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뜬 이세림 세 글자에 순간 흠칫했다.“세림 씨, 쓸데없는 말 할 거면 그만 하세요! 당신이랑 씨름할 기분 아니니까.”전화를 받자마자 쏘아댔다. “현우 씨 소식이라면 당신들이 말하든 하지 않든 알 방법이 있으니깐요!”“하하, 지아 씨 진짜 급했나 보네요.” 세림은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괴상한 말투로 대답했다. 상당히 즐거운 모습이었다. “뭘 이렇게 화를 내세요?”“많이 심심한가 보네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내가 신경 쓸수록 더 기어오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역시 손에 든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나는 전화벨이 세 차례 울릴 때까지 참다 받았다. “제 인내심을 테스트하지 마세요!”“하하, 지아 언니!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 괜찮다고요, 정말요!” 그녀의 말투에는 장난기와 비웃음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근데, 당분간은 볼 수 없을 거예요. 아쉽네요! 너무 걱정할까 봐, 말해주고 싶었어요!”전화가 뚝 끊겼다.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공개 도발이었다. 그래! 몰래 숨어서 허튼수작하는 것보단 낫지.“세림이야?” 영식은 신호를 기다리며 물었다. “현우 씨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네.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더이상 연기는 못해서겠죠!” 나는 입꼬리를 달싹였다.“뉴스를 막는 것도 정상이야. 그 정도로 큰 재벌들은 바람에 나뭇잎만 스쳐도 흔들리는데 사람 생사와 관련된 일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지.”영식이 위로하며 말했다. “동철 씨한테 방법이 있을 거야. 좀 진정하고 소식을 기다리자. 급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난 그냥 진짜로 현우 씨가 무사한 것인지만 알고 싶어.”차창 밖의 줄지어 선 차들과 밀려드는 인파를 바라보며 전에 없던 무기력감을 느꼈다.“마음 편히 먹어. 스스로를 가둬놓지 마. 네가 조급해할수록 그 사람들만 즐거워할 거야. 괜찮을 거야, 그 사람 지위를 생각했을 때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영식의 말투는 사뭇 부드러웠다. 조급하던 마음도 서서히 안정돼갔다.그
전화를 건 사람은 낯선 남자였다. 남자는 자신이 배현우의 소식을 안다고 하며 단둘이 만나기를 요청했다. 나는 누군지 묻고 싶었으나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대신 문자로 주소 하나가 도착했다. 아마 약속 장소인 것 같았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방을 들고 뛰어나갔다.내비게이션을 찍고 단숨에 약속 장소로 향한 나는 초조했다. 현우의 소식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며칠 만에 처음이었다. 소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가짜일지라도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보단 나았다.근 며칠 동안 배현우의 교통사고는 없었던 일인 양 잠잠했다. 초기 실시간 뉴스도 그의 존재와 함께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이 일은 나를 미치게 했고, 종적을 찾을 수 없을수록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더 알고 싶어졌다.어쩜 이렇게 묻힐 수 있을까? 이번 교통사고는 소소한 사고가 아니라 6명이 다치고 1명이 사망한 사고가 아닌가?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는 건 불가능했다.때문에 이 낯선 남자의 전화는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았고 나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가 정한 장소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익숙지 않은 곳이라 찾는 데 꽤 애를 먹었다.그리 크지 않은 카페였고 주변에 유명하지 않은 대학 하나가 있어 이 카페는 학교의 커플들을 위해 마련된 곳인 듯했다.나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석진 창가 자리를 골랐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창밖으로 행인들을 관찰했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볼 때마다 그 낯선 남자길 바랬지만 번번이 실망으로 이어졌다.어느새 약속 시각을 훌쩍 넘겼지만,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낯선 번호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꺼져있다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나는 끊임없이 휴대폰을 쳐다보며 혹시 누군가가 악의적인 장난을 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리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추측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전화 속 상대방은
사무실로 찾아온 사람들은 두 명의 제복을 입은 경찰이었다.의외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무엇 때문에 경찰이 찾아온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자리로 안내하자 경찰 중 한 명이 엄숙히 물었다. “유보욱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네?” 나는 당황했지만 바로 부인했다. “모릅니다!”경찰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바라봤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어 동료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사진!”다른 한 명의 경찰이 손에 든 서류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사진 속 사람을 자세히 봐주세요.”두 손으로 사진을 건네받아 자세히 보았다. 사진 속 남성은 나름 준수한 얼굴로 이십 대 학생으로 보였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하지만 저도 모르게 아까 전 들렀던 카페가 머릿속을 스쳤다.“정말 모르십니까?” 사진을 건넨 경찰이 차갑게 물었다, 아마 범인을 심문하는 것에 습관이 된 모양이다.불쾌함을 느낀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모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하지만 유보욱의 마지막 통화기록이 당신이라고 나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사뭇 진지한 태도였다. “그럼 이 번호는 알고 계십니까?” 말하며 전화번호가 쓰여진 쪽지를 건넸다.나는 테이블에서 휴대폰을 잡아 그 낯선 번호를 찾아냈다. 쪽지에 쓰인 번호와 대조해보자 역시 완전히 똑같았다.나는 경악한 채 경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이... 이 번호로 전화가 온 적이 있어요!”경찰의 눈이 번뜩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쪽지와 휴대폰을 함께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상황을 설명해주세요.” 번호를 대조해보던 경찰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온 것부터 만남을 약속한 것까지 곧이곧대로 얘기했다. 배현우의 사건까지 포함해 한 점의 거짓이나 숨김도 없었다. 경찰은 속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배현우의 교통사고와도 연관되어 있어
이유는 모르겠으나 순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토록 찬란한 어린 생명이 날 만나러 오는 길에 차에 깔려 죽었다니.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그저 나에게 배현우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소식일 뿐인데 생명을 앗아갈 정도였을까?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나는 이 사건이 절대 단순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동철이 급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경찰은 왜 나에게 배현우와 관련된 일을 묻지 않았을까? 이처럼 결정적인 문제를 왜 그저 흘려보낸 것일까?더군다나 이미 화물차 기사의 음주운전이 밝혀졌는데도 왜 계속 조사를 진행하는 걸까?모든 것이 모순적이었다.정말 상상한 것이 사실이라면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배유정이 사주한 것일까? 아니면 배현우, 혹은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배현우가 이처럼 커다란 음모에 말려 들어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배씨 가문에 어떤 비밀이 있길래 생과 사를 다퉈야 하는지. 심지어 무고한 사람까지 끌어들여야만 했는지. 오후 내내 나는 수많은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차를 끌고 진후빌딩으로 향했다. 도로 위는 꽉 막혀있었다. 길이 막히는 걸 가장 싫어하는 나는 조용히 샛길로 빠져 한적한 골목길 옆 가계 앞에 차를 대고 조용히 피크 타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그때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려 깜짝 놀랐다.요즘은 전화 한 통에도 쉽게 긴장했다. 화면을 보니 엄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엄마!”전화를 받은 순간 골목길에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특이한 빨간색 스포츠카가 고요한 골목길로 들어서자 유난히 눈에 띄었다.나는 시선을 차에 집중한 채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몇 시에 들어오는지 묻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사실은 나를 걱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집에서 혼이 빠진 채 행동한지라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간섭으로 보일까 싶
나는 잠시 진정한 후 시동을 걸어 골목길을 빠져나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마침 도로상황도 많이 나아져 바로 집으로 향했다.엄마는 내가 돌아온 것을 보자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저녁을 준비했다. 이처럼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은 정말 흔치 않았다.부모님은 내가 집에 돌아와 식사한다는 소리에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말씀으로는 갓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것이다.밥을 먹고 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콩이를 데리고 산책할 겸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벌써 며칠 째 만나지 못했던지라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현우에 관해 물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미연이는 요즘 한소연도 잠잠해졌다고 말해줬다. 매일 혼이 빠진 듯 행동하는 것이 역시 현우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했다.“걱정하지 마. 한소연 매니저한테도 얘기해뒀어.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알려주기로.” 미연이 위로했다. 나는 힘들 때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했다.“미연아,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아.”나는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텔레비전으로 게임을 하는 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최근 있었던 수상한 일들을 빠짐없이 얘기했다.“천우 그룹처럼 글로벌한 그룹이라면 내부 상황은 미스터리 그 자체지. 누가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어. 하고 싶은 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뭐. 내부 암투가 진짜 참혹하대, 가문 안에서 벌어지는 암투는 일반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더라. 너도 조심해!” 미연은 소파에 기대 콩이를 바라봤다. “너한텐 콩이도 있으니까.”나는 게임에 열중한 작은 꼬맹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한소연 일만 놓고 봐도 배현우가 한소연을 스타로 만들려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되는 일이야.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일인데 말이지. 전에도 말했듯이 신중하게 선택해. 배현우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 혼자 지옥 불에 뛰어들 가봐 그래.”
미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스럽게 바라봤다. 표정에서는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왜? 누가 억지로 시키는 거야?”“아, 아니!”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겠는데 어떤 힘에 이끌리는 것 같아. 엄청 커다란 손이 끊임없이 날 밀고 있어서 멈추지 못하는 기분이야. 배현우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라.”미연은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사실 몇 번이고 도망치려고 했어. 내 조건이 현우 씨에게 맞지 않는다는 거 아니까. 누가 생각해도 미쳤다고 할 거야. 근데...”“우리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이어주는 느낌이야. 전부터 이런 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나는 심지어 우리가 전부터 알던 사이였는지 의심했다니까. 심지어 이런 감정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나는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이런 상태는 전부터 계속 있었어. 그냥 혼자 부정해왔던 거지. 그런데 매번 현우 씨와 관련된 일을 겪을 때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엮여있는 기분이야."미연이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너 너무 깊게 빠진 거 아니야?”나는 미연이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너 혹시 내가 그 사람이랑 함께 할 이유를 찾는다고 생각해?”“조금은.” 미연이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뒤에 대답했다. “아니야! 난 심지어 내 삶에 그 사람이 나타난 적 있다고 느꼈어!” 말을 뱉으며 스스로도 놀랐다. 하지만 이런 감각은 사실이었다. “근데 증명할 방법을 못 찾았지.”“아 맞다! 너 한소연이랑 내가 비슷하단 건 알지! 한 명 더 있었어. 나보다 한소연과 더 닮은 사람이!” 나는 임윤아를 이야기했다.미연이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정말 임윤아의 사진을 찾았단 말이야?”“응. 나보다 더 닮았어.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성격까지 똑같아! 아 그리고, 전에 말하지 못한게 있는데, 나 기억을 잃은 부분이 있어.” 나는 내 모든 의구심을 미연에게 털어놨다.“기억이라고?” 놀란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전에 말한게 사실이었네!”
대체 무엇을 위해 배현우와 관련된 소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팔팔하게 살아있던 한 생명을 앗아간 걸까?이 문제들은 다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늦은 밤, 나는 콩이를 안고 희미한 가로등 아래 어두운 주택가를 거닐었다. 그림자는 끊임없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반복했고 내 발걸음 소리는 조금 쓸쓸했다.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유보욱을 생각하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기이했다.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품에 안긴 아이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힘겹게 집 앞에 도착해 손을 뻗어 문을 열려는 순간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고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아악!""지아 씨, 저에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체 현우에 관한 소식을 아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그 형체가 내 앞에 다가와서야 한소연이라는 것을 알았다."한밤중에 뭐 하는 거예요?" 내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니 어깨에 기대어 있던 콩이가 칭얼대며 움직였고 나는 얼른 아이를 토닥였다."놀랐구나!""노크했는데 집에 없다 하니 기다렸어요!"한소연도 자신의 경솔함을 느낀 듯 나를 바라보았다."배현우 씨 상황이 어떤지 아시나요?"나는 그녀를 흘겨보며 다소 비꼬아 말했다."한소연 씨 남자친구에 관한 일을 왜 나한테 와서 물어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지아 씨, 제발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지 말아요. 본인이 현우랑 어떤 관계인지는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그녀는 강압적인 기세로 내게 바짝 다가왔다. 블랙홀 같은 두 눈에 거의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뭐라고요?"나는 경멸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배현우 씨랑 뭘 했는지 소연 씨가 직접 봤어요? 나한테 힘 빼지 말고 들은 사람에게 가서 물으세요. 소연 씨는 주소지를 잘못 찾아왔어요. 배현우 씨 여동생을 알잖아요. 그분에게 물어보세요. 나보다 발언권이 있으니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왔는데 한소연이 뒤따라 문을 확 열어젖혔다. "정말 현우에 대해 들은 소식이 없어요?""없어요! 소식을 듣게 되면 반
내 마음이 돌연 가벼워졌다. 배유정이 서울을 떠나면 아마 좀 더 잘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어떤 면에서 보면 이건 나에게 좋은 소식이었다.나는 이동철에게 배유정이 떠난 후의 천우 그룹 측 상황을 지켜보라고 조언했다. 배현우는 다쳤고 배유정이 떠나도 회사는 항상 운영되어야 하니 이곳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다 문득 한 곳이 생각났는데 그곳은 바로 배현우의 집이었다. 경산남원은 외진 곳이라 관할이 어려워 사람들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경원은 또한 그의 개인 영역이니 바로 그곳에 있지 않을까?나는 회사 일을 처리한 후 차를 몰고 곧장 경원으로 향했다.설이 막 지난 이 계절은 한창 좋은 시기라 남원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사실 미개발지역에 속하여 지금은 방치 상태에 있다.예전에 배현우가 임시로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설명하자면 이곳은 천우 그룹이 개발한 것임을 의미한다.그런데 오랜만에 이쪽으로 와보니 관광지 쪽에서 또 공사하는지 도로에 자갈이 많이 깔려 있었다.나는 경원의 개인 도로로 돌아섰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내가 너무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흥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그의 소식을 알고 싶다. 내 추측이 맞을지도 모르니까.나는 기쁜 마음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액셀을 꾹 밟았다. '왜 진작 이곳에 와서 배현우 씨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지?'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수동적이라며 힐책했다.경원에 도착했지만, 문 앞에서 가로막혀버렸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바로 차를 몰고 들어갔는데 이번엔 경적을 몇 번이나 울려도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나는 차에서 내려 걸어갈 수밖에 없었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문간 경비원에게 말했다."저 배현우 씨 찾으러 왔어요.""죄송하지만 배현우 씨는 안 계십니다." 그는 정중하게 대답했다.이곳의 경비원은 모두 특수 훈련을 받아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실마리를 발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