푸시 메시지를 보고 지원했다.오늘이 원고 마감일이었고, 저녁 7시에 주최 측에서 사람을 보내 그림을 가져갈 것이다.아직 1시간 30분이 남았다.전연우는 베란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고, 장소월은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녀는 옆에 있는 토스트를 먹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다행히 마지막 30분을 남겨 놓고 그녀의 그림은 완성되었다.창문 밖에서 연기가 날아들었다.전연우는 줄곧 그녀의 그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림을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녀의 그림이 햇빛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장소월은 주최 측 사람인 줄 알고 손으로 그림을 말린 후 조심스럽게 말았다.문을 열고 보니... 기성은이었다. 그는 손에 봉지를 들고 있었다.그녀를 본 기성은은 덤덤한 표정이었다.“아가씨, 안녕하세요.”“여긴 어쩐 일이세요?”“대표님 옷 가져다드리러 왔습니다.”“이리 주세요.”기성은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다. 두 사람의 사이가 언제 또 가까워졌는지 의아했다.하지만, 역시나... 장소월은 옷을 받아들고 3층에서 바로 던져버렸다.기성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장소월은 별말 없이 문 앞에 걸려 있는 열쇠를 들고 그림을 챙겨 그대로 떠났다.‘옷은 천천히 찾으라고 해.’마침 전연우가 나왔
학교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고,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가득한 쓰레기 거리를 보면서 장소월은 기분이 훨씬 밝아졌다. 휴대폰이 없으니 걱정거리가 사라진 느낌이었다.주변에 연락할 친구도 없고, 그녀의 세상은 아주 고요했다.어느덧 장소월은 익숙한 골목에 다다랐다. 저번에 강용이 그녀를 데리고 왔던 식당이었다.장소월도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몰랐다.몸을 돌려 떠나려는 데, 40~50대 아주머니가 손에 물 한 대야를 들고나와 단번에 장소월을 알아보았다.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아가씨 강용 친구죠?”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잘됐네요. 저번에 나에게 물건을 맡기면서 아가씨에게 주라고 했어요. 제가 바로 가서 가져오죠.”장소월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지난번 식사 때 사장님만 뵙고 사모님은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장소월을 알아봤을까?곧 그녀는 핑크 리본을 묶은 검은색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이건 강용이 떠나면서 아가씨에게 주라고 한 거예요. 계속 보이지 않아서 가지러 안 오는 줄 알았어요.”장소월은 말의 핵심을 알아챘다.“강용이 떠났다고요? 어디로요?”“어머니를 데리고 러시아에 가서 병을 고친다고 하던데, 아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모르고 계셨어요?”장소월은 확실히 몰랐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가게 손님이 소리쳤다.“사장님, 면 추가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장소월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근처 노인 공원에 가서 나무 벤치에 앉아 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열어보았다. 안에는 분홍색 털장갑이 있었다. 라벨이 없는 것을 보니 직접 짠 것인 듯했다.장소월은 분위기 있고 온화한 심유를 생각하며 그녀가 짠 것이라 예상했다.이것은 그녀가 두 생애 동안 받은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그녀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더니, 자신이 실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올림피아드 시험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고, 강용이 서울대에
아버지 장해진의 꾸지람을 들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강만옥이 임신했기 때문이다...임신한 지 두 달이 넘었고, 장해진은 자신의 아이라고 확신했다.장해진은 이미 강만옥을 데리고 싱가포르로 가서 휴식 중이었고, 이렇게 되면 앞으로 이 집에는 그녀 혼자만 남게 된다.아버지는 역시나 장소월의 생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원래 있었던 일말의 기대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익숙하지만 또 낯선 거실에 들어서자 오 아주머니가 눈물을 머금고 다가왔다.“아가씨, 그동안 밖에서 고생 많았어요.”장소월은 차갑게 오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정말 아끼고, 친자식처럼 여긴다면 어떻게 그녀의 우유에 약을 넣을 수 있을까?그런데 지금 또 그녀를 아끼는 척 관심하고 있다니!대체 무엇 때문일까?오 아주머니는 전연우의 사람이었다. 주위에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사람이 진짜 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 아주머니의 손을 피했다. 아주머니의 눈빛마저 낯선 사람처럼 느껴져 장소월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을 가족처럼 여기던 오 아주머니까지 배신했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전연우는 떠나기 전 은경애에게 장소월이 지금 심경이 불안정하니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그리고 전연우와 오 아주머니는 가든 아파트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배를 채울 간식들을 가득 안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누군가 들어올까 봐 침대 옆 탁자와 의자로 문을 단단히 막았다.장소월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행동을 자각했고, 이런 자신이 싫었다.이러다 미치광이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단지 이런 방식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싶었을 뿐이다.마음속 어두운 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지금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커튼을 닫고 방이 캄캄해지고 나서야 그녀는 안정감을 느꼈다.식사 시간이 되자 은경애는 음식을 들고 위층으로 올려와 몇 번이나 문을 두
서철용이 전화 받는 틈을 타 배은란은 허리춤의 치마를 서둘러 잡아당기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밀어내고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서철용은 떠나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사무실 책상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애써 타오르는 화를 억눌렀다.“상황에 따라 달라.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가 있지만, 대부분은 환자 자신에게 달렸어. 본인이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약을 먹고, 아무리 큰 노력을 해도 소용없어.”“그래서... 맘이 약해졌어?”서철용은 조롱하듯 말하더니 상대방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자하게 웃었다.“너 이 자식 이 꼴 날 줄 알았어. 전연우... 너의 목적을 잊지 마! 이제 와서 그만두려고? 넌 장소월에게 12년 동안 약을 탔어. 그런데 이제 와서 잘해준다고 과연 널 용서해줄까? 그동안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내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지? 이제 와서 후회한다면 오히려 네 발등을 찍는 격이야.”전화를 끊은 전연우는 어느새 장소월의 방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소월아!”장소월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고 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칠흑 같은 벽면을 향해 멍하니 있었다.그녀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지저분한 방 안, 그림 종이에는 한 여자의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의 자태는 온화하고 고급스러웠다. 아쉽게도 여자는 이목구비가 없었다.이것은 장소월이 꿈에서 본 엄마의 모습이었다.“우리 소월이 힘들어?”어둠 속에서 장소월의 귓가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한 줄기 빛이라도 본 듯했다. 한 여자가 침대에 앉아있었고,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졌지만 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분명 그녀가 낸 것이다.장소월은 어둠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찾은 듯 무릎을 꿇고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젖히고 눈물을 흘렸다.“엄마, 드디어 소월이 보러 온 거예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엄마. 나도 데려가요, 네?”“엄마도 우리 소월이 보고 싶었어. 하지만 소월이를
“엄마... 어디 갔어요? 소월이 버리고 가지 마...”전연우는 눈앞의 장소월이 이미 미쳐버린 것 같았다.남자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감싸더니 천천히 다가갔다.“바닥에서 뭐 해? 일어나.”“왜 왔어? 엄마가 놀라서 도망갔잖아.”장소월이 차갑게 말했다.전연우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잘 봐. 이 방에는 너랑 나 둘뿐이야.”“헛소리. 방금 엄마가 나랑 말도 했어. 정말 힘들면 날 데리고 여길 떠나겠다고 했단 말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엄마가 도망갔잖아! 왜 들어왔어!”전연우는 또 한 번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달았다.자신은 점점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만, 장소월은 미쳐가면서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감정은 있어서도 안 되고, 더더욱 선을 넘어 그녀에게 쉽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전연우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총상을 입은 채로,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몇 번이고 위험에 처했지만, 그는 당황하거나 두렵지 않았다.무엇을 하든 목적이 명확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그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많은 일을 하면서 그는 늘 여유로움이 넘쳤다.유독 그녀에게 한 일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그녀가 점점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 브레이크가 생겼다. 이것도 후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전연우는 그녀를 어깨에 메고 마음껏 울고 미쳐 날뛰게 했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모습보다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았다.“이거 놔. 엄마 찾으러 갈래. 이거 놓으라고!”장소월은 발이 묶여서 움직일 수 없었고, 남자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남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녀가 화를 분출하게 내버려 두었다.장소월은 있는 힘껏 깨물었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가득 찼지만 그녀는 죽어도 입을 떼지 않았다.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어깨에서 뜨거운 열기와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10분 후, 장소월이 조용해지자 전연우는 고개를 숙여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한 그는 은경애에게 말했다.“닭고기 수프를 끓여서 소월이 깨어나면 마시라고 하세요.”“네, 알겠습니다.”백윤서는 전연우의 팔을 잡고 물었다.“오빠,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요. 소월이 대체 왜 저래요? 올림피아드 시합 때문에 아직 슬퍼하는 거예요? 아직 기회는 있어요.”“그만해. 소월이 일은 오빠가 알아서 할게.”원래 심란했던 전연우는 옆에서 누군가 떠들어대니 더욱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파 났다.백윤서는 흠칫 놀라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어려서부터 전연우는 한 번도 그녀에게 이렇게 매섭게 말한 적이 없었다. 설령 백윤서가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는 한 번도 꾸짖은 적이 없었다.“오빠, 내가 뭐 잘못 말했어요?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요. 전 그저 소월이가 걱정돼서...”전연우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밥 다 먹었으면 가서 공부해. 오 아주머니는 이미 아파트에 가셨어. 앞으로 내가 널 여기로 데리고 오지 않는 이상, 오지 마.”말을 마친 전연우는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백윤서가 뒤쫓아갔다.“왜 오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오빠가 있는 곳이 곧 제집이죠. 저도 진작 여기를 제집으로 여겼어요.”“내가 소월이 올림피아드 팀 티오를 뺏어서 그래요? 오빠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 이번 경기에 참여하지 않을게요.”전연우는 걸음을 멈추고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지만 애써 자제하려고 노력했다.“윤서야, 너도 이제 세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야. 내가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해?”“철 좀 들어. 장씨 가문은 성이 장씨야. 전씨도 아니고 백씨도 아니야. 네 위치를 잘 알고 있어. 앞으로 이런 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은경애는 벌벌 떨며 뒤돌아보았다.‘아이고, 어쩜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어? 여길 자기 집으로 여긴다고? 좋은 마음으로 입양해서 키워주니 진짜 자기가 재벌가 아가씨인 줄 알아? 염치도 없지!’“오빠는 절대 날 버릴 수 없어요!”“전연
장소월은 고개를 젖히고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연우가 그녀 시선의 방향을 따라 보았지만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요 며칠 날씨가 좋지 않았다.전연우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여자에게 다가갔지만 여자는 그네에 앉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잠시 후, 장소월은 그네를 떠나 별장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그 뒤를 계속 따랐다.그녀는 소파 앞에 앉아 TV를 켰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새벽 4시가 되어서야 TV를 끄고 신발을 벗더니 소파에 누워 두 손을 가슴에 걸치고 조용히 잠들었다.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절반 남은 담배를 버리고 소파에 누워 있는 여자를 들어 위층으로 향했다.그녀를 안은 순간, 전연우는 그녀가 아주 가벼워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에 강씨 저택에 있을 때 살이 좀 쪘지만 지금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날이 밝기까지 두 시간 남짓했다. 침대에 누운 장소월은 스스로 침대 가운데로 굴러 들어갔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번쩍 뜨더니 곧 다시 잠들었다.15분 후, 남자는 욕실에서 나와 장소월이 사용하던 가운을 둘렀다. 물방울이 맺힌 군살 하나 없는 몸은 흰 가운 속으로 숨겨졌다. 건장한 몸에는 지네 같은 흉터가 눈에 띄었고 특히 가슴에 치명상을 입은 듯했다.수면제를 먹은 장소월은 유난히 깊은 잠을 잤다. 다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대 끝에 걸친 가운과 침대 옆자리에 온기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어제 전연우가 그녀의 방에 왔을까?하지만 그녀는 분명 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갔다. 특히 베란다의 문까지 잠갔는데, 전연우에게 벽을 뚫는 초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어수선했던 방도 깨끗이 정리되었고, 그녀가 안고 있던 간식 더미가 사라진 것을 보고 놀랐다.어제 종일 음식을 먹지 않아 그녀의 배는 꼬르륵거리고 위가 쓰렸다.하지만 그녀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신을 혼자 가두는 것에 습관 되었다.테이블 위에 먹다 남은 토스트 반 조각을 보고 장소월은 침대에서 맨발로 뛰어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