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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화려한 돌싱맘의 모든 챕터: 챕터 281 - 챕터 290

692 챕터

제281화 교통사고의 화근

화물차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와 나를 감싼 하얀 물체와 부딪혔다. 귓가에 이명이 들리고 눈앞 사물들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곧이어 온몸이 아파나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질식감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콘크리트 바닥과 차 바퀴의 심한 마찰음, 그리고 전화벨 소리... “...아!”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깼어! 지아 깼어.”나는 심한 질식감에 숨을 헐떡였다. 그 하얀 물체가 나를 숨 쉴 수 없게 억세게 누르는 것 같았다.“...지아야. 괜찮아?”어머니가 울상이 되어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혜선은 어머니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고 뒤에 서 계신 아버지의 눈가도 붉었다.“엄마...”“몸은 어떤 것 같아? 지아야, 내 말 잘 들려 ?”이건 이미연의 목소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미연을 바라보았다. 이미연은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었고 주변에는 이동철을 포함한 내 가족들이 서 있었다.“나 안 죽었어?” 내가 물었다. 사실 질문이 아니라 분위기 환기를 위한 농담이었는데 뱉고 나니 모두의 소스라친 표정에 오히려 당황스러워졌다.“뭐? 죽긴 왜 죽어!” 이미연이 호통쳤다. “이건 다 액땜일 뿐이야.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빨리 의사 부르러...”이미연이 의사들을 데리러 뛰쳐 나갔다. 곧이어 한 무리의 의사들이 우글우글 들어왔는데 젊은 의사며 연세가 있어 보이는 의사며 모두 있었다. 마치 온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은 죄다 끌어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배현우와 비서 김우연도 서 있었다.그들은 나를 다시 한번 자세히 검사했고 그중 연세가 있으신 의사분이 말씀했다. “쇄골 부분의 예전에 있던 상처가 조금 벌어졌고, 다리에 조금의 외상, 흉부가 충격으로 인해 대면적의 피하 연조직이 손상되었고 가벼운 뇌진탕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셨음에도 이 정도의 타박상은 정말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건 기적이에요.”다른 의사들도 놀라워하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다행이에요. 명줄이 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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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향수의 행방불명

김우연이 곧바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고 의사들은 기타 관찰 사항을 더 당부하며 푹 쉬라고 했다. 불편한 곳이 있으면 의료진에게 바로 알리라며 병실을 떠났다.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몸은 쑤시고 아팠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콩이가 옆에 앉아 안기고 싶어 칭얼대자 이해월이 대신 안고 타일렀다. “콩아, 엄마 건드리면 안 돼요. 엄마 아야 해요~”“엄마, 아빠.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저 엄마가 해주는 밀면 먹고 싶어요.”나는 장영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아빠랑 엄마 데리고 집에 가줘. 내일 괜찮아지면 나도 퇴원할 거야.”장영식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줄곧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은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 말을 듣고 그는 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바로 밀면 만들고 이따 너한테 가져다줄게.”“그래.”나는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나 괜찮아.”장영식은 콩이를 안은 채 부모님을 모시고 병실을 나갔다. 사실 나는 밀면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 많은 일을 알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연우가 급히 들어왔고 실망한 눈빛으로 배현우를 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향수는 찾지 못했습니다. 현장에도 차에도 없었어요.”배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향수는 이세림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라는걸.도혜선은 다그쳤다. “그럴 리가요. 오늘 점심에도 지아 차에서 봤는데요. 어떻게 없을 수가 있죠?”“지아야, 잘 생각해 봐. 사고 날 때 향수가 차에 있었어?” 이미연도 조급해하며 물었다.“있었어. 향수는 항상 있었어. 그때 나는 가속페달을 밟을 힘도 없었어. 전에 경산 남원에서 차가 전복됐을 때도 딱 이 느낌이었고.” 나는 확신하며 말했다. “U턴할 때도.”배현우의 눈에 불이 일었다. 그가 화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이세림이랑 통화했죠? 무슨 말 했나요?”“그냥... 배현우 씨가 샤워중이라고...” 나는 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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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이세림의 방문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차는 완전히 찌그러져서 폐차됐어. 다행히 화물차가 뒤로부터 들이받아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네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 해.” 도해선은 이어서 말했다. “만약 정말 조금만 더 심했다면... 아, 무서워서 상상하기도 싫어.” 도혜선이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도혜선의 말을 들으니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순간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던 내가 생각났다.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조금만 늦었더라면 사지가 모두 마비되어 침대에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을 것이다.그 이후 사고 보도에 나온 자료 사진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차가 거의 절반으로 찌그러진 모습에 경악스러웠다.그리고 동시에 이세림의 강인한 심리상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뜻밖에도 내 병실에 병문안을 왔던 것이다.그때 나의 병실에는 어머니와 도혜선이 있었다.이세림의 뒤로 한 보디가드가 따르고 있었고 그는 큰 꽃다발과 과일 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그녀는 정말이지 당당한 태도로 걸어들어왔다. 그 태도에 당황스러워서 나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세림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총총 내 침대 앞으로 달려왔다.“언니, 좀 어때요?” 실로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내 손을 애틋하게 잡고 얼굴을 살피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언니는 왜 이렇게 다사다난해요. 이번엔 교통사고라니. 너무 놀랐잖아요.”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의자를 옮겨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앉아요.”도혜선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이세림을 흘겨보며 보디가드에게 소리쳤다. “물건 도로 가져가요. 금방 약품에 중독된 사람한테 이런 물건을 주려고 해요?”도혜선의 말이 끝난 후 나는 이세림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 그 어디서도 움츠러듦이 없이 당당한 태도였다.“그럼 먼저 가져가세요.” 이세림이 보디가드에게 한마디 하자 그 남자가 물건들을 들고 나갔다. 나는 도혜선을 힐끗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세림에게 말했다. “개의치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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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장본인의 등장

나는 이세림의 방문에 당황스러웠으나 표정 변화 없이 병실로 들어오는 배현우를 보니 그리 놀라운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문을 등진 채 침대 앞에 앉아있던 이세림이 발소리를 듣고 뒤돌아보고는 배현우를 보며 반가워했다. “현우 오빠 왔어요?”그리고 얼른 일어나 귀엽게 웃으며 팔을 껴안았다. “전 지아 언니 보러 왔는데. 이렇게 심각한 사고인 줄 알았으면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요.”배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병원은 네가 있기에 적합하지 않아. 우연 씨, 아가씨 좀 데려다줘요.”이세림의 눈이 순간 매서워졌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쫓아내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이세림은 바로 애교를 부리며 배현우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현우 오빠, 저 방금 왔는데! 전 오빠랑...”“김우연!”이세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현우의 화난 목소리가 병실에 울렸다.이세림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손은 여전히 배현우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김우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가씨,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세림은 빨개진 얼굴로 팔짱 꼈던 손을 내려놓고 씩씩거리며 걸어 나갔다. 가방을 잊지 않고 챙기며 나를 향해 말했다. “언니, 저 먼저 갈게요!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들를게요.”도혜선이 참다 참다 화가 나 소리쳤다. “이세림 씨,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병문안을 올 자격이 없대요. 오지 마세요. 그냥.”이세림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쪽이 안 알려줘도 다 알아듣거든요? 자기가 지아 언니도 아니면서.”“언니는 푹 쉬고 빨리 나아요. 다 나으면 제가 밥 한번 살게요.” 이세림은 도혜선을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병실 문을 나서고 나서 나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이지 그녀의 전투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세림이 향수에 대한 일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향수는 어쩌다 사라졌을까? 보아하니 이세림은 상황을 알아보러 온 것 같았다.나는 침묵을 지켰다. 배현우의 태도는 강경했지만 이세림에게 무언가 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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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가짜 이세림

엄마와 도혜선 두 사람이 나가자, 배현우는 천천히 걸어와 침대 앞 의자에 앉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나를 주시했는데 마치 어떻게 나와 대화를 시작할지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나는 사실 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가 져 있었다. 억울했고 슬펐으나 그 어느 곳에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고의 원흉인 이세림이 아무 일 없는 듯 밝게 웃으며 병문안을 오며 도발하는 것을 보니 체한 것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이세림은 처음 본 순간부터 줄곧 암암리에 나를 해치려 했고, 처음 함께 밥을 먹는 것조차도 모두 목적이 있었다. 이런 걸 다 알게 되었는데 내가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는가.나는 자꾸 내 납치 사건이 이세림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배현우가 왜 조사를 흐지부지 끝냈겠는가.이때 배현우가 침대로 다가와 앉아 내 손을 잡았다. “이세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다 계획이 있으니까.”“어떤 계획이요? 사건의 피해자로서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세림이 날 해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나는 직설적으로 그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는 없었다.배현우는 깊은 눈동자로 나를 주시했다. 신이 빚은 듯 정교한 얼굴은 나를 당혹게 했다. 나는 사실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이번 일을 처리하려면 고려할 것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그리고 어떻게 보나 이세림과 그는 가족이었고 나는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이나 마찬가지였다.그가 계속 응시하니 나는 조금 불편해져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보탰다. “정말로 제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이세림이 자꾸 절 도발한다고요. 이세림이 배현우 씨 동생인 건 알지만...”그가 내 손을 들고 손등에 입을 맞추곤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말하자면 이세림은 저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배현우의 이 한마디가 내 속에 진 응어리를 한 번에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정말,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남자.“이세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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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고양이 쥐 생각하다

나는 의문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왜요?” 배현우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도발하는 듯 과감한 말투였다.“한소연도 J 국에 가고 싶어 했거든요. 혹시 계획과 관련이 있나요?”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눈을 피했다.그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래서요?”“아, 역시.”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삐죽였다.“고의로 정보를 흘린 겁니다. 한소연이 덫에 걸리도록.”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모든 계획이 준비된 듯 강직한 눈빛이었다.“질투심이 강하네요? 이제 절 많이 사랑하나 봐요?”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연이 쳐들어왔다. 배현우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나는 급하게 이미연을 불러세웠다.“야! 너 왜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이미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대화하는데 방해될까 봐.”그러자 배현우가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말했다. “전 일이 있어서.”이때 마침 그가 주문한 음식도 도착했다. 배현우는 이미연에게 잘 돌봐달라며 당부한 뒤 김우연과 함께 병실을 떠났다.이후 병실 앞은 약속대로 정말 보디가드가 지켰고 더 이상 아무도 나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게 되었다.일주일 후 퇴원한 나는 이미 거의 완치되어 불편한 곳이 없었다. 그저 배현우가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폐차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그는 특별히 폐차한 대신 나에게 파나메라를 선물해 주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집에 도착한 후 집 앞에 주차된 파나메라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에게 차란 보행 도구일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물건이었다.차를 가져다준 사람이 이르길, 그로 인해 일어난 사고이니 배상하는 것이며 용서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그제야 나는 뭔가 알 것 같았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고작 이런 거로 무마하려고? 어림도 없지.”그러나 사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이세림이 낸 사고에 사촌오빠인 배현우가 차를 배상하는 것도 합리적인 일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 없이 편히 선물을 받았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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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말을 얼버무리다

한소연의 해맑은 표정을 보고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 네. 그럼 용건 없단 소리죠?”한소연이 나의 반응에 놀란 듯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누구랑 가는지 궁금하지 않아요?”“그쪽이 누구랑 가든 제가 상관할 바인가요? 일하는 분야도 다른데 제가 한소연 씨 일에 대해 뭘 알겠어요. 그럼 이미연 씨 찾아가 보세요. 이미연 씨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거든요.” 나는 냉담한 표정으로 무료하다는 듯이 말했다.“저 배현우 씨랑 가요. 어떻게 생각해요?” 한결 밝아진 말투였다. 그녀는 마치 승리자인 듯 고개를 쳐들며 나를 바라보았다.“아, 그래요? 그때 한소연 씨가 말했던 남자친구요?”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전 아무렇지 않은데요. 배현우 씨 여동생한테 말하면 흥미로워할 거예요! 아, 근데 이세림 씨는 교활하니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요. 이건 이웃으로서 충고드리는 거예요.”한소연이 한순간 당황하여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곱씹는 듯한 모습이었다.나는 당황한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갔다. 속으론 그녀가 이런 총명하지 못한 마인드로 어떻게 혹독한 연예계에서 살아남았을까 혀를 찼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것은 지금의 그녀의 인기는 아주 잠깐이라는 것이다.금방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 할 때 그녀가 급히 몸을 돌렸다.“잠시만요, 방금 한 말 무슨 뜻이에요?”‘걸려들었다.’나는 속으로 기뻐했다.‘이세림, 감히 날 건드려? 나도 가만있을 순 없지.’그러나 눈앞의 아이는 이용하기에 너무 멍청했다. 하지만 아직 급하진 않으니까.“천천히 생각해요. 필요할 때만 찾아서 이용하는 게 무슨 심리겠어요?” 말을 마치고 나는 문을 밀며 들어갔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나은 법이죠. 우린 서로 닮기도 했으니 알려주는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나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을 착한 얼굴을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럼 전 들어갈게요.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J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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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배현우와의 밤

나는 저도 모르게 엄마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눈을 자꾸 피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아 어렴풋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짐작하게 되었다.“엄마도 옛날 일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일들을 모두 잊었다거나 하는 거요. 다른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 어땠다며 얘기해도 전 아무것도 모르거든요.”“에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어. 그때 우린 안형동네에 살았고 거기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네 아빠 동기들과 한 무리의 아이들이었지.” 그리고 거듭 말했다. 잊은 건 잊은 대로 두자고.나는 엄마가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마침 내 전화벨 소리가 울려 나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가지러 갔다. 배현우였다. “늦은 시간에 웬 전화요?” 나는 그에게 낮게 말했다.“지금 나올 수 있어요? 저 스타라이트에 있는데.” 고혹적인 목소리였다. 심장이 갑자기 쿵쾅쿵쾅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힐끗 보고는 의도적으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금방 갈게요. 기다려요.”엄마가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배현우에게 몇 마디 더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늦으면 밖에서 자고 올게요.”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엄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회사 동료들이요. 오늘 저녁에 모였었는데 제가 간 뒤로 더 달렸나 봐요. 일에 관해 얘기도 한다고 하니 가야겠어요.” 나는 침착한 척 변명을 늘어놓았다.“멀어?”“아니요. 차로 십 분 거리요. 먼저 자고 계세요. 열쇠 챙겼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말을 마치고 나는 바로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차를 타고 나는 빠른 속도로 골드 빌리지를 떠났다.꼭대기 층에 있는 방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려고 하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배현우가 손을 뻗어 나를 잡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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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정직하고도 사악한 남자

“배유정을 치려고요?” 내가 깜짝 놀라 배현우를 쳐다보았다.그가 나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코를 살짝 터치했다. “역시, 누구 것인지 총명하군요.”“그럼 배유정과 이청원이 손을 잡으면 어쩌려고요? 괜찮아요?” 내가 떠보았다.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청원이 그렇게 쉽게 손을 잡을 사람으로 보여요?”배현우의 말이 맞았다. 늙은 여우나 다름없는 이청원은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계략이 깊은 똑똑한 사람이었다.그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만약 연락이 안 되면 메일을 보내요. 메일은 언제든 볼 수 있으니. 지금 대외적으로는 제 일을 위해 가는 거니까 배유정에게 통제당하지 않을 거예요.”나는 정말 그를 보내기 싫었다. 배현우를 보지 못하면 난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까.“이청원이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해요. 최선을 다해 최대의 이익을 취해요. 절대 그를 위해 의리를 지키려 하지 마요. 이청원도 그럴 거니까. 본인의 이익만 생각해요.”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 마음이 너무 허했다. 이번에 가면 얼마 동안이나 떨어져 있을지. 그의 말로 유추했을 때 나는 그가 아주 오래 외국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럼 만일 배유정과 이청원이 정말 손잡는다면 어떡해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왜냐하면 나는 배유정이든 이청원이든 모두 이익은 거절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그럼 혹시 제가 뭘 해야 할 게 있을까요?” 내가 또 물었다.그가 고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나에게 키스했다. “있죠. 얌전히 예쁘게 기다리다가 저랑 함께 지내는거요.”“...뻔뻔하네요. 저 진지하게 물어보는거거든요?...흡...”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자기 입술로 내 입을 막았다. 마치 열망을 다 쏟아내듯이 강한 입맞춤이었다.이 남자는 정직하면서도 사악한 면이 있다. 이 상반되는 모습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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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공항 고속도로에서의 사고

구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계약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일에 조금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됐다.두 마리의 늙은 여우가 맞붙었으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미 그들의 싸움에 끌려들어 간 셈이니 어쩔 수 없이 준비해야 했다.회사로 돌아와 금방 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홀의 대형 스크린을 둘러싸고 실시간 뉴스 보도를 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그들은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고 나도 무심코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또 어디에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구급차와 소방차가 둘러싸고 있었다.나는 눈길을 두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떠들썩한 일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번 교통사고를 당한 마당에, 더 이상 트라우마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아이고... 피해자 천우 그룹 대표라며?”“교통사고 심각해보이는데...”순간 머리가 망치로 크게 맞은 듯했다. 천우 그룹의... 대표? 나는 갑자기 침착함을 잃고 대형스크린 쪽으로 달려가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보았다.화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폐차 수준으로 찌그러진 마이바흐가 여전히 연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그 장면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영상 속에 휙 스쳐 지나가는 번호판이 배현우 차 번호판을 연상하게 했다.나는 온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손을 뻗어 곁을 지나가는 한 사람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언... 언제 일어난... 사고예요?”심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게 들렸다.“금방 일어났을 거예요. 실시간 보도 기사니까요.” 그 사람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어디. 어디요. 여기 어디예요?” 나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대답했다. “공항 고속도로일 겁니다.”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문을 뛰쳐나가는 순간 무엇을 잊은 듯 그대로 멈춰 섰다. 한참을 멍하니 입구에 서 있고 난 뒤에야 내 차가 지하 차고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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