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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배현우와의 밤

나는 저도 모르게 엄마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눈을 자꾸 피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아 어렴풋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엄마도 옛날 일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일들을 모두 잊었다거나 하는 거요. 다른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 어땠다며 얘기해도 전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에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어. 그때 우린 안형동네에 살았고 거기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네 아빠 동기들과 한 무리의 아이들이었지.” 그리고 거듭 말했다. 잊은 건 잊은 대로 두자고.

나는 엄마가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침 내 전화벨 소리가 울려 나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가지러 갔다. 배현우였다. “늦은 시간에 웬 전화요?” 나는 그에게 낮게 말했다.

“지금 나올 수 있어요? 저 스타라이트에 있는데.” 고혹적인 목소리였다. 심장이 갑자기 쿵쾅쿵쾅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힐끗 보고는 의도적으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금방 갈게요. 기다려요.”

엄마가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배현우에게 몇 마디 더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늦으면 밖에서 자고 올게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엄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회사 동료들이요. 오늘 저녁에 모였었는데 제가 간 뒤로 더 달렸나 봐요. 일에 관해 얘기도 한다고 하니 가야겠어요.” 나는 침착한 척 변명을 늘어놓았다.

“멀어?”

“아니요. 차로 십 분 거리요. 먼저 자고 계세요. 열쇠 챙겼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말을 마치고 나는 바로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차를 타고 나는 빠른 속도로 골드 빌리지를 떠났다.

꼭대기 층에 있는 방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려고 하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배현우가 손을 뻗어 나를 잡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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