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엇을 위해 배현우와 관련된 소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팔팔하게 살아있던 한 생명을 앗아간 걸까?이 문제들은 다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늦은 밤, 나는 콩이를 안고 희미한 가로등 아래 어두운 주택가를 거닐었다. 그림자는 끊임없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반복했고 내 발걸음 소리는 조금 쓸쓸했다.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유보욱을 생각하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기이했다.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품에 안긴 아이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힘겹게 집 앞에 도착해 손을 뻗어 문을 열려는 순간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고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아악!""지아 씨, 저에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체 현우에 관한 소식을 아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그 형체가 내 앞에 다가와서야 한소연이라는 것을 알았다."한밤중에 뭐 하는 거예요?" 내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니 어깨에 기대어 있던 콩이가 칭얼대며 움직였고 나는 얼른 아이를 토닥였다."놀랐구나!""노크했는데 집에 없다 하니 기다렸어요!"한소연도 자신의 경솔함을 느낀 듯 나를 바라보았다."배현우 씨 상황이 어떤지 아시나요?"나는 그녀를 흘겨보며 다소 비꼬아 말했다."한소연 씨 남자친구에 관한 일을 왜 나한테 와서 물어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지아 씨, 제발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지 말아요. 본인이 현우랑 어떤 관계인지는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그녀는 강압적인 기세로 내게 바짝 다가왔다. 블랙홀 같은 두 눈에 거의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뭐라고요?"나는 경멸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배현우 씨랑 뭘 했는지 소연 씨가 직접 봤어요? 나한테 힘 빼지 말고 들은 사람에게 가서 물으세요. 소연 씨는 주소지를 잘못 찾아왔어요. 배현우 씨 여동생을 알잖아요. 그분에게 물어보세요. 나보다 발언권이 있으니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왔는데 한소연이 뒤따라 문을 확 열어젖혔다. "정말 현우에 대해 들은 소식이 없어요?""없어요! 소식을 듣게 되면 반
내 마음이 돌연 가벼워졌다. 배유정이 서울을 떠나면 아마 좀 더 잘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어떤 면에서 보면 이건 나에게 좋은 소식이었다.나는 이동철에게 배유정이 떠난 후의 천우 그룹 측 상황을 지켜보라고 조언했다. 배현우는 다쳤고 배유정이 떠나도 회사는 항상 운영되어야 하니 이곳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다 문득 한 곳이 생각났는데 그곳은 바로 배현우의 집이었다. 경산남원은 외진 곳이라 관할이 어려워 사람들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경원은 또한 그의 개인 영역이니 바로 그곳에 있지 않을까?나는 회사 일을 처리한 후 차를 몰고 곧장 경원으로 향했다.설이 막 지난 이 계절은 한창 좋은 시기라 남원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사실 미개발지역에 속하여 지금은 방치 상태에 있다.예전에 배현우가 임시로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설명하자면 이곳은 천우 그룹이 개발한 것임을 의미한다.그런데 오랜만에 이쪽으로 와보니 관광지 쪽에서 또 공사하는지 도로에 자갈이 많이 깔려 있었다.나는 경원의 개인 도로로 돌아섰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내가 너무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흥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그의 소식을 알고 싶다. 내 추측이 맞을지도 모르니까.나는 기쁜 마음에 더는 참을 수 없어 액셀을 꾹 밟았다. '왜 진작 이곳에 와서 배현우 씨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지?'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수동적이라며 힐책했다.경원에 도착했지만, 문 앞에서 가로막혀버렸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바로 차를 몰고 들어갔는데 이번엔 경적을 몇 번이나 울려도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나는 차에서 내려 걸어갈 수밖에 없었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문간 경비원에게 말했다."저 배현우 씨 찾으러 왔어요.""죄송하지만 배현우 씨는 안 계십니다." 그는 정중하게 대답했다.이곳의 경비원은 모두 특수 훈련을 받아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실마리를 발견하는
차가 막 개인 도로를 빠져나가려 할 때 나는 무심코 식물 틈새로 먼 곳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붉은 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것이 빨간 슈퍼카가 아닐까 생각했다.이세림? 이세림이 경원에 왔다고?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우고 주위 환경을 돌아보며 빠르게 후진했다.드디어 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보였고 눈대중으로 폭을 확인한 후 길목으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내 차의 색깔은 파나메라의 연한 스카이 블루라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빨간 슈퍼카 한 대가 '씽' 하며 지나갔다.나는 쿵쾅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속으로 분석했다.'정말 이세림일까? 만약 배현우가 정말 경원에 없다면 이세림이 그곳에 살 수 있을까?'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친밀한 가족이니까.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또 한 대의 검은색 세단이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나는 아예 갈 생각을 접고 바로 그 자리에 정차시켜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지만 더는 들어오고 나가는 차를 발견하지 못했다.그제야 은신하고 있던 지역을 빠져나와 다시 개인 도로로 돌아와 경원에서 벗어났다.시내로 돌아온 후 나는 조민성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만나자고 했다. 물론 나의 구실은 공사 건이었다.사실 천우 그룹과의 공사 건은 이미 장영식에게 넘겼지만 내가 조민성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 해도 도를 넘는 것은 아니었다.그는 거절하지 않고 자기 사무실로 오라 했고 나는 한달음에 날아서 천우 그룹 빌딩으로 갔다.조 대표의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 대표님, 제가 대표님을 찾아온 건 협력 상의 일 때문이 아니에요. 배현우 씨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부상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조 대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말했다. "예상했어요!""..."그의 태도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예상했다' 는 것은 내가 찾아온 걸 전혀 예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그럼... 제게 만족할만
나는 무기력하게 서 있기만 할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어쩌면 나는 조민성이 배현우가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나는 조급함을 전혀 숨기지 않고 조민성을 향해 말했다."조 대표님, 머리를 다친 것 외에 다른 곳은 괜찮은가요? 이런 경우 얼마 만에 깨어날 수 있다고 의사가 말씀하시진 않았나요? 그리고... 후유증은 남지 않을까요?"나는 곧장 무너질 것 같았다. 왜 하늘은 이토록 무심한 걸까? 왜 하필 그인 걸까?조민성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팔과 가슴에도 상처가 있지만 가장 심한 것은 머리입니다. 의사도 언제 깨어날 수 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며칠, 어쩌면 몇 달... 이건 출혈 부위의 흡수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조민성의 말에 나는 더 조급해졌다.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고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예의를 잃은 것 같아 얼른 눈물을 훔쳤다."한 대표님, 돌아가세요! 이번 사고로 이미 배현우 씨의 계획을 망쳤으니 부디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요. 저희는 배현우 씨가 하루 빨리 깨어나셔서 대국을 주관하시길 희망합니다. " 조민성은 온화한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물론 한 대표님 심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모두 좋은 방향으로 노력해야 해요.""조 대표님, 대표님은 이번 교통사고가 그리 간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나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어요?"조민성은 눈에 띄게 멈칫하며 나를 주시했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내가 침착하지 못했음은 알 수 있었다."한 대표님, 누구도 천재지변과 인재에 맞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막는 것 뿐입니다. 저는 한 대표님이 맑은 정신뿐만 아니라 냉정한 이성도 겸비하기를 바랍니다."조민성의 말투는 너무 무거웠다. 그는 나의 이런 생각이 밖으로 표출
장영식은 내가 온종일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자 몹시 초조해하며 나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전부 수신 거부했다. 그러던 중 내가 돌아오니 그는 바로 나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왔다."지아야, 어디 갔었어? 괜찮아?"그는 아마도 내 안색이 좋지 않아 쪼르르 뒤쫓아오며 물은 듯싶다.나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나 천우 그룹에 가서 조민성 대표를 만났어.""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장영식은 다급히 물었다. 물론 그는 내가 조민성을 만난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그는... 여전히 혼수상태래. 아직 깨어나지 못했대!"나는 장영식을 속이고 싶지 않았고 더 큰 무기력함을 느끼며 말했다."머리를 다쳤다 했고, 정보를 차단해야 한다 했어."장영식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며 침묵한 채 내 사무실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어쩐지 그들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소식을 막으려 하더라니. 배현우 씨가 인수한다고 발표하자마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잖아. 이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배유정의 사람들이 다시 활약하게 될까 봐 무서워.""중요한 건 배현우 씨가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거야. 오늘 배유정이 호주로 갔어. 처음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나는 불안에 떨며 중얼거렸다."그 여자는 또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떻게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할 수 있겠어? 처음부터 그 여자는 천우 그룹을 돌려줄 생각도 전혀 없었던 거야. 너도 너무 걱정하지마. 어쨌든 우리는 천우 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하잖아."장영식은 나를 위로했다."난 배현우 씨가 대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바로 그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라고. 오늘 조 대표도 이번 교통사고로 배현우 씨의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고 말했어." 지금의 나는 이 상황을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장영식밖에 없었다."내가 알기로 배유정은 천우 그룹의 오너가 바뀌는 걸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천우 그룹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그 여자를 미치게 만
나는 갑자기 뭔가 떠올라 얼른 장영식에게 말했다. "참, 그 일이 있고 난 뒤 배현우 씨가 다쳤다는 얘기 외에 나는 아직도 김우연을 본 적도 없고 김연우에 관한 소식을 들은 적도 없어. 설마 김우연도 많이 다쳤을까?"말하고 나서 장영식을 보니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장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김우연도 다쳤을 거야!""맞아. 사고가 났을 때 배현우와 같은 차에 있었고 그 차의 상태만 보더라도 김우연은 많이 다쳤을 거야."나는 그날 대형 스크린 화면에서 많이 손상된 그 차를 보았던 것을 기억했다."지아야, 날 믿어. 배현우 씨는 괜찮을 거야. 마음을 좀 느슨히 가져." 어쩌면 내가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걱정된 건지 장영식은 얼른 위로해 주었다. "생각 좀 해보자."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럴 수밖에 없어. 우연의 상태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데 어쩌겠어.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영식아, 요 며칠 우리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다시 한번 봐. 천우 그룹 쪽 프로젝트는 반드시 신중해야 해.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배유정이 약점을 잡아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도록 말이야."그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문이 밀리며 이해월이 들어오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한 대표님, 그 경찰들이 또 왔어요."나는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나는 그들이 잘 왔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들에게 물어볼 일이 있어서였다.장영식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 먼저 나갈게. 너무 화내지 말고 침착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함께 의논하면서진행하자."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영식은 그제야 몸을 돌려 나갔다.이해월은 두 경찰관을 데리고 들어왔다.이번에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맞이하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두 경찰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 앉으세요!"그 두 경찰관은 서로를
나의 태도는 좀 오만했고 말투도 꽤 쌀쌀맞았다.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는 조금 긴장했다. 그때 나는 긴장했을 뿐만 아니라 원망도 가득했다. 그들의 태도, 눈빛, 그리고 말투는 모두 나를 매우 짜증 나게 했다."두 경찰관님, 도대체 뭘 조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당신들만큼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신들이 아주 중요한 문제를 빠뜨린 것 같아요. 두 분이 일부러 묻지 않는 건지 아니면 물을 필요도 없는 건지 모르겠네요?"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잠시 멈추었다가 물었다. "유보욱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게 무엇인지 당신들은 왜 물어보지 않죠?"질문한 후 나는 그 경찰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과연, 그는 나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또 다른 경찰관은 머쓱하게 당신이 말한 이 문제가 바로 지금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말했다."그럼 두 분에게 묻겠습니다. 지난번에 조사하러 왔을 때 이 문제를 빠뜨린 겁니까 아니면 묻고 싶지 않았던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들은 그가 나에게 말하려 했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까?"나는 살기 넘치는 기세로 추궁했다."그리고 두 분, 제가 이 사건의 관련자로서 당신들이 왜 유보욱의 사인을 조사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소형트럭 운전자가 술에 취해 운전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음주운전인데 유보욱이 누구와 접촉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나요?"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나의 질문이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그건 기밀이니 알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조사에 협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나이든 경찰관이 좀 짜증스럽게 말했다.그의 대답은 나에게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즉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당신들의 이런 절차가 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제복을 입고 회사에 와서 저에게 물어보는 게 회사에 미칠 영향은 그렇다 칠게요. 먼저 이 일의 관련자로서 저는 자초지종을 알 권리가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그 두 사람은 다시
나는 잠시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배현우 씨는 제 친구이자 파트너예요. 그는 교통사고로 다쳤고 난 그가 도대체 어디를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알고 싶은데 왜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거죠? 바로 이것이 제가 알고 싶은 문제예요.""천우 그룹의 요청으로 이번 교통사고에서 배현우 씨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전면 차단했어요."나는 두 경찰관을 보다가 그들의 입에서 '중상'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흘겨보았다."그래서 우리도 협조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교통사고 사건은 절차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배현우 씨의 부상에 관한 걸 차단했을 뿐 사건 처리 결과는 정상적으로 처리할 거예요. 전 사건 처리가 완료된 후 분명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주리라 믿습니다."경찰관의 대답은 물론 빈틈없었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상황을 알아내기란 아예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말에서 이 차단 명령은 분명히 배유정이 내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배현우는 혼수상태라 그녀의 짓임이 틀림없다.사실 배유정의 이런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녀가 소식을 차단한 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그녀와 그녀의 끄나풀만이 알 것이다.나는 유감스럽다는 듯 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유보욱이 배현우 씨에 관한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해서 급하게 그를 만나러 갔는데 그가 도중에 죽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경찰관님, 정말 교통사고예요?""현재로서는 별다른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판단됩니다."경찰관은 여전히 대답을 고집했다. 아직 단서가 없는 것 같지만 난 분명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수사를 이어갈 리가 없었다.나는 힘이 빠져 중얼거렸다. "당황스럽네요. 저는 단지 배현우 씨의 부상 정도와 그의 목숨을 건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인데 왜 안 되는 걸까요? 경찰 선생님들이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 제가 안심할 수 있는 답변을 주시기를 바라요."나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